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 마십시오. 움직이는 순간, 이 객체의 두뇌 포인터를 완전히 파괴하겠습니다."
황동빛 열쇠 끝에서 뿜어 나오는 붉은 레이저가 백설하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백설하는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과부하가 걸린 그녀의 마력 회로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거친 숨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태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그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았다. 분노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상황을 타개할 최적의 알고리즘만을 머릿속에서 도출해 낼 뿐이었다.
눈앞의 적은 소스코드 교단의 집행자.
그가 쥐고 있는 무기는 시스템의 기본 물리 법칙을 우회하는 특수 오브젝트였다.
그렇다면 정면 대결은 비효율적이다. 상대의 공격 프로토콜 자체를 오염시켜야 했다.
태현은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였다.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색 개발자 콘솔 창이 떠올랐다.
[Console: Command Line Active]
그가 생각하는 대로 코드가 실시간으로 입력되기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집행자가 발사하려는 노이즈 탄환의 핵심 변수였다.
`Find: Object_Weapon_Key_01` `Query: Projectile_Data`
순식간에 무기의 세부 스펙이 텍스트로 나열되었다.
[Object: Heretic_Key] [- Damage_Type: Noise_Chaos] [- Damage_Value: 850] [- Projectile_Speed: 150m/s]
피해량 850.
지금의 백설하가 맞으면 즉사할 수치였다. 태현 역시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을 터였다.
태현은 차분하게 명령어를 수정했다.
`Modify: Heretic_Key.Projectile_Data.Damage_Value = 0.01` `Modify: Heretic_Key.Projectile_Data.Projectile_Speed = 5m/s`
피해량을 극소 가치인 0.01로 변환하고, 탄속을 초속 5미터로 늦추는 옵션이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기어가는 달팽이만큼이나 느렸다.
그 순간, 태현의 머릿속이 쪼개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덮쳐왔다.
"윽……."
신음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으나 억지로 삼켰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실시간으로 뉴런이 파괴되며 발생하는 생명력의 손실이 시각화되어 눈앞에 명멸했다.
[시스템 경고: 개발자 권한 남용으로 인한 메모리 누수(Memory Leak) 감지!] [경고: 영구 뇌세포 손상 진행 중. 생명력이 실시간으로 차감됩니다.]
| 상태 변수 | 변경 전 | 변경 후 | | :--- | :--- | :--- | | **현재 생명력** | 100% | 88.5% | | **영구 수명** | 45년 12일 | 44년 280일 |
수명이 약 100일가량 날아갔다.
하지만 태현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갔다. 치러야 할 대가에 비해 얻을 결과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정화의 시간입니다. 더러운 버그들이여, 소멸하십시오."
집행자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황동빛 열쇠의 트리거를 당겼다.
콰아아앙-!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붉은색 노이즈 탄환이 발포되었다.
집행자의 얼굴에는 광기 어린 승리감이 가득했다. 백설하 역시 눈을 질끈 감으며 다가올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뿜어져 나온 것은 파괴적인 광선이 아니었다.
피식-.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색 불꽃놀이 폭죽만도 못한 둔탁한 불씨가 허공으로 툭 튀어나왔다.
그것은 초속 5미터라는 어처구니없는 속도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어린아이도 가볍게 피할 수 있는 궤적이었다.
"……어?"
집행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무기가 오작동할 리가 없었다. 신성한 시스템의 권능이 깃든 도구였다.
그가 당황하여 무기를 흔들어 대는 사이,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콘솔 창의 커서가 다음 명령어를 띄웠다.
`Target: Projectile_Chaos_01` `Modify: Projectile_Chaos_01.Position.Index = Enemy_01.Position.Index` `Modify: Projectile_Chaos_01.Vector.Direction = Reverse`
공간 인덱스 좌표 왜곡.
발사된 탄환의 위치 좌표값을 집행자 본인의 위치 좌표값과 실시간으로 동기화시키는 작업이었다. 방향 벡터 역시 완벽하게 역전시켰다.
파지직!
공중에서 둥실거리던 붉은 불씨가 갑자기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정확히 0.1초 뒤.
"커헉?!"
집행자의 오른쪽 어깨에서 붉은색 노이즈 폭발이 터져 나왔다.
태현이 탄속을 다시 원래대로 복구하는 코드를 끼워 넣은 결과였다.
순간적으로 가속된 탄환은 집행자의 어깨뼈를 완전히 으스러뜨리며 관통했다.
뼈가 바스러지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복도 벽면에 거세게 흩뿌려졌다.
"아아악! 내 어깨가! 내 팔이!"
집행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황동빛 열쇠 무기가 바닥으로 댕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태현은 천천히 걸어가 황동빛 열쇠를 발로 차 멀리 치워버렸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시스템의 규칙을 맹신하는 자들의 한계다."
태현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백설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기적에 가까웠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교단의 집행자가 역으로 자신의 공격에 당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마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어떤 화려한 스킬 이펙트도 없었다.
그저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을 뿐인데, 세계의 법칙이 뒤틀렸다.
"당신은…… 대체……."
설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오랫동안 시스템의 기계적인 명령에 마모되어 가던 그녀의 영혼에, 태현의 존재는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태현은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눈에 백설하는 그저 유용한 '오브젝트'이자, 자신의 앞길을 막아줄 훌륭한 고기방패에 불과했다.
