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는 플래시 세례가 시야를 하얗게 메운다. 뉴욕의 고층 빌딩 숲조차 집어삼킬 듯한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의 프레스 미팅 룸. 사방을 가득 채운 미국 현지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흡사 격렬하게 회전하는 포심 패스트볼이 포수 미트에 꽂히는 파열음처럼 고막을 때린다.
당신은 칼날처럼 곧게 선 테일러드 수트의 소맷깃을 다듬으며 단상 위를 응시한다. 테이블 중앙, 한가운데 놓인 계약서 위에는 총액 8천 2백만 달러라는 숫자가 선명히 박혀 있다. 당초 목표했던 1억 달러 초청유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구단의 사치세(Luxury Tax) 페널티 회피 기동과 건우의 가족 채무라는 아킬레스건을 봉합하기 위해 메이저리그식 마이너 옵션과 바이아웃 조항을 일부 양보해야 했던 탓이다.
완벽한 무패의 승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타협이자, 다음 이닝을 도모하기 위한 가장 영리한 슬라이드 스텝이다. 당신은 독소 조항이었던 구단의 투구 이닝 제한 강제 옵션을 삭제시켰고, 첫해 계약금의 70%를 선지급받는 에스클레이터 조건으로 건우의 숨통을 조이던 부채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냈다.
"이제, 새로운 9번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단장의 굵직한 음성과 함께 강건우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당신의 눈끝에 건우의 신체 데이터가 스쳐 지나간다. 지독한 심적 압박으로 잔뜩 수축해 있던 승부처의 '뇌파 동조율'과 '종속 회전 효율'은 이제 설계된 시스템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수치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160km/h를 넘나드는 광폭한 구위와 타자의 배트 스피드를 완전히 빼앗는 체인지업의 릴리스 포인트. 그 괴물 같은 궤적은 이제 연습용 피칭이 아닌, 메이저리그 162경기라는 가혹한 레이스 위에서 증명될 진짜 무기다.
건우가 빳빳하게 날이 선 새 유니폼을 받아 들고 슬쩍 당신을 돌아본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없다. 가혹한 벼랑 끝 협상 테이블 위에서 벼려진 은빛 칼날 같은 단단함만이 서려 있을 뿐이다.
"준비됐나?"
당신의 짧고 묵직한 물음에, 건우가 툭 던지듯 미소를 지으며 구단 캡을 깊게 눌러쓴다. 챙 아래로 차갑게 빛나는 투사의 안광이 번뜩인다.
단상 너머, 세계 최고의 타자들이 기다리는 거대하고 냉혹한 야구 영토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비록 길은 험난하고 타협의 흉터는 남았을지언정, 당신과 귀화한 괴물 투수의 발끝은 그 거대한 마운드를 향해 더 단단해진 보폭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플레이볼. 마침내 당신들의 진짜 리그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