빗물이 흙바닥을 두드리는 소리 사이로, 쇠사슬이 부딪치는 기분 나쁜 파열음이 표국 마당을 채웠다.
무림맹의 세금 징수 대장 팽조가 이끄는 뇌옥 수레가 자아내는 기괴한 자태는 그 자체로 거대한 압박이었다. 질척이는 진흙을 짓이기며 멈춰 선 수레 뒤편으로, 철갑을 두른 무사들이 살기등등한 안광을 번뜩였다.
"여기 반역의 무리들이 모여 있군. 저 형틀에 처넣을 목숨이 아주 가득해."
팽조의 거친 음성이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의 어깨에 얹힌 거대한 도(刀)가 빗물을 받아 차갑게 번득였다. 마당 구석에 쓰러져 신음하는 징수원들을 훑어보는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흉포함이 그 눈빛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백소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혁린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는 미동조차 없었지만, 주변의 공기는 이미 터지기 직전의 화약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팽조의 시선이 혁린을 지나쳐 그 뒤에 선 백소진에게 닿았다. 비열한 미소가 그의 입꼬리에 걸렸다.
"용호표국의 핏줄인가? 맹의 법도를 어긴 대가는 네년의 목숨으로 먼저 치러야겠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팽조의 거구가 허공을 가르며 쇄도했다.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공할 신법이었다. 거친 손아귀가 빗줄기를 찢으며 백소진의 목덜미를 향해 짓쳐 들었다. 백소진의 눈동자가 공포로 커진 찰나였다.
쩌적!
대기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청색 광풍이 몰아쳤다.
혁린의 신형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실루엣은 이미 팽조의 코앞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공간을 짓밟고 일어선 번개의 신법, 뇌보(雷步)였다.
"어디를 보느냐."
낮게 가라앉은 혁린의 음성이 팽조의 귀청을 때렸다.
팽조가 경악해 도를 치켜세우려 했으나, 혁린의 손이 더 빨랐다. 뱀처럼 파고든 혁린의 두 손이 팽조의 억센 두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무쇠를 쥔 듯한 무지막지한 악력이 가해졌다.
콰드득!
"으아아악!"
뼈가 뒤틀리고 부러지는 둔탁한 파열음이 빗소리에 섞여 터져 나왔. 팽조의 거구가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체내의 도강(刀罡)을 끌어올려 반발하려 했으나, 혁린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푸른 전류가 그의 기경팔맥을 타고 들어가 내력의 흐름을 단숨에 차단해 버렸다.
혁린의 오른손바닥이 반원을 그리며 팽조의 이마를 향해 내리꽂혔.
뇌신무예 초식, 뇌격 수박(雷擊手搏).
콰르릉!
마치 머릿속에서 벼락이 터진 듯한 굉음이 표국 마당을 울렸다. 손바닥이 이마에 닿는 순간, 뇌전의 기운이 팽조의 두개골을 관통하여 그의 뇌수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꺼져라."
퍽!
팽조의 거구가 바닥으로 처박혔다. 눈을 뒤집은 채 입가로 피와 거품을 흘리는 그의 몸이 경련하듯 사르르 떨렸다. 맹수 같던 기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한 마리 버려진 짐승처럼 진흙탕을 굴렀.
주변을 둘러싼 무림맹 무사들의 숨소리가 한순간에 멎었다. 단 한 합. 맹 내에서도 악명 높은 고수였던 팽조가 손쓸 도리도 없이 무력하게 쓰러진 광경은 그들에게 지옥의 묵시록과도 같았다.
혁린은 쓰러진 팽조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황금빛 실로 정교하게 수놓아진 가죽 수패(獸牌)가 매달려 있었다. 무림맹주가 직접 하사하여, 맹의 권위를 상징하는 절대적인 신물이었다.
스윽.
혁린이 수패를 치켜들자 무사들의 눈에 실낱같은 희망이 스쳤다. 아무리 강한 자라도 맹주의 수패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강호의 무언의 규칙 때문이었다.
그러나 혁린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바지직! 화르륵!
그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고열의 기뢰가 수패를 감쌌다. 가공할 뇌전의 불꽃이 가죽과 금사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맹주의 권위이자 무림맹의 법도라 불리던 신물이, 단 한 호흡 만에 검은 잿더미가 되어 빗물 속으로 허무하게 흩어졌다.
"이딴 가죽 부스러기가 네놈들의 목숨을 지켜줄 거라 믿었나."
