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이익!
달아오른 연성진의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유독성 푸른 가스는 지독하게 매캐한 냄새를 풍겼다. 들이마시는 순간 폐포가 타들어 갈 것 같은 극독의 마나였다. 연병장 바닥의 대리석이 끓는 물에 닿은 얼음처럼 스르륵 녹아내리는 광경을 보며, 학생들은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뒤로 물러나! 가스를 흡입하면 마나 회로가 오염된다!" "장벽 마법을 펼쳐! 빨리!"
동부 파벌의 상급생들이 다급하게 손을 뻗어 방어막을 전개했다. 공기 중에 반투명한 마력의 벽들이 겹겹이 솟구쳤다. 하지만 가스는 그 견고한 장벽의 표면을 갉아먹으며 거침없이 영역을 넓혀 왔다. 산성 액체처럼 장벽을 부식시키는 푸른 안개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 재앙의 진행 방향, 기류가 모여드는 길목의 정중앙에 내가 서 있었다.
'아니, 왜 나만 항상 이런 똥물 튀는 자리에 서 있는 거지?'
세상이 억까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방금 전까지 해롤드를 가볍게 참교육하고 늘어난 수명의 기쁨을 만끽하던 참이었다. 수명이 사흘이나 늘어나서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이 난리라니.
숨을 크게 들이쉬려다 훅 끼쳐오는 비린내에 얼른 소매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조금만 방심해도 폐 속으로 저 빌어먹을 푸른 안개가 밀려들 기세였다.
"루안 공! 위험합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저 멀리서 아델린이 검을 뽑아 들고 나를 향해 달려오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다른 학생들이 다급하게 쳐 올린 고체 마법 장벽이었다.
"아델린 님, 들어가면 안 됩니다! 저 가스는 고위 마법사들도 해독하기 힘든 고대 마도 장치의 오염 물질입니다!" "비켜라! 루안 공이 저 안에 계신단 말이다!"
아델린의 눈이 뒤집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평소의 차분함은 어디로 가고, 당장이라도 아군이 쳐 놓은 마법 장벽을 검강으로 베어 발겨 버릴 기세로 날뛰고 있었다.
그녀의 충성심은 고맙지만,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나한테 다가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저 가스의 폭주를 멈춰야 했다.
'은퇴 자금을 만져보기도 전에 흙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나는 한숨을 삼키며 시야 한구석에 떠 있는 반투명한 푸른 창을 응시했다.
[아덴의 서를 활성화합니다.] [경고: 고밀도 마나 연산 시 사용자의 생명력이 실시간으로 차감됩니다.] [초당 소모 수명: 15분]
초당 15분이라니, 미친 창조경제였다. 방금 번 수명이 실시간으로 살살 녹아내리는 소리가 이명처럼 귓가를 때렸다. 가슴 안쪽에서부터 차갑고 이질적인 기운이 뻗어 나와 온몸의 혈관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연산 시작. 유독 가스의 진원지인 연성진의 마나 흐름을 추적해.'
눈앞의 세상이 순식간에 격자무늬의 수학적 기호들로 가득 찼다. 분출되는 푸른 가스의 궤적, 대기 중의 산소 농도, 그리고 연병장 지하에서 역류하는 고대 마나의 압력 수치가 수천, 수만 개의 연산식으로 쪼개져 뇌리에 박혔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왔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장 효율적인 차단 경로를 계산해라. 부작용 없이, 오직 저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구역만을 도려내듯이 격리한다.'
[연산 완료. 마나 역류 방지 영식 '아에테르의 쐐기'를 구성합니다.] [구조 해석율: 100%] [필요 마나: 최소화됨 (대기 중의 잔여 마나를 정밀 전치하여 대체)]
가성비의 극치를 보여주는 연산 결과였다. 내 마나를 소모하는 대신, 해롤드가 흘려놓은 잔여 마력과 폭주하는 연성진 자체의 힘을 역이용해 스스로를 가두는 벽을 만들게 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가볍게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허공에 한 획을 그었다.
스으읍.
바람을 가르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내 손끝에서 시작된 미세한 마나의 실타래가 푸른 가스의 줄기들을 정밀하게 휘감았다. 가스가 가로막혀 있던 동부 파벌의 고체 마법 장벽들이 내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추어 스르륵 분해되기 시작했다.
"어...? 장벽이 해제되고 있어?!" "안 돼! 가스가 우리 쪽으로 밀려온다!"
방어막을 치고 있던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 보기에 내 행동은 자신들을 지켜주던 유일한 방패를 걷어치우는 미친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보란 듯이 밀려들던 푸른 가스는, 장벽이 사라진 그 경계선에서 거짓말처럼 우뚝 멈춰 섰다.
파지직!
대기 중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진공의 격벽이 형성되었다. 내가 설계한 '아에테르의 쐐기'가 폭주하는 가스의 진원지인 연성진 주변만을 둥글게 감싸 안으며, 단 한 방울의 독기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밀봉해 버린 것이다.
