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하 3층 전용 주차장의 어둠은 차갑고 눅눅했다. 밀폐된 차량 내부의 가죽 시트 위로 강태준의 뜨거운 숨결이 한서윤의 뺨을 태울 듯이 밀려들었다. 차 문손잡이가 바깥에서 덜컥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순간, 태준은 밀려오는 약 기운과 본능을 억누르려 제 손발을 옭아매듯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 살점을 가차 없이 파고들었다. 살이 찢기는 감각과 함께 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울컥 배어 나와 검은 가죽 위에 점점이 떨어졌다. 날카로운 고통으로 간신히 이성을 붙잡으려는 그의 전신이 사정없이 떨렸다.

"내려, 서윤아."

태준의 목소리는 쇠 긁는 소리처럼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피로 물든 손으로 서윤의 어깨를 밀쳐내려 했다. 밀어내는 손길에는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지탱하는 마지막 버팀목이 무너지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발악에 가까웠다.

"어서 내려서 저놈들에게 가. 여긴 내가…… 내가 알아서 수습할 테니까."

태준의 젖은 앞머리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려 턱끝에 맺혔다. 그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짐승 같은 독점욕과 서윤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이성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서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가슴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요."

서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으나 어조는 단호했다. 손목에 채워진 센티넬-K 디바이스의 액정 화면이 붉은빛을 뿜어내며 요란하게 깜빡였다.

[위험: 흥분 지수 96%. 최종 페널티 전송까지 남은 시간 5초.]

이 경고음이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감사팀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었다. 가문의 정략결혼 카드로 평생을 짓눌려 살아야 했던 과거로의 회귀, 그리고 태준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설계한 모든 비즈니스 계약의 파멸.

서윤은 눈물이 고인 눈으로 태준의 목소리를 차단하듯 그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차가운 그녀의 살결이 태준의 뜨거운 목에 닿자, 태준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굳어졌다. 서윤은 입술을 깨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이 나를 구하겠다고 이딴 가혹한 계약까지 감수했다면, 나도 도망치지 않아.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요."

태준의 어깨를 꽉 안고 몸을 완전히 밀착시켰다. 두 사람의 심장 고동 소리가 좁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센티넬-K 디바이스는 이 위험한 밀착을 즉각 감지하고 경고 단계를 한층 더 높였다.

그 시각, 주차장 기둥 뒤편에 주차된 검은색 세단 내부.

한민우는 뒷좌석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태블릿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주차장 대피로를 비추는 비공개 CCTV 화면이 실시간으로 재생되는 중이었다. 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말려 올라갔다.

"결국 저 방 안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다 드러나겠군."

민우는 무선 송수신기의 전원을 켰다. 그의 지시를 받은 심복이 이미 서윤의 개인 비서실 차량 하부에 정교한 마이크와 GPS가 결합된 위치추적 감청 장치를 장착한 상태였다. 태강그룹 내부의 보안망을 우회하여 서윤의 동선을 낱낱이 파악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가감 없이 녹음하기 위한 덫이었다.

"사내 감사팀을 주차장으로 보낸 건 신의 한 수였어. 저들이 당황해서 계약서상의 약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이사회는 바로 소집된다. 한서윤, 네가 가진 선일정밀의 지분은 전부 내 손에 들어오는 거야."

민우는 비서실 차량의 번호판을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감청 장치에서 수신되는 주파수가 안정적으로 잡히고 있었다. 이제 감사팀이 저 굳게 닫힌 차 문을 열어젖히거나, 내부에서 새어 나오는 연극의 실태를 잡아내기만 하면 끝나는 게임이었다.

차 문 바깥에서 덜컥거리는 금속성 마찰음이 다시 한번 울렸다.

"한 실장님, 대표님. 감사팀의 정기 보안 점검 수칙에 따라 차량 내부 확인이 필요합니다. 문을 열어 주십시오."

이복오빠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감사팀 직원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

서윤은 차 안에서 태준의 가슴에 뺨을 묻은 채, 주머니 속의 개인 스마트폰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화면을 켜자마자 대기 화면에 떠 있는 단축 다이얼을 눌렀다. 수신인은 태준의 최측근이자 유일하게 이 비즈니스 계약의 전말을 알고 있는 김지훈 비서실장이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서윤은 소리를 내지 않고 화면을 세 번 톡, 톡, 톡 두드렸다. 사전 약속된 위험 신호였다.

지하 3층 주차장 제어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지훈은 스마트폰의 진동을 느끼고 즉각 움직였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감사팀 직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주차장 천장에 설치된 통신 중계기와 간이 송출 장치 배선판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지훈은 미리 준비해 둔 주차장 관리 마스터키를 꺼내 배전함의 문을 열었다. 그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대표님과 한 실장님을 건드리게 둘 순 없지."

지훈은 주차장 전용 주파수 분배기에서 감사팀이 사용하는 무선 송출 기기의 선로를 찾아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메인 커넥터를 뽑아 버렸다. 전선 끝에서 파란 불꽃이 튀며 통신 신호가 순식간에 차단되었다.

