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독기가 벼려진 살상 저격 마법 화살은 공기를 기괴하게 찢어발기며 날아왔다. 미간을 직격하기 직전의 찰나가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늘어졌다. 화살촉 끝에서 피어오르는 타르 같은 어둠이 이마의 얇은 살갗을 아리게 찔러왔다. 숨이 턱 막히고, 손발의 끝동부터 차갑게 굳어 들어갔다. 도망쳐야 해. 머릿속에서는 전생의 그 차가웠던 유기의 기억이, 버려진 상자 속의 어둠이 일시에 몰려와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움직여라, 제발 움직여라. 속으로 비명을 질렀으나 몸은 얼어붙은 얼음 조각상처럼 굳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시야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레티샤!”
심장을 뒤흔드는 낮고 거친 목소리와 함께, 언제나 얼음처럼 차갑던 품이 나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디트리히였다. 그의 거대한 체구가 내 앞을 가로막는 장벽처럼 우뚝 섰다.
서걱―!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고요한 지하 통로를 울렸다. 디트리히는 날아오는 저격 화살을 피하는 대신, 자신의 단단한 팔을 뻗어 궤적을 비틀어버렸다. 어둠의 마기를 두른 마수 가죽 장갑이 화살촉과 맞부딪치며 붉은 불꽃을 튀겼다.
하지만 제라드가 쏜 것은 평범한 활이 아니었다. 황실 교단의 금기된 주술과 온갖 마수의 원혼을 갈아 넣은 사악한 저격 병기였다.
화살에 깃든 끈적한 검은 독기가 디트리히의 손목을 타고 올라갔다. 치지지직, 불길한 가스 소리와 함께 그 단단하던 마수 가죽 장갑이 힘없이 녹아내리며 찢겨 나갔다. 장갑 조각 사이로 드러난 그의 하얀 살결에 시커먼 핏줄이 괴물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으윽……!”
디트리히가 턱을 짓씹으며 신음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푸른 마기가 순간적으로 겉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밤하늘처럼 깊고 고요하던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핏빛 광기로 물들어갔다. 그의 목을 타고 흐르는 마기가 검은 뱀처럼 꿈틀거리며 그의 이성을 갉아먹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보육 대상: 디트리히 에스카르트] [상태: 심각한 마기 오염 및 중독. 폭주 위험도 85%] [특이 사항: ‘고대 마수 인도자’의 혈통이 외부 독성 자극에 반응하여 자가 제어력을 상실 중.]
눈앞에 흐릿하게 명멸하는 파스텔톤의 시스템 UI 창 위로, 붉은색 경고등이 사정없이 깜빡였다. 디트리히의 상태창 구석에 굳게 새겨져 있던 ‘고대 마수 인도자’라는 문양이 기괴한 자줏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저건 단순한 저주가 아니었다. 그의 핏줄 속에 잠재되어 있던, 고대의 마수들을 부리던 지배자의 권능이 폭주하는 독기와 부딪쳐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공작님! 안 돼요, 정신 차리세요!”
나는 그의 찢어진 장갑 사이로 흘러내리는 검은 피를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내가 추위에 떨 때마다 투덜거리면서도 품을 내어주던 그였다. 위태롭고 외로운 결핍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오직 나를 지키기 위해 이 끔찍한 독을 몸으로 받아내다니.
“비켜라, 레티샤…… 내게서 떨어져.”
디트리히가 짐승 같은 그르렁거림을 뱉어내며 나를 거칠게 밀쳐내려 했다. 그의 손끝에서 방출되는 마기가 주변의 돌벽을 모래로 만들 만큼 흉포하게 날뛰고 있었다. 나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저 멀리 흙먼지 너머에서 제라드가 광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기껏 내 화살을 대신 맞아준다는 게 고작 저주를 가속하는 짓이라니! 어리석구나, 에스카르트 공작! 이제 네놈은 네 손으로 저 계집과 마수 놈들의 목을 치게 될 것이다!”
제라드는 승리를 확신한 듯, 뒤편에 대기하고 있던 제국의 은빛 기마대를 향해 손짓했다.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지하 통로의 입구를 포위해 들어왔다. 그들의 갑옷에 새겨진 교단 문양이 음산하게 빛났다.
도망쳐야 할까? 내 안의 회피 본능이 속삭였다. 지금이라도 모카와 아기 그리핀만 데리고 요새의 비밀 통로로 숨어버리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내 시선은 디트리히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내 소매를 꼭 붙잡은 채 미약하게 으르렁거리는 아기 마수들에게 머물렀다.
더는 도망치지 않아. 소중한 내 집을,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준 이 온기를 절대 빼앗기지 않겠어.
나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품 안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촉감이었다.
그것은 지난날, 아기 그리핀의 목에 채워져 있던 교단 문양의 독성 폭발 목걸이였다. 제라드의 수하들이 아기 그리핀을 광폭화시키고 죽이려 채워두었던 그 악랄한 기폭 장치. 해체한 이후 요새 지하 연구실에 보관해 두었던 것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정화 마법진의 핵으로 분석해 두었던 참이었다.
“제라드…… 네놈이 만든 장난감의 맛이 어떤지 직접 보아라.”
나는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은빛 금속 표면에 새겨진 교단의 신성 문양이 내 손길에 반응해 희미하게 빛났다.
[영혼 보육 대장 시스템 가동.] [분석 완료: 적대 세력의 정렬 마법진 흐름 파악.] [솔루션: 해체된 독성 목걸이의 잔여 독기를 적의 마법진 핵심 결절에 역주입할 시, 300%의 위력으로 마력 역류 유발 가능.] [※ 경고: 정화 솔루션 실행 시 극심한 한빙증 대가가 따릅니다.]
