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선 너머에서 풍겨오는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빗물은 뜨거워진 피부 위에서 증발하지 못하고 차갑게 흘러내렸다. 손목의 검은 낙인이 살을 찢고 나올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에너지가 기괴한 고동을 쳤다. 방목장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갈증의 사냥개'의 신성 파동이었다. 놈의 표식이 반응하고 있었다. 낙인이 붉게 타오르며 팽창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뇌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신성 오염의 전조였다. 더 거대한 격을 삼켜 영혼의 수평을 맞추지 않으면, 이 불완전한 힘들이 자아를 물들여 마수로 만들 터였다. 연우는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갈증을 다스릴 유일한 약은 사냥뿐이었다. 연우는 소리 없이 도약했다. 5미터가 넘는 고압 전류 철책선이 그의 가벼운 몸짓 아래로 허망하게 스쳐 지나갔다.
사역 지구 내부의 진흙탕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마력의 입자들이 피부를 따갑게 자극했다. 어두운 컨테이너 건물 사이로 몇 개의 인영이 빗속을 뚫고 솟아올랐다.
"침입자다!"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어둠 속에서 벼려진 쇠붙이들이 연우의 급소를 겨냥해 날아왔다. 연우는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뺨을 스치고 지나간 단검이 뒤편의 콘크리트 벽에 깊숙이 박혔다.
"쥐새끼 한 마리가 기어들어 왔군. 백 검사님이 말씀하신 이단자가 이놈인가?"
컨테이너 지붕 위에서 가죽 슈트를 입은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 명. 그들의 가슴팍에는 사법 길드 '천상의 정의'의 하청 조직임을 증명하는 은색 배지가 빛나고 있었다. 백도훈이 심어둔 사설 길드의 암살단이었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위이잉.
공기가 진동하며 그들의 전면에 육중한 반투명 장벽들이 전개되었다. 마력을 극도로 압축해 물리적 타격을 완벽히 차단하는 최첨단 마도 방패, '에테르 가드'였다. 개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방위 산업체의 특제품이자, 웬만한 고위 각성자의 참격도 가볍게 흘려버리는 현대 과학의 결정체였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무가호 이단자 놈이 어딜 기어들어 와? 네놈의 가죽은 오늘 검사님의 제단에 바쳐질 것이다."
암살 단장이 비웃음을 흘리며 단검을 고쳐 잡았다. 방패 뒤에 늘어선 대원들이 연우를 포위하듯 반원을 그리며 좁혀왔다. 그들의 눈빛에는 절대적인 방어구에 대한 맹신과 사냥감을 앞둔 잔인함이 서려 있었다.
연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오른팔에서 검은 안개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낙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손가락 끝으로 모여들어 길고 날카로운 손톱의 형상을 취했다. 찬탈한 신성으로 빚어낸 무기, 검은 안개의 발톱이었다.
"거기서 멈춰라!"
암살 대원 하나가 마도 방패를 전방으로 내지르며 돌진했다. 방패의 표면에서 푸른빛의 스파크가 튀며 연우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연우의 신형이 흐려졌다.
어둠 속을 가르는 검은 궤적이 허공에 길게 남았다.
사각.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렸다. 수억 원짜리 마도 방패의 푸른 장벽이 허무하게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방패를 들고 있던 대원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기도 전에, 검은 안개의 발톱이 그의 목뼈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드득.
경추가 어긋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대원의 신체가 진흙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즉사였다.
"무슨……!"
암살 단장의 얼굴에서 여유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에테르 가드가 평범한 쇠붙이처럼 잘려 나간 광경은 그들의 상식 밖이었다.
"방패 출력을 최대치로 올려! 저놈, 기형적인 물리 관통 권능을 가지고 있다!"
남은 세 명이 다급히 방패를 겹치며 방어 진형을 구축했다. 겹쳐진 마도 방패들이 푸른빛의 거대한 구체를 형성했다. 전차의 포격도 견뎌내는 요새였다.
연우는 대답 대신 대지를 박찼다. 진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의 신형은 이미 인간의 동체시력으로 쫓을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뒤였다.
"왼쪽이다!"
단장의 외침과 동시에 연우는 이미 그들의 우측 사각지대에 도달해 있었다. 검은 발톱이 빗줄기를 가르며 비스듬히 그어졌다.
스스슥.
두 장의 마도 방패가 동시에 잘려 나갔다. 방패를 지탱하던 대원들의 팔뚝 역시 사선으로 잘려 나가며 붉은 선혈을 뿜어냈다. 절단면이 너무나 예리해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연우의 손바닥이 그들의 턱뼈를 아래에서 위로 강타했다.
머리뼈가 뇌를 짓누르는 충격에 두 명의 대원이 동시에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세 명이 무력화되었다. 남은 것은 단장과 겁에 질린 부하 한 명뿐이었다.
"이, 이 괴물 같은 새끼가……!"
부하가 비명을 지르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각성자용 마력 탄환이 장전된 특수 총기였다.
탕! 탕!
총구에서 뿜어진 화염이 어둠을 밝혔다. 그러나 연우의 몸은 이미 탄도 선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가볍게 측면으로 미끄러진 연우의 손가락이 부하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대로 손목을 비틀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연우는 멈추지 않고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며 아래로 꺾었다.
지직, 빠각.
차가운 진흙 바닥에 처박힌 부하의 신체가 가늘게 떨리다 멈췄다.
이제 빗속에 서 있는 것은 연우와 머리가 하얗게 질린 암살 단장 단둘뿐이었다. 단장은 깨진 마도 방패의 손잡이를 쥔 채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신발이 진흙탕 속에서 보기 흉하게 미끄러졌다.
"너, 너는 대체 정체가 뭐냐? 이런 힘은…… 길드 연합의 데이터베이스에 없었어."
