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푸른 검강과 검푸른 마기가 격렬하게 부딪치며 지하 창고의 대기를 찢어발겼다.

콰과광!

사방으로 비산하는 먼지 속에서 한백령은 단전을 요동치게 만드는 반탄력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그의 무복 소매가 갈가리 찢겨 나가며 하얀 팔뚝 위로 붉은 선혈이 베어 나왔다.

그의 눈앞에는 서슬 퍼런 청강을 검신에 두른 채, 차가운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남궁혜린이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경악과 의심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기운은…… 귀영문의 마공?!"

그녀의 검끝이 한백령의 목울대를 정확히 겨누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기도를 뚫어버릴 듯한 서늘한 예기가 피부를 아리게 찔러왔다.

한백령은 턱끝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방울을 느끼며 속으로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심장은 고요했다. 사파의 살수로서 수없이 겪어온 죽음의 문턱이었다. 이 정도의 위기는 그에게 숨쉬기보다 익숙한 계산의 영역에 불과했다.

그는 품속의 귀영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억누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내력을 역류시켜 단전을 스스로 타격했다.

"윽……!"

한백령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의 신형이 크게 흔들리며 바닥으로 쓰러질 듯 주저앉았다. 그는 검을 짚고 겨우 몸을 지탱하는 시늉을 하며, 고통에 찬 눈빛으로 남궁혜린을 올려다보았다.

"남궁…… 소저…… 오해하셨습니다."

"오해?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방금 네 품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명백한 사파 귀영문의 독문 마공이었다. 더는 나를 기만하려 들지 마라!"

남궁혜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감과 두려움이 그녀의 검끝을 흔들고 있었다.

한백령은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며, 품속에서 서서히 광채를 잃어가는 녹슨 단검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단검의 표면에는 여전히 음산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이 단검은…… 과거 무림맹이 귀영문을 토벌할 때 회수한 마물입니다. 이 지하 영맥의 흐름을 왜곡시키며 음습한 마기를 사방으로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소저의 체내에 흐르는 역혈(逆血)의 기운…… 그것이 이곳 낙양 분타에 들어선 이후 유독 심해진 이유를 아십니까? 바로 이 마물이 지하 영맥을 오염시켜, 남궁가의 정순한 심법을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백령은 가슴을 움켜쥐며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그의 낯빛은 종잇장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제가 이 단검을 찾아내어…… 제 미천한 내력으로 마기를 억눌러 정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 공력이 부족하여 오히려 마기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소저의 호신강기와 부딪쳐 이리 폭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내게 먼저 말하지 않았지?"

"말씀드려 보았자, 소저는 가문의 명예와 무림맹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가문의 기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홀로 고통받는 소저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뼈를 깎는 듯한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오직 타인을 도구로만 보며 살아온 사파의 악귀가 부려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위선적인 연기였다.

남궁혜린의 검끝이 굳어졌다.

그녀의 시선이 한백령의 찢어진 소매와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 그리고 진심어린 우려가 담긴 그의 눈동자로 향했다. 그녀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지독한 고독과 결핍이, 한백령이 던진 정교하게 가공된 호의에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가문의 눈을 피해 이 위험한 마물을 처리하려 했다고?'

그녀의 평생 동안, 그 누구도 그녀의 고통을 먼저 알아채고 대신 짐을 짊어지려 하지 않았다. 가문은 오직 그녀에게 남궁의 천재라는 껍데기만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과연! 사파의 더러운 끄나풀과 밀통하여 가문의 유산을 훔치려 한 현장이 여기 있었구나!"

지하 사물고의 입구를 부수듯 열며, 한 무리의 무사들이 거친 기세를 뿜어내며 들이닥쳤다.

선두에 선 인물은 남궁가의 방계 장로이자 낙양 분타의 실권자 중 한 명인 남궁철(南宮鐵)이었다. 그의 뒤로는 열 명이 넘는 무림맹의 규율관들이 삼엄하게 검을 뽑아 쥔 채 늘어섰다.

남궁철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귀영단검과 한백령의 피를 번갈아 보며 쾌재를 불렀다.

"남궁혜린! 네가 결국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고 사파의 마공에 손을 대었구나. 멸문당한 귀영문의 흉물까지 밀수하여 무엇을 도모하려 했느냐!"

