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밀약 직후, 요새의 정문 앞으로 제국의 공식 특별 마수 검열단이 들이닥쳤사옵니다.
철갑옷이 부딪치는 불쾌한 쇳소리가 윈터헤이븐의 얼어붙은 복도를 쩡쩡 울렸지요. 검붉은 제국의 망토를 두른 군사들이 보육실 입구를 겹겹이 포위한 채 살기등등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사옵니다.
“역시 쥐새끼가 냄새를 제대로 맡았군. 북부의 가문이 마수 말살령을 어기고, 요새 깊숙한 곳에서 더러운 마수의 새끼를 기르고 있다는 밀고가 사실이었어.”
검열단장 바실리가 흉측하게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검을 반쯤 뽑아 들었사옵니다. 그의 이마에 새겨진 교단의 신성 문양이 횃불 빛을 받아 기괴하게 번뜩였지요. 당장이라도 유리엘의 품에 안긴 모카를 베어버릴 듯한 기세였사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저는 주먹을 꽉 쥐었사옵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것처럼 쿵쾅거렸지만, 지금 물러서면 저 가여운 아기 마수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 차가운 가죽으로 변할 터였지요.
저는 디트리히의 넓고 단단한 등에 이마를 살포시 기댄 채, 그의 뒤로 뻗은 손을 필사적으로 맞잡았사옵니다. 그의 손가락은 북부의 칼바람을 닮아 서늘하면서도, 그 내면에는 화로처럼 뜨거운 마력의 열기가 웅크리고 있었지요.
“각하…… 제 손을 통해 각하의 마력을 바닥 아래로 거칠게 내리꽂으셔야 하옵니다.”
제 조용한 귓속말에 디트리히의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사옵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마디의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채, 제 손가락 사이로 거칠게 손을 맞잡아 깍지를 끼었지요.
동시에 그의 몸속에서 소용돌이치던 칠흑 같은 마기가 제 전신을 관통하여 요새 바닥으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사옵니다.
쿠구구구궁!
요새 전체가 가볍게 떨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새겨져 있던 오래된 마법 진형의 황금빛 실선들이 일제히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사옵니다.
“이, 이게 무슨……!”
바실리가 당황하여 검을 치켜들기도 전에, 은백색의 아름다운 서리꽃들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순식간에 견고한 장벽을 만들어냈지요. 연분홍빛 안개와 민트색 마력의 파동이 섞인 몽환적인 장벽은 제국 군사들의 시야와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해 버렸사옵니다. 마치 봄날의 안개가 차가운 겨울 군대를 가로막은 듯한 동화 같은 풍경이었지요.
“유리엘! 지금이에요!”
장벽이 시간을 벌어주는 것은 길어야 몇 분에 불과할 터였사옵니다. 저는 다급히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지요.
* * *
스스스스.
머릿속에서 맑은 방울 소리가 울리며, 제 시야에 반투명한 파스텔 핑크빛의 [영혼 보육 대장] 창이 활성화되었사옵니다. 요새 도면을 분석하던 중 머릿속에 각인해 두었던 비밀 정보가 선명하게 떠올랐지요.
[시스템 안내: 윈터헤이븐 요새 지하의 고대 대피 방어벽 설계도가 활성화됩니다.] [숨겨진 격리 벽의 제어 장치가 전방 3미터 좌측 벽면에 존재합니다. 작동 시 아기 마수들을 안전하게 이송할 수 있는 지하 대피로가 개방됩니다.]
“유리엘, 저를 믿고 아이들을 데리고 어서 대피하세요!”
저는 보육실 한구석, 차갑게 얼어붙은 돌벽으로 달려가 덩굴 문양이 정교하게 조각된 돌출부를 힘껏 눌렀사옵니다.
스르릉, 덜컹!
묵직한 마찰음과 함께 벽면의 일부가 뒤로 밀려나며, 어둡지만 기분 좋은 흙내음이 풍겨오는 지하 대피로가 모습을 드러냈지요. 달콤한 살구 향과 바닐라 우유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그 통로는 아이들이 숨기에 더없이 안전해 보였사옵니다.
“하, 하지만 보육사 님은요? 각하와 둘이서 저 무서운 군사들을 어찌 막으시려고……!”
유리엘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빗자루를 꼭 쥔 채 발을 동동 굴렀사옵니다. 그녀의 품에 안긴 모카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는지, 연신 꼬리를 바르르 떨며 불꽃 스파크를 파지직 튀겼지요.