잿가루를 털어내는 혁린의 몸짓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무림맹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짓밟아 버린 선언이었다. 무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그들의 세계를 지탱하던 절대적인 가치 우열이 이 무명(無名)의 사내 앞에서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그때였다.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마당 안으로 난입했다.
진흙을 사방으로 튀기며 멈춰 선 군마의 등에는 깃발 하나가 꽂혀 있었다. 붉은 바탕에 선명하게 새겨진 팔괘의 문양. 천하 문파 중에서도 기문둔갑과 진법으로 이름을 떨치는 제갈세가(諸葛世家)의 영기(令旗)였다.
말에서 내린 전령은 팽조가 쓰러져 있는 참상을 보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게 무슨……! 팽 대장님!"
전령의 손에 쥐어진 서신 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혁린의 신형이 바람처럼 움직여 전령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차가운 안광이 서신 통에 고정되었다.
"제갈세가의 깃발이 왜 무림맹의 사냥개와 함께 움직이지?"
혁린의 목소리에는 벼락의 잔향이 섞여 있었다. 전령은 그 기세에 눌려 주저앉으며 엉금엉금 뒤로 물러났다.
"소, 소가주님께서…… 제갈휘 소가주님께서 지금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무림맹 총단의 명을 받들어, 이 지역의 모든 반역 무리를 토벌하러……!"
전령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백소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제갈휘. 제갈세가의 차세대 가주이자, 젊은 나이에 일류의 경지를 넘어선 천재 검객. 그의 고결한 성품과 강직함은 변방의 표국에까지 자자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무림맹의 명을 받아 이곳을 완전히 쓸어버리기 위해 압송단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사실은, 이 싸움이 단순한 세금 수탈을 넘어선 거대한 음모의 톱니바퀴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혁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슴 안쪽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천뢰(天雷)의 힘을 쓸 때마다 심장에 쌓이는 붉은 기운, 뇌적(雷積)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제갈휘…….'
그는 쓰러진 팽조의 품을 거칠게 뒤졌다. 그의 손가락 끝에 닿는 얇은 비단 주머니가 있었다. 주머니를 찢자 그 안에서 은밀하게 밀봉된 연신(軟信) 한 통이 나왔다.
서신을 펼치자, 붉은 직인이 선명하게 박힌 글귀들이 혁린의 눈동자에 담겼다.
[제갈세가의 존망은 오직 맹의 처분에 달려 있다. 소가주는 용호표국의 무리를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처단하여 세가의 충성을 증명하라. 그리하면 가문의 채무를 탕감하고 정파의 명예를 유지케 하리라. - 무림맹 장로 사공도]
"……추악하군."
혁린의 입에서 나직한 실소가 흘러나왔.
정파의 명숙이라 칭송받는 사공도가, 붕괴해 가는 제갈세가의 절박한 생계를 빌미로 제갈휘라는 천재를 살인귀로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가문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더러운 사냥개가 되기를 자처한 제갈휘의 비장함과, 그를 장기말로 쓰는 무림맹의 썩은 속내가 종이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인과(因果)의 사슬이 느껴졌다. 이 비극적인 굴레를 끊어내지 않는 한,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뇌적의 불꽃은 결국 스스로를 태워 죽일 터였다. 천뢰의 검령인 뇌령의 비웃음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혁린아……."
백소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불렀다. 그녀의 거친 손이 혁린의 옷자락을 조심스레 잡았다. 수많은 상처를 치료해 주던 그 따뜻한 온기가 차가운 빗속에서도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때 표국의 노포들과 늙은 표사들이 허둥지둥 마당으로 뛰어왔다. 그들의 얼굴은 이미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보게, 혁린! 무림맹에 이어 제갈세가의 소가주까지 온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이대로 가다간 우리 표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걸세! 지금이라도 표국을 버리고 야반도주라도 해야 하네!"
"맞네! 무림맹을 상대로 우리가 어찌 버티겠는가! 항복하고 자비를 구하세!"
두려움에 질린 노인들의 비명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평생을 밑바닥에서 짓밟히며 살아왔기에, 거대 세력의 이름만 들어도 척추가 부러진 개처럼 납작 엎드리는 것이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혁린은 그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뼈저린 현실을 관통하는 고독한 확신만이 서려 있었다.
"달아나면 살 수 있을 것 같나."
그의 무거운 목소리가 노표사들의 아우성을 단숨에 잠재웠다.
