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쿵, 하는 묵직한 굉음과 함께 흩날리는 새하얀 눈발 사이로 붉고 검은 핏방울이 마치 장미 꽃잎이 짓이겨진 것처럼 사방으로 튀었사옵니다.

하늘에서 날개가 가죽처럼 처참하게 찢어진 채 검게 타들어 가던 아기 그리핀 한 마리가 정원에 추락한 것은 바로 그 직후의 일이었지요. 녀석의 여린 목덜미에 채워진 쇳빛 목걸이가 불길한 붉은빛을 번득이며 애처롭게 울부짖고 있었사옵니다.

“끼에에에엑……!”

쇠 긁는 듯한 가냘픈 비명이 정원의 고요를 산산조각 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민트색 마력막 아래에서 달콤한 솜사탕 요새처럼 아늑하던 윈터헤이븐의 공기가, 순식간에 매캐하고 씁쓸한 탄내로 가득 차 버렸지요. 눈밭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검은 피는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떨어진 먹물처럼 빠르게 번져 나가며 정원의 수려한 화단을 오염시켰사옵니다.

“레티샤, 물러서라.”

디트리히의 낮고 싸늘한 목소리가 제 귓가를 때렸사옵니다. 그가 저를 본능적으로 제 등 뒤로 숨기며, 오른손으로 검자루를 움켜쥐었지요.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푸른 마기가 얼어붙은 대기를 사나옵게 휘감았사옵니다.

하지만 제 시선은 이미 눈밭 위에서 발버둥 치는 아기 그리핀에게 고정되어 있었사옵니다.

솜털이 듬성듬성한 아기 그리핀의 작은 몸집은 겨우 커다란 사냥개만 한 크기였지요. 독성 마기에 타들어 가는 날개 끝자락은 노란 개나리 꽃잎처럼 보드라워 보였으나, 지금은 까맣게 그을려 진물정도가 흐르고 있었사옵니다. 녀석의 커다란 금빛 눈동자가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 찬 채 저를 향해 도움을 청하듯 깜빡였습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지독한 트라우마가 꿈틀거렸사옵니다. 또다시 버림받고, 상처받고, 홀로 차가운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존재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던 것이지요. 언제나 위험이 닥치면 짐을 싸서 도망칠 궁리부터 하던 저였지만, 이 가냘픈 생명의 울음소리 앞에서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사옵니다.

“안 돼요, 각하! 검을 거두어 주세요. 저 아이는 적이 아니옵니다. 그저 깊은 상처를 입은 아기일 뿐이에요!”

저는 디트리히의 단단한 팔을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외쳤사옵니다.

“비켜라, 레티샤. 저 마수의 목에 걸린 사슬에서 품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 당장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마력 응축이야.”

디트리히의 미간이 깊게 좁혀졌지요. 그의 말대로 아기 그리핀의 목에 채워진 기괴한 문양의 쇳빛 목걸이는, 마치 심장박동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붉은빛을 토해내고 있었사옵니다.

그때, 제 시야에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빛무리가 번지며 익숙한 장부 형태의 UI 화면이 눈앞에 떠올랐사옵니다.

[영혼 보육 대장]이 활성화된 것이었지요.

================================== [마수 정보] - 이름: 미등록 (아기 그리핀) - 상태: 극도의 공포, 호흡 곤란, 신체적 다발성 손상 - 선호 식품: 달콤한 꿀에 절인 야생 블루베리 - 유전적 결함 및 특이사항: '체성 독소 주입식 기폭 사슬' 장착 중. 외부 마력이나 충격이 가해질 시 120초 이내에 자폭하도록 설계됨. - 현재 위험도: ★★★★★ (일촉즉발)

[솔루션] : 기폭 장치의 중심부에 위치한 '마력 역류 제어 소자'를 정밀 도구로 분리할 것. ※ 주의: 마력을 사용하여 해체하려 할 경우 즉시 폭발함. 순수한 물리적 세공 기술과 정화 오일의 윤활 효과가 필요함. ==================================

장부의 내용을 읽어 내리는 순간, 제 등줄기로 서늘한 소름이 돋았사옵니다.

‘체성 독소 주입식 기폭 사슬’이라니요. 이것은 마수의 몸에 독을 주입해 광폭화를 유도하는 동시에, 유사시에는 거대한 인간 폭탄처럼 터뜨려 주변을 초토화하는 악랄한 제국의 무기였사옵니다. 그리고 이 목걸이에 정교하게 음각된 기하학적 십자가 문양은…… 단 한 사람, 제라드 크로이츠의 잔인한 표식이었지요.

“하아, 으윽……!”

