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차단벽이 내려앉는 소리는 무거웠다.

쿠우웅-!

사방의 통로가 두꺼운 강철판으로 완전히 차단되었다. 붉은 비상 경보등이 회전하며 전당 내부를 피비린내 나는 색조로 물들였다.

단말기 위로 솟아오른 푸른 홀로그램.

실루엣은 인간의 형태였으나, 그 안을 채운 것은 무수한 이진법 코드의 배열이었다. 아바타 오스발트. 시스템의 관리자 인격이 태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법 프로세스 '강태현'. 당신의 존재는 시스템의 치명적인 메모리 오염입니다. 즉시 정화를 시작합니다."

기계음에는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다. 정중하지만, 타협의 여지가 없는 말살의 선언.

태현은 단말기를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뇌세포를 태우던 메모리 누수의 열감은 방금 전 리소스 탈취로 가라앉았으나, 관자놀이 부근이 여전히 찌릿했다.

"관리자 권한도 없으면서 관리자 행세라니."

태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뇌의 연산 속도는 이미 초고속 상태였다. 초당 수십 억 번의 회로가 머릿속에서 회전하며 눈앞의 데이터를 해체하고 있었다.

스스스스-.

오스발트의 형상이 손을 뻗자, 전당 천장의 해치가 열렸다.

쿵! 쿵! 쿵!

다섯 개의 거대한 강철 실린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면이 흔들리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실린더의 표면이 갈라지며, 붉은 안광을 빛내는 거미 형태의 감시 로봇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화 유닛-S1]

| 구분 | 사양 및 상태 | | :--- | :--- | | **개체 분류** | 시스템 보안 프로그램 (물리형) | | **장갑 등급** | 티타늄 합금 (물리 면역 40%) | | **에너지 출력** | 1,200 마력 | | **위험도 평가** | **A- (치명적)** |

"마스터."

설하가 검자루를 잡았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주인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긴장감이 그녀의 신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물러서 있어."

태현이 명령했다.

"하지만 저것들은 단순한 몬스터가 아닙니다. 시스템의 직접 통제를 받는 보안 유닛입니다. 제 검으로는 장갑을 뚫을 수가……."

설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상태창에는 여전히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상태: 스킬 사용 불가 (검술 스킬 주소값 에러)]

태현은 그녀의 상태창 뒤에 숨겨진 원형 소스코드를 들여다보았다. 개발자 콘솔 창이 허공에 반투명하게 떠올랐다.

`Active_Skill_List -> Sword_Mastery -> Address: 0x00000000 (NULL)`

"과연."

태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단순한 봉인 디버프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그녀의 스킬 주소값을 의도적으로 'Null'로 고정해 놓은 상태였다. 존재하지 않는 주소를 참조하니 스킬이 발동할 리가 없었다.

이것은 시스템이 정해진 규칙을 통해 영웅들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식이었다.

"설하."

"예, 마스터."

"검을 뽑아라. 그리고 내 신호에 맞춰 전방으로 종베기를 실행해."

설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즉시 검집에서 무거운 대검을 뽑아 들었다.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 단순한 물리 공격에 불과할 터였다.

태현의 손가락이 단말기 키패드 위를 폭풍처럼 쓸고 지나갔다.

`Modify_Pointer(&Sword_Mastery, 0x7FFF8A00); // 전당 물리 엔진 주소 할당` `Reallocate_Resource(Allocation_Type: Force);`

[System: 스킬 주소값 재할당을 시도합니다.] [Warning: 시스템 레거시 코드와의 충돌 위험 감지!] [Warning: 시술자의 생명력 소모가 시작됩니다.]

"크윽."

태현의 뇌 속에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발생했다. 뉴런이 타들어 가는 감각.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통증은 이미 계산 범위 내에 있었다.

[영구 생명 수치: 2,400 -> 2,380]

단 20의 수치 소모로 주소값 리디렉션이 완료되었다.

스스스스-!

설하가 쥐고 있던 대검의 검신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더니,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 파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에러가 복구된 것이다. 아니, 에러를 넘어 물리 엔진 자체를 직접 참조하는 초월적인 검술로 재탄생했다.

"지금이다. 베어라."

태현의 지시와 동시에 설하가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단순한 휘두름이 아니었다. 검 끝에서 방출된 마력 파동이 전방의 공간 자체를 찢어발기며 뻗어나갔다.

"이것은……!"

설하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자신의 힘이 아니었다. 검을 타고 흐르는 시스템의 원초적인 에너지가 그녀의 신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지잉-!

정화 유닛 중 한 기가 마력 장벽을 전개했으나, 설하의 검격은 장벽을 종이장처럼 찢어발겼다. 강철 합금으로 이루어진 로봇의 상체가 사선으로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쿠웅!

자려 나간 잔해가 바닥을 구르며 스파크를 튀겼다.

"체계적인 에러 복구 완료."

태현이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남은 네 기의 정화 유닛들이 일제히 안광을 붉게 물들였다. 그들의 등 뒤에서 마력 캐논이 솟아올랐다. 푸른 마력 충전 광선이 전당 내부를 채웠다.

피할 공간은 없었다. 퇴로는 완벽히 차단된 상태였다.

"불법 프로세스의 전술 패턴 분석 완료. 물리적 타격을 통한 정화를 실행합니다."

오스발트의 홀로그램이 손가락을 튕겼다. 네 기의 캐논에서 동시에 거대한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전당의 공기가 열기로 인해 흐려졌다.

태현은 피하지 않았다. 그가 단말기의 엔터 키를 눌렀다.

