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서율을 집어삼킨 대청마루의 목조 바닥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단단하게 닫혀 있었다. 틈새 하나 보이지 않는 검붉은 나무 표면 위로, 빗물이 스며들어 번들거리는 기름 같은 광택만을 남겼다.

우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어깨에서부터 손끝까지 완전히 얼어붙어 서리가 가얗게 앉은 팔은 아무런 감각도 전하지 않았다. 심장이 멈춘 가슴속에서는 오직 차갑게 가라앉은 고요만이 웅성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귓가를 때리는 빗소리 너머, 바닥 밑바닥에서 고막을 찌르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우진의 눈꼬리에서 맑은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심장이 멎고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일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이 지르는 단 한마디의 비명에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공감이 뇌수를 흔들었다. 이 지독하고 기괴한 불균형이 우진의 영혼을 채찍질했다.

"밑이군."

우진은 주저 없이 품에서 낡고 해진 가죽 장부, ‘명부장부’를 꺼내 들었다. 굳어 버린 왼손 대신 오른손 손가락 끝으로 장부의 가죽 표지를 거칠게 쓸었다. 장부가 그의 손가락 끝에 맺힌 핏방울을 빨아들이며 미세하게 진동했다.

우화각의 내부 도면이 머릿속에서 입체적인 회색 선으로 그려졌다. 대청마루 바로 아래, 구한말의 습한 흙바닥과 서양식 석조 기초가 기괴하게 뒤엉킨 지하 객실의 경계가 보였다. 그곳은 인간의 살과 뼈를 으깨어 거름으로 삼는 고택의 거대한 위장이나 다름없었다.

우진은 대청마루 구석, 나무판자가 삭아 발을 디디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모퉁이로 걸어갔다. 망설임은 사치였다. 그는 얼어붙지 않은 오른발에 무게를 실어 썩은 판자를 강하게 내리밟았다.

쿠득, 콰직!

나무가 비명을 지르며 쪼개졌고, 그 아래로 아가리를 벌린 칠흑 같은 어둠이 우진의 신체를 집어삼켰다.

허공을 가르는 추락은 짧았다. 떨어지는 순간에도 우진은 신음을 내지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차가워진 그의 신체는 바닥에 부딪치는 충격조차 무력한 진동으로 흘려보냈다. 툭, 하고 축축한 흙바닥에 내려앉은 우진의 코끝으로 피비린내와 곰팡이 섞인 습기가 훅 끼쳐 왔다.

"……왔네? 생각보다 발걸음이 가벼운걸."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진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기이할 정도로 넓은 지하 객실이었다. 천장에는 조선 시대 사대부 가문의 안방에서나 볼 법한 붉은 단청 서까래가 걸려 있었지만,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중세 유럽의 감옥을 연상시키는 거칠고 차가운 화강암 석조 기둥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기괴한 혼종. 우화각이 지닌 모순적인 공간의 일면이었다.

그 석조건물 벽면에 서율이 묶여 있었다. 벽에서 뻗어 나온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손들이 그녀의 양팔과 다리, 그리고 목덜미를 거미줄처럼 옭아매고 있었다. 살가죽을 파고드는 손가락들이 지독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음에도, 서율은 특유의 서늘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고개를 까딱였다.

"여기 인테리어가 아주 한옥과 고딕의 최악의 혼종이네. 유학 간 도편수가 가위에 눌려서 지은 게 틀림없어. 가구 배치도 엉망이고, 무엇보다 이 강제 스킨십을 시도하는 손님들이 너무 무례하잖아?"

"농담을 할 여유가 있군."

우진이 무감각하게 대꾸하며 장부를 펼쳤다. 장부의 백지 위로 붉은 먹선들이 스스로 글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여유? 천만에. 뼈마디가 시려서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소리를 지르면 이 손가락들이 목구멍 안으로 들어올 것 같아서 참는 거야. 머리를 써서 계산해 봐, 우진 씨. 나를 여기서 꺼내는 게 당신 사업에도 이득일 텐데?"

서율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우진을 꿰뚫었다. 그녀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철저하게 자신과 우진의 손익분기점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 방 반대편의 어두운 구석에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살려줘! 제발, 제발 나 좀 살려줘!"

진흙과 먼지로 범벅이 된 남자가 석조 기둥 밑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인 한솔이었다. 그는 우진과 서율보다 먼저 이 지하에 떨어졌던 모양인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그의 발밑에는 거무스름한 진흙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고, 부패한 살덩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우진의 시야에 들어온 장부의 페이지 위로 차가운 숫자들이 명멸했다.

