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모니터가 붉은빛을 뿜어냈다. 서울 루트 섹터 전체를 에워싼 시스템 강제 로그아웃 프로토콜. 그것은 단순한 접속 종료가 아니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물리적 신체와 영혼 데이터를 서버에서 영구적으로 소거하는 포맷 명령이었다.

"에러 제거율 0.00%. 강제 포맷 연산을 개시합니다."

오스발트의 목소리는 기계적인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 뒤편에는 찢어지는 듯한 노이즈가 섞여 있었다. 그의 눈가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개의 광섬유 케이블이 공중에서 꿈틀거리며 하늘의 모니터로 연결되었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태현의 시야 왼편에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 +--------------------------------------------------------------+ | [WARNING: SYSTEM TERMINATION PROCESS DETECTED] | | - 대상 영역: 서울 루트 섹터 (Seoul_Root_Sector) | | - 타겟 오브젝트 수: 41,209 (Active Players) | | - 진행 단계: 0.12% (데이터 캐싱 중...) | | - 남은 시간: 180초 | +--------------------------------------------------------------+ ```

"태현 씨……!"

윤지오가 대검을 바닥에 박아 넣으며 간신히 버텼다. 가해지는 시스템 압박에 그의 무릎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꺾이기 시작했다. 온몸의 뼈마디가 데이터 붕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백설하는 검을 쥔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검 끝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검술 스킬을 발동하려 할 때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붉은색 에러 코드가 점멸했다.

"경고. 스킬 호출에 실패했습니다."

태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개발자 콘솔을 열었다.

키보드 타이핑 소리가 공허한 전장에 울려 퍼졌다. 태현의 뇌 속에서 수천 개의 뉴런이 한꺼번에 타들어 가는 오한이 일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릿한 피 맛이 올라왔다. 코드를 수정하는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물리적 메모리 누수. 생명력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갔다.

``` +--------------------------------------------------------------+ | [DEVELOPER CONSOLE - SYSTEM STATUS] | | - User_ID: KTH (Developer Level 3) | | - Brain Memory Leak: 78.4% (위험 수준) | | - Life Force: 21% (지속 감소 중) | +--------------------------------------------------------------+ ```

허리를 숙인 태현이 설하의 상태창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녀의 검술 무효화 디버프의 심부를 파고들었다. 단순한 상태 이상이 아니었다.

``` [Object: Player_BSH - Skill_List] - Active_Skill_01 (Soul_Blade): Error (NullPointer_Exception) - Target_Address: 0x00000000 (Null) ```

"그렇군."

태현의 입가에 건조한 미소가 걸렸다.

시스템은 설하의 검술 스킬 주소값을 'Null'로 고정해 두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주소를 참조하게 만들어, 그녀가 검을 휘두르는 행위 자체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버그로 처리한 것이다.

태현은 망설임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설하의 검술 스킬 주소값을 강제로 리다이렉트했다. 대상은 허공에서 붉은 눈을 빛내며 데이터를 송신 중인 오스발트의 감시용 드론들이었다.

``` [Code Refactoring] - Target_Address: 0x00000000 -> 0x7FFF8A12 (Osvald_Drone_Network) - Class_Redirection: Force_Active ```

"설하."

태현이 부르자, 백설하의 무감각한 눈동자가 태현을 향했다.

"검을 쥐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제 움직인다. 저 위에 떠 있는 눈들을 전부 베어라."

설하가 검 자루를 다시 쥐었다. 그 순간, 그녀의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검기가 대기를 가르며 요동쳤다. 시스템이 강제한 침묵이 깨진 것이다. 그녀의 신형이 허공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서걱-! 서걱-!

공중에 떠 있던 오스발트의 감시용 드론 세 기가 단번에 두 동강 나며 폭발했다.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와중에도 설하의 검격은 멈추지 않았다.

태현은 파괴된 드론들의 파편 사이에서 방출되는 깨진 소스 코드를 응시했다. 드론의 내부 어드레스에 숨겨져 있던 시스템의 잔재가 드러났다.

`[Emergency_Reboot_Trigger: Hidden_System_Backdoor]`

7화에서 오스발트가 보낸 정화 유닛들을 분석할 때 심어 두었던 추적용 백도어 패치가 드론의 동기화 에러로 인해 완전히 수면 위로 노출된 상태였다.

"찾았다."

태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비상 리부트 강제 트리거 실행."

쿠우우웅-!

하늘의 거대한 모니터가 순간적으로 꺼지며 회색 화면으로 뒤바뀌었다. 오스발트와 하늘을 연결하던 광섬유 케이블들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무슨…… 짓을……!"

오스발트의 붉은 안구가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리부트 프로토콜이 강제로 인젝션되면서 그의 연산 회로에 치명적인 지연 시간(Latency)이 발생했다.

`강제 리부트 대기 시간: 15초`

"15초면 충분해."

태현은 양손을 콘솔 위에 올렸다. 손가락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코드를 작성해 나갔다. 목표는 시스템의 강제 로그아웃 함수인 `System.Exit`였다.

이 함수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스템 메인프레임의 최상위 커널에서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함수가 실행되는 조건에 무한 대기 루프를 삽입하는 것.