`Local_Physics_Engine.Set_Gravity_Vector(Target_Area: Area_A, Vector: [0, 0, -98.0]);`

중력 가속도 변수 `g`를 기존의 10배인 `-98.0m/s²`로 강제 수정하는 명령이었다.

우르르릉-!

정화 유닛들이 서 있던 구역의 공간이 기괴하게 굴절되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위에서 누르는 것처럼, 유닛들의 티타늄 다리가 순식간에 꺾이며 바닥으로 처박혔다.

콰드득! 콰쾅!

"정화…… 연산…… 오, 오류……."

10배의 중력을 견디지 못한 로봇들의 내부 프레임이 스스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사하려던 마력 캐논의 궤도가 아래로 꺾였다.

지이잉- 콰아아앙!

네 기의 로봇이 발사한 마력 광선이 서로의 본체를 직격했다. 자기들끼리 쏜 에너지가 왜곡된 중력장 안에서 압축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궁-!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강철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태현은 단말기 전면에 소형 방화벽 배리어를 전개해 파편들을 가볍게 튕겨냈다.

연기와 불꽃이 걷힌 자리에는 오직 찌그러진 고철 덩어리들만이 널려 있을 뿐이었다.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거둔 승리였다.

태현은 고철 더미로 시선을 돌렸다. 파괴된 로봇들의 제어 칩에서 푸른빛의 데이터 스트림이 허공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즉시 단말기를 조작해 해당 데이터를 흡수했다.

`Extracting_System_Data...` `Success: [Emergency_Reboot_Trigger] 주소 카피 완료.`

태현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오스발트의 시스템 자체를 강제로 리부트할 수 있는 핵심 트리거 명령어를 손에 넣은 것이다.

"유용한 리소스다."

그가 중얼거리는 순간, 전당의 차단벽 너머에서 거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이 안쪽에서 엄청난 마력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서두르십시오!"

"정화 유닛들의 신호가 끊겼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철컥, 철컥.

무장한 인원들이 전당의 파괴된 틈새를 통해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선두에는 흰색 은도금 갑옷을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정의를 신뢰하는 전형적인 기사, 윤지오였다.

지오의 시선이 전당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찌그러진 시스템 보안 유닛들의 잔해와, 그 중심에 서서 건조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강태현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마력의 잔향을 풍기는 대검을 쥔 백설하가 서 있었다.

지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신은…… 대체 무엇을 한 겁니까?"

지오의 목소리에는 경악과 경계심이 동시에 묻어났다. 그녀가 이끄는 부대는 서울 외곽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순찰하던 중이었다. 시스템의 규칙을 거스르는 초자연적인 진동을 느끼고 이곳으로 달려온 터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태현의 모습은 괴물 그 자체였다. 시스템의 절대적인 수호 유닛들을 손도 대지 않고 파괴한 존재.

"방해물이 늘었군."

태현은 지오 일행을 '비인가 관찰자(Observer)' 오브젝트로 분류했다. 그의 눈에 그들은 그저 화면의 픽셀 몇 개를 차지하는 불필요한 데이터에 불과했다.

"시스템의 규칙을 어지럽히는 자여. 당신이 한 짓은 이 세계의 질서를 붕괴시키는 행위입니다."

지오가 검을 반쯤 뽑으며 경고했다.

"질서?"

태현이 피식 웃었다.

"버그투성이 시스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너희들의 질서라면, 차라리 붕괴시키는 편이 효율적이다."

그의 무감각한 대답에 지오의 부하들이 일제히 무기를 겨누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때, 허공에 정지해 있던 오스발트의 푸른 홀로그램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확장되기 시작했다.

[System: 치명적인 외부 변수 개입 확인.] [System: 대상 '강태현'의 위험 등급을 재조정합니다.]

| 구분 | 기존 등급 | 변경 후 등급 | | :--- | :---: | :---: | | **위험 식별** | 불법 프로세스 | **Malware-Level 5 (최상위 유해 코드)** | | **대응 프로토콜** | 국소 정화 | **시스템 전체 정화 (System-Wide Purge)** |

오스발트의 목소리가 톤을 낮추며 전당 전체를 울렸다.

"비인가 비정규 맬웨어 프로그램의 완전 소거 모드를 가동합니다. 구역 내의 모든 오브젝트를 초기화 대상에 포함합니다."

"뭐라고?"

지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신들까지 말살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선언이었다.

위이이잉-!

지구의 자기장 인덱스가 미친 듯이 꼬이기 시작했다.

전당의 바닥에 그려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공간의 물리 법칙이 붕괴되는 전조였다.

쿠구구구-!

태현과 설하, 그리고 밖에서 기웃대던 지오의 선두 정찰대가 서 있는 바닥이 기괴하게 분열하기 시작했다. 중력의 방향이 좌우로 뒤틀리며 지반이 아래로 꺼져 내렸다.

"마스터!"

설하가 태현의 소매를 붙잡았다.

지오 역시 균형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바닥이…… 무너진다!"

단말기 화면에는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Warning: 공간 인덱스 좌표 이탈!] [Warning: 시스템 방화벽 세션 만료!] [Warning: 차원의 틈새로 강제 드롭됩니다.]

태현은 단말기를 꽉 쥐었다. 무한한 어둠이 그들의 발밑에서 입을 벌렸다.

그는 추락하는 순간에도 오스발트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다음 단계의 사냥을 준비하는 기계의 눈이었다.

몸이 허공으로 붕괴하며, 그들은 차원의 검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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