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기괴한 고음이 공기를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사옵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의 귀에는 그저 이명처럼 가늘게 스쳐 지나갈 소리였으나, 청각이 예민한 영물들에게는 뇌수를 송곳으로 헤집는 듯한 극도의 고통을 선사하는 지옥의 불협화음이었지요.
“뀨우우우-! 캬릉, 캬아아악!”
제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 있던 모카가 조그만 앞발로 양 귀를 막으며 바닥을 뒹굴었사옵니다. 꼬리 끝에서 매서운 불꽃 스파크가 파지직 튀며 주변의 풀잎을 검게 그을렸지요. 지하 대피로의 차가운 돌바닥 틈새에서도 아기 마수들의 가녀린 비명이 애처롭게 흘러나왔사옵니다.
바실리가 남긴 기괴한 나팔 모양의 음파 장치는 대지를 기분 나쁘게 뒤흔들며 윈터헤이븐 요새 전체를 잠식해 가고 있었지요. 마치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타르가 온 사방에 뿌려지는 듯한 감각에, 저는 가슴이 턱 막혀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사옵니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이대로 두면 아이들이 미쳐버릴 텐데……!’
불안감에 손끝이 사정없이 꼼지락거렸사옵니다. 당장이라도 모카만 품에 안고 이 으스스하고 위험천만한 요새에서 도망쳐 버리고 싶다는 회피 본능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요. 하지만 고통에 겨워 꼬리를 바르르 떠는 모카의 눈망울을 본 순간, 제 발걸음은 도망이 아닌 녀석의 곁으로 움직이고 말았사옵니다.
스스로의 나약한 버릇을 이겨내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저 힘없고 가여운 생명체들이 내뿜는 슬픈 울음소리였지요.
윙-!
반가운 소리와 함께 제 시야 속으로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빛무리가 번져 나갔사옵니다. [영혼 보육 대장]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알리며 눈앞에 반짝이는 장부 형태로 떠올랐지요.
[알림: 광폭화 유도 음파인 ‘심연의 비명’이 감지되었습니다!] [보육 대상들의 정서 불안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10분 내로 조치하지 않을 시, 지하에 대피한 아기 마수들이 집단 광폭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 솔루션 제시 ★] - 요새 전체에 설비된 구들장 온돌 장치를 가동하십시오. - 온돌의 온기 전도관을 통해 시전자의 따스한 정화 마력을 흘려보내면, 음파의 기분 나쁜 진동을 완벽히 상쇄하고 정화할 수 있습니다. - ※ 주의: 넓은 구역에 마력을 동시 전도함에 따라 체온이 급격히 저하되는 ‘지독한 한빙증’이 발현됩니다.
“한빙증이라니요…….”
달콤한 연분홍빛 글씨로 적힌 경고문이었지만, 그 내용은 결코 달콤하지 않았사옵니다. 온몸이 얼음장처럼 굳어 들어가며 영혼까지 얼어붙는 그 끔찍한 고통을 또다시 겪어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망설일 시간은 단 1초도 없었사옵니다.
“각하! 지하 온돌 제어실로 가야 합니다! 요새 중앙의 마력로를 켜야 해요!”
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디트리히의 옷소매를 다급하게 붙잡았사옵니다. 디트리히는 붉게 타오르는 안광으로 요새 정문 너머 멀어지는 검열단의 흔적을 응시하다가, 제 절박한 외침에 고개를 돌렸지요. 그의 얼음 조각 같은 얼굴에 깊은 의문이 스쳤으나, 이내 제 손을 꽉 매어 잡았사옵니다.
“안내해라.”
그의 목소리는 북부의 겨울바람처럼 서늘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든든한 날개처럼 제 등을 받쳐주었사옵니다.
우리는 요새의 가장 깊은 곳, 먼지가 뽀얗게 쌓인 낡은 마력로가 위치한 지하 제어실로 단숨에 달려내려 갔사옵니다. 사방에서 기분 나쁜 기계적 고음이 벽을 타고 고막을 찔러댔지요. 유리엘은 울상이 된 채 빗자루를 꼭 쥐고 제 뒤를 졸졸 따랐사옵니다.
“레티샤 님, 이 낡은 기계가 정말 작동할까요? 너무 오래 방치되어 있었는데…….”
