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찢고 들어오는 검은 실의 감촉은 얼음 송곳으로 뼈마디를 헤집는 것처럼 지독하게 아릿했다. 왼팔의 감각이 완전히 소실되었음에도, 그 신경의 잔해를 타고 올라오는 기괴한 냉기는 기어이 척수를 적셨다.
"안 돼."
우진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자신의 심장이 멈추었을 때도, 왼팔이 어깨까지 동결되어 쓸모없는 고깃덩어리처럼 변했을 때도 이토록 가슴 깊은 곳이 조여들지는 않았다. 품에 안은 향나무 상자에서 흘러나오는 옅은 매화나무 향기가 검은 실의 침투에 격렬하게 저항하며 허공에 흩어졌다. 우희의 영혼 단편이 지닌 온기가 비명처럼 고택의 습한 공기 속으로 번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계단실 저 위쪽에서 고막을 긁어내리는 듯한 쇠붙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악! 놔! 놓으란 말이야, 이 괴물 같은 것들아!"
마강현의 비명이었다. 안전 보도가 깨진 그를 백일홍의 인형 사도들이 거칠게 움켜쥐고 계단 위로 견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목각 인형들의 관절이 뚝뚝 끊어지며 부딪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고름처럼 흘러내렸다. 사도들의 손아귀에 붙잡힌 마강현의 몸이 가파른 석조 계단을 쓸며 올라가는 소리가 질척하게 이어졌다.
우진은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명부장부를 움켜쥐었다. 장부의 마지막 장에 새겨진 붉은 글씨가 그의 눈동자에 비쳤다.
[선택: 당신의 영혼 전체를 추가 담보로 제공하여 징수를 일시 유예하겠습니까?] [유예 대가: 남은 수명 즉시 영(0)으로 전환.]
우진의 손가락이 피를 흘리며 계약란 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그는 서명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조차 아깝지 않았지만, 수명이 영이 되어 자신이 완전히 소멸하는 순간 우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벽마저 사라진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계산해 냈다.
"서율 씨."
우진이 감각이 없는 왼팔을 가슴에 고정한 채, 오른손으로 장부를 덮으며 나직하게 불렀다. 옆에서 공포와 경악으로 숨을 몰아쉬던 서율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따라오십시오. 저 위에서 이 판을 깨부수어야 합니다."
"우진 씨, 팔이…… 괜찮은 거예요?"
"아직 쓸 수 있습니다."
우진은 자신의 상처를 보지도 않은 채, 마강현의 비명이 메아리치는 어둠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다리가 납처럼 무거웠고,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굳어가는 관절이 비명을 질렀으나 그의 표정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타인의 고통에는 그토록 쉽게 눈물을 흘리는 그가, 정작 자신의 몸이 부서져 가는 순간에는 고장 난 기계처럼 무감각했다.
서율은 침을 삼키며 우진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고택의 가파른 9층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공기는 점점 더 질척해졌고, 썩은 유황 냄새와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마침내 도달한 9층의 제단실.
그곳은 우화각의 가장 깊고 은밀한 정수리이자, 산 자의 살점을 녹여 내리는 거대한 가마솥이 도사린 방이었다. 사방의 기둥에는 가죽이 벗겨진 짐승의 형상을 한 목각 인형들이 천장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구리로 주조된 거대한 청동 솥이 붉은 김을 내뿜고 있었다.
솥 아래에서 일렁이는 불꽃은 푸른빛과 붉은빛이 기괴하게 뒤섞인 형태였다. 그것은 장작을 태우는 불이 아니었다. 인간의 깊은 원죄와 집착을 연료로 삼아 타오르는 인과의 불꽃이었다. 그 불길 위로 솥 안의 액체가 끓어오르며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것이 바로 우화각이 감추어 둔 영생의 비약, '황천의 이슬'을 정련하는 시스템이었다. 인간의 영혼과 죄악을 통째로 연소하여 가장 순수한 오컬트적 정수를 추출해 내는 가학적인 기계 장치.
"히익, 힉……!"
제단 한편의 기둥 뒤에서 이빨을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만식 일당의 잔당 중 하나인 사내였다. 그는 이미 이 방의 기괴함에 압도되어 바지에 오줌을 지린 채 웅크려 있었다.
