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호텔 스위트룸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테이블 위에 정렬된 서류들의 모서리가 날카롭게 빛난다. 뉴욕과 LA,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전통의 명문 구단들이 보낸 아시아 태평양 지역 스카우트 총괄들이 당신의 앞에 앉아 있다. 그들이 제시한 오퍼 시트의 숫자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보장 금액 1,500만 달러, 3년 차 바이아웃 옵션과 매년 성적에 따른 보너스 인센티브 조항까지.
강건우의 시속 98마일짜리 패스트볼이 지닌 분당 회전수(RPM) 2,650의 가치를, 빅리그의 최고 책임자들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에이전트인 당신의 입꼬리가 올라갈 법한, 완벽한 승리의 판이 짜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신의 시선은 테이블 위의 계약서가 아닌, 당신의 바로 옆에 앉은 강건우에게 머문다.
그의 고개가 어깨 사이로 푹 꺼져 있다. 평소라면 마운드 위에서 투구판을 밟을 때처럼 꼿꼿했을 그의 척추가 볼품없이 휘어 있다. 당신의 눈에 비치는 강건우의 잠재력 내부 수치, 그중에서도 '멘탈 항상성'과 '신체 밸런스'를 나타내는 지표가 급격한 하강 곡선을 그리며 붉은색 경고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손끝의 미세한 떨림이 감지된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바지춤을 움켜쥔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다.
"건우야."
낮게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에 녀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주머니 속으로 찔러넣었다. 주머니 너머로 얇은 종이 뭉치가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채업자들의 붉은 압류 딱지와 불법 추심 독촉장. 녀석의 가족이 남긴 수십 억 대의 채무가, 하필이면 일생일대의 계약을 단 몇 시간 앞둔 오늘 아침 강건우의 목줄을 죄어온 것이다.
"계약금을... 가압류하겠대요. 제가 사인하자마자 법원에 법정 대리인 자격으로 집행을 들어오겠다고..."
강건우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로 찌들어 있었다. 마운드 위에서 타자의 몸쪽 깊숙이 강속구를 찔러넣던 기백은 온데간데없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리스크에 극도로 민감하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 사행성 채무나 사생활 스캔들, 혹은 구단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법적 분쟁 조짐이 보이면 즉각 테이블을 접는다. 도덕성 조항(Moral Turpitude Clause)을 들이밀며 계약을 무효화할 수도 있었다.
미국 스카우트 총괄이 시계를 보며 만년필을 툭툭 친다.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상태로 영혼이 깨진 투수가 비행기를 탄다면, 메이저리그의 칼바람 속에서 어깨가 먼저 박살 날 뿐이다.
당신의 눈앞에서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위기가 동시에 교차한다. 이 흔들리는 천재를 마운드에 세우기 위해, 당신은 지금 결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