"저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제갈세가를 살리기 위해 사냥개가 된 자들이, 달아나는 짐승을 그냥 둘 리가 있나. 강자가 아니면 죽음뿐인 것이 저들이 말하는 정파의 냉정한 질서다."
혁린은 품에서 벼락의 기운이 은은하게 흐르는 검손잡이를 꽉 쥐었다.
"비굴하게 기어서 목숨을 구걸하느니, 내 손으로 그 질서를 부숴버리겠다. 나를 밟으려 하는 자들이 있다면, 벼락의 무게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의 단호한 선언에 백소진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늙은 표사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사시나무 떨듯 떨 뿐이었다.
그때였다.
스산한 바람이 마을 어귀에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사선으로 꺾이며, 공기 중에 기분 나쁜 피비린내가 섞여 들었다.
덜컹, 덜컹.
표국 정문 너머로 삐걱거리는 마차의 소리가 다가왔다. 마차를 이끄는 말은 고삐도 없이 그저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걸어오고 있었다.
마차가 마당 한가운데에 멈춰 섰을 때,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숨이 멎었다.
수레 위에는 시체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푸른 도복을 입은 사내들. 가슴팍에 선명하게 새겨진 청운(靑雲)의 문양. 무림맹의 정예 무사들이자 일류 검객들로 명성이 자자한 청운검객 열 명이었다.
그들의 몸에는 단 한 줄기의 검흔만이 새겨져 있었다. 일격필살. 군더더기 없는 완벽하고도 비정한 검로가 자아낸 참혹한 흔적이었다.
"이, 이럴 수가…… 청운검대원들이 전부……."
무림맹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마을 입구의 어둠 속에서, 빗속을 뚫고 걸어오는 한 사내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는 검자루를 잡은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검을 꽉 쥔 채 묵묵히 걸어오고 있었다. 눈빛에는 가문의 생존을 짊어진 자의 무겁고도 슬픈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제갈세가의 소가주, 제갈휘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빗방울이 사내의 어깨에 닿아 산산이 부서졌다.
제갈휘. 그의 걸음걸이는 무거웠으나 흔들림이 없었다. 진흙탕을 밟고 서 있음에도 그의 백색 도복은 기이할 정도로 정갈했다. 오직 빗물에 젖어 살죽에 달라붙은 소매 끝자락만이 그가 걸어온 길의 험난함을 대변할 뿐이었다.
그가 끌고 온 수레 위의 청운검객들은 무림맹 총단에서도 손꼽히는 정예들이었다. 가슴에 새겨진 일자(一字)의 깊고 정교한 검흔. 그것은 제갈세가의 비전 무공인 합단검기(合丹劍氣)가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상흔이었다.
"맹의 사냥개들을…… 스스로 베었군."
혁린의 목소리가 빗소리를 가르고 나직하게 울렸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도포 자락 속에 감춘 천뢰의 검자루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겉으로는 의연했으나, 혁린의 머릿속은 태산마적의 소굴에서 살아남았던 본능적인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갈휘가 아군을 베며 나타난 이 기이한 광경 역시 자신을 방심시키기 위한 덫일 수 있었다.
제갈휘가 걸음을 멈추었다. 혁린과 그의 거리, 불과 십오 보. 무인에게는 찰나의 호흡으로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간극이었다.
"그들은 맹주 직속의 감시자들이었다."
제갈휘의 목소리는 갈라진 쇳소리처럼 서글펐다.
"나의 검은 가문의 멸문(滅門)을 막기 위해 쓰일 뿐, 무림맹의 더러운 탐욕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다. 정파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들을 내 손으로 척살하고, 오직 무인으로서 너와 마주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의 시선이 혁린의 발치에 쓰러진 팽조와 반쯤 타버린 맹주의 수패로 향했다. 제갈휘의 눈동자에 기이한 불꽃이 일렁였다. 경멸도, 분노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은 차마 걷지 못한 길을 걸어가는 자를 향한 깊은 경외(敬畏)였다.
"맹주의 수패를 불태우다니. 너는 진정 천하를 적으로 돌릴 셈이냐."
"적이 다가오면 벨 뿐이다. 그것이 맹주든, 사대문파든 상관없다."
혁린의 대답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두 사내의 도포 자락을 사납게 뒤흔들었다. 공중에서 부딪치는 두 기세의 충돌로 인해 낙하하던 빗방울들이 허공에서 튕겨 나가며 미세한 수증기로 변했다.
정적 속에서 혁린의 가슴팍이 욱신거렸다.