그때, 사도들에게 끌려온 마강현이 솥 바로 앞의 제단 바닥에 팽개쳐졌다. 그의 옷은 찢어지고 전신은 멍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광기 어린 생존 욕구만이 번들거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기둥 뒤에 숨은 사내를 발견했다.
"너…… 너였군."
마강현이 이빨을 드러내며 짐승처럼 기어갔다. 그의 손이 사내의 발목을 낚아챘다.
"마, 목사님? 왜 이러십니까!"
"네 죄가 나보다 가볍지 않더냐! 네가 매일 밤 도박판에서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갈취한 돈이 얼마인데! 네 영혼을 저 제단에 바쳐라! 그러면 신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내 수명을 연장해 주실 것이다!"
마강현은 미친 듯이 소리치며 사내를 청동 솥의 붉은 불길 속으로 밀쳐 넣으려 발버둥쳤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신도, 이웃도, 자신의 신도도 한낱 제물로 던져버릴 수 있는 인간의 추악한 이중성이 그곳에 있었다.
"이 미친 쓰레기 자식이……!"
서율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뛰어 나갔다. 그녀는 평소 극도로 냉혹하게 손익을 따지는 인물이었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마강현의 비열하고 추잡한 짓거리에는 이성이 끊어지는 듯한 분노를 느꼈다. 서율은 마강현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잡아당겼다.
"이 손 놓지 못해? 네가 목사야? 네가 인간이냐고!"
"비켜! 저년도 내 제물로 삼아라! 백일홍 님! 이 자들의 영혼을 받으시고 나를 살려주소서!"
마강현은 옷깃을 쥐어뜯으며 악을 썼다.
우진은 그 모습을 가만히 주시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시선은 마강현의 옷깃 뒤쪽, 가려진 틈새로 살짝 비치는 붉은 실 한 가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강현 씨."
우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당신이 그토록 당당하게 타인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이유가, 단지 신앙심 때문은 아니었겠지."
우진이 오른손을 뻗어 마강현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마강현이 반항하려 했으나, 우진의 무표정한 얼굴과 얼어붙은 왼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그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지이익!
우진이 거칠게 마강현의 옷깃을 찢어발겼다. 안감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붉은 진흙으로 빚은 기괴한 부적이 허공에 드러났다. 붉은 진흙 위에는 백일홍의 인장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건……!"
서율이 침을 삼켰다.
"백일홍과의 은밀한 무효 계약 유물입니다. 고택의 저주와 트랩이 발동할 때, 자신만을 면책 대상으로 삼는 조건으로 이 고택의 아사귀들에게 다른 생존자들의 위치를 팔아넘긴 이표(泥標)지."
우진이 부적을 들어 올리자, 마강현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 그걸 어떻게…… 아니야! 그건 신께서 주신 방패다!"
"신이 아니라 귀신이 주신 방패겠지. 그리고 이 방패의 유지 비용은 다른 이들의 피였습니다."
우진이 명부장부를 펼쳤다. 장부의 첫 페이지에 잔혹한 인과의 수치가 기록되기 시작했다.
[계약 유물 '붉은 진흙 부적' 확인.] [해당 유물은 타인의 생명을 은닉 자산으로 저당 잡아 획득한 기만적 면책권임.] [법적 효력 박탈을 선언합니다.]
우진은 장부의 깃펜을 들어 마강현의 부적 위를 강하게 그어 내렸다.
쩌저적!
붉은 진흙 부적이 순식간에 검게 변하더니, 미세한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마강현의 몸을 감싸고 있던 미세한 붉은 기운이 완전히 소멸했다. 마강현의 목에 채워져 있던 투명한 사슬이 풀려나며, 청동 솥의 푸른 불꽃이 그를 향해 굶주린 맹수처럼 아가리를 벌렸다.
"아아악! 내 부적이! 내 방패가!"
마강현이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다. 제단의 흡인력이 가중되면서, 천장의 칠흑 같은 실들이 다시금 우진의 향나무 상자를 향해 뻗어 나가려 요동쳤다. 제단이 요구하는 카르마 지수 9,000만 포인트의 공백이 마강현의 육신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진 씨! 제단이 우희 씨를 삼키려고 해요! 어떻게든 해야 해요!"
