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목을 조여오는 손가락의 악력은 현실적이고 묵직했다.

송진우의 서늘한 숨결이 뺨에 닿았다. 뱀의 비늘처럼 차갑고 축축한 감각이 피부를 타고 목덜미로 흘러내렸다. 등 뒤의 시멘트 벽에서 배어 나오는 냉기가 척추를 얼려버릴 것 같았지만, 태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탈출 성공 축하해, 강 대리. 근데 말이야……."

송진우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호를 그리며 비틀렸다. 눈가 근육의 미세한 경련은 그가 이 상황을 극도로 즐기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거든?"

태윤은 턱을 치켜올렸다. 목을 압박하는 손귀 때문에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지만, 어조는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건조했다.

"손 치워, 송 대리."

"싫다면? 여기서 한 번 더 끝내줄까? 어차피 우린 다시 아침 9시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아갈 텐데."

송진우가 얼굴을 더 가까이 밀착해 왔다. 그의 눈 속에 담긴 가학적인 흥분이 태윤의 안경 유리에 반사되어 일렁였다.

태윤은 왼손을 들어 제 멱살을 잡은 송진우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떼어내려 하는 대신, 오른손가락으로 송진우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어내며 낮게 읊조렸다.

"태성그룹 사내 안전 관리 규정 제14조 3항. 상급자 부재 시 사내에서 발생하는 임직원 간의 물리적 충돌 및 폭력 행위는 발견 즉시 당사자 전원의 자필 경위서 및 부서원 전원의 목격 진술서 작성을 요한다."

송진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지금 17층에 남은 인원은 우리 둘 외에도 오민혁 팀장, 임예은 대리, 그리고 한설아 씨까지 총 다섯 명이다."

태윤은 송진우의 가슴팍을 더 깊숙이 밀어붙였다. 손가락 끝에 닿는 그의 심장박동이 미세하게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네가 여기서 나를 타격하거나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순간, 난 비상벨을 누를 거다. 소란이 발생하면 야근 승인 결재를 위해 자리에 남은 오 팀장이 가장 먼저 달려오겠지. 그렇게 되면 규정에 따라 현장에 있던 전 사원이 퇴근을 제지당하고 진술서를 작성해야 해. 오 팀장이 본사 복귀를 위해 목을 매고 있는 이 중요한 프로젝트 기간에, 네 사소한 화풀이 때문에 전원 야근 기록이 감사실로 넘어간다면 그가 어떻게 반응할 것 같나?"

태윤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규칙의 나열만이 어두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오 팀장은 기회주의자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요소를 발견하면 즉시 도려내지. 네가 공들여 쌓아 올린 그 완벽한 알리바이와 기획안 평가 점수는 공중분해될 거다. 이 루프가 끝나기 전, 넌 감사팀의 조사를 받으며 17층에 발이 묶이게 돼. 네가 원하는 '가장 완벽한 범죄의 완성'에 흠집이 가는 걸 감당할 수 있겠어?"

송진우의 손가락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그의 뒤틀린 입꼬리가 아래로 굳어졌다. 태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손을 완전히 뿌리쳤다. 구겨진 셔츠 깃을 거칠게 정리하며 태윤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송진우는 멱살을 잡았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의 가죽 장갑 틈새로 살짝 노출된 손목에서 은색 커프스링크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금속 광택을 발했다. 미세한 스크래치가 휠라멘트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때, 저 멀리 탕비실 방향에서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규칙적이고 조심스러운 발소리. 한설아였다.

그녀는 양손에 서류 몇 장을 든 채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다 두 사람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소심하고 유약해 보이는 평소의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차가운 눈빛은 태윤과 송진우의 위치를 정확히 계산하고 있었다.

한설아는 탕비실 입구에 놓인 대형 복사기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복사기 뒤편, 보이지 않는 좁은 틈새로 손을 슬쩍 뻗었다.

*툭.*

손끝이 무언가를 가볍게 탭하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들렸다. 복사기 내부에 숨겨둔 초소형 녹음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그녀만의 신호였다. 한설아는 태윤을 향해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송진우의 폭력적인 언사와 협박이 고스란히 녹음 장치에 기록되었다는 의미였다. 임예은의 감시를 무력화하고 오민혁의 독단을 옭아맬 또 하나의 패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그 순간, 태윤의 관자놀이에 지독한 편두통이 찾아왔다.

