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건……!"
관중석 귀빈석에 앉아 있던 카산드라 교수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평소 부스스하게 흘러내리던 머리칼이 그녀의 격렬한 움직임에 사방으로 흩날렸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카이저 가문의 비기, 고대 마도 증폭기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잖아! 시전자의 마력을 수십 배로 증폭시켜 규격 외의 파괴력을 내는 전설적인 아티팩트가 왜 저기에 있어!"
그 비명 같은 외침이 연무장 전체로 번져 나가자, 관중석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제국 재무부를 쥐고 흔드는 카이저 후작가가 가문의 권세를 증명하기 위해 수십 년 전 고대 유적에서 발굴해 낸 오버 테크놀로지의 산물이었다. 주먹만 한 최상급 성광석 수십 개가 박혀 있는 그 청동빛 실린더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의 마나를 강제로 빨아들이며 기괴한 울림을 토해내고 있었다.
"하하하! 루안 폰 아르비스! 네놈이 아무리 기묘한 마법 영식을 쓴다 한들, 이 압도적인 마력의 총량 앞에서도 버틸 수 있겠느냐!"
율리우스가 광기에 젖은 목소리로 포효했다. 그의 양손이 청동 실린더의 제어 손잡이를 움켜잡자, 장치에 박힌 성광석들이 일제히 붉은 안광을 뿜어냈다.
파지직! 파직!
연무장 대리석 바닥이 그 무지막지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거미줄 같은 균열을 그리며 갈라졌다. 율리우스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붉은 불꽃이 이내 무대를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화염의 결계로 화해 솟구쳤다.
화염은 단순한 불길이 아니었다. 초고온으로 압축된 마나가 스스로 회전하며 만들어 낸, 닿는 모든 것을 분자 단위로 태워 버릴 듯한 형태의 폭풍이었다.
"루안 님! 피하셔야 합니다! 저건 일반적인 마법의 범주를 벗어난 괴물입니다!"
결계 너머 대기석에서 아델린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녀의 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절박함이 뚝뚝 묻어났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고 무대 위로 난입하려는 그녀를 주변 기사들이 겨우 만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무대 중앙에 선 나는, 다른 의미로 머리가 아파 오고 있었다.
'저 미친놈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내 귓가에는 이미 환청처럼 슬픈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바로 내 수명이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는 잔인한 초읽기 소리였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아덴의 서'가 차가운 기계음으로 경고창을 띄웠다.
[경고: 규격 외 고대 증폭 장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마력 파장 감지.] [대상이 방출하는 마나의 간섭으로 인해 주변 공간의 마법 법칙이 왜곡됩니다.] [연산 장치 가동 부하 급증. 잔여 수명 실시간 감소율: 초당 0.02일.]
초당 0.02일이라니. 단 50초만 멍하니 서 있어도 내 소중한 수명이 하루치나 날아간다는 소리였다. 안 그래도 시한부 판정을 받고 겨우 성광석을 뜯어내며 연명하는 처지인데, 저 돈만 많은 멍청이의 불장난 때문에 내 수명을 길바닥에 버려야 한다니 용납할 수 없었다.
"아, 아까운 내 수명……."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 혼잣말은, 화염 폭풍의 굉음에 묻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율리우스가 전개한 붉은 화염의 장벽은 거대한 성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열기가 얼굴을 훅훅 달구며 피부를 따갑게 찔렀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이 압도적인 마력의 파도 앞에서 도망치거나, 자신을 보호할 방어 결계를 치느라 급급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방어 마법 따위를 전개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방어막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마나와 그로 인한 아덴의 서의 연산 부하를 계산해 보면, 그야말로 '가성비 최악'의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가장 빠르고, 가장 저렴하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적의 공격을 통째로 붕괴시키는 것.
나는 냉담한 걸음걸이로 화염의 결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쳤어! 루안 폰 아르비스가 제정신이 아니야! 무방비로 저 화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고!"
관중석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내 시야는 이미 평범한 물리적 세계를 벗어나 있었다. 아덴의 서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내는 순수한 마법 법칙의 세계. 내 눈앞에 펼쳐진 붉은 화염의 장벽은 웅장한 성벽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수많은 기하학적 수식과 마나의 흐름이 얽히고설킨, 틈새투성이의 조잡한 그물망에 불과했다.
[대상 마법 영식 분석 완료.] [화염 결계의 구조적 취약점(붕괴 주파수) 대조 성공.] [좌표: X-342, Y-119, Z-88. 해당 지점의 마나 밀도 최저점 확인.]