``` [System_Kernel_Patch] function System.Exit(Object_List) { while (true) { if (Global_Variable.Force_Kill_Signal == false) { break; } // Infinite Loop Injection Wait_Milliseconds(100); } } ```

"루프 주입 완료."

태현이 엔터키를 눌렀다.

화면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붉은색 경고창이 일제히 정지했다. 0.12%에서 멈췄던 데이터 캐싱 수치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서울 루트 섹터 전역에 가득했던 종말의 진동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아……아아……."

윤지오가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몸을 짓누르던 시스템의 압력이 사라져 있었다. 하늘의 거대한 모니터에는 오류 코드만이 무한히 반복되어 출력되고 있었다.

`[Error: Thread_Blocked_In_System_Exit_Call]`

태현이 해킹 한 번으로 서울 전역에 내려진 사형 선고를 무기한 보류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서울 각지에서 절망에 빠져 있던 헌터들의 귓가에 시스템 공지가 울려 퍼졌다.

``` +--------------------------------------------------------------+ | [SYSTEM NOTICE: SAFE ZONE ESTABLISHED] | | - 원인: 개발자 권한에 의한 강제 로그아웃 프로토콜 보류 | | - 안전 구역 범위: 서울 루트 섹터 전 영역 | | - 대상: 플레이어 'KTH'의 동맹 리스트 및 주변 오브젝트 | +--------------------------------------------------------------+ ```

"이, 이게 무슨 소리야?"

"로그아웃 대삭제가 멈췄다고?"

강남역 인근의 붕괴된 마천루 잔해에 숨어 있던 랭커 헌터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무한한 대기 상태를 나타내는 모래시계 마크와, 그 마크 중심에 박힌 'KTH'라는 플레이어 이니셜이었다.

"강태현…… 그 사람이 시스템을 막은 건가?"

"우리가…… 살았어."

절망에 가득 찼던 이들의 동공에 경외심이 깃들었다. 무기력하게 삭제될 뻔한 목숨을 건져 올린 것은 신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법칙을 비틀어 쥔 단 한 명의 개발자였다.

윤지오는 태현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서린 것은 단순한 안도가 아니었다. 완벽한 통제력으로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태현에 대한 깊은 경외와 신뢰였다.

"태현 씨, 정말로…… 세상을 혼자서 다루고 계시는군요."

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 타들어 가는 석탄이 들어찬 것처럼 뜨거웠다. 과도한 메모리 누수로 인해 시야의 절반이 노이즈로 흐려졌다.

"크하하하학! 하하하핫!"

그때, 저편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진우였다. 그의 육신은 이미 인간의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몸 곳곳에서 보랏빛 노이즈가 분출되며, 피부가 픽셀 단위로 깨져 나갔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해커 놈!"

한진우가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시스템의 의지를 네까짓 종이 인형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신성한 서버의 데이터를 거부한 대가는 가볍지 않다!"

한진우가 양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의 몸에 박혀 있던 시스템 기밀문서 아이템인 '루트 세션 마스터 권한 토큰 분할 데이터'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토큰이 깨지며, 시스템 메인프레임과 연결된 차원의 균열이 강제로 벌어졌다.

위이이이잉-!

공간이 비명을 질렀다. 균열 사이로 쏟아져 나온 것은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원시 노이즈 데이터였다. 그것은 시스템이 처리하지 못해 버린 쓰레기 코드이자, 닿는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독극물이었다.

"신께서 내리신 성스러운 복음이다! 받아라!"

한진우가 광기 서린 얼굴로 손을 내뻗었다.

그가 제단 의식을 통해 모아둔 모든 노이즈와 시스템 메인프레임의 과부하 데이터가 거대한 보랏빛 해일이 되어 태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태현 씨! 피해요!"

지오가 소리치며 방패를 치켜들었으나, 그 노이즈는 물리적인 방어를 완전히 무시하고 지나쳤다. 오직 '개발자 권한'을 가진 태현의 세션 ID만을 표적으로 삼은 유도성 데이터 스트림이었다.

콰아아앙!

보랏빛 노이즈가 태현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윽……!"

태현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서버에서 추방당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뇌세포를 지나 척수, 그리고 자아의 근간이 되는 영혼 회로망까지 노이즈가 침투하기 시작했다.

``` +--------------------------------------------------------------+ | [CRITICAL SYSTEM ERROR ACCUMULATED] | | - User_ID: KTH (Session Interrupted) | | - Memory Corruption Rate: 92.1% (치명적) | | - 경고: 인격 데이터의 강제 오버플로우가 발생합니다. | +--------------------------------------------------------------+ ```

태현의 오른팔이 보랏빛 노이즈로 덮이며 픽셀 단위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의 자아가 현실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영원히 시스템의 심부로 튕겨 나가려 하고 있었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오스발트의 붉은 안구가 다시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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