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쳐 봐라! 사법의 단죄를 받는 것은 내가 아니라, 법을 어긴 네놈이다!"
백도훈은 사지가 으스러진 상태에서도 상체를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붉은 가죽으로 된 법률 문서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현대 사법 질서의 방패 뒤에 숨은 기생충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한연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건조했다. 구두굽이 시멘트 바닥을 디딜 때마다 황금빛 멸살염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의 눈동자는 백도훈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치워야 할 장애물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법이라."
연우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그 법을 누가 만들었지?"
백도훈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침과 피가 섞인 거품이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다.
"성좌들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공인한 초법적 합의다! 네놈 같은 무가호 이단자가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란 말이다!"
연우는 대답 대신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조차 없었다. 그저 역학적인 선 하나가 허공에 그어졌을 뿐이다. 사냥개의 발톱이 뿜어낸 무형의 궤적이 백도훈의 하반신을 관통했다.
서걱.
가죽을 자르는 소리와 함께 백도훈의 양다리가 무릎 위에서 깨끗하게 분리되었다. 단면에서 피가 솟구치기도 전에, 연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불꽃이 잘려 나간 다리를 덮쳤다.
스스스스.
단 몇 초 만에 잘린 다리 두 짝은 뼛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회색 재로 변해 흩어졌다. 비명은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왔다.
"아, 아아아악! 내, 내 다리! 내 다리가!"
백도훈이 바닥을 뒹굴며 잘린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단면은 이미 황금빛 화염에 구워져 검게 그을려 있었다. 출혈은 멈췄지만, 타들어 가는 극통이 그의 척수를 타고 뇌를 헤집었다. 그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연우의 바짓가랑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연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품을 뒤적였다. 그가 꺼낸 것은 빳빳한 종이 뭉치였다. 겉면에는 아크델리 특별세무서의 붉은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툭.
연우가 종이 뭉치를 백도훈의 피 묻은 얼굴 위로 던졌다. 서류가 흩어지며 백도훈의 뺨을 때렸다.
"읽어라."
"이, 이게…… 무슨……."
백도훈이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움켜쥐었다. 그의 눈동자가 서류의 첫 줄을 훑는 순간,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특별 세무 조사 및 불법 신성 거래 묵인 혐의에 따른 가호권 효력 정지 통지서]
그 아래에는 백도훈 본인이 과거에 기안했던 문구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성좌 가호자 특별 면책 제12조의 이중 예외 위하 조항.'
백도훈의 동공이 극도로 수축했다. 그것은 4화에서 그가 한연우를 완벽하게 구속하고 법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직접 찔러 넣었던 예외 조항이었다. 성좌와의 거래에서 사적 이익을 취하거나 국가 조세 체계를 교란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해당 가호자의 면책 특권을 즉각 영구 박탈한다는 내용.
"네가 직접 만든 올가미다."
연우가 백도훈의 으스러진 턱을 구두 앞굽으로 짓밟으며 흘려보내듯 말했다.
"서하진이 아크델리 세무 지청의 모든 장부를 뒤졌다. 네놈이 골든 크라운 길드로부터 받은 뇌물, 그리고 성좌 '황금의 군주'에게 비과세 명목으로 상수도 부지를 무단 제공한 혐의가 모두 입증되었지. 이중 예외 조항에 의거해, 네놈의 면책 특권은 이 시간부로 소멸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사법부의 동의가 있어야……!"
"사법부?"
연우가 잔인하게 웃었다. 구두굽에 힘이 실리자 백도훈의 이빨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미 끝났다."
지직. 지지직.
승강장 천장에 매달린 대형 광역 전광판이 거친 잡음과 함께 켜졌다. 아크델리 전역에 송출되는 특별 긴급 뉴스 화면이었다. 화면 속에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서하진이 수많은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법과 원칙만을 쫓는 사냥개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 아크델리 특별세무조사관 서하진입니다. 금일 자로 골든 크라운 길드 및 사법 길드 '천상의 정의' 총책임자 백도훈에 대한 특별 세무 조사 결과를 대외 발표합니다.
지직거리는 스피커를 통해 서하진의 건조한 목소리가 역사 안으로 울려 퍼졌다.
- 피의자 백도훈은 성좌 가호자 특별 면책 제12조를 악용하여, 아크델리 시민들의 영혼을 성좌에게 제물로 바치는 대가로 사적 신성을 취득하고 세금을 포탈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국가 조세 정의 훼손이며,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중범죄입니다.
