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법 총독 로젠베르크 각하의 명이다. 반항은 즉결 처분으로 간주하겠다."
기사단장의 거친 음성이 연무장의 높은 천장을 때리며 흩어졌다. 묵직한 검은색 마도 수갑이 내 코끝까지 다가왔다. 수갑 표면에 새겨진 불길한 룬 문자들이 징그러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흑색 전류를 뿜어냈다. 닿는 순간 마력 회로를 강제로 뒤틀어 봉인하는 '심연의 족쇄'였다.
주변을 둘러싼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진 것처럼 차갑게 굳어갔다. 아델린이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당장에라도 기사단장의 목을 벨 듯이 기세를 뿜어냈지만, 내 머릿속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미친 건가? 저 무식하게 큼지막한 쇳덩어리를 내 손목에 채우겠다고? 저거 차는 순간 마력 흐름이 막히잖아. 마력 흐름이 막히면 체내에 기생하는 아덴의 서가 내 생명력을 실시간으로 갉아먹는 걸 무슨 수로 억제하냐고! 안 그래도 수명이 간당간당해서 하루하루가 시한부 인생인데, 저걸 차면 은퇴는커녕 오늘 저녁 메뉴도 못 고르고 묘비명부터 골라야 하잖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겉으로는 세상 모든 풍파를 초탈한 구도자처럼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속바지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드는 기분이었다.
저 무식한 사냥개들에게 "아, 저기요. 제가 몸이 좀 허약해서요"라고 해명해 보았자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했다. 의사소통의 가성비가 최악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아덴의 서, 기동.'
머릿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내 시야가 순식간에 격자무늬의 연산 영역으로 재편되었다.
[경고: 아덴의 서 작동으로 인한 수명 감소가 시작됩니다. 초당 소모 생명력 0.01일.] [대상 분석: 황실 제3종 마도 수갑 '흑강의 족쇄'.] [마력 배열 구조: 기하학적 8중 나선 결합식 봉인진.] [해제 경로 탐색 완료. 연산 강도 87%. 소요 시간 0.4초.]
심장이 조여들며 가슴팍이 욱신거렸다. 수명이 실시간으로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가는 감각은 언제 겪어도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성광석 한 톨보다 내 목숨줄이 더 아쉬운 상황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왼손을 들어 올렸다. 기사단장은 내가 순순히 포박당하려는 줄 알고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띠었다.
"현명한 판단이다, 루안 폰 아르비스. 감히 황실의 권위에—"
"그 손 치우지."
철컥.
수갑의 차가운 금속 표면이 내 손목에 닿는 순간이었다. 내 손가락 끝에서 아주 미세한 백색 마력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아덴의 서가 도출해 낸 완벽한 영창 구조가 수갑 내부의 기하학적 마력 회로를 정밀하게 타격했다.
웅—!
묵직한 파열음이 연무장을 울렸다.
기사단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색 마도 수갑의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유리창이 깨지듯 쩍쩍 갈라졌다. 흑색 전류는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고, 제국 최고의 마도 장인이 주조했다는 수갑은 한 줌의 검은 모래가 되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스스스스….
"이, 이게 무슨…!"
기사단장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자신의 텅 빈 손바닥과 바닥의 모래더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도 수갑이 채워지기도 전에, 오직 순수한 마력의 역연산만으로 그 복잡한 봉인진을 지워버린 것이다. 그것도 단 0.1초 만에, 아무런 영창도 없이 마법을 발동시켜서.
하지만 내 몸은 그 대가를 정직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무리한 고속 연산의 반동으로 기도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치밀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솟구쳤다.
"욱, 쿨럭!"
나는 반사적으로 왼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하얀 셔츠 깃을 붉게 물들였다.
"루안 님!"
아델린이 비명을 지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아카데미 학생들 사이에서도 거대한 동요가 일었다.
"방금 마도 수갑을… 손도 안 대고 부숴버린 건가?" "아아, 저 피를 봐! 방금 그 말도 안 되는 마력 제어를 하느라 체내의 마나 폭주를 온몸으로 견뎌내신 거야!" "황실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력을 태워가며 품위를 지키시다니…!"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속으로는 '아우, 아파 죽겠네. 성광석 빨리 빨아야 하는데'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내 눈빛은 고통을 억누르느라 자연스럽게 서늘하고 깊게 가라앉았다.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셔츠 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며, 차가운 시선으로 기사단장을 내려다보았다.