"이, 이게 무슨...?" "가스가 갇혔어? 마법 장벽도 없이, 맨몸으로 저 폭주를 제어했다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감탄을 음미할 여유가 없었다. 연산의 대가는 가혹했다. 단 몇 초의 강제 기동이었음에도 내장 전체가 뒤틀리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뜨겁고 비린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쿨럭! 컥...!"
입술 사이로 붉은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필이면 흰색 아카데미 교복 소매 위로 붉은 피가 길게 번졌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아찔해지며 중심이 흔들렸다.
'아, 진짜 아프네. 성광석을 더 빨리 빨아들여야 하는데.'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소매로 입가에 묻은 피를 슬쩍 닦아냈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폭주가 멈춘 연성진을 내려다보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피를 흘리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재앙을 잠재운, 초연하고 오만한 절대자의 풍모 그 자체였으리라.
"루안 공-!"
마침내 격벽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아델린이 장벽이 완전히 걷히자마자 바람처럼 날아와 내 곁에 섰다. 그녀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내 소매에 묻은 붉은 피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이 서려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또 스스로를 해쳐가면서까지 타인을 구하시는 겁니까? 저들의 무능함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루안 공이 이토록 피를 흘려가며 희생하실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단 말입니다!"
아델린의 목소리가 울컥 젖어 들었다. 그녀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희생이라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그냥 내가 살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겠지요."
아델린은 내 말을 딱 잘라 막으며, 더욱 굳건하고 슬픈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고결한 선택을 생존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라 포장하시는 것 또한 루안 공의 성정이니까요. 동급생들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수명을 수십 년은 단축시켰을 마법적 반동을 혼자 감내하시면서도, 어찌 그리 담담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수십 년까지는 아니고 방금 깎인 건 한 시간 남짓..."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말이 안 통했다. 이 여자는 이미 뇌내 망상 회로가 제국 황성까지 고속도로로 뚫려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고독한 구원자의 숭고한 변명'으로 치환해 버리니 의사소통 가성비가 바닥을 쳤다. 나는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했다. 해명하는 데 쓰는 마나와 수명이 더 아까웠다.
그때, 연병장 저편에서 구두 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비켜라! 다들 길을 비켜!"
흐트러진 백발을 사방으로 휘날리며, 마법학부의 권위자이자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명성이 자자한 카산드라 교수가 단숨에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는 늑대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카산드라 교수는 폭주가 완벽하게 진압된 연성진의 잔해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격벽의 공식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 이 마나 배치는... 대기 중의 마찰 마나를 전치하여 역위상 장벽을 형성한 건가? 마법식의 낭비를 단 1밀리그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극소 영식...! 이건 현대 마법 학계의 정론을 정면으로 뒤집는 신화 시대의 효율성이야!"
그녀는 마치 성물을 발견한 광신도처럼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피 묻은 소매를 발견한 순간,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루안 폰 아르비스...! 자네, 이 경이로운 고대 식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력을 가속한 것이로군? 마나 제어의 반동을 육체로 고스란히 받아내며 이 공식을 완성했다니... 아아, 이것이야말로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의 가장 고결한 순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카산드라 교수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 피는 헛되지 않네! 내가 자네의 이 위대한 학문적 개척을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어! 자네가 목숨을 깎아 가며 지켜낸 이 아카데미의 평화는 제국 마법사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걸세!"
"교수님, 제발 진정하시고 제 소매 좀 놓아주시겠습니까..."
"학장실로 가세! 당장 가세! 이런 위대한 희생을 치른 학생에게 합당한 예우와 보상이 없다면, 이 아카데미는 존재할 가치가 없네!"
그녀는 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태세였다. 주변의 학생들도 카산드라 교수의 말에 크게 동요하며 나를 향해 경외 섞인 시선을 보냈다.
"과연 아르비스 가문의 천재..."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우리를 구하기 위해 고대 마법을..." "우리가 그동안 그를 오해하고 있었어. 그는 차가운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영웅이야."
졸지에 아카데미를 구한 비운의 영웅이 되어버렸다. 속이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될 것 같았지만, 카산드라 교수의 입에서 나온 '보상'이라는 단어만큼은 내 귀를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보상이라. 아카데미에서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보상이라면 당연히 그것밖에 없지 않겠는가.
***
한 시간 뒤, 학장실의 무거운 참나무 문이 열렸다.
학장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대마법사답게 엄숙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의 곁에 서서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나를 호위하듯 지키고 서 있는 카산드라 교수와, 그 뒤에서 검자루를 잡고 엄숙하게 서 있는 아델린의 기세에 눌린 기색이 역력했다.
"루안 폰 아르비스 군."
학장이 헛기침을 가볍게 하며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자네가 오늘 연병장에서 보여준 헌신과 기적적인 대처는 카산드라 교수를 비롯한 교수진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아카데미에 대한 지대한 공헌으로 인정되었네. 특히 고대 연성진의 폭주를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어 아카데미의 소중한 인재들을 구한 공로는 결코 가볍지 않지."
