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끼에에에에엑-!!”

하얀 눈꽃이 흩날리는 윈터헤이븐의 앞마당에 귀를 찢는 비명이 고요를 산산이 조각내었사옵니다.

아기 그리핀의 금빛 눈동자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어갔지요. 녀석의 전신에서 불길한 적색 광폭화 아우라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사옵니다. 목걸이가 풀리면서 일시적으로 억눌려 있던 체내의 독성 마기가, 기폭 장치가 사라지자마자 제어 장치를 잃고 광포하게 날뛰기 시작한 것이옵니다.

“캬아아아악-!”

모카가 본능적으로 제 앞을 가로막으며 꼬리에서 불꽃 스파크를 파지직 튀겼사옵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모카의 온몸이 잔뜩 부풀어 올랐지요. 그와 동시에 디트리히가 저를 제 뒤로 거칠게 잡아당겼사옵니다.

“레티샤, 물러서라! 광폭화한 환수는 제 어미도 알아보지 못해!”

디트리히의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사옵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제 어깨를 단단히 고정하려 했지만, 저는 그 손길을 뿌리치고 도리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사옵니다.

눈앞에서 발작하듯 솟구쳐 오르는 아기 그리핀의 가냘픈 날갯짓이 보였기 때문이옵니다. 녀석의 솜털들이 바늘처럼 빳빳하게 곤두서 있었고, 부리 끝에서는 검붉은 마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요. 그것은 포악한 야수의 공격성이 아니었사옵니다. 지독한 독극물에 중독되어,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어린 생명의 처절한 비명이었사옵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버림받고 상처 입은 존재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사옵니다. 깊은 유기 트라우마가 제 가슴속에서 차갑게 요동쳤지요. 지금 저 아이를 외면한다면, 저 역시 스스로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이었사옵니다.

[시스템 메시지: 마수 '아기 그리핀'의 스트레스 지수 위험 수치 돌파!] [영혼 보육 대장 활성화 - 솔루션 제시] - 대상: 아기 그리핀 (성장 단계: 유아기) - 상태: 독성 리바운드로 인한 급성 적색 광폭화 - 솔루션: 신체 접촉을 통한 온기 전달 및 '진심 어린 포옹', 그리고 '별빛 이슬 약초 수프' 급여. - 경고: 솔루션 실행 시 사용자의 체온이 급격히 저하되는 '한빙증'이 극렬히 심화됩니다. 현재 대피로 탐색 및 복선 잔여도 양호.

눈앞에 번쩍이는 부드러운 민트색 시스템 창을 응시하며, 저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사옵니다. 한빙증의 대가가 얼마나 지독한지 잘 알고 있었지만, 제 발걸음은 이미 아기 그리핀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지요.

“위험합니다, 보육사님! 가까이 가시면 안 돼요!”

유리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치며 제 치맛자락을 잡으려 손을 뻗었사옵니다. 하지만 저는 멈추지 않았사옵니다.

아기 그리핀이 흉포한 부리를 벌린 채, 바로 눈앞에 있는 저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들었사옵니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고, 순간적으로 녀석의 억센 깃털 끝이 제 어깨죽지를 세차게 들이받았사옵니다.

팍-!

얇은 보육사 복장 위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붉게 피어올랐사옵니다. 뺨 스치듯 지나간 충격에 머리칼이 거칠게 휘날렸고, 흰 눈밭 위로 붉은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내렸지요.

“레티샤!”

디트리히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며 검자루로 손이 향했사옵니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 마기가 폭풍처럼 일렁였지요. 그가 검을 뽑아 그리핀을 베어버리기 전에, 저는 몸을 던져 아기 그리핀을 두 팔로 꽉 끌어안았사옵니다.

“괜찮아, 아가. 이제 아픈 건 다 끝났단다. 무서운 사슬은 없어. 내가 여기 있단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섞인 제 체온이 아기 그리핀의 빳빳하게 굳은 깃털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도록, 저는 녀석의 둥근 머리를 제 가슴팍에 깊숙이 묻었사옵니다. 녀석의 날카로운 발톱이 제 등을 사정없이 할퀴어 대며 가죽을 찢는 통증이 전해졌지만, 저는 품을 풀지 않았사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壊지기 쉬운 유리 인형을 다루듯, 더욱 다정하고 포근하게 녀석을 감싸 안았지요.