서율이 비명을 지르며 우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우진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명부장부의 회계 시스템이 미친 듯이 숫자를 굴려 대고 있었다.
'인간의 영혼만이 원죄의 연료가 될 수 있는가?'
아니다. 귀신이 원하는 것은 원한과 살의, 그리고 집착의 농도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집착과 악의가 가장 농밀하게 뭉쳐진 결정체가 존재한다.
우진이 마강현의 일그러진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마강현 씨. 당신이 평생 스파이 짓을 하고, 종교 재단을 횡령하며, 사람들을 협박해 스위스 비밀 계좌에 쌓아 둔 돈이 얼마지?"
마강현이 눈을 부릅떴다.
"그, 그걸 네가 어떻게…… 무슨 개소리야!"
"그 계좌에 잠든 자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피, 그리고 당신의 탐욕이라는 원죄가 가장 정교하게 환산된 '물질적 원죄의 가치'지."
우진이 명부장부를 넓게 펼쳤다. 장부의 빈 페이지가 피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대위변제(代位辨濟) 조항 발동.] [채무자 '마강현'의 현실 자산 강제 영적 환산.] [대상: 스위스 크레디트 비밀 계좌 번호 CH93-xxxx-xxxx-xxxx] [자산 규모: 실물 화폐 가치 약 420억 원.] [영적 카르마 환산 가치: 1억 2,000만 포인트.]
"미친 소리 하지 마! 내 돈이야! 내 평생의 노력이 담긴 내 돈이라고!"
마강현이 발광하며 우진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서율이 그의 다리를 걸어 바닥에 메쳤다.
우진은 흔들림 없는 손길로 장부에 서명했다.
"그 더러운 돈을 이 제단의 불꽃으로 던져 넣는다."
스스스스……!
장부에서 한 줄기 칠흑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와 마강현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것은 마강현의 육체가 아니라, 그의 영혼에 각인된 현실 세계의 재화 소유권을 강제로 뜯어내는 영적 압류의 빛이었다.
멀리 떨어진 현실 세계의 금융 네트워크망 어딘가에서, 마강현의 이름으로 된 비밀 계좌의 보안코드가 영구적으로 파괴되고 자산이 공중으로 증발하는 인과의 왜곡이 실시간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화각의 청동 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솥 안의 붉은 액체가 부글거리며 넘쳐 흘렀고, 그 아래의 푸른 불꽃이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현실의 더러운 탐욕으로 점철된 자본금이 저승의 인과 부채 탕감용 대체물로 우겨 들어간 것이다.
"끄아아아아악! 내 돈! 내 계좌가! 안 돼! 내 영생의 자금이!"
마강현은 자신의 심장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평생의 악행이 쌓아 올린 바벨탑이 단 한 순간에 황천의 거름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제단은 마강현의 거대한 원죄적 자산을 게걸스럽게 삼켜버리고는 포만감에 찬 진동을 울렸다. 우희의 향나무 상자를 향해 뻗어 오던 검은 실들이 인과의 충족으로 인해 스르륵 녹아내리며 먼지처럼 사라졌다. 매화나무 향기가 다시금 부드럽게 방 안을 감싸 안았다.
"해냈어……."
서율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강현이 쌓아 둔 더러운 돈으로 제단의 아가리를 막아버리는,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오컬트 가치 교환의 승리였다.
그러나 우진은 승리의 기쁨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윽……."
우진의 입술 사이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대위변제 거래의 규모가 너무나 거대했던 탓에, 장부의 인과율적 과부하가 그의 육체로 고스란히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진의 오른쪽 다리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굳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차가운 냉기가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더니, 살점이 거무스름한 돌처럼 변하며 딱딱하게 석화되어 갔다. 단순한 동결이 아니었다. 영혼의 무게를 육신이 감당하지 못해 발생하는 중증 석화 동결이었다.
"우진 씨?"
서율이 놀라 우진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우진은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검은 돌처럼 변해가는 광경을 그저 차분하게 내려다보았다. 가슴속의 심장은 이미 멈춘 지 오래였고, 이제는 한쪽 다리마저 돌이 되어 가고 있었다. 파멸이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깊고 고요했다.
우화각의 천장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기둥 뒤의 그림자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단은 만족했으나, 이 왜곡된 거래에 분노한 고택의 더 깊은 악의가 깨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