[대상: 한솔] [카르마 부채: 측정 불가 (잠재적 폭발 위험)] [현재 원한 채권 보유자: 우화각 지하의 원귀들]

"저 한솔이라는 친구, 아까부터 혼자 벽을 보고 중얼거리더라고."

서율이 눈짓으로 한솔을 가리켰다.

"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천장에서 목소리가 들렸어. '죄를 고백하라, 그러면 고통이 멈추리라'고 말이지. 참 유치한 장치잖아? 그런데 저 바보는 눈이 뒤집혀서 정말로 자기 고백을 시작하려고 해."

우진은 장부에 기록된 고택의 숨겨진 규칙, 즉 '죄인의 십조율'의 한 구절을 읽어 내려갔다.

"십조율 제삼조."

우진의 목소리가 지하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가라앉았다.

"스스로 죄를 자백하는 자는 죄책감의 연료를 고택에 제공한다. 자백이 완료되는 순간, 살인 트랩의 유도 타깃은 고백한 죄인에게 완전 고정된다."

"무슨 소리야? 자백하면 살려주는 게 아니었어?!"

한솔이 핏발 선 눈으로 우진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는 게 아니다."

우진이 장부를 든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고택은 공증인(公證人)일 뿐이다. 피해자의 원한이라는 채권을 합법적으로 회수할 수 있도록, 채무자의 신원을 확실하게 특정해 주는 조치지. 네가 입을 여는 순간, 너를 찢어 죽이려는 원귀들에게 합법적인 집행 권한이 부여된다. 타깃이 너에게 고정되면, 다른 생존자들은 일시적으로 사냥 대상에서 제외되겠지만…… 너는 뼈 한 조각도 남지 않겠지."

"그, 그럴 리가 없어! 거짓말하지 마! 날 속여서 제물로 바치려는 거지?!"

한솔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진흙 속에서 창백한 손가락들이 솟아올라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살가죽을 조여 오는 압박감에 한솔의 이성이 완전히 붕괴했다.

"내가 말할게! 말하면 되잖아! 내가 그랬어! 3년 전에 그 공사장에서 자재 빼돌리고 안전 점검 서류 조작한 거, 그거 다 내가 한 짓이야! 인부 두 명이 깔려 죽었을 때도 난 소장한테 돈 찔러주고 도망쳤다고! 내 잘못이 아냐! 난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아."

서율이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멍청이가 결국 도장을 찍었네."

한솔의 입에서 자백이 흘러나오는 순간, 고택 전체가 기분 나쁜 울림을 내며 요동쳤다. 지하 객실의 허공에 붉은색 검댕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기이한 숫자들이 허공에 낙인처럼 찍혔다.

[채무자 한솔, 자백 완료.] [원한 부채 발생 가치: 350,000 카르마] [집행 대기 중…….]

서율을 묶고 있던 창백한 손가락들이 일제히 멈칫했다. 원귀들의 시선이, 아니, 우화각의 본질적인 살의가 서율에게서 한솔에게로 급격히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진의 두 눈이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번뜩였다. 그의 입가에 희미하고 기괴한 호선이 그려졌다. 타인의 공포에 공감해 눈물을 흘리면서도, 머릿속은 철저하게 채무의 이행과 상쇄를 계산하는 회계사의 눈빛이었다.

"서율."

"응?"

"당신의 카르마를 담보로 쓰겠다고 했지."

"물론. 하지만 이율은 낮게 책정해 줬으면 좋겠는데."

우진은 황천의 장부를 크게 펼쳤다. 장부의 빈 면에 그의 멈춰 버린 심장 부근에서 흘러나온 극도의 냉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우진의 왼팔에 이어 가슴팍까지 푸르스름한 성에가 끼며 굳어 가기 시작했다. 맥박이 완전히 정지한 육체가 영하의 동결로 비명을 질렀다. 영혼의 일부가 깎여 나가는 지독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흘렀지만, 우진의 표정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장부 조율을 시작한다."

우진이 오른손 손가락으로 장부 위의 숫자를 긋고, 그것을 한솔의 이름을 향해 가져갔다.

"이전 등기(移轉登記). 채무자 한솔의 자백으로 발생한 '원한 부채 350,000 카르마'를 담보 자산으로 압류한다. 이 담보의 가치로 서율이 지고 있던 '우화각 침입 및 불법 체류 부채'를 즉각 상쇄한다. 채권의 이행 대상을 한솔로 일괄 이전한다."