“끼우…… 끾…….”

품 안에서 발악하며 버둥거리던 아기 그리핀의 몸짓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사옵니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에 서려 있던 광기 어린 적의가, 제 심장박동과 온기를 느끼고는 일순간 거품처럼 가라앉았지요.

“유리엘! 비법 약초 수프를……!”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사옵니다.

제 외침에 정신을 차린 유리엘이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미리 끓여 두었던 마법 보온병을 품에 안고 눈밭을 뒹굴 듯이 달려왔사옵니다. 겁이 많아 발자국 소리만 크게 나도 식탁 밑으로 숨어버리던 유리엘이, 지금은 저와 아기 그리핀을 지키기 위해 온몸에 눈을 묻혀가며 달리고 있었사옵니다.

“여, 여기 있어요! 제발 무사하셔야 해요, 보육사님!”

유리엘이 건넨 은제 보온병의 뚜껑을 열자, 하얀 눈밭 위로 몽글몽글한 김이 피어올랐사옵니다. 윈터헤이븐 정원에서 정성껏 가꾼 달콤한 은빛 꿀풀과 별 모양의 희귀 약초를 황금 비율로 우려내어 만든 특제 수프였지요. 병 입구에서 달콤하고 싱그러운 복숭아 향과 옅은 시나몬 향이 공기 중으로 향긋하게 퍼져 나갔사옵니다.

“자, 착하지? 이걸 먹으면 가슴이 아프던 게 전부 눈 녹듯 사라질 거야. 엄마를 믿으렴.”

달콤한 후각적 자극에 아기 그리핀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부리를 벌려 제가 흘려 넣어 주는 약초 수프를 홀짝홀짝 받아먹기 시작했사옵니다. 수프가 녀석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마자, 전신을 뒤덮고 있던 기분 나쁜 적색 아우라가 스르륵 걷히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사옵니다.

아기 그리핀의 깃털 끝에서부터, 마치 봄날의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부드럽고 순한 분홍빛 마력이 몽환적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옵니다. 녀석의 전신을 감싸던 가시 돋친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파스텔 톤의 달콤한 솜사탕 같은 온화한 기운이 정원을 온통 가득 채웠사옵니다.

“삐이익, 삐악…….”

아기 그리핀은 더 이상 사나운 야수가 아니었사옵니다. 녀석은 연신 제 품에 둥근 얼굴을 부비며, 지극히 사랑스러운 아기 새의 울음소리를 내었지요.

그 경이로운 광경에 요새 마당을 지키던 에스카르트의 철혈 기사들이 넋을 잃고 입을 벌렸사옵니다.

“세상에…… 저 포악하기로 소문난 고대 그리핀이 보육사님 품에서 응석을 부리고 있어.” “그리핀은 자존심이 세서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다 스스로 굶어 죽는 환수라고 들었는데, 저렇게 온순해지다니!” “정말 기적이야. 보육사님이 그리핀을 정화하셨어!”

기사들의 감탄 섞인 속삭임이 사방에서 들려왔고, 유리엘은 빗자루를 꼭 쥔 채 감격의 눈물을 훔쳤사옵니다. 모카 역시 질투가 폭발했는지 제 치맛자락을 이빨로 꼭 물고는 “캬릉, 갸릉!” 하며 제 종아리에 제 몸을 마구 비벼 대었지요.

독성 함정을 완벽히 파괴하고, 제라드의 암살 공모를 멋지게 분쇄해 낸 완벽한 승리였사옵니다. 하오나 기쁨을 만끽할 여유는 저에게 주어지지 않았사옵니다.

스으으으-.

갑작스럽게 손가락 끝에서부터 핏기가 가시며, 뼈마디가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한기가 저를 덮쳐왔기 때문이옵니다. 머리카락 끝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고, 눈앞이 어지럽게 흔들렸지요. 보육 대장의 솔루션을 완벽하게 실행한 대가, 지독한 한빙증의 발작이 시작된 것이옵니다.