연우가 피 묻은 오른손을 털어내며 다가갔다. 검은 안개가 그의 발끝을 따라 뱀처럼 기어 다녔다.
"백도훈에게 전해라."
연우의 목소리는 빗소리보다 차가웠다.
"사냥터에 사냥개를 보낼 때는, 사냥꾼의 총신이 얼마나 단단한지부터 확인했어야 한다고."
"사, 살려……."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연우의 손이 단장의 멱살을 잡아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콘크리트 바닥이 갈라지며 단장의 척추가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단장은 짧은 신음을 토해내며 혼절했다. 살려둘 가치도, 심문할 필요도 없는 소모품들이었다.
연우는 시체들을 뒤로하고 사역 지구의 중앙 공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거대한 원형 광장이었다. 광장 중앙에는 쇠창살로 사방을 가로막은 철제 우리가 서 있었고, 그 안에는 수십 명의 난민이 쇠사슬에 묶인 채 서로의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다. 오직 도살을 앞둔 가축의 절망만이 서려 있었다.
"누구……?"
가장 앞에 묶여 있던 나이 든 사내가 빗속에서 걸어 나오는 연우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를 살리러 온 각성자님인가요? 제발, 제발 이 사슬을 풀어주십시오. 곧 그 괴물이 우리를 먹으러 올 겁니다!"
난민들이 연우의 코트 자락을 향해 손을 뻗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광장을 가득 채웠다. 자비를 구하는 비참한 몸짓들이었다.
연우는 그들의 손길을 차갑게 쳐냈다. 그의 눈빛에는 단 한 줌의 동정심도 없었다. 회귀 전, 구걸하던 자들이 어떻게 배신하고 어떻게 먼저 죽어갔는지 그는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복수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짐짝에 불과했다.
"착각하지 마라."
연우가 차가운 어조로 뱉어냈다.
"나는 너희를 구하러 온 영웅이 아니다. 내 방해물이 되는 쇠사슬을 치울 뿐이지. 살고 싶다면 자비를 구걸하지 말고, 네 발로 뛰어라. 기회는 한 번뿐이다."
그가 오른손을 뻗어 난민들을 묶고 있는 굵은 마도 쇠사슬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붉은빛의 신성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전에 사냥했던 하급 도살자의 격에서 추출한 신성의 잔재였다. 초고열의 마력이 쇠사슬의 연결 고리를 감싸 안았다.
치이이익!
마도 제어가 걸려 있어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던 특수 합금 쇠사슬이, 연우의 손길이 닿자마자 붉게 달아오르며 엿가락처럼 흐물거렸다. 쇠가 녹아내리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툭. 투두둑.
난민들의 몸을 옥죄고 있던 구속구들이 차례로 끊어져 진흙 바닥으로 떨어졌다. 풀어난 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도망쳐라. 뒤를 돌아보는 놈부터 죽을 것이다."
연우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철책선 너머의 어둠 속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당연했다. 사육장에서 풀려난 가축들은 오직 생존 본능에만 지배될 뿐이니까.
광장이 텅 비어 가자,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그리고 난민들이 모두 사라진 어둠의 저편, 광장 중앙의 깊은 구덩이에서 기괴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인간의 영혼을 수없이 갈아 넣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극도로 부패하고 끈적끈적한 피의 신성이었다.
구덩이 내부의 진흙이 끓어오르듯 요동쳤다. 이윽고 붉은색 검은 안개가 지면을 덮쳤고, 그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기어 나왔다.
그것은 인간의 상체를 하고 있었으나, 하반신은 여러 마리의 굶주린 들개가 뒤엉킨 듯한 기괴한 형상이었다. 온몸의 피부는 가죽이 벗겨진 것처럼 붉은 근육질로 덮여 있었고, 얼굴에는 눈 대신 거대한 이빨이 돋아난 아가리만이 가로로 찢어져 있었다.
수호성좌 '갈증의 사냥개'의 대리 사도였다.
크르르르…….
사도의 아가리에서 흘러내린 침이 진흙 바닥을 부식시키며 연기를 피워 올렸다. 놈의 기운은 방금 전에 죽인 암살단과는 격이 달랐다. 성좌의 신성이 직접 깃든 존재. 삼키기에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다.
사도의 아가리가 연우를 향해 열렸다.
"찬탈자…… 냄새가 난다. 주인의 힘을 훔친 도둑놈의 비린내가……."
사도의 목소리가 연우의 뇌리를 직접 때렸다. 신성 오염의 두통이 다시 한번 연우의 이성을 세차게 흔들었다. 눈앞이 붉게 물들고, 심장 박동이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손목의 낙인이 살을 파고들며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선사했다. 한계였다. 이놈의 신성을 삼키지 못하면, 내가 먼저 마수로 주저앉을 것이다.
연우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팔 전체를 검은 안개로 완전히 뒤덮었다. 단순한 권능의 발현이 아니었다. '사냥개의 발톱'이 가진 진정한 찬탈력을 개방한 것이었다. 연우의 눈동자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주인을 바꿀 시간이다."
연우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사도의 붉은 아가리가 찢어질 듯 벌어지며, 대지를 가르는 속도로 돌진해 왔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흑적색의 마력이 빗줄기를 증발시키며 거대한 발톱의 형상을 취했다. 목표는 연우의 심장이었다.
연우 역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달렸다.
빗속에서 검은 안개와 흑적색의 신성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사도의 흑적색 발톱이 연우의 가슴팍을 향해 비스듬히 찔러 들어왔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냄새와 함께, 연우의 검은 발톱 역시 사도의 목덜미를 향해 궤적을 그렸다.
서로의 목숨을 겨눈 칼날이 교차하는 순간, 광장에 눈부신 핏빛 섬광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