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오른쪽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냉기는 단순한 얼음의 그것이 아니었다. 뼈마디를 타고 올라오는 감각은 차라리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듯한 작열감에 가까웠다. 살점이 굳어 들어가며 검붉은 돌의 질감으로 변해갈 때, 우진은 자신의 무릎뼈가 삐걱거리며 석회화되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었다. 뚜둑, 뚝. 관절이 가동 범위를 잃고 고정되는 소리였다.

"우진 씨! 다리가……!"

서율이 비명을 지르며 우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우진의 신체는 이미 온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왼팔에 이어 오른쪽 다리까지 거무스름한 돌덩이로 변해가는 광경은 기괴하다 못해 성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진은 그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고통도, 절망도 없었다. 마치 남의 부러진 다리를 관찰하는 의사처럼, 냉정하고 무감각한 시선이었다.

"대위변제의 수수료치고는…… 좀 무겁군."

우진의 입술 틈새로 하얀 입김이 서렸다. 가슴속 심장은 진즉에 고동을 멈췄으나, 그의 영혼은 여전히 황천의 장부와 단단히 얽혀 있었다.

"내 자산이! 내 계좌가 공중분해 됐어! 으아아악!"

바닥을 뒹굴며 피눈물을 흘리던 마강현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평생을 종교적 위선과 신도들의 피를 빨아 구축해 온 그의 거대한 자본 제국이 단 한 순간에 영적 채무의 탕감용으로 소각된 여파였다.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사방으로 찢어져 있었다.

"이건 사기야!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를 저주하겠다! 이 마귀 같은 놈!"

마강현이 우진을 향해 돌진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턱없이 어설펐다. 우진은 돌처럼 굳어버린 오른쪽 다리를 축으로 삼아 겨우 몸을 지탱하면서도, 왼손을 뻗어 마강현의 멱살을 정확히 낚아챘다.

동결된 손아귀의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마강현의 숨통이 막히며 켁켁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나님은 부도난 채권을 보증 서지 않으십니다, 목사님."

우진의 목소리가 마강현의 귓가에 차갑게 박혔다. 우진의 시선은 마강현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옷깃 뒤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곳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붉은 진흙으로 빚어진 기괴한 부적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백일홍과의 거래 증표이자, 고택의 살인 트랩인 십조율의 징벌을 회피하게 해 주던 면책 특권 유물.

"그동안 이 신용부도스왑(CDS) 덕분에 안전자산인 척 숨어 계셨더군요."

우진이 차가운 왼손 손가락을 마강현의 옷깃 안으로 찔러 넣었다. 찌지직, 살점이 타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붉은 진흙 부적이 우진의 손에 쥐어졌다.

"안 돼! 그것만은 만지지 마! 그건 내 구원의 방주야!"

마강현이 광분하며 손톱으로 우진의 얼굴을 할퀴려 했다. 그러나 우진이 가볍게 손아귀에 힘을 주자, 붉은 진흙 부적은 허무하게 바스러지며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 부적이 파괴됨과 동시에, 마강현의 몸을 감싸고 있던 미약한 영적 보호막이 완전히 깨어져 나갔다.

"아아아아아윽!"

부적의 파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우화각의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검은 손들이 튀어나와 마강현의 발목을 낚아챘다. 더 이상 면책 특권이 없는 죄인. 고택의 아사귀들이 그의 살점을 탐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백일홍 님! 살려주십시오! 제가 바친 제물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를 구원하소서!"

마강현은 완전히 미쳐버린 채, 자신을 끌고 가려는 원혼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복도 끝으로 기어갔다. 그의 손톱이 대청마루 바닥을 긁으며 피 섞인 자국을 남겼다. 그는 우화각의 가장 깊은 곳, 백일홍의 정원이 있는 음침한 심연을 향해 비틀거리며 도망쳤다. 무덤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짐승의 형국이었다.

서율은 그 비참한 퇴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우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진 씨,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저 인간을 쫓아가야 해?"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우진은 대답 대신 품 안에서 낡은 가죽 장부인 '명부장부'를 꺼내 들었다.

스스스스스.

장부의 책장이 스스로 넘어가며 멈춘 페이지 위로, 거무스름한 핏빛 글씨가 빠르게 적혀 내려가기 시작했다.

[죄인의 십조율: 최종 정산 단계 진입] [생존자 수: 3명] [누적 카르마 부채: 측정 불가] [만기 시간: 00:00:00]

쿵! 쿵! 쿵!

우화각 전체가 거대한 심장박동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청마루의 벽면과 기둥, 천장 곳곳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오더니 기괴한 숫자의 형태로 정렬되었다.

'600' '599' '598'

초 단위로 줄어드는 카운트다운이었다. 고택이 품고 있던 모든 살의와 저주가 만기를 앞두고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삐걱거리는 들보 소리와 원혼들의 통곡 소리가 섞여 들어와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시간이 없어……."

서율이 우진의 굳어버린 다리를 가리키며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공포와 슬픔, 그리고 기이한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죽으려고 작정했어? 제물 하나 처리하겠다고 제 다리를 돌로 만들어? 이러다가 백일홍인지 뭔지 만나기도 전에 네가 먼저 황금 비석이 되어서 이 고택 장식품으로 전락하겠다고!"

