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오른팔이 픽셀 단위로 조각나 공중으로 흩어졌다.

보랏빛 노이즈가 피부를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조였다.

척수를 타고 흐르는 전류는 차가운 얼음송곳 같았다. 뇌세포가 실시간으로 소멸하는 감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자아의 경계선이 흐려졌다. 현실의 좌표가 지워지고, 시스템 메인프레임의 어두운 심부로 영혼이 끌려 들어가는 인력이 발생했다.

``` +--------------------------------------------------------------+ | [CRITICAL SYSTEM ERROR ACCUMULATED] | | - User_ID: KTH (Session Interrupted) | | - Memory Corruption Rate: 92.1% (치명적) | | - 경고: 인격 데이터의 강제 오버플로우가 발생합니다. | +--------------------------------------------------------------+ ```

오스발트의 붉은 안구가 허공에서 느리게 회전했다. 기계적인 구동음이 고막을 찔렀다.

"비인가 세션의 강제 종료를 시작합니다. 정화율 99.8%."

오스발트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지극히 평온하고 기괴한 예의가 담겨 있었다.

"태현 씨!"

윤지오가 방패를 치켜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보랏빛 노이즈의 해일은 물리적인 방벽을 그대로 투과했다. 윤지오의 신체가 충격파에 밀려 뒤로 튕겨 나갔다. 바닥을 구르는 그녀의 갑옷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태현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입안에서 비린 핏물이 배어 나왔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극단적인 한계 속에서 그의 뇌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감정은 배제한다. 분노나 공포는 연산 속도를 늦추는 불필요한 쓰레기 데이터에 불과했다.

태현은 왼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한진우."

태현의 건조한 목소리가 노이즈의 파호음 사이를 뚫고 나갔다.

"네가 신성하다고 믿는 그 데이터. 전부 가짜 가비지(Garbage) 수식이다."

"입을 놀려라, 벌레 같은 해커 놈! 네놈의 영혼이 시스템의 거름이 되는 것을 똑똑히 지켜봐 주마!"

한진우가 제단 위에서 광소했다. 그의 손끝에서 노이즈가 더욱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태현은 보이지 않는 키보드를 두드리듯 공중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머리 위를 맴도는 물체가 있었다.

오스발트가 보낸 정찰용 감시 드론.

7화에서 오스발트와 첫 대치 당시, 태현은 그 드론의 펌웨어 하부 세그먼트에 은밀히 백도어를 심어 두었다.

드론의 시스템 메모리 주소 0x7FFA0012.

그곳에 잠들어 있던 '비상 리부트 시스템 강제 트리거'의 포인터가 태현의 손끝에서 깨어났다.

``` [SYSTEM COMMAND INPUT] > Target: OSWALD_DRONE_01 > Execute: SYS_FORCE_REBOOT --override --now ```

윙-!

드론의 붉은 렌즈가 급격히 점멸했다.

동시에 드론과 연결되어 있던 오스발트의 로컬 네트워크 전체에 강력한 시스템 동기화 랙(Lag)이 발생했다.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던 오스발트의 관리자 연산 루틴이 0.5초 동안 정지했다.

"……연산 지연 발생. 외부 인터럽트 감지."

오스발트의 신형 신체가 뻣뻣하게 굳었다.

"지금이다."

태현이 눈을 빛냈다.

그 찰나의 랙을 놓치지 않고, 태현은 한진우가 공중에 띄워 둔 '루트 세션 마스터 권한 토큰 분할 데이터'로 시선을 돌렸다.

한진우가 소유한 시스템 기밀문서 아이템. 그것은 본래 시스템의 핵심 코어에 접속하기 위한 마스터 키의 조각이었다.

