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황금빛 인장이 으깨진 순간, 고막을 찢는 파열음이 법정을 채웠다.

공기가 먼저 변했다. 산소가 무겁게 가라앉으며 사방의 유리가 일제히 안쪽으로 터져 나갔다. 파편들이 날카로운 호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쏟아졌다. 사법 청문회장의 대리석 바닥은 순식간에 황금빛 결계의 경계선으로 변했다. 차단된 시공간의 벽이 붉고 노란 스펙트럼으로 굳어지며 외부의 소음을 완전히 지웠다.

최태건의 등 뒤에서 네 개의 황금빛 그림자가 일어섰다. 인간의 형상을 모방했으나 이목구비가 없는, 성좌의 신성이 빚어낸 아바타의 분신들이었다.

"전부 찢어 죽여라."

최태건의 명령과 동시에 황금의 분신들이 연우를 향해 도약했다.

연우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양손을 묶고 있던 황금빛 구속구가 한계에 도달해 비틀렸다. 연우가 손목을 가볍게 바깥쪽으로 비틀었다. 사슬의 연결고리가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끊어졌다. 파편들이 궤적을 그리며 튕겨 나가 분신 중 하나의 가슴팍에 박혔다.

구속구는 이미 도구의 기능을 상실했다.

연우는 끊어진 사슬 끝을 쥔 채 오른발을 내디뎠다. 신체 내부에서 요동치는 찬탈한 신성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극대화했다.

첫 번째 분신의 주먹이 연우의 관자놀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연우는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 궤적을 흘려보냈다. 동시에 왼손으로 분신의 팔꿈치 관절을 역방향으로 꺾었다. 단단한 황금의 골격이 지렛대의 원리에 밀려 바깥쪽으로 탈구되었다.

연우의 오른손 손가락이 굳게 말려들며 사냥개의 발톱 형상을 취했다. 손끝이 분신의 목덜미를 관통했다. 신성으로 이루어진 육체가 가죽 주머니처럼 찢어지며 내부의 황금색 마나가 대기로 산화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분신이 양옆에서 동시에 덮쳐왔다.

연우는 바닥을 차고 굴렀다. 신체의 무게중심을 낮추며 두 분신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일어설 때의 반동을 이용해 세 번째 분신의 턱을 무릎으로 받아쳤다. 충격력이 턱관절을 타고 뇌수 영역으로 전달되며 분신의 형태가 흐려졌다. 연우는 멈추지 않고 두 번째 분신의 가슴에 손바닥을 밀착시켰다.

영혼 깊은 곳에 낙인찍힌 사냥개의 발톱이 탐욕스럽게 요동쳤다.

"삼킨다."

손바닥이 닿은 부위부터 황금빛 액체가 연우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분신의 형태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들었다. 찬탈한 신성이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자, 머릿속에서 정체 모를 짐승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정신적 신성 오염의 전조였다. 이마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지만, 연우는 어금니를 깨물며 광기를 억눌렀다.

"이, 괴물 같은 새끼가...!"

최태건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황금빛 결계의 빛을 받아 붉게 번들거렸다.

법정 안은 비명과 먼지로 가득 찬 수라장이었다. 방청객들과 기자들은 굳게 닫힌 결계의 벽에 달라붙어 손톱이 깨지도록 벽을 두드렸다. 그러나 성좌의 권능으로 격리된 공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혼란의 와중에도 단 한 사람, 서하진만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서류 가방을 열었다. 그녀는 품 안에서 붉은색 세관 압류 직인이 찍힌 두꺼운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백도훈 검사. 그리고 최태건 길드장."

서하진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하지 않고도 법청의 벽을 울렸다.

"이게 뭔지 똑똑히 봐라."

그녀가 들어 올린 것은 3화에서 최태건의 비밀 안전 가옥을 수색할 때 확보했던 합법적 우회 양식의 서류 초안이었다.

"골든 크라운 길드가 '황금의 군주'에게 매달 바쳐온 공물의 내역서다. 겉으로는 우주적 가치 창출에 따른 비과세 원자재 거래로 위장했지만, 실상은 아크델리 서부 지구 시민들의 영혼을 성좌에게 제물로 바치고 받은 면세 혜택의 이면 계약서지."

백도훈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시선이 서류의 첫 페이지에 적힌 서명란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사법 길드 '천상의 정의'의 직인과 자신의 사인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건... 법적 효력이 없는 가안일 뿐이다!"

백도훈이 소리 질렀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이 서류는 이미 성좌 세무 조정 위원회의 공식 데이터베이스와 대조를 마쳤다."