“작동시켜야만 해요, 유리엘. 아이들이 아파하고 있잖아요.”
저는 먼지투성이인 둥근 마력로 앞에 서서 양손을 제어 장치 위에 얹었사옵니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지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제 안의 정화 마력을 쥐어짜 내어 장치 속으로 불어넣기 시작했사옵니다.
스스스스-.
제 손끝에서 연한 솜사탕 같은 분홍빛 마력이 흘러나와 먼지 쌓인 전도관을 타고 퍼져 나갔사옵니다. 그와 동시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지독한 한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지요.
이빨이 딱딱 부딪히고, 손가락 끝의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졌사옵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전부 자잘한 얼음 알갱이로 변해버린 것만 같은 참혹한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지요.
“아, 으윽…….”
“레티샤!”
디트리히가 깜짝 놀라 손을 뻗으려 했으나, 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사옵니다. 지금 제어 장치에서 손을 떼면 마력 전도가 끊겨 음파를 상쇄할 수 없었지요. 저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도, 제 안의 온기를 쥐어짜 내어 보일러의 불씨를 키웠사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침내, 요새 바닥 아래에 묻혀 있던 거대한 구들장 온돌 평면 전도관들이 일제히 깨어나며 고동치기 시작했사옵니다.
화아아아아아-.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사옵니다.
칙칙하고 어두컴컴한 검은 마기로 뒤덮여 음산하기 짝이 없던 윈터헤이븐 요새의 벽과 바닥이, 순식간에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변해갔지요. 차가운 회색 돌바닥 틈새에서부터 딸기 우유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분홍빛 온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사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지요. 천장과 기둥을 따라 싱그러운 민트색의 고아한 파스텔톤 마력막이 방울방울 피어오르며 요새 전체를 감싸 안았사옵니다.
코끝을 스치는 향취마저 완전히 달라졌지요. 피비린내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던 지하 제어실에, 방금 구워낸 달콤한 바닐라 쿠키의 향과 숲속의 은방울꽃 향기가 가득히 들어찼사옵니다.
“어머나…… 이, 이게 무슨 일이래요?”
유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주변을 맴도는 분홍빛 마력 방울을 바라보았사옵니다.
바실리가 내뿜던 그 끔찍하고 날카로운 음파의 파동은, 이 따스하고 몽환적인 파스텔톤 마력막에 부딪히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는 봄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요. 기분 나쁜 진동이 멈추고, 요새 안은 거짓말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온기만이 가득해졌사옵니다.
“뀨우우-? 갸릉!”
귀를 막고 괴로워하던 모카가 가장 먼저 고개를 번쩍 들었사옵니다. 녀석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기분 좋은 온도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이내 신이 나서 요새 복도를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지요.
지하 대피로의 문이 스르륵 열리며, 그 안에 숨어 있던 아기 마수들이 고개를 쏙 내밀었사옵니다.
불꽃 꼬리를 가진 꼬마 도마뱀들이 쪼르르 기어 나와 따뜻한 온돌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내었지요. 솜털이 뭉게구름처럼 보송보송한 아기 토끼 마수들도 귀를 쫑긋거리며 제 발가락 사이에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렸사옵니다.
칙칙하던 얼음 요새가, 순식간에 꽃밭 같은 색채를 머금은 동화 속의 안전한 안식처로 탈바꿈한 것이었지요.
“해, 해냈어요…….”
저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으나, 그와 동시에 무릎의 힘이 완전히 풀려버렸사옵니다.
스스로의 온기를 전부 쏟아부은 대가는 너무나 대단했지요. 시야가 하얗게 흐려지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얼음 조각처럼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사옵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지독한 추위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얼어붙은 바람이 폐부를 찌르는 것 같았지요.
툭, 하고 바닥으로 쓰러지려던 찰나.
단단하고 드넓은 품이 저를 거칠게 낚아챘사옵니다.
“정신 차려라, 레티샤!”
디트리히의 다급한 목소리가 웅웅거리는 귓가를 뚫고 들어왔지요. 그는 저를 제 품에 빈틈없이 끌어안았사옵니다.
그가 닿는 순간,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극도로 순수하게 정제된 어두운 마기가 제 안의 한빙증과 반응하며 기적 같은 뜨거운 열기로 변해갔사옵니다. 마치 차가운 얼음물에 따뜻한 봄볕을 들이붓는 것처럼, 제 뼛속의 한기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지요.