백도훈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 이에 수사팀은 기합의된 이중 예외 위하 조항을 적용, 백도훈의 형사 면책 규정을 전격 기각합니다. 또한, 골든 크라운 길드의 모든 자산에 대한 가압류 집행과 함께, 피의자 백도훈 및 길드장 최태건에 대한 전국 체포 영장을 발부받았음을 선포합니다.
화면이 전환되며 백도훈의 얼굴과 그가 저지른 비리 문서들이 차례로 공개되었다. 아크델리 시민들을 가축선에 실어 보내려던 계획까지 고스란히 세상러 드러나고 있었다.
"아, 아아……."
백도훈이 허망하게 입을 벌렸다. 침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구축한 법이라는 성벽이, 자신이 파놓은 작은 구멍 하나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가장 완벽한 행정적 사망 선고였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며 엘리시아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엘리시아는 열차 벽면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의 흰 옷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연우의 시선을 끈 것은 그녀의 손에 쥐인 흑색 구체 유물이었다.
구체의 표면은 처참했다.
바둑알처럼 매끄럽던 검은 표면 위로 수많은 미세한 균열 흔적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금이 간 틈새 사이로 불길한 검은 마력이 안개처럼 흘러나왔다. 연우의 극심한 마수화를 억제하기 위해 그녀의 생명력을 강제로 빨아들인 대가였다.
구체는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위태롭게 진동하고 있었다. 엘리시아는 무감각한 눈빛으로 제 손안의 균열을 응시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조차도, 이 유물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직감하고 있는 듯했다.
연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신성 오염의 반동을 억제해 주던 유물이 파괴된다면, 다음 찬탈 때 자신의 영혼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더 거대한 격을 가진 성좌를 사냥해 힘의 균형을 억지로 누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한연우……."
백도훈이 피를 토하며 바닥을 기었다. 그의 손이 품속 깊은 곳을 뒤적였다. 그가 꺼낸 것은 붉은 가죽으로 제본된 두꺼운 책자였다. 백도훈 가문이 대대로 성좌와 맺은 밀약과 면책권의 원천이 기록된 고유 부조리 법률 원장 실물이었다.
"이것만은…… 이것만은 안 된다. 이건 내 가문의 목숨줄이야……! 이걸 가져가면 내 가문은 끝장난다!"
백도훈이 원장을 가슴에 꼭 껴안으며 오열했다. 그의 눈에서 눈물과 피가 섞여 흘렀다. 성좌의 개로 살아가며 쌓아 올린 가문의 영광이 이 종이 한 권에 담겨 있었다.
연우가 다가갔다. 그리고 주저 없이 백도훈의 손가락을 밟아 뭉개버렸다.
뚝, 뚜둑.
"아아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백도훈의 손아귀가 풀렸다. 연우는 바닥에 떨어진 법률 원장을 가볍게 집어 올렸다.
"가문의 수치치고는 조잡하군."
연우의 손끝에서 황금빛 찬탈의 발톱이 돋아났다. 날카로운 광선이 원장을 수직으로 관통했다.
스아아아!
법률 원장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성좌 '황금의 군주'의 신성 채널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허공에 떠오른 붉은 마력의 실타래들이 비명을 지르며 끊겨 나갔다.
백도훈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찢어진 원장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수호성과 연결되어 있던 마지막 끈이 끊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격이 추락하는 고통에 백도훈은 사지를 부르르 떨며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오줌으로 흥건해진 바닥 위에서, 그는 더 이상 사법부의 엘리트 검사가 아닌, 다리 잘린 짐승에 불과했다.
"최태건은 어디로 갔지?"
연우가 물었다.
"모, 모른다……! 날 버리고…… 중앙 제단으로……!"
백도훈이 헐떡이며 답했다. 그의 눈에는 이제 오직 원초적인 공포만이 남아 있었다.
연우는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몸을 돌려 엘리시아를 부축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갑자기 아크델리 전체를 진동시키는 거대한 명동음이 울렸다.
지하 역사 전체가 지진을 만난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천장에서 시멘트 가루와 파편들이 비 오듯 쏟아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는 단순한 물리적 붕괴의 소리가 아니었다. 차원이 뒤틀리는 소리였다.
"이건……."
