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깃을 틀어쥔 디트리히의 손아귀에서 서릿발 같은 냉기가 뿜어져 나왔사옵니다.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침엽수 향이 무색하게도, 그의 푸른 눈동자는 나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 차갑게 번득였지요.
“3일 안에 요새 지하에서 날뛰는 저 괴물들을 전부 진정시켜라. 실패하면 너를 저 벽 깊은 곳에 매장하겠다.”
그 가혹한 협박은 귓가를 때리는 채찍과도 같았으나, 도망칠 곳 없는 막다른 길에 선 내 영혼은 오히려 기묘한 고요를 찾았사옵니다. 이 겨울의 지배자 앞에서 살아남으려면, 내 가치를 증명하는 길뿐이었으니까요.
나는 목덜미를 짓누르는 그의 단단한 손길을 피하지 않은 채,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사옵니다.
“3일씩이나 필요치 않사옵니다, 각하.”
디트리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습니다. 불신과 흥미가 뒤섞인 시선이 내 얼굴 위를 집요하게 훑어 내렸지요. 그가 천천히 손귀를 풀자,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며 스산한 한기를 남겼습니다. 나는 가볍게 기침을 토해 내며 흩어진 옷깃을 여몄사옵니다.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던 모카가 걱정스러운 듯 내 뺨에 보드라운 불꼬리를 살랑거렸습니다. 녀석의 꼬리 끝에서 튀는 작은 주황색 불꽃이 얼어붙은 뺨을 미약하게나마 덥혀 주었지요. 달콤한 볶은 도토리 향이 코끝을 스치자, 쿵광거리던 심장이 겨우 제박자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당장 보여드리지요. 제게 그 아이들을 만날 기회를 주시옵소서.”
내 확신에 찬 목소리에 디트리히는 대답 대신 턱끝을 까딱였습니다. 그 무거운 침묵은 곧 허락이었지요.
우리는 횃불 하나에 의지한 채 지하 감옥의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사옵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방을 뒤덮은 검은 마기가 가시 돋친 덩굴처럼 허공을 일렁이고 있었지요. 평범한 인간이라면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만큼 탁하고 음산한 기운이었으나, 내 눈앞에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라벤더빛과 민트색 선율이 어두운 복도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내 눈앞에만 선명하게 떠오른 [영혼 보육 대장]의 시스템 빛무무리였습니다.
철창 너머에서 웅크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윈터헤이븐의 기사들이 ‘지옥의 사냥개’라 부르며 두려워하던 등급 외의 대형 늑대 마수였사옵니다. 쇠사슬이 살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검은 털을 적시고 있었고, 녀석의 눈동자는 핏빛 광기로 가득 차 울부짖고 있었지요.
“크르르르……!”
집채만 한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며 철창을 들이받았습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쇠창살이 비틀거렸고,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황급히 검을 뽑아 들었습니다.
“각하, 위험합니다! 저 짐승은 지난주에만 정예 기사 세 명의 어깨뼈를 조각낸 놈입니다. 가까이 가셔서는 안 됩니다!”
기사단장의 외침에도 디트리히는 요지부동이었지요. 그의 시선은 오직 내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기사들의 만류를 가볍게 지나쳐 철창 앞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안타까움이 피어올랐사옵니다. 저 포악해 보이는 몸뚱이 뒤에 숨겨진, 찢어질 듯한 아픔이 내 영혼을 울렸거든요. 상처받은 아이를 보면 제 한 몸 사리지 못하는 보육사의 버릇이 다시금 고개를 든 것이지요.
눈앞에 반짝이는 파스텔빛 장부가 스르륵 펼쳐졌습니다.
[이름: 루포 (은빛늑대형 마수)] [상태: 마기 오염도 89%, 우측 앞발에 심각한 쇠독 발생, 극도의 고립감과 통증으로 인한 광폭화 상태] [선호 식품: 달콤한 꿀을 바른 서리 이끼 육포] [솔루션: 윈터헤이븐 요새 벽면에 자생하는 ‘푸른 서리 이끼’를 채취해 즙을 낸 뒤, 소지하고 있는 사슴 육포에 적셔 급여할 것. 이후 상처 부위에 직접 손을 대어 마기를 정화할 것.]
가까운 벽면을 보니, 정말로 푸른빛을 머금은 이끼들이 얼음 틈새로 몽환적인 빛을 발하며 피어라 있었습니다. 나는 주저 없이 다가가 손끝으로 이끼를 한 움큼 긁어모았사옵니다. 차가운 이끼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짓눌러 즙을 짜내었지요.
그리고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말린 사슴 육포를 꺼내어 푸른 즙을 골고루 발랐습니다. 달콤하고 도톰한 향이 지하 감옥의 썩은 내를 향긋하게 걷어내기 시작했사옵니다.
“미친 짓이야……! 저 계집이 제정신이 아니군!”
기사들이 경악 서린 목소리로 웅성거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철창의 좁은 틈 사이로 손을 뻗었습니다.
루포가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내 손목을 물어뜯을 듯 주둥이를 들이밀었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을 스칠 듯한 일촉즉발의 순간, 나는 눈을 피하지 않고 나지막이 속삭였지요.
“착하지, 루포야. 많이 아팠지? 이제 괜찮단다. 엄마가 아픈 곳을 낫게 해 줄게.”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푸른 즙이 묻은 육포를 조심스럽게 밀어 넣어 주었습니다.
순간, 늑대의 코끝이 실룩거리기 시작했사옵니다. 피와 광기로 얼룩졌던 붉은 눈동자에 기묘한 동요가 일었지요. 녀석은 징그러운 침을 흘리는 대신, 조심스럽게 주둥이를 내밀어 내 손바닥 위의 육포를 핥아 가져갔습니다.