시스템의 경고음이 귓가를 때렸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모카가 내 결의를 알아챈 듯, 푸른 불꽃을 머금은 꼬리를 내 어깨에 촉촉하게 감싸 안았다. 아기 그리핀 역시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내 등을 받쳐주었다. 아이들의 따스한 온기가 내 마음에 비장한 용기를 불어넣었다.
“모카, 공작님의 마기를 억누를 수 있게 푸른 불꽃의 정화 장막을 쳐줘! 유리엘, 아이들을 데리고 격벽 뒤로 피해!”
“네, 네! 레티샤 님!”
유리엘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빗자루를 꼭 쥔 채, 겁먹은 아기 마수들을 이끌고 방어벽 뒤로 재 빠르게 몸을 숨겼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손에 쥔 독성 목걸이를 제라드의 발밑에 그려지고 있던 거대한 마법진의 중심을 향해 던졌다.
“어딜 감히……!”
제라드가 비웃으며 손을 뻗어 마법 장벽을 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대응보다 내 정화 마력이 한발 더 빨랐다.
슈우우우― 팟!
허공을 가른 목걸이가 제라드의 마법진 중앙에 정확히 내려앉는 순간, 내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고통이 찾아왔다. 영혼 보육 대장의 솔루션이 실행된 대가였다.
“아으윽……!”
뼛속까지 시려 오는 한빙증의 고통에 무릎이 꺾였다. 입김이 하얗게 바스러지고, 온몸의 혈관이 고드름으로 변하는 듯한 극심한 추위가 나를 덮쳤다. 시야가 흐려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사라져 갔다.
하지만 나는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했다. 내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똑똑히 보아야 했다.
콰르릉―!
제라드의 발밑에 있던 마법진이 정화의 불꽃과 충돌하며 기괴한 보랏빛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기 그리핀을 괴롭히기 위해 제라드가 직접 고안해 냈던 그 잔인한 독성 주파수가, 목걸이에 남아 있던 정화 마력과 공명하여 역방향으로 휘몰아쳤다.
“이, 이게 무슨……! 마력이 왜 역류하는 거지? 으아악!”
제라드가 비명을 질렀다. 그가 다급하게 마법 장벽을 유지하려 손을 휘둘렀지만, 이미 제어 권한을 잃은 마법진은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슈아아아악!
역류한 검은 독 안개가 장벽을 이루며 제라드와 그의 은빛 기마대를 통째로 가두어버렸다. 그것은 제라드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마수를 말살하기 위해 개발한 극독 장벽이었다.
독 안개에 닿은 제국 기마대의 말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빛의 입자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기사들의 은빛 갑옷은 부식되어 검게 변했고, 그들이 지녔던 신성 마력은 독기에 오염되어 스스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연쇄적인 마력 폭발이 지하 통로를 뒤흔들었다. 제국의 정예 기마 대형은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자신들이 가져온 독성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소멸하고 궤멸해 갔다.
“말도 안 돼…… 내가, 이 몸이 고작 이런 변방의 보육사 계집에게……!”
제라드는 자신이 고안한 극독 병기에 온몸이 옭아매인 채 버둥거렸다. 그의 고결하던 주교복은 걸레짝처럼 찢어졌고, 손끝에서 뿜어 나오던 마력은 완전히 상실되어 허공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피부 동화처럼 끈적하게 달라붙은 독기가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자업자득이었다. 새끼 마수들의 발톱을 자르며 희열을 느끼던 위선적인 사디스트의 말로는, 자신이 만든 독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비참하게 몰락하는 것이었다.
치이이익―
폭발의 여파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사방을 가득 채웠던 검은 독기가 온돌 마력로의 따스한 기운에 닿아 정화되기 시작했다.
지하 통로를 가득 채운 것은 매캐한 화약 냄새가 아니었다. 봄날의 화사한 햇살을 머금은 듯한 연분홍빛 안개와 함께, 코끝을 간지럽히는 달콤한 라벤더 향기가 몽환적으로 퍼져나갔다. 파스텔톤의 분홍빛 마력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얼어붙었던 보육원의 벽면을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해…… 해냈어요.”
나는 차가운 바닥에 쓰러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제라드의 군세를 완전히 궤멸시켰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
“캬릉! 갸아아오!”
모카와 아기 그리핀이 쪼르르 달려와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이들의 따뜻한 체온이 지독한 한빙증에 걸린 내 몸으로 스며들며, 얼어붙었던 심장을 미약하게나마 다시 뛰게 해주었다.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스산한 바람이 지하 통로를 쓸고 지나갔다. 정화의 흔적 뒤로, 아직 쓰러지지 않은 단 한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디트리히였다.
그는 제라드의 독성 화살을 막아낸 팔을 늘어뜨린 채, 제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전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제라드의 독기와 내 정화 마력이 충돌하며 발생한 거대한 마력의 여파가, 디트리히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검은 폭주 마기를 완전히 깨워버린 듯했다.
“공작…… 님?”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스스스스―
디트리히의 주변으로 검은 정전기 같은 마기가 마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위로 명멸하는 시스템 창이 붉은색을 넘어 칠흑 같은 검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경고: 디트리히 에스카르트의 ‘고대 마수 인도자’ 혈통 폭주.] [마기 정제율 0%. 한계 전하 방출 단계 진입.] [위험: 즉시 정화하지 않을 경우, 영지 전체가 파멸적인 마기 폭발에 휩싸입니다.]
그의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눈빛에는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파괴만을 갈망하는 태초의 저주만이 가득 차 있었다. 디트리히의 몸에서 방출되는 폭압적인 마기가 요새의 벽면을 쩍쩍 갈라지게 만들며, 우리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덮쳐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