오열 섞인 조롱이었다. 평소라면 손익분기점을 따지며 가장 먼저 도망쳤을 그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육신을 깎아 먹는 우진을 보며 진심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우진은 서율을 가만히 응시했다. 타인의 비명에는 심장이 찢어질 듯 공감하면서도, 정작 제 다리가 굳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기괴한 결함. 하지만 눈앞에서 흐느끼는 이 차가운 지성주의자의 눈물은 그의 가슴속 멈춘 심장 어딘가를 미세하게 건드렸다.

그때, 우진의 품에 품고 있던 향나무 상자에서 아주 미세한 매화나무 향기가 흘러나왔다. 우희의 영혼 단편이 보내는 보잘것없고 따뜻한 온기였다. 그 온기가 석화되어 가던 우진의 오른쪽 허벅지 부근에서 미약하게 퍼지며 냉기를 잠시 억눌렀다.

우진의 입꼬리가 아주 느리게 호선을 그렸다. 고택에 들어온 이후, 그가 처음으로 지어 보인 고요하고 진심 어린 미소였다.

"황금은 비싸니까, 기왕이면 더 가치 있는 자산으로 기록되겠군요."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서율이 소리를 질렀지만, 우진은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왼손을 얹었다. 차갑지만,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든든한 무게감이 실렸다.

"서율 씨. 당신은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판때기를 완전히 부숴버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우진의 눈동자가 황천의 장부 위로 떨어졌다. 장부의 백지 위에 우화각 곳곳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원혼들의 이름과 그들이 품은 원한의 수치들이 실시간으로 나열되기 시작했다.

황만식, 이한솔, 그리고 고택의 벽 속에 갇혀 비명을 지르던 이름 모를 아사귀들과 과거의 희생자들. 그들이 가진 원한은 백일홍이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착취당한 '부실 채권'들이었다.

"이자율이 폭등하고 만기가 동시에 도래하면, 아무리 거대한 은행이라도 파산을 피할 수 없지."

우진의 목소리에 무서운 확신이 실렸다.

그는 장부를 쥔 손가락끝을 깨물어 붉은 피를 흘려보냈다. 피는 장부의 페이지 위로 스며들며, 흩어져 있던 모든 원한 채권들을 하나의 거대한 연대보증 사슬로 묶기 시작했다.

[원한의 일괄 청약 및 부채 통합(Debt Consolidation) 발동]

"우화각의 모든 원혼들이 가진 억울함과 원한의 총량을 단 하나의 채권 패키지로 묶는다. 그리고 이 채권의 최종 채무자를 지목하지."

우진이 장부의 맨 윗장에 굵고 선명한 피로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

[채무자: 백일홍]

그 순간, 고택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피로 쓰인 카운트다운 숫자들이 일제히 멈추더니, 기괴한 불꽃을 일으키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울부짖던 아사귀들의 비명이 한순간에 멈췄다. 그들의 저주와 살의가 우진의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하나의 거대하고 정교한 '자이언트 손실 명세서'로 가공되고 있었다.

지하실 밑바닥에서부터 불길한 진동이 울렸다. 우화각의 심장부인 푸른 불꽃이 거칠게 일렁이며 저항하려 했으나, 이미 법적으로 묶여버린 인과의 사슬은 백일홍의 목을 죄어 가고 있었다.

수백 년간 고택이 쌓아 올린 모든 악의와 부채가, 이제 단 한 명의 설계자에게 강제로 청구되는 카타르시스의 순간이었다. 백일홍이 감당해야 할 이자의 무게는 고택 전체를 무너뜨리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때, 깊은 어둠 속에서 칠흑 같은 나무뿌리들이 뱀처럼 기어 나와 대청마루를 뚫고 솟구쳤다.

스스스스스…….

나뭇가지들이 엉키며 기괴한 형상을 만들어내더니, 매화나무 향기를 집어삼키는 썩은 악취와 함께 차가운 목소리가 공중을 가득 채웠다.

- 불경한 회계사 놈이 감히 내 정원의 장부를 어지럽히는구나.

백일홍의 환영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우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형상은 분노로 인해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 네가 묶어둔 그 원한의 채권이 내 목을 조르기 전에, 네 가슴속에 품은 그 가련한 영혼의 단편부터 가루로 만들어 주마.

나무뿌리들이 우진의 품에 있는 향나무 상자를 향해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며 뻗어 나갔다.

- 내 정원의 사령들을 움직일 포탄의 심지로, 네 여동생의 영혼을 가장 먼저 결속해 버리겠다!

백일홍의 으름장과 함께, 우진의 품속 상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무뿌리들은 단순한 식물의 줄기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수십 년간 우화각의 진흙 바닥 밑에서 썩어간 시체들의 손가락뼈와 머리카락이 기괴하게 뒤엉켜 만들어진, 악의의 점액질 덩어리였다. 꿀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청마루의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줄기들이 우진의 발목을 사정없이 휘감았다.

