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좌의 아바타가 반그늘로 침강하며, 한연우의 육체를 구성하는 신성 찬탈 한계를 초과 유발시켜 강렬한 전신 탈수를 일으키는 척박한 저주의 수호 결계를 가열차게 전개한다.
목조인형처럼 꺾인 최태건의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진액이 법정 바닥을 적셨다. 그와 동시에 사방의 공기가 일시에 얼어붙었다. 수분을 잃은 대기가 바스라지며 메마른 소리를 냈다. 연우의 입술이 가뭄을 만난 논바닥처럼 쩍 갈라졌다.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갈증이 치솟았다. 단순한 갈증이 아니었다. 육체를 이루는 혈액과 마나, 영혼의 정수까지 통째로 증발시키는 신성의 척력(斥力)이었다.
[찬탈자. 네놈의 그릇은 이미 찼다. 넘치는 물독은 깨어질 뿐이다.]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며 사념을 쏘아 보냈다. 성좌 '심판의 황금 저울'의 본체가 쏟아내는 안광이 법정의 천장을 녹여 내렸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촛농처럼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연우 씨!"
엘리시아의 다급한 음성이 귓가를 때렸으나 멀게만 느껴졌다. 연우는 바닥을 짚었다. 손가락 끝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비틀리며 갈라졌다. 찬탈한 신성이 체내에서 역류하고 있었다. 한계를 초과한 힘이 그릇을 찢고 나오려는 징후였다.
백도훈 검사는 무너진 법대 밑에 엎드린 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 광기 어린 희열이 스쳤다.
"결국…… 신벌이다. 법을 모독하고 신성을 훔친 도둑놈의 최후지."
백도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품에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이 기안했던 수사 기록서였다. 그 서류의 한구석에는 굳건하게 박힌 문구가 있었다. '성좌 가호자 특별 면책 제12조의 이중 예외 위하 조항'. 신성한 힘을 수호하기 위해 국가의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에게 부여된 절대적 면책권. 백도훈은 그 조항을 사유화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해왔다.
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의 입꼬리는 비틀려 올라가 있었다.
"면책 조항이라."
연우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거칠었다.
"신마저 면책 대상이라면, 그 신을 찢어 죽이는 나 역시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겠군."
"미친놈이…… 무슨 소리를!"
백도훈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연우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전신을 조여오는 탈수의 저주가 허파를 옥죄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포가 찢어지는 감각이 선명했다. 하지만 연우는 멈추지 않았다. 회귀 전, 성좌들의 유희 속에서 가축처럼 도살당하던 인류의 비명이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정도의 고통은 사소한 자극에 불과했다.
연우는 무의식적으로 온몸의 감각을 열었다. 영혼을 구속하듯 짓누르는 저주의 결계, 그 흐름이 뇌리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신성의 에너지는 일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하늘의 성좌로부터 지상의 매개체로 연결된 조밀한 선.
그 선을 역방향으로 타고 올라가면 본체에 닿는다.
"잡았다."
연우가 허공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검붉은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사냥개의 발톱'이 지닌 잔혹한 척살의 궤적이 붉은 실선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단순한 마나의 방출이 아니었다. 공간의 결을 찢고, 그 뒤에 숨은 성좌의 영적 통로를 강제로 움켜쥐는 찬탈자의 손길이었다.
지직, 지지직!
유리가 깨지는 듯한 파열음이 법정 전체를 울렸다. 허공에 붉은색 검기가 박혀들었다. 연우는 손가락을 굽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꽉 움켜잡았다. 전신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탈수의 저주가 최고조에 달하며 피부가 검게 고사하기 시작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뒤로 잡아당겼다.
무식하고 야만적인 힘의 역행이었다.
하늘에 박혀 있던 거대한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신성한 결계의 흐름이 반대로 꺾이자, 성좌의 마나 회로가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개 필멸자가 감히 신의 격을 끌어당긴단 말이냐!]