"돈을 처바른 것치고는 참으로 조잡하군."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율리우스는 가문의 비기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가며 엄청난 양의 성광석을 쏟아부었지만, 그가 다루는 마력은 그저 무식하게 힘만 세고 정밀함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과부하 상태였다. 마치 얇은 유리 그릇에 무거운 철퇴를 가득 담아둔 꼴이었다.
작은 충격 하나면, 그 무거운 철퇴들이 스스로 그릇을 깨부수고 사방으로 무너져 내릴 터였다.
나는 굳이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지도 않았다. 그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오른손 검지손가락만을 가볍게 앞으로 내밀었을 뿐이다.
손끝에 모인 마력의 양은 극히 미미했다. 제국 표준 화폐 단위로 치면 단 10크레딧짜리 하급 성광석 가루 한 줌 분량에 불과한, 아주 보잘것없는 마나였다.
그 아주 미미한 마나로 연성한 것은 고작 해야 1클래스 기초 마법인 '아이스 불릿(얼음 탄환)'이었다. 손톱만 한 크기의 투명한 얼음 조각이 내 손끝에서 가볍게 회전했다.
"저 자가 지금 장난을 치는 건가? 저런 장난감 같은 마법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화염을 막겠다고?"
율리우스를 지지하는 귀족 학생들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비웃음은 채 1초도 가지 못했다.
딱-.
내 손가락 끝에서 튕겨 나간 얼음 조각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포효하는 화염 폭풍을 향해 날아가는 얼음 탄환은 금방이라도 증발해 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얼음 조각은 화염의 거센 기류에 휩쓸리지 않고,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정확하게 붉은 결계의 한 지점을 관통했다. 아덴의 서가 찾아낸 완벽한 붕괴 주파수의 핵, 마나의 흐름이 꼬여 있는 그 유일한 조율점이었다.
스스슥-.
얼음 조각이 그 지점에 닿는 순간, 기이한 침묵이 연무장을 지배했다.
붉게 타오르던 화염의 성벽이 순간적으로 성에가 끼듯 하얗게 얼어붙는가 싶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율리우스가 자랑하던 완벽한 마력의 순환 구조가 단 하나의 작은 이물질로 인해 완전히 꼬여 버린 것이다.
"어……? 어, 어째서?!"
율리우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콰아앙-!
이내 연무장이 떠나갈 듯한 폭음과 함께 화염 결계가 안쪽에서부터 역류하며 폭발했다. 율리우스가 쏟아부었던 무지막지한 마력이 갈 곳을 잃고 자신들의 주인과 장치를 향해 휘몰아쳤다.
쿠구구궁!
"으아아아악!"
율리우스의 비명과 함께,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거대한 청동 실린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장치에 박혀 있던 수십 개의 최상급 성광석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쩌적, 소리를 내며 일제히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튀었다.
그 찬란하던 고대 아티팩트가 단 한 번의 마력 최적화 공작으로 인해 순식간에 재생 불가능한 고철 고물이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폭풍이 걷히며 사방에 희뿌연 먼지와 그을음이 가득 내려앉았다.
그 먼지 구덩이의 한가운데서, 나는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서 있었다. 반면 맞은편의 율리우스는 그을음으로 엉망이 된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망하게 자신의 부서진 장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게…… 말도 안 돼……. 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가문의 보물이……."
율리우스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수만 골드의 가치를 지닌 고대 병기가 고작 1클래스 마법 하나에 고철더미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의 이성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통쾌한 광경을 지켜보던 관중석은 기괴할 정도의 침묵에 잠겼다.
단 일격. 그것도 가장 기초적인 마법 단 한 번으로 제국 최고의 무기를 무력화시켰다. 이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마법의 효율과 연산의 극치에 도달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야말로 격이 다른 무력의 지배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몸속에서 예기치 못한 반동이 휘몰아쳤다.
'윽……!'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밀어 올랐다. 아덴의 서가 찰나의 순간에 고대 아티팩트의 주파수를 대조하기 위해 뇌세포의 연산력을 한계까지 끌어다 쓴 부작용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오고, 목구멍 뒤편에서 비릿하고 뜨거운 액체가 울컥 솟구쳤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대로 붉은 피를 바닥에 쏟아내며 쓰러진다면, 사방에 널린 저 귀찮은 인간들이 나를 약골로 보고 귀찮게 굴 터였다. 은퇴 자금을 모으기도 전에 아카데미의 온갖 세력에게 약점을 잡혀 이리저리 휘둘리는 삶 따위는 사양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잡으며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둔 순백의 실크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우아하게 입가를 가렸다.
울컥-.