동시에 지훈은 주차장 조명 제어 스위치를 내렸다.

순간, 지하 3층을 밝히고 있던 형광등들이 차례로 꺼지며 주차장은 완벽한 암흑 속으로 침잠했다.

"어? 뭐야? 정전인가?"

차 문을 흔들던 감사팀 직원들이 당황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의 무전기에서는 지익, 하는 불쾌한 노이즈만 흘러나왔다. 한민우의 태블릿 화면 역시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신호 없음'이라는 문구만을 띄운 채 검게 죽어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끊겨!"

민우가 차량 대시보드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송출 케이블은 완벽하게 먹통이 된 뒤였다.

어둠이 내리앉은 차 안에서 서윤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사전 통신 차단으로 한민우의 도청 장치까지 일시적으로 무력화되었음을 확신한 그녀는, 차체 밖의 감사팀원들을 향해 카 오디오의 외부 마이크 시스템을 켰다.

"보안 점검이라니요. 사내 감사팀이 사적인 영역인 대표이사의 전용 차량까지 영장 없이 수색할 권한이 있습니까?"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서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한민우 상무의 개인적인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내일 아침 이사회에서 정식으로 직권남용 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감사팀의 월권행위에 대해 서면 보고서를 준비해 두시죠."

바깥에 있던 감사팀 직원들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대표이사의 차량을 강제로 열려 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문제시된다면 그들의 목줄이 먼저 날아갈 터였다.

"죄, 죄송합니다. 단순 오작동으로 인한 확인 절차였습니다. 철수하겠습니다."

황급히 멀어지는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다처럼 시원한 반격이었지만, 안심할 틈은 없었다.

차 안의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의 시선이 차단되자 밀폐된 공간 속 두 사람의 감각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예민해졌다.

태준의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피가 서윤의 셔츠 깃을 붉게 물들였다. 서윤은 제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준의 젖은 뺨을 감싸 쥐었다.

"태준 씨, 정신 차려요. 이제 괜찮아요. 아무도 못 봐요."

"서윤아……."

태준이 신음하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손이 서윤의 가느다란 허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강한 악력은 그가 처절하게 버티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들의 살결이 닿을 때마다 손목의 센티넬-K 디바이스는 요란한 진동을 울려댔다.

[경고: 심박수 135 bpm 돌파. 상호 동의 없는 물리적 접촉 누적 시간 초과.] [독소 제한 앱 가동: 계약 파기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남은 해제 기한 60초.]

스마트 워치의 화면이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계약 조건인 '감정 제한 페널티'가 발동되기 직전이었다. 이 상태로 시간이 초과되면 그들이 맺은 모든 비즈니스적 권리와 지분은 공중으로 분해되고, 서윤은 다시 가문의 노예로 돌아가야 했다.

"손 치워요, 대표님. 제발 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윤은 태준을 놓지 못했다. 그의 아픔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피를 흘리는 그의 미련한 순정이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3년 전 이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흉터로 남아 있는 가슴속에서, 잊었다고 믿었던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쳤다.

태준은 서윤을 밀어내기 위해 다시 한번 힘을 주려 했지만, 서윤의 단호한 손길이 그의 가슴을 억눌렀다.

"여기서 페널티가 터지면 다 끝장이에요. 내가 어떻게 얻은 실장 자리인데, 당신 때문에 망칠 순 없어."

서윤은 붉게 깜빡이는 디바이스의 액정을 쏘아보았다. 위험 한계를 가리키는 그래프가 이미 99%에 달해 있었다. 마지막 1%가 채워지는 순간, 본사 서버로 계약 파기 데이터가 전송된다.

서윤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 무자비한 기계적 통제를 피해 태준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녀는 떨리는 손을 뻗어 차량 대시보드 아래 숨겨진 본사 시스템 원격 제어 패널을 터치했다. 미래전략기획실장 자리에 오르며 부여받은 최고 권한의 마스터키 코드를 입력하는 서윤의 손가락끝이 잘게 떨렸다.

"비밀 스위트룸 잠금 장치 제어 해제."

화면에 초록색 로딩 바가 뜨며 본사 최상층에 위치한 은밀한 내실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외부의 감시망을 완벽히 차단하고 센티넬-K의 신호 수신을 일시적으로 지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피소였다.

삑, 하는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디바이스의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최종 경고: 5, 4, 3…….]

서윤은 태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그의 피 묻은 손을 꽉 맞잡았다. 파멸의 벼랑 끝에서, 그녀는 기어코 안전장치의 빗장을 열어젖히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태블릿 화면의 붉은 게이지가 찰나의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파란색 '강제 우회' 신호로 전환되었다.

철컥, 하는 중후한 소리와 함께 주차장 구석에 숨겨져 있던 전용 엘리베이터의 보안 표시등이 녹색으로 켜졌다. 서윤은 지체하지 않고 태준의 팔을 자신의 어깨 위로 걸쳤다. 그의 단단한 체구가 고스란히 그녀의 몸 위로 쏟아졌다.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약 기운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그의 체온이 얇은 블라우스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서윤아, 놔……."