솔루션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제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얼음송곳이 찌르는 듯한 극심한 추위가 치밀어 올랐사옵니다. 영혼 보육 대장의 능력을 발휘한 대가인 '한빙증'이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었지요.

손끝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가며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사옵니다. 이대로 두면 아기 그리핀을 구하기도 전에 제 몸이 먼저 고드름처럼 굳어버릴 판국이었지요.

“레티샤!”

디트리히가 제 몸의 급격한 변화를 눈치채고 지체 없이 저를 품으로 끌어당겼사옵니다.

그의 넓은 품에 안기자마자, 쌉싸름한 시더우드 향과 눈 덮인 겨울나무의 묵직한 온기가 제 얼어붙은 전신을 감싸 안았사옵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지극히 순수하고 정제된 마기가 제 차가운 혈관을 타고 흐르며, 얼어붙던 심장을 다시금 뛰게 만들었지요.

“흐으…… 각하, 고맙사옵니다. 하지만 지금 저 아이를 살려야 해요. 저 목걸이는 제라드가 보낸 덫이옵니다.”

저는 그의 품에 기댄 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어갔사옵니다.

“제라드…… 그 위선자 놈이 결국 이런 짓까지 공작단에 뻗쳤단 말인가.”

디트리히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타오르는 지옥의 불꽃처럼 차갑게 가라앉았사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살기가 가득했지요.

그때, 제 품 안에서 꼬리를 바짝 세우고 있던 모카가 “캬릉! 갸아아오!” 하고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제 치맛자락을 물어당겼사옵니다. 평소라면 디트리히의 접근에 질투를 부렸을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추락한 그리핀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눈치챈 모양이었지요. 모카의 불꽃 꼬리 끝에서 주황색 스파크가 튀며 녀석의 불안감을 대변해 주었사옵니다.

“유리엘! 유리엘, 어디 있느냐!”

제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자, 요새 현관 기둥 뒤에 숨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유리엘이 빗자루를 꼭 쥔 채 허겁지겁 달려왔사옵니다.

“네, 네! 보육사님! 여기 있사옵니다! 제,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저, 저렇게 무서운 새가 떨어졌는데……!”

유리엘은 겁에 질려 다리가 후들거리는 와중에도 제 부름을 거절하지 않았지요. 참으로 기특하고 눈물겨운 용기였사옵니다.

“유리엘, 내 방 책상 두 번째 서랍에 있는 세공용 은제 가위와 달콤한 박하 오일을 당장 가져다줄 수 있겠느냐? 아주 빠르게 다녀와야 한다!”

“은, 은제 가위와 박하 오일이요? 알겠습니다!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유리엘은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윈터헤이븐의 복도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사옵니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장함이 마치 전장에 나가는 기사 못지않았지요.

그동안 저는 디트리히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아기 그리핀에게 다가갔사옵니다.

“끼우우…… 뀩……”

아기 그리핀은 제가 다가오자 경계하듯 찢어진 날개를 퍼덕이려 했으나, 이내 기력이 다했는지 고개를 눈밭에 툭 떨어뜨렸사옵니다. 검은 독소가 목덜미의 핏줄을 타고 보라색 그물망처럼 뻗어 나가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보였지요.

“쉬이…… 괜찮단다, 아가. 해치지 않아. 엄마가 아프지 않게 해 줄게.”

저는 나지막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녀석의 이마에 돋아난 보드라운 깃털을 살포시 쓰다듬었사옵니다.

신기하게도 제 손길이 닿자, 미친 듯이 요동치던 아기 그리핀의 호흡이 미세하게나마 안정을 찾기 시작했지요. 동화 속 따스한 봄바람이 겨울의 얼음 장벽을 녹이듯, 제 손끝에서 배어 나오는 미약한 온기가 녀석의 공포를 어루만져 준 모양이었사옵니다.

“기폭 장치의 남은 시간, 60초.”

디트리히가 낮게 읊조렸사옵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목걸이의 깜빡임 주기를 정밀하게 계산하고 있었지요.

“가져왔습니다! 여기요, 보육사님!”

숨을 턱 끝까지 몰아쉬며 달려온 유리엘이 은빛 가위와 투명한 병에 담긴 박하 오일을 제게 건넸사옵니다. 오일병의 뚜껑이 열리자, 정원의 매캐한 탄내를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상쾌하고 청량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지요.

“고맙구나, 유리엘. 이제부터 아주 정밀한 작업이 필요하니 모두 숨을 죽여다오.”

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은제 가위 끝에 박하 오일을 듬뿍 적셨사옵니다. 박하 오일의 고유한 성질이 마력의 전도를 일시적으로 차단하고, 뻑뻑하게 굳은 기계 장치의 태엽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줄 것이었지요.