서하진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

"너희가 주장하는 '성좌 가호자 특별 면책 제12조'는 국가 안보의 위협이 없을 때만 발동한다. 하지만 성좌에게 자국민의 영혼을 합법적으로 납세 처분한 이 내역서는 국가 전복 및 대량 학살 방조죄에 해당한다. 즉, 면책 조항의 이중 예외 위하 조항에 걸려 너희의 면책권은 이 순간부로 전면 무효다."

법 궤적의 붕괴. 백도훈이 쌓아 올린 사법의 성벽에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때, 백도훈의 경호 수사대원들이 무기를 고쳐 쥐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마도 소총의 총구가 연우를 향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마력으로 강화된 탄환들이 공기를 가르며 연우의 심장과 머리로 쇄도했다.

피할 공간은 없었다.

연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 순간, 그의 뒤편에서 검은 마력의 파동이 일어났다.

스으으윽.

엘리시아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양손 사이에 쥐어진 흑색 구체 유물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회전했다. 구체의 표면에 나 있던 미세한 균열들이 붉은 빛을 내뿜으며 더욱 깊어졌다.

그녀의 발밑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짙은 검은색 마력이 연우의 등 뒤를 감싸 안으며 거대한 장벽을 형성했다.

타타타탕!

마도 탄환들이 검은 장벽에 부딪히며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충격의 여파로 엘리시아의 입가에서 한 줄기 검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고통의 기색도 없었다. 마비된 육체는 오직 연우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의 역할만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가세요."

엘리시아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여기는 내가 막습니다."

연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를 고기방패로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사냥감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연우는 대리석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타깃은 결계의 중심이었다.

거기서 황금빛 저울의 형상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었다. 중급 성좌 '심판의 황금 저울'의 아바타가 지상에 반쯤 강림한 상태였다. 거대한 황금의 몸체, 그리고 머리 대신 얹혀 있는 거대한 저울 접시가 비현실적인 위압감을 풍겼다.

"미천한 필멸자가 신의 영역을 넘보는가."

아바타의 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직접 타격하는 거대한 사념이 법정 전체를 뒤흔들었다. 약한 자들은 귀와 코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백도훈은 이미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기고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맹신하던 법의 권위가, 성좌의 직접적인 강림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의 절망이었다. 그는 침을 흘리며 연우와 성좌의 대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연우가 허공에서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렸다.

'사냥개의 발톱'이 그의 오른손 전체를 검붉은 신성으로 뒤덮었다.

"신?"

연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목을 따서 피를 흘리면, 그것도 결국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연우의 신형이 아바타의 거대한 황금빛 어깨 위로 착지했다. 아바타가 팔을 휘둘러 연우를 쳐내려 했으나, 연우의 움직임이 한 발 더 빨랐다.

그는 아바타의 목덜미, 신성의 핵이 모여 있는 뇌수 영역으로 오른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푸욱!

물리적인 타격음이 아니었다. 영혼과 영혼이 부딪치며 발생하는 격렬한 마찰음이 결계 내부를 채웠다. 연우의 손끝이 아바타의 황금색 신경망을 틀어쥐었다.

"내가 네 가짜 수호성의 모가지도 짓이겨주마."

연우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찬탈의 권능이 아바타의 신성을 강제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황금빛 뇌수가 연우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며 그의 영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아아악!"

최태건이 자신의 영혼이 찢기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화신과 성좌의 연결 통로가 강제로 유린당하고 있었다.

백도훈은 눈동자가 풀린 채 그 광경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기소하려 했던 피고인이, 자신들이 우러러보던 신의 대리인을 도살하는 모습을. 모든 사법적 주도권은 이미 한연우라는 괴물의 손아귀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백도훈은 기절하듯 바닥에 자빠져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러나 성좌의 반격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파괴되던 아바타의 형상이 갑자기 어두운 반그늘 속으로 침강하기 시작했다. 황금빛이 검은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탁한 빛깔로 변색되었다.

"찬탈자여. 네 그릇이 과연 이 무게를 견딜 수 있겠느냐."

아바타의 저울 접시가 급격하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순간, 연우의 육체에서 모든 수분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가죽이 뼈에 달라붙고,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전신 탈수 현상이었다. 성좌가 소멸하기 직전, 자신의 신성을 강제로 과부하 시켜 연우의 영혼을 함께 붕괴시키려는 저주의 수호 결계를 가열차게 전개한 것이었다.

연우의 눈앞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영혼의 오염도가 임계점을 향해 치솟았다.

핏줄이 검게 변하며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심장이 터질 듯이 박동했다. 입술이 갈라져 피가 배어 나왔으나, 흘러내리기도 전에 증발했다.

"연우 씨."

뒤편에서 엘리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손에 든 흑색 구체가 기괴한 진동을 일으켰다. 구체 표면에 음각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틈새에서 흘러나온 탁한 안개가 연우의 전신을 감쌌다.