*아아아악-*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대뇌 피질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뜯겨 나가는 듯한 감각. 6회차 루프의 대가였다. 이번에는 무엇이 사라졌을까.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꽃의 이름이었을까, 아니면 대학 졸업식 날 친구들과 나누었던 웃음소리였을까. 사적인 기억의 파편이 영구히 소실되는 고통 속에서, 그의 시야에 반투명한 푸른색 텍스트가 겹쳐 올랐다.

[사후 분석 데이터베이스 동기화 완료.] [대상: 송진우 (6회차 동선 로그 분석)] - 22:15 : 17층 서버실 내부 비상 배전반 조작 유도 - 22:40 : 문서 보관실 밀실 잠금장치 무력화 시도 인지 및 대기 - 22:50 : 타깃(강태윤) 직접 타격 및 질식사 설계 (알리바이: 탕비실 정수기 필터 점검 기록 위조)

머릿속에 각인된 로그 파일이 송진우의 당일 공격 타이밍과 위장 알리바이 동선을 실시간으로 동기화했다.

태윤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알리바이를 정수기 필터 점검으로 꾸밀 생각이었나 본데, 송 대리. 머리를 고생시켰군."

송진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슨 소리지?"

"사내 안전 근무 수칙 제4조 고온 다습 설비 관리 조항에 따르면, 정수기 필터의 주기적 교체는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일과 시간 내에만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그리고 배관 세척 시 사용되는 화학 물질은 가연성 예외 조항에 묶여 있지."

태윤은 바닥에 뒹굴고 있는, 방금 전 도어록을 녹여버릴 때 사용했던 서류 뭉치를 발끝으로 가리켰다.

"방금 내가 문서 보관실 문을 열 때 사용한 방법이 바로 그 세척 화학 물질의 가연성 예외 조항을 역이용한 거다. 정수기 필터 교체 배관 세척액은 열원과 접촉 시 폭발적인 연소를 일으키지. 만약 네가 정수기 필터를 만졌다는 알리바이를 주장하려면, 지금 문서 보관실에서 발생한 이 매캐한 연기와 화학 반응 흔적의 주범이 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돼. 소방 안전법 위반 및 고의 사내 기물 파손. 어느 쪽이든 네 깔끔한 이력서에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지 않나?"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논리의 그물이었다. 1화에서 스치듯 읽었던 퇴실 불가 안내문의 가연성 세척 권고사항과 사내 수칙의 모순이, 지금 이 순간 송진우의 발목을 묶는 완벽한 족쇄가 되었다.

송진우의 얼굴에서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사내 수칙이라는 물리적 법칙의 맹점을 역이용당해 자신의 알리바이가 원천 봉쇄당했다는 사실을 직시한 것이다.

"강태윤……."

송진우는 낮게 신음하듯 그의 이름을 뱉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다시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차가운 웃음기를 띠었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손때가 타 미세한 스크래치가 가득한 은색 커프스링크를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어루만졌다.

"재밌네. 정말 재밌어. 하지만 강 대리, 네 그 똑똑한 머리가 언제까지 버텨줄까?"

송진우가 한 걸음 다가와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악의가 피부를 찔렀다.

"루프가 반복될수록 네 눈빛이 점점 기계처럼 변해가고 있어. 소중한 기억들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있지? 과연 다음 루프에서도 네가 그 사내 수칙들을 전부 기억할 수 있을까?"

송진우는 은색 커프스링크를 은밀하게 들어 보이며, 태윤의 텅 빈 기억의 틈새를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아니면, 다음번엔 아예 네 이름조차 잊어버린 채 내 칼날을 맞이하게 될까?"

"내 이름이 지워져도, 규정집의 잉크는 마르지 않아."

태윤은 한 걸음 다가서며 송진우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안경테를 밀어 올리는 그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수술용 메스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내 뇌리에 새겨진 네 동선 로그는 단 일 바이트도 누수되지 않는다. 네가 나를 찌른 각도, 흉기의 크기, 네가 풍기던 그 싸구려 담배 냄새까지 전부 데이터로 박제되어 있어. 기억이 지워질수록 내 머릿속엔 오직 너를 파멸시킬 논리 공식만 남게 된다는 뜻이다."

송진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소매 끝의 은색 커프스링크를 거칠게 튕겼다.

*딱.*

금속음이 복도에 길게 늘어지는 순간,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이게 무슨 탄내야? 강 대리! 거기 있어?"