태준이 낮게 그르렁거렸지만, 서윤은 오히려 그의 허리를 더 단단히 감싸 안았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그의 단단한 허리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어두운 주차장을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던졌다.

닫힘 버튼을 연타하는 서윤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강철로 된 문이 부드럽게 맞물려 닫히는 순간, 외부의 소음과 차가운 공기가 완벽히 차단되었다.

밀폐된 엘리베이터 내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거칠게 부딪쳤다. 서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흐트러진 머리칼, 붉게 상기된 뺨, 그리고 태준의 피로 얼룩진 하얀 셔츠 깃.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엘리베이터 벽면에 설치된 최고 권한 단말기에 손을 올렸다. 미래전략기획실장으로 정식 발령받으며 인계받은 마스터 키 카드를 인식시키자, 화면에 태강그룹 핵심 보안 시스템의 내부 설정창이 떠올랐다. Sentinel-K의 일시적 오류를 가장해 서버 전송을 지연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시스템 관리자 모드로 진입한 순간, 서윤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화면 하단, 붉은색 잠금 표시와 함께 활성화되어 있는 보안 계약서의 원본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경로로는 절대 열어볼 수 없는, 대표이사의 개인 서명이 날인된 특약 문서였다.

[계약 번호: TG-202X-09] [특약 제9조: 제3자 감사 침입 및 보안 유출 시 귀책 조항 수정 건]

서윤은 홀린 듯 화면을 터치해 스크롤을 내렸다. 가독성 높은 폰트 위로 쓰인 냉혹한 법적 문구들이 그녀의 시야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본 계약의 진위 여부가 유출되거나, 제3자의 감사로 인해 계약 파기 조건이 성립될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법적 소송 비용 및 주주 대표 소송의 책임은 갑(강태준)이 전적으로 부담한다. 아울러, 을(한서윤)이 보유한 선일정밀 및 태강그룹 관련 모든 지분과 커리어적 권리는 어떠한 제한 없이 온전히 보전되며, 발생한 모든 손실 보전액은 갑의 개인 지분을 처분하여 충당한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전신을 관통했다.

서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제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태준을 바라보았다.

그가 비즈니스 계약이라며 밀어붙였던 그 차가운 규칙의 정체는, 결국 그녀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완벽한 안전장치였다. 자신은 단 한 톨의 리스크도 지지 않은 채, 오직 강태준이라는 거대한 방패 뒤에 숨어 안전하게 가문으로부터 독립할 기회만을 제공받았던 것이다.

그 대가로 태준은 자신의 모든 것, 대표이사직과 평생을 일궈온 지분 전체를 단 한 번의 실수로 날려버릴 수 있는 단두대 위에 스스로 목을 올렸다.

"왜…… 왜 이런 짓을 했어요?"

서윤의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 턱 막혔다. 그녀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 한 방울이 태준의 젖은 뺨 위로 툭 떨어졌다.

태준은 감기려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서윤을 응시했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그의 눈동자는 오직 그녀만을 담고 있었다. 그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서윤의 뺨을 살포시 감싸 쥐었다. 거친 손바닥의 살결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에 닿자, 손목의 디바이스가 다시 한번 격렬하게 요동쳤다.

"말했잖아. 널 잃는 것보다……."

태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내가 파멸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

그 순간, 띵 하는 맑은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최고층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문이 열리며 어두운 미래전략기획실의 전경이 드러났다. 비밀 스위트룸으로 통하는 거울 벽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서윤이 태준을 부축해 내딛으려던 찰나, 그녀의 손목에서 찌릿한 진동과 함께 날카로운 기계음이 고요한 공간을 찢었다.

[경보: 흥분 지수 100% 도달.] [시스템 메시지: 감정 제한 페널티 가동. 계약 파기 데이터가 본 서버 및 지정된 수신처로 송출되었습니다.]

"안 돼……."

서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동시에 그녀의 품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뜬 것은 발신인 제한 표시의 텍스트 메시지였다. 발신인은 한민우였다.

[한민우: 아주 아름다운 스캔들이네, 한 실장. 감사팀 서버에 실시간으로 전송된 심박 수 그래프와 차량 감청 파일 잘 받았어. 내일 아침 임시 이사회에서 보자고. 네가 그토록 아끼는 강 대표의 목줄을 쥔 채로.]

서윤의 손에서 스마트폰이 힘없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때였다. 굳게 닫혀 있어야 할 거울 벽 너머의 비밀 스위트룸 문이, 안쪽에서부터 소리도 없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구두 굽 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서윤은 태준을 감싸 안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서서히 벌어지는 문틈 사이로, 붉은색 립스틱을 짙게 바른 한 여자의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네, 둘이서 같이."

차예린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계약 파기 통보서를 쥔 채,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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