연우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크델리 전체를 감싸고 있던 거대한 방어벽, 성좌들의 권능으로 유지되던 대정 수호벽이 순식간에 해제되고 있었다. 결계가 사라진 하늘 위로, 우주 너머의 무한한 심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낮이었던 하늘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저 멀리, 지구 대기 지층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찬란한 빛의 기둥이 수직으로 내려꽂히고 있었다. 그것은 아크델리 중앙 제단을 향해 정확히 떨어지는 마도 거소 광선이었다.
태양의 찬란한 지배자.
이 구역을 지배하는 최종 성좌의 숨결이 지상에 닿아 있었다.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쏟아져 내린 열기가 지하 승강장까지 밀려들었다. 공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콘크리트 벽면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하얗게 갈라지며 부서져 내렸다.
엘리시아의 손에 들린 흑색 구체가 거칠게 요동쳤다.
구체의 균열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안개가 그녀의 손목을 타고 올라갔다. 피부 아래의 혈관이 검붉게 부풀어 올랐다. 연우의 마수화를 억제하느라 신성 오염을 대신 흡수한 부작용이었다. 엘리시아의 입술 사이로 밭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연우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차갑던 그녀의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뜨거웠다. 연우는 사냥개의 발톱을 발동했다. 손끝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마력이 흑색 구체를 감싸 안았다.
우웅.
구체가 진동하며 연우의 마력을 빨아들였다. 동시에 연우의 뇌리에 수많은 환청이 휘몰아쳤다. 그가 사냥했던 성좌들의 비명과 저주였다.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극통이 일었지만, 연우는 어금니를 사려 물며 통증을 억눌렀다.
"놔두십시오."
엘리시아가 힘겹게 눈을 뜨며 말했다.
"아직 쓸 수 있습니다."
"입 닫아라."
연우가 구체를 강제로 움켜쥐자, 균열의 틈새가 황금빛 마력으로 메워지며 진동이 잦아들었다. 극도로 치솟았던 연우의 신성 오염도가 완만하게 하강했다. 그러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구체의 표면은 이미 빛을 잃고 회색 석고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한 번만 더 폭주를 막아내면 완전히 가루가 될 터였다.
"살려…… 살려다오……."
바닥을 기던 백도훈이 연우의 구두를 붙잡았다. 양다리를 잃고 사법적 지위까지 박탈당한 사내는 이제 한 마리 벌레와 다름없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그의 허리를 짓눌렀다. 척추가 부러지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한연우…… 내게 가호가…… 아직 내 몸에 성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를 데려가라. 쓸모가 있을 것이다."
연우는 발을 빼냈다. 백도훈의 손가락이 바닥을 긁으며 꺾였다.
"네 수호성은 내려오지 않는다."
연우가 붉게 타오르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저건 강림이 아니라 소각이다."
백도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상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광선은 아크델리 전체를 증발시키고 있었다. 성좌들은 자신들의 치부와 패배의 흔적을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 가축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면, 사육장 자체를 불태워 청소하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성좌들이 세계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아, 아아…… 안 돼……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어떻게 충성을 바쳤는데……!"
백도훈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울부짖었다.
연우는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았다. 엘리시아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 뒤, 무너져 내리는 승강장의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뒤편에서 백도훈의 비명과 함께 천장이 완전히 붕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법을 무기로 인간을 도살하던 자의 종말이었다.
계단을 뛰어올라 지상으로 나선 순간, 뜨거운 열풍이 뺨을 때렸다.
"이건……."
엘리시아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미세한 동요가 섞였다.
아크델리의 화려한 네온사인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초고층 빌딩들은 용암처럼 흘러내려 거리를 메우고 있었고, 아스팔트는 붉게 끓어올랐다. 하늘을 가득 채운 화염의 소용돌이 중심에서, 거대한 황금빛 눈동자가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양의 찬란한 지배자.
그 압도적인 격압에 숨이 막혔다. 허공에서 열기를 머금은 백색 불꽃들이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그것들은 지상에 닿는 순간 폭발을 일으키며 살아있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었다.
그 불길 속에서, 황금빛 갑주를 입은 거인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성좌의 직속 군대인 '태양의 집행자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쥔 대검이 연우를 향해 겨눠졌다.
연우는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사냥개의 발톱이 피에 굶주린 소리를 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때, 타오르는 불길 너머에서 익숙한 마력의 파동이 감지되었다. 중앙 제단의 중심부, 가장 거대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었다.
최태건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단순한 도주가 아니라, 성좌의 강림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제물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연우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냥감을 마주한 맹수의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