"일어날 수 있겠나."
태현의 건조한 질문에, 백설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덜덜 떨렸으나 그녀는 억지로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태현의 등 뒤로 걸어가 검을 비스듬히 겨누었다.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녀의 눈빛이 이전과 달리 단단하게 변해 있었다.
"이 목숨, 방금 당신이 구해주셨습니다. 제 검술이 오염되어 쓸모를 잃을 때까지…… 당신의 등을 지키겠습니다. 약속합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굳은 맹세가 서려 있었다.
태현은 속으로 냉소했다.
'약속이라니. 감정적인 데이터 낭비군.'
그러나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쓸 만한 장비의 내구도가 올라간 셈 치면 그만이었다.
"좋다. 그 약속, 효율적으로 쓰도록 하지."
태현은 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집행자에게 다가갔다.
집행자의 생명력 수치는 빠르게 하락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곧 소멸해 데이터 조각으로 흩어질 터였다.
태현은 쓰러진 집행자의 머리맡에 서서 콘솔을 다시 열었다.
`Scan: Enemy_01.Memory_Registry`
죽어가는 객체의 임시 메모리 버퍼에는 그가 살아생전 처리했던 데이터의 잔재가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일종의 '레지스트리 유언 데이터'였다.
삐비빅-.
태현의 시야에 붉은색 텍스트 로그가 어지럽게 흐르기 시작했다.
[Registry Deep Scan Complete] [- Subject: Cult_Executor_03] [- Active_Task: Seoul_Sector_Purge] [- Master_Node: Han_Jin-woo]
태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한진우.'
그 이름이 레지스트리의 최상위 권한자로 등록되어 있었다.
이어서 추출된 시스템 로그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로그 분석: '한진우'의 명령 프로토콜] - 목표: 서울 제로 구역(Root Sector)의 공간 인덱스 완전 붕괴. - 방법: 구역 내 모든 각성자 및 괴수의 생체 코드를 강제 추출하여 메인프레임의 제물로 바침. - 현재 진행률: 42.1% - 예상 완료 시점: 5일 뒤.
"서울 전체를 시스템 산출물 제물로 삼으려는 건가."
태현의 읊조림에, 바닥에 누워 있던 집행자가 피를 토하며 큭큭 웃었다.
"교단주님께서는…… 우리를 무결한 데이터로 승천시키실 것이다…… 뒤떨어진 육신을 벗어던지고…… 신의 품으로……."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집행자의 신체가 푸른색 노이즈 입자로 분해되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장비들과 몇 가지 소모품이 바닥에 드롭되었다.
태현은 바닥에 떨어진 전리품들을 무감각하게 수거했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한진우라는 새로운 변수로 가득 차 있었다.
'한진우. 소스코드 교단의 우두머리. 서울 전체를 제물로 삼으려 한다면, 메인프레임의 리소스 역시 그자에게 집중되겠군.'
그것은 태현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자신의 메모리 누수를 해결하고 수명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메인프레임의 최적화 리소스가 반드시 필요했다. 한진우가 벌이려는 의식의 복판에 그 리소스가 모여 있을 터였다.
"목표가 확실해졌군."
태현이 중얼거렸다.
그는 백설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태현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그에 대한 경외와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동한다. 다음 구역으로."
"예, 따르겠습니다."
설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그녀는 전투 중 손상된 무기를 대신할 임시 서브 무기를 꺼내려 했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꺼내든 것은 낡은 마법 검이었다. 검신에 기괴한 룬 문자가 새겨진, 던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급 아티팩트였다.
그러나 그녀가 검자루를 움켜쥐는 순간.
삐이이이이이이-!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의 시스템 경고음이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악?!"
백설하가 비명을 지르며 검을 떨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검은 마치 그녀의 손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검신에 새겨진 룬 문자가 붉은색 검은 빛으로 폭주하며, 그녀의 팔을 타고 검은 덩굴 같은 노이즈가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태현의 눈앞에 경고창이 폭발적으로 생성되었다.
[위험: 장착 아이템 '오염된 마법 검'의 소스코드 충돌 감지!] [오류 코드: Null Pointer Exception in Weapon_Skill_Address] [경고: 무기 제어 프로토콜 파손. 소유자의 의식을 강제 잠식합니다.] [상태: 무차별 난사(Wildfire) 모드 강제 실행!]
"비켜…… 세요……! 몸이…… 제멋대로……!"
백설하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붉은색 노이즈로 뒤덮였다.
그녀의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이 비정상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서율의 검술 스킬 주소값이 완전히 꼬여버린 결과였다. 데이터 충돌로 인해 그녀의 인공지능 로직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쉬이익-!
백설하가 쥔 검이 허공을 갈랐다.
엄청난 크기의 붉은 검풍이 태현의 뺨을 스치며 뒤편의 벽을 완전히 박살 냈다.
그녀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태현을 응시하더니, 기괴한 속도로 지면을 박차고 그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죽…… 여…… 정화…… 해야……."
그녀의 입에서 기계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태현은 급히 뒤로 도약했다.
그의 등 뒤를 수호하겠다던 사냥개가, 단 1초 만에 자신을 물어뜯으려는 미친 괴수로 변해 있었다.
태현은 급히 콘솔 창을 열었으나, 밀려드는 공격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검기가 통로 전체를 무너뜨리며 태현의 목을 겨누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