임예은이었다. 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바닥을 짓이기며 빠르게 다가왔다. 문서 보관실 문틈으로 새어 나간 매캐한 연기가 그녀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태윤은 송진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옆에 서 있던 한설아에게 아주 미세하게 턱짓을 보냈다. 한설아는 즉시 품에 안고 있던 서류철을 품 깊숙이 밀어 넣으며 복사기 옆으로 바짝 붙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복사기 조작 패널을 두드리는 척하며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위이잉-*

예열을 시작하는 기계음이 복도를 채웠다. 그와 동시에 한설아가 목소리 톤을 한 단계 낮추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임 대리님, 이쪽이에요. 정수기 배관 쪽에서 연기가 좀 나는 것 같아서 송 대리님이 확인하고 계셨어요."

모퉁이를 돌던 임예은의 발소리가 뚝 멈췄다.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송진우와 태윤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송진우의 가죽 장갑과 그가 들고 있던 정수기 필터 교체용 드라이버에 머물렀다.

"송 대리? 당신이 왜 여기서 정수기를 만지고 있어? 그건 총무과 소관이잖아."

임예은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경계심이 묻어났다. 그녀는 남에게 약점 잡히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만큼, 타인의 수상한 행동을 포착하는 데도 귀신같았다.

송진우는 밀어붙이던 자세를 완전히 풀고 뒤로 물러섰다. 그는 가죽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으며 특유의 부드럽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임 대리님. 야근하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려는데 온수가 안 나오더라고요. 필터 밸브 쪽에 압력이 찬 것 같아서 가볍게 손을 좀 봤습니다. 연기가 난 건…… 보관실 안쪽 배선에 누전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누전?"

임예은이 코를 킁킁거리며 문서 보관실 안쪽을 들여다보려 했다. 태윤은 그녀의 동선을 차단하듯 한 걸음 옆으로 이동해 문 앞을 막아섰다.

"송 대리 말이 맞습니다. 노후된 도어록 제어반에서 스파크가 튀었습니다. 사내 안전 수칙 제12조에 의거해 즉시 전원을 차단하고 가연성 물질을 격리 조치했습니다. 임 대리님이 소란을 피우지 않아도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태윤의 건조한 반박에 임예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녀는 태윤의 은테 안경 너머를 꿰뚫어 보려는 듯 시선을 고정했다.

"상황 종료? 강 대리, 당신 옷차림이 왜 그 모양이야? 멱살이라도 잡힌 사람처럼 셔츠가 다 구겨졌는데."

"제어반을 뜯어내느라 좁은 틈새에 몸을 밀어 넣었을 뿐입니다. 의심스럽다면 감사실에 정식으로 CCTV 확인을 요청하시든가요. 물론, 그 과정에서 임 대리님이 승인받지 않은 사적 서류를 보관실에 방치해 두었다는 사실도 함께 보고되겠지만."

태윤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경고는 묵직했다. 임예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본인의 실적 평가와 직결된 기밀 프로젝트의 전권을 쥐기 위해 태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역으로 자신의 허점이 드러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일이나 해. 오 팀장님 기분 안 좋으시니까 눈에 띄지 말고."

임예은은 신경질적으로 돌아섰다. 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다시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복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다시 내려앉았다.

송진우는 태윤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대처가 빠르네, 강 대리. 하지만 명심해. 11시는 반드시 오고, 그때가 되면 이 건물 안의 모든 규칙은 무의미해질 테니까."

송진우는 그대로 몸을 돌려 어둠이 짙게 깔린 사무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실루엣이 파티션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태윤은 그 자리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강 대리님."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한설아였다. 그녀는 복사기 액정 화면을 응시한 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녹음은 완벽하게 끝났어요. 송 대리가 가연성 세척액과 정수기 알리바이를 언급한 부분까지 전부 다요. 이걸 오 팀장에게 넘기면 송 대리는 오늘 밤 안으로 보안팀에 격리될 거예요."

"아니, 아직은 안 돼."

태윤은 안경을 벗어 소매 끝으로 안경알을 닦았다. 그의 시야에 다시 한번 푸른색 로그 파일이 점멸했다.

[사후 분석 데이터베이스 경고] - 22:50 : 타깃 직접 타격 동선 우회 감지. - 변수 발생: 송진우, 17층 서버실 비상 배전반 조작을 통한 '강제 정전' 시나리오로 즉각 전환.

"송진우는 쥐가 아닙니다. 덫을 보면 피하는 게 아니라, 덫의 구조를 바꿔놓는 놈이죠."

태윤은 안경을 고쳐 쓰며 차갑게 읊조렸다.

"놈은 알리바이가 깨진 걸 인지했어. 그렇다면 22시 50분에 나를 직접 물리적으로 타격하는 대신, 다른 방식을 쓸 거다. 이를테면…… 서버실의 전력을 통째로 끊어버리는 식으로."