두근. 두근.
심장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붉은 기운, 뇌적(雷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팽조를 쓰러뜨릴 때 발산했던 기뢰의 대가였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열기가 뼛속까지 태워버릴 듯한 극통으로 변해 혁린의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가슴팍의 붉은 검무늬가 옷감 너머로 붉은 안개를 토해내듯 희미하게 발광했다.
'크윽…….'
신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혁린은 이를 악물고 삼켜냈다. 적의 앞에서 약점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때, 혁린의 이명 속으로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천뢰의 검령, 뇌령이었다.
- 히히히! 보아라, 저 고결한 척하는 멍청이를! 저놈의 심장에는 가문이라는 무거운 족쇄가 채워져 있구나. 저놈을 베어라, 혁린! 저 비장한 영혼을 검에 바친다면 네 뇌신무예는 한 단계 더 고강해질 것이다! 비록 네 수명은 한 움큼 더 타들어 가겠지만 말이다!
뇌령의 광기 어린 속삭임이 뇌리를 헤집었지만, 혁린은 마음의 벽을 굳건히 세웠다. 타인에 대한 불신과 고립주의로 다져진 그의 심경은 뇌령의 유혹조차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제갈휘가 천천히 검자루를 잡았다.
스으으응-.
검집에서 흘러나오는 검명(劍鳴)이 빗소리를 압도하며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피가 검신을 타고 흘러내려 푸른 검기(劍氣)와 섞였다. 제갈세가의 존망을 어깨에 짊어진 자의, 목숨을 건 투로(套路)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혁린. 내게는 물러설 곳이 없다. 이 검으로 너를 베어 사공도 장로에게 바쳐야만, 내 가솔들이 겨울을 버틸 양식과 문파의 존속을 허락받을 수 있다."
제갈휘의 눈가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렸다.
"원망치 마라. 이것이 약육강식의 강호에서 내가 선택한 비겁한 생존 방식이다."
"원망 따윈 키우지 않는다."
혁린이 천천히 천뢰를 뽑아 들었다.
바지직!
검신이 드러나자마자 사방으로 푸른 뇌전의 불꽃이 튀며 대지를 그슬렸다. 뇌신무예의 기운이 혁린의 전신 근육과 무맥을 순식간에 각성시켰다. 뇌적의 통증은 가시지 않았으나, 그의 몸은 이미 최강의 파괴력을 뿜어낼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다.
"오직 힘으로 증명할 뿐이다."
대치하는 두 사내의 기세가 정점에 달한 순간이었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두 사람의 얼굴을 하얗게 비추었다.
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지면을 박차고 서로를 향해 쇄도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슈우우우욱-!
표국 사방의 담장 너머로, 기분 나쁜 파공음과 함께 수십 개의 붉은 연화탄(煙花彈)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붉은 불꽃이 밤하늘을 피비린내 나는 빛깔로 물들이며 터져 나갔다.
"이것은……!"
제갈휘의 검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제갈세가의 신호탄이 아니었다. 무림맹 총단, 그중에서도 무자비한 말살을 집행하는 철혈조(鐵血組)의 총공격 신호였다.
"아하하하! 멍청한 제갈세가의 애송이 놈! 결국 제 손으로 청운검대를 베어 무림맹을 배신할 명분까지 스스로 만들어주었구나!"
표국 정문 위, 어둠이 짙게 깔린 기와지붕 위에서 칠흑 같은 장포를 입은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중심에 선 외눈의 사내가 광소를 터뜨렸다. 사공도의 심복이자 철혈조의 조장, 독안매(獨眼鷹)였다.
그의 손에는 가느다란 철사 줄이 쥐어져 있었고, 그 철사 끝은 표국 처마 밑에서 벌덜 떨고 있던 백소진의 목덜미를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라, 무명검제.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는 순간, 이 계집의 목은 몸뚱이와 영원히 이별하게 될 테니."
독안매의 잔인한 미소와 함께, 표국 담장 위로 백여 명이 넘는 철갑 궁수들이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화살촉마다 푸른 독이 칠해져 있어 빗속에서도 흉폭한 빛을 발했다.
제갈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자신 역시 사공도의 철저한 계략에 놀아나 토사구팽의 덫에 걸렸음을 깨달은 것이다.
혁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에 쥔 천뢰가 분노하듯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위선과 음모로 가득 찬 무림맹의 마수가 마침내 표국의 심장부까지 들이닥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