“하아…… 각하…….”
저는 저도 모르게 그의 단단한 옷자락을 움켜쥐며 더욱 깊숙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사옵니다. 그의 가슴팍에서 풍기는 은은한 새벽 숲의 향기와 기분 좋은 열기가 온몸의 감각을 부드럽게 깨워주었지요.
디트리히는 품 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제게 매달리는 저를 밀어내지 않았사옵니다. 오히려 제 허리를 감은 그의 커다란 손에 한층 더 강한 힘이 들어갔지요.
“매번 이렇게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무모한 짓을 사서 하는군.”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무뚝뚝했으나, 그 안에 담긴 온도는 이전과 사뭇 달랐사옵니다. 걱정과 안도가 뒤섞인 기묘한 떨림이 그의 가슴팍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왔지요.
어느 정도 한기가 가시자, 저는 가만히 눈을 떠 그를 올려다보았사옵니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지요. 날렵한 턱선과 굳게 다물린 입술, 그리고 늘 서늘함만을 담고 있던 그의 적안이 기묘하게 흔들리고 있었사옵니다.
그때, 디트리히가 투박한 손가락을 뻗어 제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사옵니다.
“……얼굴에 먼지가 묻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닿은 뺨이 화끈거릴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지요. 아까 온돌 장치를 만지느라 그을음이 조금 묻었던 모양인데, 그것을 직접 닦아주는 그의 손길은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인형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다정했사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지요.
늘 창백하기만 하던 디트리히의 하얀 뺨이, 아주 미세하게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사옵니다. 그는 제 시선을 의식했는지 눈동자를 훽 옆으로 돌리며 헛기침을 가볍게 내뱉었지요.
“크흠. 다 닦였으니 이제 그만 떨어져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작 제 허리를 감싸 안은 그의 팔은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사옵니다. 그 모순적인 태도가 어쩐지 조금 귀엽게 느껴져, 저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지요.
“각하, 볼이 발그레하셔요. 꼭 봄날의 복숭아 같으십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이제 살 만한 모양이군.”
디트리히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그의 귀 끝까지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저는 놓치지 않았사옵니다.
주변에서는 아기 마수들이 저희를 둘러싸고 “뀨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지요. 모카는 질투가 나기 시작했는지, 디트리히의 장화 위로 기어 올라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앞발로 팍팍 긁어대며 시위를 벌였사옵니다.
“캬릉! 캬아악!”
‘엄마한테서 떨어져라, 이 무서운 인간아!’ 라고 외치는 듯한 모카의 울음소리에 지하 제어실 안에는 오랜만에 평화롭고 따스한 웃음소리가 번져 나갔사옵니다. 유리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우리가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이 윈터헤이븐 요새가 비로소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가슴 벅차 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사옵니다.
쿠우우웅-!
갑자기 정원 하늘 위에서 불길하고 묵직한 파열음이 들려왔사옵니다.
따스한 민트색 마력막으로 덮여 있던 요새의 하늘 한구석이 번쩍이며, 기분 나쁜 검은 불꽃이 튀었지요.
“무슨 일이지?”
디트리히가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며 저를 제 뒤로 숨겼사옵니다. 그의 손이 본능적으로 검자루로 향했지요. 아기 마수들도 놀라 털을 곤두세우며 웅크렸사옵니다.
정원 쪽에서 들려오는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하늘 위에서 무언가 커다란 형체가 비틀거리며 추락하고 있었사옵니다.
그것은 공중에서 날개가 가죽처럼 처참하게 찢어진 채, 검은 독성 마기에 타들어 가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아기 그리핀 한 마리였지요.
“끼에에에에엑-!”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아기 그리핀은 정원의 아름다운 화단 한가운데로 거칠게 추락하며 흙먼지를 거대하게 일으켰사옵니다.
검게 그을린 깃털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검은 피가 눈밭을 오염시키기 시작했고, 녀석의 가냘픈 목덜미에는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쇠 목걸이가 붉은빛을 뿜어내며 깜빡이고 있었지요.
그 불길한 빛을 마주한 순간, 제 심장이 다시 한번 얼어붙는 것처럼 차갑게 내려앉았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