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제갈휘의 휠체어가 연무장 바닥의 거친 돌판을 긁으며 굴러왔다. 삐걱거리는 나뭇바퀴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의 시선은 뱀처럼 집요하게 한백령의 전신을 휘감았다. 전신에서 풍기는 짙은 약탕 냄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기이할 정도로 서늘한 안광이었다.

남궁혜린이 즉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손이 아직 열기가 채 식지 않은 검자루를 굳게 쥐었다.

"제갈 장로님. 이곳은 남궁가의 수련장입니다. 총맹의 책사라 하실지라도 이토록 무례하게 난입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납니다."

혜린의 음성은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웠다. 그러나 제갈휘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오직 한백령의 어깨와 손끝,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미세하게 들썩이는 단전의 위치만을 쫓고 있었다.

"남궁 소저의 검강이 낙양의 하늘을 갈랐으니, 총맹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소."

제갈휘가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 놓인 가죽 덮개를 툭, 툭 쳤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찬란한 검강 뒤에 숨은 그림자요. 귀문(鬼門)의 흔적이 가득한 혈무살진을 단신으로 깨부수고, 남궁가의 비전 심법을 단숨에 교정해 낸 자. 한백령이라 했던가?"

백령은 겉으로 한없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는 그의 태도에는 털끝만큼의 오만함도 없었다. 완벽한 정파 대협의 표상이었다.

"맹의 장로님을 뵈옵니다. 소인은 그저 남궁 소저의 의기(義氣)에 감복하여 미천한 힘을 보탰을 뿐입니다. 과분한 칭송이십니다."

"과분한지, 혹은 당연한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 알겠지."

제갈휘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낙양 분타의 정청(正廳)으로 가세. 맹의 대소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자네의 그 '미천한 힘'에 대해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남궁철을 비롯한 남궁가의 장로들이 주저했으나, 제갈휘의 뒤를 따르는 총맹 정예 무사들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백령은 혜린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걱정하지 말라는, 지극히 자상하고 듬직한 눈빛이었다.

혜린은 그 눈빛을 받고서야 겨우 굳게 쥐었던 검자루에서 힘을 뺐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백령을 향한 신뢰의 뿌리가 더욱 단단히 내리뻗는 느낌이었다.

***

낙양 분타 지하에 위치한 정청은 깊은 우물과 같았다. 사방이 두꺼운 청석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의 빛이 한 줌도 들지 않았다. 차가운 벽공(壁孔) 사이로 새어 나오는 촛불만이 방 안을 음산하게 비추었다.

제갈휘는 방 중앙에 휠체어를 세운 채, 탁자 위에 두꺼운 서류 뭉치를 올려놓았다.

"한백령."

제갈휘의 목소리가 청석 벽에 부딪쳐 무겁게 울렸다.

"자네의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샅샅이 뒤져보았네. 형산 인근의 몰락한 의가(醫家) 출신이라 되어 있더군. 하지만 기이하지 않은가? 형산파의 기록 그 어디에도 자네 가문의 이름은 없었네. 첫째, 자네의 진짜 출신은 어디인가?"

그의 날카로운 질문이 허공을 갈랐다.

"둘째, 혈무살진을 격파할 때 자네가 펼친 보법은 신법의 극치였네. 그러나 정파의 그 어떤 문파도 가르치지 않는, 지극히 음습하고 효율적인 몸짓이었지. 그 무공의 기원은 무엇인가?"

제갈휘가 서류를 덮으며 탁자를 탁 쳤다.

"셋째, 가문의 비전 심법은 타인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법. 자네는 남궁 소저의 천화심법을 교정해 주었네. 남궁가의 무학을 훔치려 한 것이 아닌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막힘없이 답해 보게."

질문마다 독니가 숨겨져 있었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사파의 첩자나 무공 도둑으로 몰려 즉시 폐인이 될 터였다.

백령은 단전 깊은 곳에서 요동치는 사파의 독기를 억눌렀다. 그의 가슴속에서 천외인과경이 차갑게 공명하고 있었다. 인과경의 표면에 남궁혜린과 맺은 신뢰의 고리가 붉은 실처럼 얽혀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백령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동자는 맑고 투명했다.

"장로님의 의심은 지극히 타당하십니다. 맹의 안위를 책임지시는 자리에 계시니 당연한 책무이겠지요. 하지만 소인의 답 역시 무림맹의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백령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림맹 공식 경전인 태을진경(太乙眞經) 제삼장 십이조를 기억하십니까? '의(義)를 행함에 있어 출신을 묻지 않으며, 오직 그 행보의 순수함으로 협(俠)을 논한다' 하였습니다. 소인의 가문은 사파의 화를 피해 숨어 살던 의가였습니다. 기록이 소멸한 것은 사파의 추적을 피하기 위함이었으니, 맹약십조 제칠조에 명시된 '피난민의 은닉 권리'에 부합합니다."

제갈휘의 눈썹이 꿈틀했다. 정파의 경전과 맹약을 이토록 정확하게 들이밀 줄은 예상치 못한 듯했다.

"그렇다면 그 기이한 보법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그것은 보법이 아니라, 의가의 침술에서 유래한 '혈맥 도인술'의 응용입니다."

백령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가슴속 인과경이 회전했다. 혜린의 신뢰를 통해 흡수했던 천화검강의 극양(極陽)의 정수가 백령의 손끝으로 흘러들었다. 백령은 사파의 음한한 내력을 철저히 숨긴 채, 오직 혜린에게서 얻은 가장 순수하고 따뜻한 정파의 기운만을 끌어올렸다.

파아앗.