그는 책상 서랍에서 묵직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내 놓았다. 주머니가 탁자 위에 닿는 순간, 맑고 청아한 금속성의 공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내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 맑은 진동, 이 순수한 마나의 파동은 틀림없었다.
"원래는 학기 말 포상으로만 지급되는 황실 규격 성광석이네만, 이번 사태의 특수성과 자네의 신체적 손실을 감안하여 임시 승인하에 즉시 지급하도록 하지. 고순도 성광석 다섯 개네."
무려 다섯 개!
일반 성광석도 아니고 제국 황실에서 보증하는 고순도 성광석 다섯 개라니. 내 은퇴 계획에 이보다 더 확실한 가속 페달은 없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가죽 주머니를 챙겼다. 겉으로는 대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대가를 받는 고결한 학자의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광란의 댄스를 추고 있었다.
[고순도 성광석 확보. 아덴의 서를 통한 생명력 정제를 시작합니다.] [남은 수명: 14일 3시간... -> 34일 3시간 12분 08초]
늘어났다! 무려 20일이나 수명이 늘어났다!
가슴을 짓누르던 둔탁한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몸속의 혈액이 활기차게 도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돈이 최고고, 성광석이 제일이었다. 목숨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이 쾌감은 그 어떤 마법의 성취보다 짜릿했다.
'좋아. 이 정도 수명이면 당분간은 숨통이 트이겠어. 이제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말고 내 조용한 은퇴 자금 계획만 세우면 된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학장실을 나섰다.
복도를 걸어 내려가는 내 뒤로, 아델린이 조용히 발걸음을 맞춰 걸어왔다. 그녀는 내가 손에 쥔 성광석 주머니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황실 고순도 성광석이라면 루안 공의 무너진 마나 회로를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루안 공이 구상하시는 그 '거대한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니까요."
"아니, 난 개혁 같은 거 안 해. 그냥 돈 모아서 시골 내려가서 쉴 거야."
"제국의 부조리한 조세 제도를 완전히 뒤흔들고, 아르비스 영지를 자급자족 가능한 독립 지대로 만드시려는 계획을 제가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 원대한 뜻을 보필하기 위해 저 또한 힘쓰겠습니다."
이쯤 되면 벽이랑 대화하는 게 더 생산적일 것 같았다. 나는 대꾸를 포기하고 품 안의 성광석 주머니를 꼭 쥐었다.
어쨌든 성광석 수급처를 확실하게 뚫었으니 절반은 성공이다. 이제 아카데미 생활은 최대한 조용히, 아웃사이더처럼 묻어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내 평화로운 은퇴 계획은, 아카데미의 또 다른 거대한 물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
사흘 뒤.
아카데미의 중앙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 찼다. 하늘에는 형형색색의 마법 불꽃이 터져 올랐고, 늘어선 천막들 사이로 수많은 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홍보물을 돌리고 있었다.
베리타스 황립 아카데미의 연례 행사 중 가장 거대한 축제이자 전쟁터. 바로 '동아리 신입 부원 모집 시장'의 막이 오른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동아리란 단순한 취미 활동 기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 정계의 파벌을 형성하는 전초기지이자, 황실의 공식 예산과 성광석 지원금을 합법적으로 뜯어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이권 단체였다.
그리고 그 광장의 초입, 가장 목 좋은 자리에 거대한 천막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천막 앞에는 커다란 명판이 걸려 있었다.
[아르비스 영지 은퇴 계획 연구회]
내가 만든, 아주 소박하고 조용한 동아리였다. 가입 조건은 극도로 까다롭게 걸어두어 아무도 안 들어오게 만들고, 오직 동아리 유지 최소 인원 세 명만 채워 매달 나오는 소액의 성광석 지원금만 타 먹으려는 나의 완벽한 세금 도둑질용 위장 단체였다.
그런데.
"루안 폰 아르비스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여! 이곳으로 모여라!"
천막 앞에 선 아델린이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검을 높이 치켜들며 사자후를 토하고 있었다.
"제국의 모순에 맞서, 아르비스의 이름 아래 새로운 질서를 세울 동지들을 모집한다! 우리의 목표는 자급자족을 통한 경제적 독립, 그리고 기득권 파벌의 해체다!"
"오오오오-!"
그 선언에 호응하듯, 광장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학생이 광기 어린 눈빛으로 천막을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서 동부 파벌의 수장 줄리우스 카이저가 수십 명의 상급생을 거느리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율리우스 가문의 유령 유통망을 통제하는 암호 장부가 들려 있었다.
"아르비스의 쥐새끼가 감히 아카데미의 자금줄을 흔들려 하는군. 오늘 그 건방진 싹을 잘라주마."
광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전쟁터로 변해갔다.
천막 뒤편 그늘에 숨어 식은땀을 흘리던 나는, 내 품 안의 낡은 청동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깊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아니, 난 그냥 가만히 숨만 쉬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