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차가운 마나의 폭풍이 연무장의 대리석 바닥을 짓이기며 솟구쳤다.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붉은 선혈은 단순한 핏방울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 아덴의 초고도 마법 영식을 강제로 구동하기 위해 아덴의 서가 내놓은 가혹한 등가교환의 결과물, 즉 내 생명력의 파편이었다. 그 조각이 연무장 지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마도 장치의 핵심 회로에 닿는 순간, 연무장 전체가 마치 거대한 심장처럼 크게 요동쳤다.
쿠구구구구구!
지하에서 울려 퍼지는 우릉거림은 고막을 넘어 척추를 타고 뇌리까지 흔들었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빛무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연무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결계석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금 가기 시작했다.
"루안 님!"
빛의 장막 너머로 아델린이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검자루를 꽉 쥔 채 이 폭풍 속으로 뛰어들려 하고 있었지만, 폭주하는 마나의 압력은 소드 마스터의 자질을 지닌 그녀조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두고 있었다.
정작 그 폭풍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는, 겉보기에는 태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 속마음은 전혀 숭고하지 않았다.
'아니, 내 손수건. 진짜 실크인데 이거 얼룩 안 빠진단 말이야. 그리고 바닥은 왜 갑자기 난리야? 아카데미 시설물 파손 죄로 나한테 변상하라고 하는 거 아니겠지? 은퇴 자금에서 깎이면 곤란한데.'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수리비와 세탁비를 계산하고 있을 때, 주머니 속에서 타오를 듯 뜨거워진 청동 열쇠가 제멋대로 튀어나와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단돈 몇 푼의 푼돈으로 고물상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 낡은 열쇠가, 지금은 순수한 황금빛 광채를 뿜어내며 공중에 기하학적인 마법진을 그려내고 있었다.
스으으으응-!
[알림: 고대 아덴 문명의 유산 '비밀 광맥 차단 장치'가 마스터키로서의 권한을 선언합니다.] [지하 3,000미터에 봉인된 심부 유적의 보안 프로토콜을 우회합니다.] [잊힌 아덴 문명의 심부 유적 위치 좌표를 수신합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아덴의 서의 무감각한 기계음과 동시에, 내 시야에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푸른색의 입체 마도 지도와 깜빡이는 붉은색 좌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북위 43도, 동경 12도, 지하 심부 제4터널.’*
그것은 제국의 그 어떤 역사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고대 아덴 문명이 숨겨놓은 전설적인 성광석 광맥의 정확한 정점이었다.
황금빛 열쇠가 공중에서 한 바퀴 부드럽게 회전하더니, 딸깍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허공을 자물쇠처럼 열어젖혔다. 그 순간, 연무장을 가득 채웠던 마나의 폭풍이 거짓말처럼 청동 열쇠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사방이 고요해졌다.
"……이런 미친."
저 멀리 흙먼지 속에서 겨우 몸을 일으킨 율리우스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의 잘 가꿔진 금발은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고, 나를 향한 오만한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오직 깊은 경외와 공포만이 서려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중석의 꼭대기에서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하던 카산드라 교수가, 학자의 품위 따위는 개나 줘버린 듯한 속도로 관중석 난간을 뛰어넘어 연무장 바닥으로 착지했다.
"이, 이건……!"
카산드라 교수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녀는 내가 손에 쥔 청동 열쇠와, 바닥에 새겨진 룬 문자의 잔영을 번갈아 바라보며 부르르 떨었다.
"아덴 문명의 제어 유도 장치야! 제국 건국 이전, 신화 시대에 유실되었다던 바로 그 유적의 제어권이라고! 그걸…… 단 한 방울의 성혈과 고대 영식의 공명만으로 일깨우다니!"
카산드라 교수가 내 앞으로 헐떡이며 다가왔다. 그녀의 손끝이 허공에 남은 마나의 궤적을 더듬었다.
"루안 군! 방금 그 연산 속도는 도대체 무엇인가? 마나의 흐름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유적의 보안 시스템을 역으로 해킹해 들어갔어! 자네의 체내에 흐르는 피는 대체 어떤 고결한 계보를 잇고 있기에 이런 기적을 부르는 것인가!"
그녀의 목소리가 연무장 전체에 쟁쟁하게 울려 퍼졌다. 주변의 모든 학생이 숨을 죽였다.
나는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냥 주머니에 있던 고물이 제멋대로 반응한 건데. 그리고 내 피는 그냥 시한부 환자의 각혈일 뿐이야. 계보는 무슨 계보야, 아르비스 영지는 제국 변방의 똥땅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사실 고물상에서 산 열쇠가 알아서 다 한 겁니다"라고 말해봤자, 이 과대망상증에 걸린 아카데미 인간들이 믿어줄 리가 없었다. 해명하기 시작하면 대화가 길어지고, 대화가 길어지면 내 귀중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의사소통의 가성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는 그저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차가운 눈빛을 빛내며 청동 열쇠를 거두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툭 닦아내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가치가 있는 물건은, 주인을 알아보는 법입니다."
그 한마디에 카산드라 교수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오오……! 가치 있는 물건은 주인을 알아본다! 그렇군, 자네는 이미 이 열쇠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게로군! 제국의 눈을 피해 이 아카데미 지하의 유적을 깨우기 위해, 그 모진 압박과 율리우스의 도발을 모두 견뎌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거야!"
"루안 님……."
어느새 다가온 아델린의 눈가에 촉촉한 물기가 어렸다. 그녀는 내 입가의 핏자국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의 육체가 무너져 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오직 제국의 뒤틀린 마도 체계를 바로잡을 열쇠를 찾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신 거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검을 휘두를 생각만 했습니다."