"검법 총독의 명령이라."
내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피비린내가 섞인 목소리가 오히려 기묘한 위압감을 풍겼다.
"황실 특별 집행부가 언제부터 일개 남작 가문의 사냥개로 전락했는지 모르겠군. 엘리드 남작의 이름이 제국의 법보다 위에 있는 모양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우리는 정식 체포 영장을—"
"그 영장, 누가 발부했지?"
나는 기사단장의 말을 가차 없이 자르며 한 걸음 내디뎠다.
"제국 재무법 제4조 12항에 따르면, 아카데미의 재정 심의에 관여하는 특별 위원은 황실 직속 사법 기관의 합의와 황제의 친필 서명이 담긴 칙령 없이는 임의로 구금할 수 없다. 내가 기획한 '아카데미 예산 조정안'이 황실 시범 사업으로 채택된 순간, 내 신분은 단순한 학생이 아니라 재무위원회 소속 위원에 준하게 된다는 걸 몰랐나?"
기사단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내가 아르비스 영지의 세금 면제를 받기 위해 꼼꼼하게 찾아낸 법적 구멍이었다. 은퇴 후에 세금 폭탄을 맞지 않으려고 제국 법전을 달달 외운 보람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나는 피 묻은 소매를 정돈하며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지금 나를 강제로 연행하겠다는 것은, 황실이 공식 지정한 예산 심의를 무력화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이 자리에서 사라지면, 당장 내일 아카데미로 들어올 서부 마도 광맥의 유통 예산 승인이 동결된다. 그렇게 되면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제국 남부의 마도 방벽 유지 보수 자금까지 줄줄이 묶이게 되지."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내 기백에 눌린 기사단장이 자기도 모르게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제국 남부의 방벽이 무너져 마물이 들이닥칠 때, 그 경제적 정지 시나리오와 안보 공백의 책임을… 검법 총독과 엘리드 남작이 온전히 질 수 있겠나?"
"그, 그것은…."
기사단장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가 가져온 것은 엘리드 남작이 황실의 사법 연줄을 동원해 날조한 초법적인 영장이었다. 루안을 조용히 끌고 가 입을 막으려 했던 계획이, 제국 전체의 거시경제와 안보를 뒤흔들 대역죄로 둔갑해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아니, 난 그냥 내 은퇴 자금 줄이 끊기면 귀찮아지니까 읊어본 건데. 왜 저렇게 사시나무 떨듯 떨고 그러냐.'
내가 속으로 혀를 차는 사이, 아델린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내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차가운 살기로 번뜩였다.
"엘베스 가문의 기사단은 들어라!"
아델린의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연무장의 입구와 창문을 깨부수며 은빛 갑옷을 입은 무장 호위병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방패에는 엘베스 공작가의 상징인 백은 사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철컥! 철커덕!
수십 명의 공작가 정예 기사들이 순식간에 황실 체포조를 포위했다. 예리하게 날이 선 창끝과 검날이 체포조 기사들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루안 님은 제국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스스로 피를 흘리며 헌신하시는 고결한 분이시다!"
아델린이 검을 높이 들어 올리며 선언했다.
"감히 엘리드 남작의 사악한 음모에 동조하여 아카데미의 영웅을 해치려 들다니! 이 시간부로 루안 님의 신변은 우리 엘베스 공작가가 전적으로 보증한다.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선다면, 이는 엘베스 공작가에 대한 정식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
연무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루안 폰 아르비스!" "제국의 진정한 수호자!" "우리가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와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학생들의 눈빛은 이미 단순한 동경을 넘어, 광신에 가까운 숭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스스로 피를 토해가면서도 제국의 법리를 무기로 부패한 권력의 사냥개들을 압살하는 내 모습이, 그들에게는 그 어떤 영웅보다 위대해 보였던 모양이다.
'아니, 얘들아. 나 영웅 같은 거 안 해. 그냥 조용히 시골 내려가서 감자나 심고 살고 싶다니까?'
속으로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해명하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 나온 것은 깊은 한숨뿐이었다. 그리고 그 한숨은 조용히 상황을 정리하는 절대자의 묵직한 침묵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사단장은 사방을 포위한 엘베스 공작가의 기사들과 눈이 뒤집힌 수백 명의 학생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기서 무력으로 루안을 체포하려 들다간, 진짜로 내전 수준의 유혈 사태가 벌어질 판이었다. 게다가 루안이 제기한 법적 논리는 단 하나도 막아설 수가 없었다.