손수건이 순식간에 거품 섞인 붉고 진한 선혈로 물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몇 방울의 핏방울이 흘러내려 대리석 바닥을 붉게 적셨다.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억지로 신음 소리를 삼켰다.
그리고 손수건을 천천히 내리며, 율리우스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피를 토하는 와중에도 내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차가운 별빛처럼 고요하고 오만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고통을 숨기기 위해 부릅뜬 눈이, 타인에게는 오만방자한 절대자의 서늘한 시선으로 보였으리라.
"……겨우 이 정도인가."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낮고 무심한 톤으로 읊조렸다.
그 한마디가 연무장에 가라앉자, 관중석의 침묵은 이내 깊은 경외와 공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루안 님……!"
아델린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흘린 피가 단순한 상처의 흔적이 아니었다.
'아아, 루안 님은 또다시…….'
아델린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제국의 부조리한 기득권을 대변하는 카이저 가문의 횡포를 막기 위해, 그리고 아카데미의 썩어빠진 예산 독점을 깨부수기 위해, 루안은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생명을 또다시 깎아 먹은 것이다.
자신의 몸이 부서져라 마법의 반동을 온전히 육체로 억누르고 있으면서도, 저토록 태연하고 고결한 미소를 짓고 있다니.
"저건…… 기적이다."
카산드라 교수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공책에는 이미 율리우스의 마법 결계가 붕괴한 수식들이 광기 어리게 받아 적혀 있었다.
"마력의 과부하 주파수를 실시간으로 읽어내고, 최소한의 마나로 역위상을 걸어 폭파했다. 이건 단순히 힘이 강한 마법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세상의 마나 법칙을 지배하는 신화 시대의 현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런 고결한 영식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대가로 저토록 초연하게 자신의 피를 바치다니……!"
주변의 귀족 학생들과 재무부 관료들 역시 사색이 되어 루안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수명을 태워 가며 제국의 모순을 정화하려는 성자……." "저 눈빛을 봐라. 죽음을 초월한 자의 눈빛이다. 카이저 가문의 천문학적인 자금력조차 그의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어."
웅성거리는 구경꾼들의 착각은 이미 내가 손쓸 수 없는 영역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속으로 '아, 손수건 세탁비 아깝네. 이거 실크인데.' 하고 웅얼거리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때였다.
코트 안쪽 깊은 주머니에서 기이한 고열이 발생했다.
"……어?"
깜짝 놀라 주머니에 손을 넣자, 손끝에 닿은 것은 지난번 아카데미 구석의 고물상에서 단돈 몇 푼의 푼돈으로 구매했던 낡은 청동 열쇠였다.
그저 은퇴 후 영지 창고 열쇠로 쓰려고 샀던 그 싸구려 골동품이, 지금 내 체내에서 흘러나온 고대 마나의 공명 주파수와 맞물려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알림: 고대 아덴 문명의 유산 '비밀 광맥 차단 장치(마스터키)' 활성화.] [사용자의 고대 연산 주파수 동조율 100% 도달.] [숨겨진 성광석 광맥의 봉인 제어권을 감지합니다.]
머릿속에 울리는 아덴의 서의 기계음에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게…… 단순한 고물이 아니었다고?'
이것은 제국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전설 속 아덴 문명의 성광석 광맥을 통제하고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던 것이다. 내가 그저 가성비 좋은 고물인 줄 알고 샀던 물건이, 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신화적 유물이었다니.
하지만 내 경악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이변이 일어났다.
뚝-.
내 입가에서 미처 닦아내지 못한 마지막 선혈 한 방울이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핏방울이 바닥에 닿는 순간.
지이이잉-!
연무장 전체의 바닥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 속에서, 푸른빛의 고대 룬 문자들이 일제히 살아 움직이듯 빛나기 시작했다.
"……뭐지?"
바닥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연무장 깊은 지하,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했던 아카데미의 심장부에서 거대한 마도 장치가 깨어나는 우렁찬 구동음이 고막을 때렸다.
쿠구구구구구-!
[경고: 연무장 지하에 봉인되어 있던 고대 시뮬레이션 제어 유도 장치가 사용자의 성혈(聖血) 및 아덴의 서와 강제 동조 반응을 시작합니다.] [시스템 주도권이 강제 이전됩니다. 유적의 기동 시퀀스가 시작됩니다.]
빛무리가 연무장 전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율리우스도, 아델린도, 관중석의 모든 이들도 빛의 폭풍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그 혼돈의 중심에서, 나는 주머니 속 뜨거워진 청동 열쇠를 움켜쥔 채 직감했다.
아무래도 내 평화롭고 안락한 은퇴 계획이, 아주 크게 꼬여 버린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