“뀽! 뀨우웅!”
모카는 어떻게든 제 품으로 돌아오려는 듯 버둥거렸사옵니다. 녀석의 볼때기가 도토리처럼 한껏 부풀어 올라 씰룩거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로웠지요.
저는 모카의 작은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속삭였사옵니다.
“모카, 착하지요? 엄마가 금방 데리러 갈 테니까, 유리엘 언니 말을 잘 듣고 숨어 있어야 해요. 도토리 가득 구워놓을게요.”
“꺄아아웅…….”
모카는 제 손가락을 작은 톳율 같은 앞발로 꼭 쥐었다가, 이내 결심한 듯 얌전해져 유리엘의 품으로 파고들었사옵니다. 아기 늑대 삼형제 역시 꼬리를 내린 채 낑낑거리며 유리엘의 뒤를 따랐지요.
“보육사 님, 꼭…… 꼭 무사하셔야 해요!”
유리엘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재빨리 지하 통로 안으로 뛰어들어갔사옵니다. 이윽고 육중한 돌문이 다시 닫히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요.
그와 동시에, 제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뼛속까지 얼어붙는 지독한 한기가 밀려오기 시작했사옵니다.
“으윽……!”
전신이 바늘로 찔리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무릎이 꺾이려던 찰나, 단단하고 뜨거운 팔이 제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사옵니다.
디트리히였지요.
그의 품은 한겨울의 벽난로처럼 기분 좋은 열기를 품고 있었사옵니다. 그의 넓은 가슴에 뺨을 묻자,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침엽수림의 향기와 은은한 시나몬 향이 코끝을 스쳤지요. 극도로 정제된 그의 마기가 제 살결을 타고 스며들며, 얼어붙던 심장을 따스하게 녹여주었사옵니다.
“숨길 것은 다 숨겼나, 보육사.”
디트리히가 제 귀밑머리를 쓸어내리며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사옵니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피어오르는 마기가 가득했지만, 저를 안아 든 손길만큼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지요.
“예, 각하…… 덕분에 아이들은 안전하옵니다.”
제가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대답한 순간, 보육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서리 장벽이 거친 폭발음과 함께 깨져나갔사옵니다.
파앙!
사방으로 흩날리는 은백색 파편 너머로, 바실리가 씩씩거리며 모습을 드러냈지요. 그의 옷자락은 서리에 깎여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얼굴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사옵니다.
“이 비열한 북부의 잡것들이 감히 검열단을 방해해? 군사들은 들어라! 방 안의 모든 것을 샅샅이 뒤져라! 먼지 한 털까지 털어내 마수 새끼를 찾아내란 말이다!”
바실리가 품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기분 나쁜 붉은색 광채를 뿜어내는 결정체들을 한 움큼 꺼내 들었사옵니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마수의 흔적조차 피처럼 붉은 빛으로 반응하여 찾아내는 ‘붉은 마력 탐지석’이었지요. 제국의 보육원마다 마수 새끼들을 색출해 도살할 때 쓰이는 악명 높은 물건이었사옵니다.
“숨겨봤자 소용없다! 이 탐지석은 흙더미 속에 숨은 벌레 같은 마력까지 전부 쫓아가니까!”
바실리가 탐지석들을 바닥에 던지려는 찰나, 제 눈앞에 다시 한번 분홍빛 시스템 창이 명멸했사옵니다.
[시스템 제안: ‘영혼 보육 대장’의 특수 기능 ‘일시적 마력 잠금 차폐막’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 주의: 기술 실행 시 한빙증의 대가가 일시적으로 가중됩니다.]
뼛속이 다시 얼어붙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지금 망설일 여유는 없었사옵니다. 제 안의 회피하고 싶던 유약한 마음을 다잡으며, 저는 디트리히의 옷자락을 꽉 쥔 채 마음속으로 외쳤지요.
‘차폐막을 활성화하옵니다!’
웅-.
제 긴 소매 끝에서부터 은은한 민트색과 연분홍빛의 부드러운 마력 파동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보육실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사옵니다. 마치 봄날의 따스한 이불이 공기를 덮어씌운 듯한 묘한 감각이었지요.
그 순간, 바실리가 자랑스럽게 치켜들었던 붉은 탐지석들이 일제히 기괴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사옵니다.
징징징징징-!
“응? 이, 이게 왜 이러지? 탐지석이 왜 반응을 안 하고…….”