"…철수한다."
기사단장이 굴욕감으로 붉게 물든 얼굴로 이빨을 갈며 명령했다.
"하지만 기억해라, 루안 폰 아르비스. 엘리드 남작과 카이저 가문이 이 일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든 환영하지. 가성비 좋은 대답을 준비해 둘 테니."
내가 시니컬하게 대꾸하자, 기사단장은 팩 토라진 어린아이처럼 몸을 돌려 황급히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사냥개들의 뒷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찬사와 환호성을 뒤로한 채, 나는 아델린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
같은 시각, 아카데미 상층부의 화려한 집무실.
줄리우스 카이저는 창밖으로 체포조가 비참하게 퇴각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깃펜이 분노로 인해 두 동강이 났다.
"쓸모없는 사냥개 놈들… 법전 몇 구절에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다니."
줄리우스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루안이 보여준 대담함과 치밀함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마도 수갑을 단숨에 파괴한 그 압도적인 마력 제어력과, 제국의 재무법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천재적인 논리.
"루안, 네놈이 아카데미의 재정권을 쥐고 흔들며 내 가문의 자금줄을 옥죄려 하는 모양인데…."
줄리우스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천재적인 세무 혁명을 기획한다 한들, 움직일 '자원' 자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책상 위의 벨을 눌렀다. 어둠 속에서 그의 비서가 소리 없이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가문에 연락해라. 아카데미 상단 연합을 동원해, 교내 유통망에 존재하는 모든 성광석을 싹쓸이해라. 가격은 상관없다. 루안 폰 아르비스의 이름으로 예약된 수매 물량까지 전부 가로채서 동결시켜."
성광석은 루안이 기획한 예산안의 핵심 자재이자, 동시에 그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마나 결정체였다. 그것을 독점하여 말려 죽이겠다는 지독한 경제적 사형 선고였다.
"돈의 힘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지."
***
저녁 무렵, 아늑한 내 동아리 방.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장작 소리가 탁, 탁 하고 기분 좋게 울렸다. 나는 푹신한 소파에 깊숙이 묻혀, 아델린이 정성스럽게 우려낸 따뜻한 홍차를 들이켜고 있었다.
"루안 님, 몸은 좀 어떠신가요? 방금 전의 마나 억제 반동이 아직 가시지 않았을 텐데…."
아델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무릎 위에 담요를 덮어주며 물었다.
"괜찮아. 늘 있는 일이니까."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늘 있는 시한부 발작이긴 했다. 다만 아덴의 서를 한 번 돌릴 때마다 수명이 뭉텅이로 깎여 나간 탓에, 지금 당장 성광석을 보충하지 않으면 오늘 밤 꿈자리에서 조상님을 뵐지도 모르는 위급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지난번에 암시장 브로커에게 뜯어낸 장부 덕분에, 가성비 좋은 가격으로 성광석 20개를 예약 수매해 뒀지. 오늘 밤에 배송이 오기로 했으니까, 그거만 흡수하면 당분간은 숨통이 트일 거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은퇴 후의 안락한 삶을 상상하던 그때였다.
따르릉—!
동아리 방 구석에 놓인 마도 통신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델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수신기를 들었다.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카데미 공식 상점의 지배인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몹시 당황하고 겁에 질려 있었다.
"저,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밤 인도 예정이던 루안 폰 아르비스 님의 성광석 20개에 대한 결제 및 출고가… 전면 동결되었습니다!"
"무슨 소리지?"
아델린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낮아졌다.
"카이저 가문의 압력으로 상단 연합이 아카데미 내의 성광석 유통권을 독점했습니다! 루안 님이 예약하신 물량은 물론, 앞으로 아카데미 내부에서 거래되는 모든 성광석의 결제가 일시 정지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로서도 어쩔 수가…!"
뚝.
통신이 끊겼다.
동아리 방 안의 공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내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이 미세하게 떨렸다. 성광석 결제 전면 동결. 그것은 내 생명 유지 장치의 전원 코드가 통째로 뽑혔다는 뜻이었다.
'줄리우스… 이 돈만 아는 악랄한 자식… 내 은퇴 자금도 모자라 내 목숨줄까지 건드려?'
내 눈동자에 난생처음으로 진득한 안광이 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