"남궁 장로님! 이건 오해입니다. 이 소협은 그저……."

남궁혜린이 다급히 해명하려 했으나, 남궁철은 가차 없이 그녀의 말을 자르고 들어섰다.

"시끄럽다! 현장에서 귀영문의 마기가 관측되었고, 네놈들이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이는 무림맹 율법에 의거하여 즉결 처분도 가능한 대역죄다. 여식을 당장 포박해라!"

규율관들이 쇠사슬을 절렁이며 두 사람을 포위해 들어왔다.

남궁혜린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가문 내부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있던 방계 세력이, 자신을 끌어내리기 위해 완벽한 덫을 놓았음을 직감한 탓이었다. 그녀의 손끝이 절망감으로 가늘게 떨렸다.

그 순간, 주저앉아 있던 한백령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신형은 여전히 비틀거렸으나, 두 눈만큼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맑고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남궁혜린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남궁철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남궁 장로님. 정파의 대협이라 자처하시는 분께서, 무림맹의 근간을 뒤흔드는 망언을 이리도 쉽게 뱉으시다니 통탄스러울 따름입니다."

한백령의 목소리가 지하 창고의 사방 벽면을 울리며 묵직하게 퍼져 나갔다.

"무슨 개소리냐! 감히 어디서 근본도 모르는 놈이 맹의 규율을 논하느냐!"

남궁철이 호통을 쳤으나, 한백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무림맹 율법 제삼장 제칠조를 잊으셨습니까? '압수된 사파의 기물은 맹주부의 직속 명을 받은 공인 수사관의 참관 하에 감정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사적인 단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정확한 율법 선포에 남궁철의 안색이 굳어졌다.

"또한, 동 율법 제오장 제십이조에 따르면, 낙양 분타의 공식적인 수색 영장 없이 야밤에 무장 사병을 대동하여 지하 사물고를 습격하는 행위는 명백한 '비무장 지대 침범 및 사적 무력 행사'에 해당합니다. 장로님께서는 지금 맹주의 권위를 참칭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가문의 사리사욕을 위해 무림맹의 법도를 짓밟으시는 것입니까?"

"이, 이놈이……!"

남궁철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뒤에 서 있던 규율관들이 서로 의아한 눈빛을 교환하며 주춤거렸다. 한백령이 지적한 법률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무림맹의 공식 규율이었다. 정파의 생리인 '명분'과 '규율'을 역이용한 완벽한 반박이었다.

"더불어, 여기 계신 남궁혜린 소저는 가문의 후계자로서 맹의 정식 허가를 받아 이곳 사물고의 안전을 점검하고 계셨을 뿐입니다. 오히려 침입한 사파의 기운을 감지하고 몸을 던져 이를 제압하려 하셨지요. 그 과정에서 제가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한백령은 자신의 피 묻은 소매를 들어 올리며 당당하게 외쳤다.

"장로님께서는 현장을 확인하기도 전에 대역죄를 운운하시며 가문의 보배를 모함하려 하셨습니다. 이는 천하 무림인들이 지켜보는 대의(大義)에 어긋나는 일이며, 남궁가의 의기(義氣)를 스스로 시궁창에 처박는 행위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사심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정의를 수호하려는 대협의 기개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남궁혜린은 한백령의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음해하려는 가문의 거대한 압력 앞에서도, 피를 흘리며 자신을 온몸으로 가로막아 지켜주는 사내.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 찬 강호에서, 이토록 대가 없이 자신을 변호해 주는 존재를 그녀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단단하게 닫혀 있던 빗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렸다.

'이 사람은…… 진짜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의심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신뢰와 신의가 들어찼다.

두 사람의 신뢰가 임계점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한백령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한 천외인과경(天外因果鏡)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따스하고 온화한 기운이 그의 단전에서 피어올랐다. 강탈과 도식이 아닌, 영혼과 영혼이 맞닿아 일어나는 진정한 교감(交感)의 결속이었다.

남궁가비전인 창천항가검(蒼天恒家劍)의 오의가, 그리고 그녀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정순한 정파의 내력이 천외인과경의 거울 표면을 타고 한백령의 단전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억지로 빼앗는 고통은 없었다. 오직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 듯,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그의 힘을 격상시켰다.