성좌의 경악한 사념이 뇌수를 흔들었다.
연우는 대답 대신 이를 악물었다. 턱관절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발밑의 대리석 바닥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다. 연우의 등 뒤로 거대한 늑대의 환영이 붉은 안개 속에서 이빨을 드러냈다.
"내려와라."
연우가 땅을 딛고 선 다리에 힘을 주었다.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며 바지를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고통은 분노를 가열하는 땔감에 불과했다.
"지상으로 내려와서 짖어라, 개새끼야."
그가 팔을 강하게 낚아챘다.
콰아아앙!
법정의 천장이 완전히 날아갔다. 구름을 뚫고 쏟아지던 수천 개의 황금 창들이 궤도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늘의 붉은 구름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틈새로, 황금빛 광채에 휩싸인 기괴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개의 거대한 저울 접시가 날개처럼 돋아난, 거대하고 불균형한 황금빛 거인이었다. 성좌 '심판의 황금 저울'의 본체 격(格)이 연우의 발톱에 묶인 채 지상으로 끌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신화의 종말이자, 현실의 붕괴였다.
***
아크델리 서부 지구의 상공이 황금빛 피로 물들었다.
성좌가 지상으로 인력에 이끌려 추락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대기 중의 마나가 극도로 압축되며 사방에서 폭음이 터졌다. 법정 주변의 빌딩 유리창들이 일제히 박살 나며 유리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말도 안 돼……."
백도훈은 흙먼지 구덩이 속에서 기어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담긴 것은 고결한 신의 위엄이 아니었다.
사슬에 묶여 버둥거리는 짐승의 몰골이었다.
[이 비천한 벌레가! 감히 신격을 더럽히다니!]
황금 저울의 성좌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아니었다. 광역 정신 오염을 유발하는 파동이 아크델리 전체로 퍼져 나갔다. 주변의 하급 각성자들은 귀와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연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안광은 더 붉게 타올랐다.
추락하는 성좌의 격이 지면에 닿기 직전, 연우가 도약했다.
그의 신형이 황금빛 거인의 가슴팍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올랐다. 공기를 찢는 마찰음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오직 역학적인 질량의 이동만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성좌가 황금빛 저울 접시를 휘둘러 연우를 쳐내려 했다. 빛의 속도에 가까운 후려치기였다.
연우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척추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이며 타격을 간발의 차로 흘려보냈다. 스쳐 지나간 바람만으로도 연우의 어깨 가죽이 찢겨 나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의 오른손 끝이 성좌의 흉부 중앙, 신핵(神核)이 박혀 있는 위치에 닿았다.
"찬탈한다."
연우의 손가락이 황금빛 갑주를 뚫고 파고들었다.
서걱!
마치 젖은 진흙을 파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연우의 손이 성좌의 가슴 깊숙이 박혔다. 사냥개의 발톱이 지닌 권능이 성좌의 영혼 내부에서 폭발했다. 갈고리 모양의 검붉은 마력이 신핵을 옭아매고 사정없이 뜯어냈다.
[아아아악! 나의 격이! 나의 신성이!]
성좌의 비명이 대기를 찢었다.
황금빛 거인의 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검붉은 마력이 흘러들어가 신성을 오염시켰다. 찬탈은 단순한 강탈이 아니었다. 신의 본질을 썩게 만들어 자신의 영 영혼의 거름으로 삼는 잔혹한 도살이었다.
연우는 손을 쥐어짜며 뒤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콰아아앙!
성좌의 가슴에서 눈이 멀 것 같은 황금빛 결정체가 뽑혀 나왔다. 그것이 뽑히는 순간, 황금 거인의 형체는 먼지가 되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빛의 입자들이 하늘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우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 공개적인 도가니 속에서 중급 성좌 하나가 완전히 소멸하는 순간이었다.
지상의 필멸자가 감히 범접할 수 없다던 고고한 신격이, 한 사내의 손아귀 안에서 흔적도 없이 불타올랐다.