쩝쩝거리며 육포를 씹어 삼키는 소리만이 적막한 지하실을 채웠습니다. 기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지요.
하지만 진짜 정화는 지금부터였사옵니다. 나는 철창 사이로 몸을 더 밀착시켜, 루포의 상처 입은 앞발로 손을 뻗었습니다. 쇠사슬이 파고들어 썩어 가던 살점에 내 손바닥이 닿는 순간이었습니다.
[솔루션 실행 — 정화 프로세스를 가동합니다.]
머릿속에서 맑은 차임벨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뼛속까지 얼어붙는 지독한 추위가 몰아쳤사옵니다. 한빙증의 대가였습니다. 손끝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질려 가며, 심장이 얼음 송곳에 찔린 듯한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지요.
이가 덜덜 떨리고 시야가 흐려졌으나, 나는 손을 떼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기서 물러서면 이 불쌍한 아이는 평생 괴물로 낙인찍혀 죽어갈 테니까요. 버려지는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이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사옵니다.
“흐읏……!”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내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따스한 복숭아색 마력이 루포의 앞발을 부드럽게 감쌌사옵니다. 검게 타들어 가던 마기의 상흔이 봄눈 녹듯 부드럽게 정화되어 갔지요. 썩어 가던 상처에서 맑은 새살이 돋아나고, 녀석을 옭아매고 있던 붉은 광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깨갱…….”
포악했던 은빛 늑대는 어디로 갔는지, 루포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냘픈 소리를 내며 내 손바닥에 커다란 머리를 비벼 대기 시작했사옵니다.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 대는 바람에 거대한 몸집이 좌우로 흔들릴 정도였지요. 급기야 철창 바닥에 발라당 누워 복슬복슬한 배를 드러내며 애교를 부려댔습니다.
“이, 이게 무슨……!”
“지옥의 사냥개가…… 배를 보이고 누웠다고?”
기사단의 비명이 지하실 천장을 흔들었습니다. 기사단장은 검을 떨어뜨릴 뻔한 손을 다잡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지요. 전 부대원이 칼을 뽑아 들고도 제압하지 못해 쩔쩔매던 위험 등급 외의 마수를, 단 5분 만에 온순한 애완견으로 만들어 버린 압도적인 정화 실력 앞에서는 그 어떤 의문도 무색했사옵니다.
그러나 내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습니다. 전신이 얼음으로 조각난 듯 딱딱하게 굳어 가며, 다리의 힘이 풀려 스르륵 주저앉았지요. 시야가 온통 하얗게 바래 가며 쓰러지려는 찰나였습니다.
단단하고 묵직한 온기가 내 허리를 난폭하면서도 정중하게 감싸 안았사옵니다.
“……무모한 여자군.”
귓가를 울리는 디트리히의 낮고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의 몸 안에 흐르는 극도로 정제된 마기가 내 전신으로 흘러들어 왔지요. 지독했던 한빙증의 고통이 사르르 녹아내리며, 차갑게 식었던 심장에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듯했사옵니다.
나는 그의 넓은 가슴에 이마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습니다.
“약속을…… 지켰사옵니다, 각하.”
디트리히는 나를 품에 안은 채 잠시 동안 루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늑대는 공작의 살벌한 마기 앞에서도 으르렁거리지 않고, 내 걱정을 하듯 연신 낑낑거리며 내 옷자락을 핥고 있었지요.
이 완전한 굴복과 정화. 그것은 북부의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기적이었습니다.
디트리히의 입가에 기묘하고도 짙은 미소가 걸렸습니다. 그의 푸른 눈동자 속에 서려 있던 불신은 완전히 걷히고, 대신 나라는 존재를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는 소유욕과 집착이 굳건히 들어앉았지요.
그가 나를 안아 들며 기사들을 향해 엄숙하게 선언했사옵니다.
“오늘부로 이 자를 윈터헤이븐의 정식 임시 보육사로 임명한다. 요새 내의 모든 마수 보육 구역의 전권을 이 여자에게 넘긴다.”
“각하! 하지만 제국의 눈이……!”
기사단장이 다급히 만류하려 했으나, 디트리히의 서늘한 시선 한 번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지요.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내 검이 먼저 대답할 것이다. 이 여자는 이제 에스카르트의 사람이다.”
그의 품 안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와 든든한 선언에,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던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눈 녹듯 사라졌사옵니다. 드디어 나만의 온전한 안식처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지요.
***
같은 시각, 윈터헤이븐 요새로 향하는 하얀 눈길 옆, 우거진 침엽수 덤불 속에서 차가운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사방이 고요한 눈밭 위로, 검은 예복을 입은 사내가 몸을 웅크린 채 깃펜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요. 그의 가슴팍에는 제국 중앙 교단의 은빛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사디스트 제라드 크로이츠가 보낸 은밀한 밀사였사옵니다.
사내의 손끝에서 작성되는 편지에는 불길한 문장들이 서서히 채워져 가고 있었지요.
[……에스카르트 공작가가 마수를 숨겨 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수를 정화하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보육사를 영입한 정황을 포착함.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황실 감시단을 파견하여 요새를 급습해야 함. 저들의 싹을 완전히 잘라 버릴 기회임…….]
사내는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접어 전령조의 발목에 묶어 허공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퍼덕이는 날갯짓 소리가 차가운 겨울 하늘을 가르며 멀어져 갔지요. 윈터헤이븐에 찾아온 짧은 평화의 등 뒤로, 제국의 잔인한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