그의 막힌 기혈이 뚫리고, 단전의 크기가 순식간에 두 배 이상 팽창했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빛의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남궁철은 한백령의 기세가 순식간에 변하는 것을 느끼고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옆에 서 있던 가문의 중견 무사, 남궁상(南宮詳)에게 눈짓을 보냈다.

"네놈이 세 발의 혀로 맹의 법도를 기만하려 드는구나! 더 들을 것도 없다. 저놈은 사파의 주술로 혜린이를 현혹시킨 마두가 분명하다. 당장 저놈의 목을 베어라!"

"명을 받듭니다!"

일류 고수인 남궁상이 검을 뽑아 들고 번개처럼 도약했다.

그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서슬 퍼런 검기가 한백령의 미간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한 소협! 피하십시오!"

남궁혜린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러나 한백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냉소가 스쳤다.

검이 울었다.

바람이 갈라진다.

백령이 신형을 좁혔다.

손끝이 허공을 갈랐다.

스아아앗!

한백령은 검을 뽑지조차 않았다. 오직 새로이 터득한 창천항가검의 오의를 손가락 끝에 실어 허공을 가볍게 내저었을 뿐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검강이 남궁상의 검기를 정면에서 산산조각 내버렸다.

콰아아앙!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닌,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굉음이 일었다.

"뭣이?!"

남궁상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자신이 평생을 연마한 가문의 비전 검기가, 일개 이름 없는 청년의 손가락 끝에서 뻗어 나온 검강에 허무하게 바스러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힘의 차이가 아니었다. 한백령이 펼친 초식은 남궁가의 검법보다 훨씬 더 완벽하고, 더 정순한 창천의 기세를 담고 있었다.

한백령의 신형이 유령처럼 남궁상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남궁의 검은, 사리사욕을 위해 휘두르는 무기가 아닙니다."

낮게 내뱉는 음성과 함께 한백령의 손바닥이 남궁상의 가슴팍에 가볍게 닿았다.

퍽!

쿠구구궁!

남궁상의 거구는 대포알처럼 뒤로 날아가 지하 창고의 두꺼운 돌기둥을 들이받았다. 기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며 먼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커헉……!"

남궁상은 바닥에 엎어진 채 한 가득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그의 검은 이미 자루만 남은 채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단 한 격.

가문의 중견 고수가 손가락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지하 창고에 모인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남궁철은 사시나무 떨듯 사지를 떨며 뒤걸음질 쳤다. 그가 데려온 규율관들 역시 한백령의 가공할 기세에 압도되어 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한백령은 피 묻은 소매를 정돈하며, 차가운 시선으로 남궁철을 내려다보았다.

"장로님. 이제 누가 진짜 사파의 마두인지, 맹주부에 정식으로 조사를 의뢰해 볼까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 담긴 살기는 남궁철의 심장을 얼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남궁철은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승부는 이미 결정 나 있었다. 정파의 규칙으로도, 무력으로도 그들은 한백령을 이길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던 남궁상이 갑작스럽게 기괴한 명을 지르며 전신을 뒤틀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끄윽, 끄으으……!"

그의 피부 밑으로 검은 혈관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솟아올랐다. 그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어가며, 입술 사이로 검은 김이 피어올랐다.

한백령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것은 방금 자신이 입힌 내상으로 인한 반응이 아니었다.

남궁상은 피가 섞인 가래침을 뱉어내며, 광기에 어린 눈으로 한백령과 남궁혜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기괴하고 찢어지는 듯한 웃음이 걸렸다.

"큭, 크하하하……! 멍청한…… 놈들…… 이미 늦었다……."

그는 목을 긁는 듯한 쉰 목소리로 피를 토하며 절규하듯 외쳤다.

"너희가…… 이겼다 생각하느냐? 무림맹의…… 비밀 지령이…… 이미 내려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 똑바로 말해라!"

남궁혜린이 해명하기 위해 다가서려 했으나, 한백령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제지했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지하 창고의 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궁상의 상체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마지막 단말마를 내뱉었다.

"혈무살진(血霧殺陣)이…… 이 지하에서…… 가동될 것이다…… 모두…… 죽으리라……!"

콰드득!

말을 마친 남궁상의 전신 기혈이 일시에 파열하며, 그는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동시에, 지하 창고의 사방 벽면에 새겨진 정파의 부적들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바닥의 틈새로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음산한 살기가 지하실 전체를 잠식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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