한설아의 눈동자가 이채를 띠며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복사기에서 출력된 이면지 한 장을 태윤에게 건넸다. 이면지의 뒷면에는 손글씨로 복잡한 빌딩의 도면과 몇 개의 비밀번호가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했어요. 오 팀장의 컴퓨터에서 뽑아낸 태성그룹 비자금 장부의 접속 경로예요. 장부 원본은 서버실 3번 랙에 있는 백업 드라이브에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보관 중이에요. 그 장부를 확보하려면 서버실의 내부 셧다운이 시작되는 밤 11시 전에 수동으로 락을 해제해야 해요."

태윤은 그녀가 건넨 종이를 받아 쥐었다. 거친 종이의 촉감이 손가락 끝을 자극했다.

"송진우가 서버실 배전반을 조작하려는 진짜 이유가 이거였군. 나를 죽이는 것과 동시에, 비자금 장부의 기밀 데이터를 완전히 파기하려는 속셈이야."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해요."

한설아의 목소리에 기계적인 단호함이 실렸다.

"송 대리가 배전반을 내리기 전에 백업 드라이브를 확보해야 우리 둘 다 이 지옥 같은 루프 속에서 탈출할 패를 쥐게 돼요. 강 대리님, 당신의 그 '데이터베이스'로 송 대리가 배전반을 내리는 정확한 시간을 특정할 수 있나요?"

태윤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시야에 떠오른 반투명한 타임라인을 응시했다.

[22:47:15 - 송진우, 서버실 서브 배전반 접근 및 과부하 차단기 수동 조작 시도 예정.]

현재 시각은 22시 44분. 송진우가 움직이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3분이었다.

"3분 뒤다."

태윤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놈이 차단기를 내리는 순간, 서버실의 소방 시스템과 비상 전력이 동시에 오작동을 일으키며 밀실로 변할 거다. 한설아 씨, 당신은 복사기 안의 녹음기를 챙겨서 오 팀장실 앞으로 가세요. 정전이 발생하는 즉시 오 팀장을 붙잡아 두고 소란을 피워야 합니다. 송진우가 서버실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시선을 끌어주는 역할입니다."

"알겠어요. 조심하세요, 강 대리님. 다음 루프의 당신이 저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번 회차의 저는 약속을 지킬 테니까."

한설아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태윤은, 주머니에서 작은 드라이버를 꺼내 쥐었다.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피할 수도 없었다. 이 지옥 같은 밤을 끝내고 온전한 '내일'을 되찾기 위해서는, 송진우가 설계한 가장 어두운 함정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태윤은 구두 끝으로 바닥을 딛으며 어두운 서버실 복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스스스…….*

미세한 기계 소음과 함께 서버실의 차가운 공기가 그의 뺨을 스쳤다. 철문 틈새로 붉은색 비상등이 기묘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태윤이 서버실 문손잡이에 손을 얹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툭.*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순간적으로 암전되었다.

[치명적 경고: 뇌세포 기능 저하로 인한 인지 왜곡 발생.] [손실 데이터: '한설아'와의 동맹 조건 및 신뢰도 분석 파일 영구 삭제.]

"……누구?"

태윤은 자신도 모르게 문손잡이를 잡은 채 멈춰 섰다. 방금 전 자신에게 도면을 건네주며 속삭였던 그 여자의 얼굴이, 이름이, 머릿속에서 하얗게 표백되어 가고 있었다.

오직 차가운 이성과 데이터베이스의 기계적인 로그만이 그의 뇌리에 남아 경고음을 울려댔다.

[22:47:00 - 송진우, 배전반 차단기 조작 15초 전.]

태윤은 이빨을 악물었다. 기억의 소멸이 가져다주는 극심한 공포를 억누르며, 그는 철문을 거칠게 밀어 열었다.

어두운 서버실 내부, 수십 대의 서버 랙이 내뿜는 푸른 불빛 사이로 은색 커프스링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송진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태윤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배전반의 메인 스위치 위에 얹혀 있었다.

"어라, 강 대리. 눈빛이 아까보다 더 텅 비어 보이네?"

송진우가 잔인하게 웃으며 스위치를 아래로 내렸다.

*콰르릉!*

서버실의 불빛이 일제히 꺼짐과 동시에, 등 뒤의 철문이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폐쇄되었다. 완전히 밀실이 된 어둠 속에서, 송진우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이제 누가 이 방의 규칙을 지배할지 결정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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