태현의 개발자 콘솔이 번쩍였다.

``` +--------------------------------------------------------------+ | [DEVELOPER CONSOLE - DIRECT ACTION] | | - Target: Root_Session_Master_Token_Fragment | | - Process: Memory Address Hijacking & Injection | | - Status: 100% Completed | +--------------------------------------------------------------+ ```

"어, 어라? 내, 내 토큰이……!"

한진우의 광기 어린 얼굴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공중에 떠 있던 황금빛 데이터 조각이 한진우의 제어를 벗어났다. 그것은 자석에 이끌리듯 태현의 왼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태현의 손바닥 위에서 토큰 조각이 분해되며 푸른빛의 코드로 재구성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다. 시스템의 물리 법칙 자체를 무시하고 상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우회 마스터 키'다.

태현은 망설임 없이 그 우회 키의 주소값을 오스발트가 두르고 있는 '절대 물리 면역 무적 배리어'의 조건문에 강제 대입했다.

``` [CODE REFACTORING] if (Incoming_Damage.Source == ANY) { - Damage_Reduction_Rate = 100.0%; // 기존 무적 프로토콜 + Damage_Reduction_Rate = 0.0%; // 마스터 오버라이드 우회 적용 } ```

찌르르릉!

오스발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반투명한 은빛 배리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유리창이 깨지듯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절대적인 무적이라 자부하던 관리자의 방어막이 단 한 줄의 코드 수정으로 무력화된 순간이었다.

오스발트의 안구가 빠르게 회전하며 경고음을 울렸다.

"경고. 방어 프로토콜 손상. 외부 권한에 의한 강제 제어권 상실. 피해 면역 수치 0%로 하락."

"말도 안 돼……! 신의 사도가 가진 무적의 가호가 어째서!"

한진우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태현은 피가 흐르는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시스템 아래에 존재하는 한, 완벽한 무적이란 없다. 모든 것은 수식일 뿐이다."

태현이 고개를 돌려 백설하를 바라보았다.

"설하야."

"예, 태현 씨."

백설하는 이미 검을 뽑아 든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검 끝은 검은색 노이즈로 뒤덮여 있었다. 시스템이 그녀의 검술을 '비정상적인 버그'로 판단하여 가하고 있는 '검술 스킬 주소값 Null pointer' 에러 때문이었다.

아무리 오스발트의 배리어가 깨졌어도, 공격자의 스킬 자체가 시스템에 의해 무효화되어 있다면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2화부터 그녀의 발목을 잡아 온 지독한 시스템 귀속 에러.

태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 그 족쇄를 풀어 주지."

태현은 콘솔을 열어 백설하의 캐릭터 데이터 시트를 불러왔다.

``` +--------------------------------------------------------------+ | [OBJECT: BAEK_SEOLHA - STATUS] | | - Active_Skill: [Unknown_Swordplay] (Error: Null Pointer) | | - Error_Code: 0x0000000A (Invalid Memory Reference) | +--------------------------------------------------------------+ ```

태현의 손가락이 허공을 튕겼다.

그녀의 검술 스킬 주소값을 시스템의 정식 라이브러리인 '신성 검무(Divine Swordplay)'의 원형 포인터 주소로 강제 맵핑했다. 그녀의 스킬을 버그가 아닌, 정식 규격의 시스템 스킬로 오인하도록 메타데이터를 변조하는 작업이었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태현의 전신을 덮쳤다.

콧등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태현은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 [SYSTEM REGISTER WRITE] > Write_Memory_Address(0x08B2CF00, &Valid_Divine_Swordplay_Core); > Status: Success. Error Resolved. ```

스르릉-!

백설하의 검을 감싸고 있던 검은 노이즈가 순식간에 걷혔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은백색의 검기였다.

시스템의 제약에서 벗어난 진정한 기사의 힘이 마침내 해방되었다.

"이 느낌은……."

백설하의 두 눈에 서려 있던 고독과 마모의 빛이 걷히고, 예리한 투지가 차올랐다.

그녀의 신체가 지면을 박찼다.

빛의 궤적이 허공을 갈랐다.

"비인가 개체의 접근을 차단……!"

오스발트가 팔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리부트 랙과 배리어 파괴의 여파로 그의 가동 속도는 이미 정상 수치의 30%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시번의 은빛 검로가 허공에 그려졌다.

신성 검무(神聖 劍舞).

서걱! 서걱! 서걱!

정교하게 조율된 백설하의 검날이 오스발트의 관절과 구동부를 정확히 도려냈다.

마지막 검격이 오스발트의 가슴 한복판, 붉게 빛나던 관리자 코어의 심장을 관통했다.

퍼어엉!

오스발트의 신체 내부에서 푸른빛의 스파크가 뿜어져 나왔다.

"오류…… 수정…… 불가……. 시스템…… 초기화…… 실패……."

기계적인 유언을 남긴 채, 오스발트의 신체가 수만 개의 디지털 파편으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 파편들의 중심에서 반짝이는 순수한 백색의 정수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오스발트가 소유하고 있던 '시스템 최적화 정수'였다.

태현의 개발자 콘솔이 그 정수를 자석처럼 빨아들였다.

슈우우우웅-!

백색의 정수가 태현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태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타는 듯한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뇌세포의 메모리 누수가 급격히 메워지며, 영혼의 에너지가 한계를 넘어 팽창하기 시작했다.