백령의 손가락 끝에서 은은하고 따스한 백색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그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정파 무공의 극치라 불리는 '순양기(純陽氣)'였다.

청석 방안의 한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제갈휘의 안색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사파의 무공을 익힌 자라면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완벽하게 정화된 순양의 내력이었다.

"남궁 소저를 도운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백령이 손끝의 기운을 거두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천화심법의 결함을 찾아낸 것은 소인이 의가로서 혈맥의 흐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궁가의 무학을 탐했다면, 어찌 제 기운을 아낌없이 주입하여 소저의 심맥을 안정시켰겠습니까? 무림맹약 제사조, '동도의 위기를 보고도 돕지 않는 자는 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 하였습니다. 소인은 그저 맹의 규칙을 따랐을 뿐입니다."

완벽한 답변이었다. 정파의 규칙을 완벽하게 역이용하여 자신을 철저히 무해하고 정의로운 대협으로 포장해 낸 것이다.

제갈휘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파놓은 삼중 질문의 덫이 백령의 완벽한 논리와 순양기의 증명 앞에 무력하게 깨져 나갔다.

방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백령은 그 적막 속에서 제갈휘가 휠체어 손잡이를 쥔 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쿨럭! 쿨럭……!"

제갈휘가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가슴을 움켜쥐는 그의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백령의 안광이 나직하게 가라앉았다.

'심맥의 한기가 폐부를 찌르고 있군.'

백령은 제갈휘의 체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내력의 충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선천적인 심맥 질환. 지략을 짜내기 위해 뇌력을 과도하게 소모할 때마다, 억눌려 있던 음한한 기운이 심장을 갉아먹는 형국이었다.

백령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갈휘의 호위 무사들이 검자루에 손을 올렸으나, 백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갈휘의 정면에 멈추어 섰다.

"장로님. 장기판의 말은 아무리 영리하게 움직여도 결국 대국자(對局者)의 손끝을 벗어나지 못하는 법입니다."

제갈휘가 기침을 멈추고 붉어진 눈으로 백령을 쏘아보았다.

"무슨 소릴 하려는 게냐."

"총맹의 책사로서 천하를 움직이시나, 정작 스스로의 몸 하나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하시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맹주께서 내리시는 영약은 한때의 고통을 잊게 해줄 뿐, 장로님의 심맥을 근본적으로 좀먹고 있지 않습니까?"

제갈휘의 눈동자가 대진동을 일으켰다. 가문의 원로들과 무림맹주 맹진태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그들이 주는 약에 의지해 생명을 연명하던 그의 가장 아프고 추악한 비밀을 이 일개 의원이 꿰뚫어 본 것이다.

"네놈이 어찌 그것을……!"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는 잡초조차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법이지요."

백령의 목소리는 지극히 부드러웠으나, 제갈휘의 심장을 후벼 파는 독침과 같았다.

"장로님처럼 뛰어난 지략을 가진 분이, 어찌 스스로 그늘이 되려 하지 않고 남의 그늘 밑에서 시들어 가려 하십니까."

우회적이고 철학적인 자극. 그것은 가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학대해 온 제갈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반골(反骨)의 정서를 정확히 건드렸다.

그 순간, 백령의 가슴속 천외인과경이 격렬하게 회전했다.

웅우웅.

눈에 보이지 않는 영맥의 흐름이 제갈휘의 몸과 백령 사이를 연결했다. 제갈휘의 내면에서 휘용돌이치는 지독한 혼란, 맹주를 향한 깊은 불신과 가문에 대한 증오가 인과경의 표면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인과율의 공명 확인.] [상대의 내력 분열 양상 및 심맥의 약점을 감지하여 기록합니다.]

머릿속에 울리는 차가운 음성과 함께, 제갈휘의 체내에서 날뛰는 음한한 내력의 흐름이 백령의 뇌리에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졌다. 제갈휘가 이끄는 지략의 정수와 그의 업보가 백령의 통제 하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제갈휘는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백령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는 경계와 의심,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기묘한 교감이 뒤섞여 있었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주는 자를 만났을 때 느끼는, 지독하리만큼 위험한 동질감이었다.

"자네는……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제갈휘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백령은 대답 대신 품속에서 작은 침통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저 장로님의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은, 미천한 의원일 뿐입니다."

제갈휘는 탁자 위의 침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백령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다시 걸렸다.

"과연 영민하군. 내 평생 이토록 속을 알 수 없는 자는 처음 본다."

제갈휘가 천천히 품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품 깊숙한 곳에서 황금빛 밀랍으로 단단히 봉인된, 두꺼운 가죽 서첩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 서첩의 표면에는 무림맹주 맹진태의 개인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것은 맹주께서 내게 직접 내리신 극비 임무의 사본이다."

제갈휘가 서첩을 백령의 앞으로 밀어냈다.

"낙양의 깊은 지하, 비검릉(祕劍陵)의 외곽 영맥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기운을 조사하라는 명이지. 총맹의 그 어떤 고수도 이 임무의 본질을 알지 못한다."

제갈휘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번뜩였다.

"네놈의 그 뛰어난 안목과 의술, 그리고 정체불명의 능력이 진짜라면…… 이 임무를 감당해 내라. 이것이 내가 너를 믿을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맹의 적으로 규정해 처단할지를 결정할 마지막 시험이다."

황금빛 봉인 위로 촛불의 흔들리는 불빛이 붉게 반사되었다.

백령의 눈빛이 서첩에 닿는 순간, 그의 심장 속 사파의 독기가 사납게 요동쳤다. 드디어 무림맹의 가장 깊고 어두운 심장부, 비검릉으로 들어갈 열쇠가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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