바실리가 당황하여 탐지석을 흔들어 대던 바로 그 찰나였사옵니다.
파지직! 콰과광!
맑고 투명한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바실리의 손에 들려 있던 탐지석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일제히 폭발해 버렸사옵니다!
“으아아악!”
날카로운 붉은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며 검열단원들의 얼굴과 어깨를 사정없이 때렸지요. 황실의 권위를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던 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사옵니다.
바실리 역시 뺨에 길게 긁힌 상처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꼴사납게 뒤로 자빠졌지요. 그의 손에 남은 것은 검게 그을린 쓸모없는 돌가루뿐이었사옵니다.
“이, 이 무슨 사악한 마술이냐! 황실의 공인 탐지석을 파괴하다니! 반역이다! 이것은 명백한 반역죄야!”
바실리가 뺨을 움켜쥔 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사옵니다.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일어선 그의 눈에 독기가 가득 올랐지요.
“저 보육사 년을 당장 끌어내라! 저년이 마법을 부려 탐지석을 망가뜨린 게 분명하다!”
군사들이 험악한 얼굴로 제게 손을 뻗으려 한 바로 그 순간이었사옵니다.
쉬이이익-!
공기를 가르는 서늘한 검풍과 함께, 보육실 안의 온도가 급격히 하강했사옵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바닥에 닿은 횃불의 불꽃이 순식간에 검은 서리로 변해 얼어붙을 정도의 압도적인 마기였지요.
디트리히가 제 앞을 가로막고 서서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사옵니다. 그의 검끝은 정확히 바실리의 목울대 바로 앞,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멈춰 서 있었지요.
“내 영지에서.”
디트리히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하며, 그래서 더 잔인하게 들렸사옵니다.
“내 허락도 없이, 내 보육사에게 검을 겨누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살려 보내지 않는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포한 저주의 마기가 보육실 안의 중력을 몇 배는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았사옵니다. 바실리는 목줄기에 닿은 차가운 기운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지요.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사옵니다.
“하, 하지만 공작 각하…… 제국 마수 말살령은 황제 폐하의…….”
“황제의 목이라 할지라도, 내 검이 먼저 닿을 것이다.”
디트리히가 검끝을 아주 미세하게 앞으로 밀었사옵니다. 바실리의 목가죽에서 붉은 피 한 방울이 배어 나와 검날을 타고 흘러내렸지요.
“더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쥐새끼들아. 당장 내 영지에서 꺼지지 않는다면, 너희의 머리를 요새 성벽에 걸어 제국의 경고판으로 삼을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열단원들은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떨며 무기를 떨어뜨렸사옵니다. 황실의 권위고 나발이고, 눈앞에 있는 괴물 공작이 당장 자신들의 목을 벨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흐, 흑…… 후퇴! 후퇴하라!”
바실리는 결국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물러났사옵니다. 제국의 무자비한 군사들은 윈터헤이븐의 요새 안에서 단 한 마리의 마수도 찾지 못한 채, 상처뿐인 굴욕만을 안고 도망치듯 복도를 달려 내려갔지요.
멀어지는 그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사옵니다. 디트리히 역시 검을 거두며 제게 시선을 돌렸지요.
“괜찮나.”
“예, 각하 덕분에…….”
하지만 안심한 것도 잠시, 요새 정문 쪽에서 멀어지던 바실리의 비열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메아리쳐 들려왔사옵니다.
“에스카르트 공작…… 이대로 물러설 줄 알았더냐?”
불길한 예감이 척추를 타고 짜릿하게 올라왔사옵니다.
요새 정문 밖으로 완전히 벗어난 바실리는 피 묻은 뺨을 일그러뜨리며 품속에서 또 다른 기괴한 장치를 꺼내 들었지요. 그것은 검은색 금속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괴한 나팔 모양의 장치였사옵니다.
“마수를 숨겨두었다면, 스스로 미쳐 날뛰게 만들면 그만이지!”
바실리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장치 중앙의 붉은 보석을 힘껏 내리눌렀사옵니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귀를 찢을 듯한, 인간의 귀에는 간신히 들릴 듯 말 듯한 기괴하고 높은 음파가 윈터헤이븐 요새 전체와 북부 영지 사방 수십 마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사옵니다.
대지가 기분 나쁘게 진동하기 시작했지요. 지하 대피로 쪽에서 아기 마수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미세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