파지직!

공기 중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기괴한 소음이 울렸다.

서율을 묶고 있던 창백한 손들이 비명을 지르듯 뒤틀렸다. 손가락들이 서율의 살가죽에서 떨어져 나가며, 마치 불에 달구어진 쇠붙이를 만진 것처럼 연기를 피워 올렸다.

"앗……!"

서율의 신체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녀는 가볍게 낙법을 치며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목덜미와 손목에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지만, 그녀는 아프다는 기색 없이 목을 가볍게 돌렸다.

"완벽한 거래네. 남의 죄로 내 목숨 값을 치르다니. 우진 씨, 당신 꽤 악취미야."

"비열하게 숨어 숨 쉬던 자의 죗값이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냈을 뿐."

우진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시선은 이제 석조 기둥에 묶여 절규하는 한솔에게 향해 있었다. 서율을 풀어준 창백한 손들과 진흙 속에서 뿜어져 나온 수십 개의 손가락들이 이제 오직 한솔만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살려줘! 우진 씨! 서율 씨! 제발 나 좀 꺼내줘! 으아아아악!"

한솔의 다리가 진흙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창백한 손가락들이 그의 살점을 파고들고, 그의 눈과 입으로 검은 진흙이 밀려 들어갔다. 자백의 대가는 참혹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만큼의 원한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며 우화각의 밑바닥으로 침전해 갔다.

우진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눈을 감지 않았다.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한솔의 고통에 반응하는 신체적 공감이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이미 서율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가자. 여기는 이제 곧 청산된다."

"동감이야. 더 있다가는 저 진흙에 발이 더러워지겠어."

서율이 우진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런데 마강현 그 늙은이는 어디 간 거지? 아까 대청마루에서 떨어질 때 보이지 않던데."

우진은 대답 대신 장부를 품에 넣었다.

마강현이 입고 있던 옷깃 뒤로 얼핏 보였던 붉은 진흙 부적이 떠올랐다. 백일홍과의 은밀한 무효 계약 유물. 그가 우화각의 트랩 속에서도 기묘한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부적에 있었다. 하지만 그 계약 역시 결국은 부채의 일종일 뿐이다. 조만간 그 부적의 가치 역시 장부의 수지타산 위에서 갈기갈기 찢기게 되리라.

지하 객실을 벗어나기 위해 계단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칙- 치익-.

머리 위, 단청이 칠해진 서까래 구석에 매달려 있던 녹슨 구리 구식 확성기에서 찢어지는 듯한 하울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빗소리를 뚫고 흘러나온 것은, 기분 나쁠 정도로 인자하고 경건한 목소리였다.

- 아, 아. 들리십니까? 길 잃은 어린 양들이여.

마강현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는 지하 객실뿐만 아니라, 우화각 전체에 설치된 모든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방금 전, 또 한 명의 가련한 영혼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한솔 형제님이 귀신들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지는 비극이 일어났군요. 하지만 여러분,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속지 마십시오.

마강현의 목소리에는 광신적인 확신과 교묘한 선동의 힘이 실려 있었다.

- 저는 보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숨어 있는 진짜 악마를. 그 자는 가죽 장부를 들고 다니며 귀신들과 은밀한 거래를 나누고 있습니다. 귀신들의 살의를 조율하고, 무고한 우리 생존자들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 자신의 수명을 늘리고 있는 배후.

우진과 서율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 연우진. 바로 그 자가 이 우화각의 진정한 설계자이자, 귀신들을 부려 우리를 사냥하는 살인마입니다! 그 자가 여러분에게 접근한다면, 지체 없이 그를 처단해야만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그 악마의 목을 바치십시오!

스피커 너머로 마강현의 가증스러운 숨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폭우가 우화각의 지붕을 뚫을 듯 거세게 몰아치는 밤.

지하의 차가운 어둠 속에서, 서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기묘한 긴장감과 흥미가 동시에 일렁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서율이 낮게 속삭였다.

"당신,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었어. 이제 이 고택에 남은 생존자들은 살기 위해 당신의 목을 노릴 텐데…… 어떻게 할 거야, 우진 씨?"

우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멈춰 버린 심장 위로 가만히 손을 올렸을 뿐이었다. 장부 뒷장에 숨겨진 미세한 먹선, '연대채무 보증'의 테두리 수식이 그의 손끝에서 차갑게 요동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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