'아니야, 아델린. 제발 그렇게 슬픈 눈으로 보지 마. 난 그냥 집에 가고 싶을 뿐이야. 따뜻한 보일러가 나오는 내 영지 방구석에서 귤이나 까먹고 싶다고.'
하지만 내 침묵은 언제나 그렇듯, 고결한 선구자의 묵묵한 다짐으로 포장될 뿐이었다.
그때, 연무장 입구 쪽에서 화려한 예복을 입은 아카데미 행정관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들의 손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제국 은행의 인장이 찍힌 보상 상자가 들려 있었다.
"루안 폰 아르비스 학생! 아카데미 총장실의 긴급 지시입니다!"
행정관이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상자를 정중히 바쳤다.
"아카데미 개교 이래 누구도 풀지 못했던 지하 심부 유적의 좌표와 제어권을 확보한 공로를 치하하여, 총장님께서 직접 수여하시는 특급 성광석 50개를 전달합니다! 또한, 이번 발견은 제국의 마도 학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바, 즉시 학술 공로금 지급 절차를 밟을 예정입니다!"
상자의 뚜껑이 열리는 순간, 연무장 안이 황홀한 푸른빛으로 가득 찼다.
특급 성광석. 일반 성광석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순도와 밀도를 지닌, 황실 직속 광산에서만 극소량 생산되는 최고급 마나 결정체였다.
[알림: 고순도 성광석 50개 감지.] [흡수 시 생명력 충전율: 1200%.] [잔여 수명이 1년 2개월로 연장됩니다.]
머릿속에서 들리는 아덴의 서의 목소리가 이번만큼은 감미로운 천사의 노래처럼 들렸다.
'50개! 심지어 특급으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겨우 몇 달 남지 않았던 내 시한부 인생이 단숨에 1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이 정도 가치라면 제국 은행에 담보로 잡혀 은퇴용 영지의 자급자족용 농기구와 마도 펌프를 대량으로 구매하고도 남을 액수였다.
"감사하군."
나는 내면의 광대를 억누르며, 최대한 엄숙하고 심오한 목소리로 상자를 받아 들었다.
저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율리우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이번 결투와 예산 분쟁을 통해 아카데미의 성광석 독점권을 가문의 손에 넣으려 했으나, 내가 단 한 번의 '각혈'과 '열쇠 공명'으로 판 자체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이제 아카데미의 마도 예산과 성광석 분배권의 주도권은 완전히 나에게로 기울었다.
'좋아, 아주 완벽한 은퇴 빌드업이야. 이제 대충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영지로 내려가서 장막 뒤에 숨기만 하면—'
행복한 상상에 젖어들려던 바로 그 찰나.
쿵! 쿵! 쿵!
연무장의 육중한 철문이 거칠게 열려젖혀지며, 강철 갑옷의 마찰음이 사방을 메웠다.
차가운 쇠비린내와 함께 붉은색 망토를 두른 일단의 기사들이 연무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갑옷 가슴팍에는 날카로운 사냥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엘리드 남작의 사설 체포조. 황실의 행정 집행권을 위임받았다는 명분 하에 온갖 더러운 공작을 수행하는 사냥개들이었다.
"아카데미 내부의 치안을 담당하는 황실 특별 집행부다!"
선두에 선 거구의 기사단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선언하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검은색 마도 수갑이 들려 있었다.
"루안 폰 아르비스. 그대를 황가 반역 혐의, 그리고 불법 암시장 유통망을 통한 제국 자산 밀수 혐의로 즉각 체포한다!"
순간, 연무장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델린이 즉각 검을 반쯤 뽑아 들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무례한 짓인가! 루안 님은 방금 아카데미의 위대한 유적을 발견하신 공로자이시다! 황실 사설 체포조 따위가 감히 아카데미의 신성한 영토에서 학생을 연행하려 들다니!"
"이것은 제국 최고 재판소와 엘리드 남작가의 연명으로 발부된 정식 체포 영장이다."
기사단장이 품에서 붉은 인장이 찍힌 문서를 꺼내 보였다.
"루안 폰 아르비스가 소지하고 있는 암시장 브로커들의 암호 결제 장부. 그것이 바로 황실의 국고를 은밀히 세탁하고, 변방의 아르비스 영지를 거점으로 제국으로부터 이탈하려 한 결정적 반역의 증거다. 반론은 지하 감옥에서 듣겠다."
그들이 말하는 장부는, 내가 그저 은퇴 예산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성비 좋은 루트를 찾다가 입수한 단순한 암시장 거래 내역서였다. 하지만 엘리드 남작은 이를 내 아르비스 영지 독립 기획서와 엮어 '거대한 경제적 반역 시도'로 둔갑시킨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 장부는 그냥 세금 좀 덜 내려고 가성비 맞춘 거라니까? 무슨 반역이야, 반역은!'
속으로는 억울함에 피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기사단장은 내 표정 변화를 오만한 반항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철커덕!
그가 들이댄 시커먼 마도 수갑에서 마나를 억제하는 불길한 흑색 전류가 흘러나왔다.
"순순히 포박당해라, 루안. 제국 검법 총독이신 '카를 폰 로젠베르크' 각하의 직속 명령이다. 저항한다면 이 자리에서 즉결 처분도 불사하겠다."
제국 검법 총독. 황실의 무력을 상징하는 최강의 검사 중 한 명의 이름이 기사단장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연무장의 긴장감은 극치에 달했다.
비무장 상태인 내 가슴팍 앞으로, 기이한 마도 수갑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