“아…… 읏…….”

전신이 얼음 조각상처럼 굳어지며 눈밭 위로 쓰러지려는 찰나, 뜨겁고 단단한 팔이 제 허리를 강하게 낚아채 안았사옵니다.

“레티샤!”

디트리히의 다급하고 거친 목소리가 고막을 흔들었사옵니다. 그는 주저 없이 저를 제 품으로 번쩍 안아 올렸지요.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도로 정순하고 붉은 불꽃 같은 마기가 제 얼어붙어 가던 심장에 닿는 순간, 뼛속을 찌르던 통증이 미약하게나마 누그러지는 것이 느껴졌사옵니다.

“매번 이렇게 제 목숨을 내던지다니, 미련하기 짝이 없군.”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가웠지만, 저를 안은 그의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사옵니다. 그의 붉은 눈동자 깊은 곳에는 겉잡을 수 없는 초조함과 두려움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지요.

“공작님…… 아기 그리핀은…… 무사한가요…….” “그 녀석은 깃털 하나 상하지 않고 멀쩡하다. 그러니 네 걱정이나 해라.”

디트리히는 성큼성큼 눈밭을 헤치며 요새 본관을 향해 걸어갔사옵니다. 그의 품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는 저에게 유일한 구원의 동아줄이었지요. 저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의 멱살을 꼭 쥐고,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사옵니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저의 머릿속은 쉴 새 없이 굴러갔사옵니다. 오늘 제라드의 수하들이 보인 음모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옵니다. 요새 가득 정화의 온기가 퍼져나가고 있지만, 제국의 감시와 제라드의 암살 공작은 더욱 교묘해질 터였지요.

‘지하의 고대 대피 방어벽 설계도…….’

일전에 보육 대장 시스템을 통해 확인했던 요새 지하의 도면이 뇌리를 스쳤사옵니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아기 마수들과 유리엘을 데리고 대피할 수 있는 유일한 격리 벽의 위치를 완벽히 파악해 두어야만 했사옵니다. 그리고 제 품에서 잠시 내려놓은 모카의 상태창 구석에 여전히 굳게 잠겨 있는 ‘전설의 신수 유전핵’ 표시 역시 떠올랐지요. 저 잠겨 있는 유전핵이 완전히 깨어나는 순간, 우리를 위협하는 제국의 무리에게 엄청난 역공을 가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정신 차려라, 레티샤. 눈을 감지 마.”

디트리히의 억눌린 음성이 귓가를 흔들었사옵니다. 어느새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따스한 온기가 감도는 그의 개인 침실 안으로 들어섰사옵니다. 은은한 벽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그가 평소 사용하는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침향이 코끝을 스쳤지요.

그는 저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히려 했사옵니다. 하오나 제 전신을 옥죄는 한빙증의 추위는 도무지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저는 저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거머쥐었사옵니다.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이 그의 검은 제복 깃을 꽉 움켜잡았지요.

“춥…… 습니다…… 가지 마세요…….”

제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가냘픈 애원에, 디트리히의 몸이 굳어버렸사옵니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저를 놓아주지 않는 제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사옵니다. 이윽고 그의 수려한 얼굴에 복잡한 체념과 뜨거운 갈망이 동시에 내려앉았지요.

그가 서서히 상체를 숙여 제 쪽으로 다가왔사옵니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사옵니다. 그의 단단한 가슴이 제 가슴에 닿을 듯 내려앉았고, 그의 뜨거운 숨결이 제 입술 바로 위로 흐트러졌지요. 그의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제 시선을 사로잡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사옵니다.

그의 입술이 제 입술에 닿기 직전의 아주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디트리히가 낮게 속삭였사옵니다.

“원하는 대로 온기를 주지. 그러니 내 허락 없이 멋대로 사라지려 하지 마라, 레티샤.”

그의 묵직한 서약과도 같은 목소리가 심장을 뒤흔드는 순간, 그의 뜨거운 입술이 제 숨결을 집어삼킬 듯이 다가왔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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