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펜트하우스의 통창 너머로 뉴욕 마천루의 불빛들이 화려하게 일렁인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막 전송이 완료된 연장 계약서 최종본과,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승인 도장이 찍힌 공문이 놓여 있다.
총액 3억 5천만 달러. 12년 장기 보장 계약. 메이저리그 역사상 아시아인 선수 최고액이자, 에이전트 분쟁 조정 없이 이뤄낸 역대급 규모의 메가딜이다. 계약 조건에는 전면 트레이드 거부권과 매년 지급되는 사이영 상 인센티브 옵션까지 촘촘하게 박혀 있다. 당신의 손안에 쥐어질 법정 수수료는 계약 총액의 5퍼센트인 1,750만 달러. 천문학적인 액수의 중개 수수료가 법인 계좌로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조용히 휴대폰 화면을 밝힌다.
성공이다. 메이저리그의 패권을 쥐겠다는 당신의 집념은 마침내 계약서 위의 활자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의 종착지에서, 넓은 방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숨 막히는 침묵과 냉소뿐이다.
"사인... 끝난 거죠."
강건우가 만년필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읊조린다. 그의 목소리에는 초대형 계약을 따낸 야구 선수의 고양감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 기계적으로 서명을 끝낸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탁하게 가라앉아 있다. 악의적인 가짜 학폭 루머에 난도질당하고, 가족들의 채무 독촉에 숨이 죄어오던 순간, 당신은 그의 유일한 구원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당신이 보여준 것은 철저한 비즈니스의 계산과 냉혹함뿐이었다.
당신은 여론을 아군으로 돌리기 위해 그의 사생활과 가정사마저 정교하게 설계된 미디어 플레이의 소모품으로 활용했다. 구단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그의 몸값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가 호소하던 어깨 회전근개의 미세한 통증 수치마저 철저히 트레이드 시크릿으로 은폐했다. 건우에게 그것은 구원이 아닌, 자신의 몸과 영혼을 가장 비싼 가격에 팔아넘긴 착취의 과정에 불과했다.
당신이 건우의 어깨를 격려하려 손을 뻗자, 건우가 미세하게 어깨를 비틀며 당신의 손길을 거절한다.
"덕분에 큰돈을 벌었네요. 빚도 다 갚았고... 대표님 말대로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쓴 계약이니까요."
그의 시선이 당신의 눈을 조용히 비껴간다. 그 안에는 더 이상 당신을 향한 뜨거운 신뢰나 인간적인 존경은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에이전트와 선수라는 계약 관계로만 묶인 차가운 벽, 결코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대표님, 이제 제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말아 주십시오. 계약 기간 동안 구단이 원하는 대로, 대표님이 설계한 고효율 투구 메커니즘대로 던져주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적으로 연락하는 일은... 더는 없었으면 합니다."
건우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선다. 문이 닫히는 단단하고 묵직한 마찰음이 넓은 펜트하우스를 사정없이 흔든다.
혼자 남겨진 방, 당신은 통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본다. 손안에 쥔 디지털 기기 속 계좌 잔고는 눈이 부시도록 빛나고 있지만, 당신을 둘러싼 이 호화로운 공간은 결국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황금빛 새장과 다름없다. 메이저리거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탐내는 최고의 에이전트 자리에 올랐으나, 정작 당신이 처음 구하려 했던 괴물 투수의 마음은 영원히 잃어버렸다.
스마트폰 화면 위로 새로운 대형 딜을 제안하는 타 구단 프런트들의 연락이 쉼 없이 쏟아진다. 그러나 당신이 발을 디딘 이 냉혹한 업계의 정상 위에서, 오직 차갑게 식어버린 밤공기만이 당신의 곁을 지킬 뿐이다. 이 씁쓸한 고독 속에서, 당신의 위대하고 부유한 지옥은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