털썩.
연우가 바닥에 착지했다. 그의 손에는 찬탈한 성좌의 신핵이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 맥박 치며 연우의 영혼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체내에서 폭발적인 출력이 소용돌이쳤다. 잃어버렸던 생명력이 급속도로 회복되고, 근육과 뼈가 재조합되는 소리가 뼈마디를 울렸다. 격의 상승. 영혼의 영구 평형도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확장되는 역사적인 쾌감이 전신을 관통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지극히 찰나였다.
***
"으, 윽……!"
연우가 가슴을 쥐어짜며 무릎을 꿇었다.
정련된 신성이 정수리로 빨려 들어오는 동시에, 그 이면에 숨겨진 성좌의 광기와 저주가 영혼을 잠식해 들어왔다. 찬탈의 대가인 '정신적 신성 오염'이었다.
피부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손등과 목덜미에 짐승의 털과 같은 핏줄이 돋아났고, 손톱은 더욱 길고 날카롭게 변해갔다. 이성이 흐려지고, 눈앞의 모든 생명체를 찢어발기고 싶다는 마수(魔獸)의 충동이 연우의 뇌리를 지배하려 했다.
"한연우 씨."
그때, 차갑고 마른 손길이 연우의 온몸을 덮쳐오는 열기를 막아섰다.
엘리시아였다. 그녀는 언제 다가왔는지 연우의 떨리는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감정이 마비된 듯 고요했으나, 그 안에는 깊은 우려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품에서 흑색 구체 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물의 표면에는 수많은 미세한 균열 흔적들이 쩍쩍 갈라져 있었다. 그 균열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이질적인 검은 마력이 연우의 몸을 감쌌다.
웅웅웅-.
유물과 연우의 영혼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엘리시아의 체온이 연우의 어깨를 통해 전해지자, 타오르던 마수화의 잠식이 서서히 정지했다. 검게 변해가던 피부가 제 빛깔을 찾았고, 솟구치던 파괴 충동이 가라앉았다.
"아직은…… 안 돼요."
엘리시아의 목소리가 연우의 귓가에 조용히 가라앉았다.
"당신의 복수는 여기서 끝날 것이 아니잖아요."
연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의 손을 밀쳐내지 않았다. 흑색 구체의 균열이 이전보다 조금 더 깊어진 것을 눈치챘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영혼의 오염이 일시적으로 안정되며 이성이 돌아왔다.
연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방은 고요했다. 성좌의 소멸로 인해 법정은 폐허가 되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공포에 질려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백도훈은 넋이 나간 채 연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던 신의 권능이, 그리고 사법적 권위가 단 한 명의 사냥개에 의해 완전히 조각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치이익-.
무너진 법대 잔해 틈새에서 깨진 무전기 하나가 요란한 잡음을 뿜어냈다. 그 무전기는 골든 크라운 길드의 전용 통신 장비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죽어가는 줄 알았던 최태건의 비서 혹은 길드 고위 관계자의 다급하고 광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본부! 들리는가! 최태건 길드장님의 생체 신호가 소멸했다! 성좌 '황금의 군주'의 화신이 도살당했다!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는 공포를 넘어 광기에 찌들어 있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파괴적으로 치닫자, 그들은 최후의 결단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
- 즉시 플랜 C를 가동한다! 길드의 모든 가용 자산을 동결 해제하고, 남은 아크델리 방목 시민들의 혼을 전량 강제 제물로 공여하라! '태양의 찬란한 지배자' 강림 제단을 즉시 축조하라! 이것은 길드장님의 최종 명령서에 따른 조치다! 모두 바쳐라!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지지직, 틱.
무전이 끊겼다.
아크델리 전체를 제물로 삼아 최상위 성좌를 강림시키려는 음모가 마침내 이빨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연우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끝에 묻은 성좌의 황금빛 피가 차갑게 식어갔다. 사냥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