석화되어 가던 그의 오른쪽 다리가 거친 마찰음과 함께 삐걱거렸다. 이미 감각이 죽어버린 다리였음에도,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둔탁한 진동이 척추를 타고 뇌리로 곧장 전달되었다.

"비켜! 이 더러운 것들아!"

서율이 제단 한구석에 떨어져 있던 청동 제기를 주워 들어 나무뿌리를 향해 거칠게 내리쳤다. 서슬 퍼런 놋쇠 모서리가 줄기를 짓이기자, 검붉고 걸쭉한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액체가 닿는 곳마다 대청마루 바닥이 치익 소리를 내며 검게 타들어 갔다.

하지만 하나를 자르면 둘이 솟구쳤고, 둘을 으깨면 넷이 기어 나왔다. 고택 전체가 백일홍의 거대한 거미줄이었고, 그들은 그 위에 걸린 파리새끼에 불과했다.

"서율 씨, 멈춰요. 무의미한 지출입니다."

우진의 목소리는 평온하다 못해 기이할 정도로 평안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자신의 품에 안긴 향나무 상자만을 향해 있었다.

빠드득, 드드득.

백일홍의 덩굴들이 마침내 향나무 상자의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상자의 겉면에 음각으로 새겨진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들이 부서지며 향나무 가루가 흩날렸다. 그 틈새로, 우진이 온 정성을 다해 깎아 만들었던 인형 소체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어둠 속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상자 내부에서 아주 작고 애처로운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 오빠…… 추워…… 어두워…….

우희의 목소리였다. 황천의 틈새에 갇혀 영혼의 뼈대만 겨우 남은 채 바스러져 가던 가련한 동생의 절규.

그 가냘픈 비명이 우진의 귓가를 때린 순간, 그의 무감각하던 눈동자가 무서운 속도로 팽창했다. 자신의 다리가 돌이 되고 심장이 멈출 때는 시계 초침 소리나 세고 있던 그였지만, 여동생의 흐느낌 앞에서는 그의 영혼 자체가 찢겨 나가는 듯한 극렬한 고통이 몰려왔다. 타인의 고통에만 비정상적으로 공감하는 그의 잔혹한 결함이, 가장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을 관통한 것이다.

"……내 담보물을 손대지 마라."

우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지옥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듯한 냉기였다.

그는 떨리는 오른손으로 명부장부의 마지막 페이지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이 찢어지며 흘러내린 피가 장부의 누런 종이 위로 무섭게 번져나갔다.

[경고: 계약자의 영혼 잔액이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합니다.] [대위변제 가중 과부하로 인한 신체 붕괴율 87% 돌파.] [동결 및 석화 현상이 내부 장기로 침투하기 시작합니다.]

우진은 경고창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장부의 하단에 적힌 숨겨진 조항 위에 자신의 피 묻은 손바닥을 그대로 찍어 눌렀다.

"우화각의 모든 부실 채권을 내가 연대보증한다. 그 대가로, 채권자 백일홍이 가진 '담보물 압류 권한'을 일시 동결한다!"

콰아아앙!

우진의 손바닥이 장부에 닿는 순간, 그의 가슴팍에서부터 검푸른 서리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냉기는 순식간에 그의 오른쪽 가슴과 폐부를 얼려 붙였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허파가 유리 조각처럼 깨어지는 듯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향나무 상자를 조이고 있던 백일홍의 나무뿌리들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검푸른 성에가 덩굴을 타고 올라가며 그것들을 단단한 얼음 조각으로 박제해 버렸다.

- 이…… 미련한 놈이! 제 영혼을 통째로 불씨로 던져 넣으면서까지 고작 그 인형 쪼가리를 지키겠다는 말이냐!

백일홍의 환영이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포효했다. 우화각의 대들보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틀렸고, 지하실 밑바닥에서 피어오르던 푸른 불꽃이 대청마루의 깨진 틈새를 뚫고 거대한 해골의 형상으로 솟구쳤다.

[시스템 경고] [연대보증 조항 발동 성공. 단, 잔액 부족으로 인해 10초 후 계약자의 영혼 전체가 우화각의 불씨로 강제 청구됩니다.] [10…… 9…… 8……]

머릿속에서 울리는 붉은색 카운트다운은 우진의 종말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기둥 뒤의 어둠 속에서 전 재산을 잃고 미쳐버린 마강현이 핏발 선 눈으로 우진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손에는 제단에서 훔쳐낸 예리한 청동 칼날이 쥐어져 있었다.

"너만 죽으면 돼! 네 장부만 빼앗으면 내 돈도, 내 영생도 다 돌아와!"

광기에 사로잡힌 죄인의 칼날이 우진의 심장을 향해 쏘아져 내렸다. 몸의 절반이 석화되어 움직일 수 없는 우진에게는 피할 방도가 없었다.

"우진 씨!!"

서율이 몸을 날려 우진의 앞을 가로막으려 한 순간, 우진의 입가에 기괴하고 차가운 미소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의 손가락이 장부의 한 페이지를 가볍게 튕겼다.

"마강현 씨. 당신의 마지막 신용 등급을 조회해 드리지요."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우화각의 굉음 속으로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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