눈앞에 다시 한번 영혼 보육 대장의 가이드 선이 인현(顯)했사옵니다.

목걸이의 중심부, 붉은 보석처럼 빛나는 기폭 장치의 틈새로 아주 미세한 은색 실선과 붉은색 마력 선이 엉켜 있는 것이 보였지요. 보통의 마법사라면 당연히 마력 선을 끊으려 하겠지만, 그것은 제라드가 파놓은 함정이옵니다. 끊어야 할 것은 그 뒤에 숨겨진, 마치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물리적 구리 태엽’이었사옵니다.

제 손끝이 한빙증으로 인해 미세하게 떨려왔사옵니다.

“레티샤, 내게 기대라.”

디트리히가 제 등 뒤로 바짝 다가와 저를 단단히 받쳐 주었사옵니다. 그의 가슴팍에서 전해지는 든든한 고동 소리와 뜨거운 열기가 제 손끝의 떨림을 완벽하게 잡아주었지요. 그의 정제된 마기가 제 몸속의 한기를 밀어내며, 제 손가락에 기적적인 집중력을 불어넣어 주었사옵니다.

‘침착해야 하옵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아요.’

저는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박하 오일이 뚝뚝 떨어지는 은제 가위의 날카로운 끝을 기폭 장치의 미세한 틈새로 밀어 넣었사옵니다.

서걱-.

차가운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지요.

제라드가 장치해 둔 마법 회로는 제 가위날이 들어오는 순간 격렬하게 반응하려 했으나, 박하 오일의 청량한 막에 가로막혀 그 어떤 마력 스파크도 일으키지 못했사옵니다.

저는 보육 대장이 지시하는 민트색 가이드 라인을 따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하게 은색 구리 태엽을 끊어내기 시작했사옵니다.

서걱, 서걱-.

세 번의 정교한 가위질이 이어졌사옵니다.

마침내, 목걸이 중심부에서 기분 나쁘게 박동하던 붉은빛이 일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스르륵 꺼져 버렸지요.

딸깍-.

가벼운 기계음과 함께, 아기 그리핀의 가냘픈 목을 조르고 있던 무거운 쇳빛 사슬이 힘없이 풀려 눈밭 위로 떨어졌사옵니다.

“해, 해내셨어요! 보육사님이 해내셨다고요!”

유리엘이 감격에 겨워 제자리에서 빗자루를 꼭 쥔 채 방방 뛰었사옵니다.

디트리히의 눈동자에도 짙은 경탄의 빛이 스쳐 지나갔지요. 제국에서도 가장 정교한 마법 세공 기술을 가졌다는 제라드의 암살용 덫을, 일개 보육사에 불과한 제가 단 몇 분 만에 완벽하게 해체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사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재주군. 제라드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거다.”

디트리히가 낮게 웃으며 검자루에서 손을 떼었사옵니다. 그의 얼굴에 서려 있던 팽팽한 긴장감이 한풀 꺾이는 듯했지요.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땅에 떨어진 기폭 사슬을 은제 가위 끝으로 집어 올려, 미리 준비해 둔 철제 상자 안에 안전하게 격리했사옵니다. 이 장치는 훗날 제라드의 음모를 황실과 공작가에 명백히 밝혀낼 아주 중요한 증거물이 될 것이었지요. 머릿속으로 요새 지하의 고대 대피 방어벽 설계도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이 위험한 물건을 어디에 격리해 두어야 가장 안전할지 빠르게 계산했사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된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 순간이었지요.

철제 상자의 뚜껑을 닫고, 기폭 장치의 열기가 완전히 식어 싸늘하게 변한 찰나였사옵니다.

“끼에에에에엑-!!”

갑자기 아기 그리핀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발작하듯 솟구쳐 올랐사옵니다.

녀석의 온몸을 덮고 있던 솜털들이 바늘처럼 빳빳하게 곤두서기 시작했지요. 목걸이가 풀리면서 일시적으로 억눌려 있던 체내의 독성 마기가, 기폭 장치가 사라지자마자 제어 장치를 잃고 광포하게 날뛰기 시작한 것이옵니다!

아기 그리핀의 금빛 눈동자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어가며, 녀석의 전신에서 불길한 적색 광폭화 아우라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사옵니다.

“캬아아아악-!”

모카가 본능적으로 제 앞을 가로막으며 이빨을 드러냈고, 디트리히가 다시 한번 저를 제 뒤로 거칠게 잡아당겼사옵니다.

적색 광폭화에 빠진 아기 그리핀이 흉포한 부리를 벌린 채, 바로 눈앞에 있는 저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들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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