차가운 기운이 타들어 가던 혈관을 식혔다. 오염의 침식이 일시적으로 지연되는 감각이었다.

연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엘리시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가는 것도, 그녀의 코에서 검은 피가 쏟아지는 것도 그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구체가 제공한 찰나의 유예면 충분했다.

"어리석은..."

아바타가 사념을 내뿜었다.

"닥쳐라."

연우가 손가락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아바타의 목뼈를 타고 흐르는 황금빛 척수를 움켜쥐었다. 사냥개의 발톱이 지닌 찬탈의 힘이 아바타의 내부에서 폭발했다.

황금의 골격이 안쪽에서부터 바스러졌다. 연우는 움켜쥔 척수를 그대로 바깥쪽으로 잡아당겼다. 황금빛 액체와 함께 붉은 신핵이 허공으로 끌려 나왔다.

"이건 내 거다."

연우가 이빨을 드러냈다. 신핵을 손아귀로 쥐어짜 부쉈다.

부서진 신핵의 파편들이 연우의 손바닥 피부를 뚫고 영혼 속으로 박혀 들었다.

[성좌 '심판의 황금 저울'의 격(格) 일부를 찬탈합니다.] [고유 권능 '사냥개의 발톱'의 출력이 한계치를 초과합니다.] [정신적 신성 오염도가 위험 수치에 도달합니다.]

머릿속이 깨질 듯한 통증과 함께 육체가 다시 팽창했다. 탈수되었던 근육들이 찬탈한 신성을 흡수하며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결계가 깨졌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황금빛 장벽이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법정의 원래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최태건은 바닥에 엎드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수호성자가 지녔던 힘의 일부가 연우에게 넘어간 순간, 화신으로서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다. 그의 마력 회로가 역류하며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왔다.

"백 검사."

연우가 피가 묻은 손을 털며 백도훈에게 다가갔다.

백도훈은 서류 가방을 껴안은 채 뒤로 물러섰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법과 제도로 이 괴물을 묶으려 했던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법이 널 지켜줄 것 같았나?"

연우가 백도훈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이, 이단자 새끼... 국가가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성좌 세무 조정 위원회도..."

"그 위원회의 목줄을 쥘 서류가 여기 있지."

서하진이 다가와 서류 뭉치를 백도훈의 얼굴 앞에 던졌다.

"백도훈 검사. 당신이 서명한 이 면세 이면 계약서는 오늘부로 헌법재판소와 감사원에 동시 송부된다. 당신의 사법 면책권은 물론, 골든 크라운의 모든 자산은 동결될 것이다."

백도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였다.

찢어진 결계의 틈새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법정 천장의 깨진 유리창 너머로 아크델리의 상공이 보였다.

천둥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아크델리 상공의 구름을 찢고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좌 '황금의 군주'의 직접적인 시선이었다. 자신의 아바타가 도살당하고 화신이 폐인이 된 것에 대한 신의 분노가 대기를 짓눌렀다.

연우의 영혼 속에 박힌 찬탈한 신성이 그 시선에 반응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놈이 온다."

연우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손끝에서 다시금 검붉은 마수가 이빨을 드러냈다.

대기가 물리적인 질량을 지닌 것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법정 바닥의 대리석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갈라졌다. 서하진조차 숨을 쉬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오직 연우만이 찬탈한 신성의 척력으로 그 위압을 버텨내고 있었다.

하늘에 뜬 거대한 눈동자가 연우를 향해 고정되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뇌수를 직접 으깨는 듯한 고차원의 사념이 쏟아졌다.

[찬탈자. 감히 신의 격을 더럽힌 대가를 치러라.]

그와 동시에 법정 사방의 무너진 잔해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황금빛 불꽃이 잔해마다 옮겨붙으며 무수한 창의 형상으로 변했다. 수천 개의 황금 창이 연우의 머리 위를 가득 메웠다. 단 한 발만으로도 아크델리 서부 지구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규모였다.

"연우 씨, 피해야..."

엘리시아가 소리쳤으나, 그녀의 흑색 구체는 이미 과부하로 인해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더 이상의 방어막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연우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하늘의 신벌이 아닌, 바닥에 쓰러진 최태건에게 향했다.

"최태건."

연우가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최태건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 연우의 잔혹한 안광이 비쳤다.

"네 성좌에게 전해라."

연우가 최태건의 목덜미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다음은 네 목을 따러 가겠다고."

연우가 손에 힘을 주어 꺾었다. 붉은 혈흔이 백도훈의 얼굴 위로 흩뿌려졌다. 최태건의 숨통이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하늘의 황금 창들이 일제히 굉음을 내며 연우를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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