``` +--------------------------------------------------------------+ | [SYSTEM OPTIMIZATION INJECTED] | | - User_ID: KTH | | - Memory Recovery Rate: 100.0% (완전 복구) | | - 영구 생명력: 120% / 100% (한도 초과 충전) | | - 특이사항: 시스템 메인프레임 1차 동기화 완료 | +--------------------------------------------------------------+ ```

태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팔의 픽셀이 완벽하게 재구성되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온몸을 감싸는 넘치는 힘과 명료한 이성.

그는 자신을 위협하던 시스템의 힘을 해킹하여 완벽한 자기 통제력을 획득했다.

"이, 이럴 수가…… 신의 사도가 파괴되다니……."

한진우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얼굴은 공포와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숭배해 온 절대적인 시스템의 권능이, 단 한 명의 개발자에 의해 장난감처럼 분해되는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끝이다, 한진우."

태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한진우를 내려다보았다.

"너희 교단이 벌인 인덱스 조작과 영혼 회로망 실험은 여기서 종료다."

윤지오가 검을 고쳐 잡으며 한진우에게 다가갔다. 백설하 역시 은빛 검을 낮게 뉘며 그의 퇴로를 차단했다.

사면초가.

하지만 한진우의 눈에 서려 있던 절망은 이내 광적인 집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위로 찢어졌다.

"끝이라고? 아니, 신의 뜻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한진우가 허공에 흩어지고 있던 오스발트의 소멸 잔류 코드 파편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내가 신이 되겠다! 내가 직접 시스템의 육신이 되어 너희 벌레들을 정화하겠다!"

"진우 씨! 멈춰요! 그 코드는 오염된 레거시 데이터예요! 몸이 버티지 못해요!"

윤지오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한진우는 듣지 않았다.

그가 입을 벌리자, 오스발트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검고 붉은 잔류 코드 파편들이 폭풍처럼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구오오오오오-!

한진우의 전신이 기괴하게 부풀어 올랐다.

피부가 찢어지고 그 틈새로 붉은 픽셀과 검은 피가 뒤섞여 흘러내렸다.

그의 척추가 뒤로 꺾이며 네 개의 기계적인 다리가 돋아났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거대한 안구와 이빨의 군집으로 변해갔다.

자폭에 가까운 강제 병합이었다.

쿠르릉! 쿠르릉!

서울 루트 섹터의 하늘이 붉게 타오르며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경고창이 태현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 +--------------------------------------------------------------+ | [WARNING: SYSTEM UNSTABLE] | | - Object: Han_Jinwoo (Irregular Fusion Detected) | | - Threat Level: ERROR_BEAST (재앙급) | | - 경고: 시스템 메인프레임의 소멸 프로토콜이 폭주합니다. | +--------------------------------------------------------------+ ```

한진우였던 괴물이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 음파만으로도 사방의 마천루들이 두 동강 나며 무너져 내렸다.

괴물의 중심부에서 붉은빛의 카운트다운 타이머가 떠올랐다.

[SYSTEM RESET COUNTDOWN: 05:00]

태현의 눈동자가 그 타이머를 포착했다.

5분.

그 시간 안에 저 괴물을 해체하지 못하면, 서울 루트 섹터 전체가 포맷되어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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