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걱거리는 얼음의 소리는 귓바퀴를 타고 뇌척수액까지 차갑게 얼려 버릴 듯 집요했다.
왼손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된 동결은 이미 손목을 지나 팔꿈치, 그리고 어깨죽지 너머 심장 가장자리까지 서리발을 뻗치고 있었다. 피부는 짓이겨진 백자(白瓷)처럼 푸르스름한 균열을 그리며 갈라졌고, 그 틈새로 붉은 피 대신 단단하게 굳은 결정들이 돋아났다. 심장은 진즉에 그 박동을 멈추었다. 갈비뼈 아래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직 한 치의 온기도 허락하지 않는 절대적인 영도의 정적뿐이었다.
그러나 죽음의 심연보다 더 잔인한 것은, 이 끔찍한 파멸의 감각 속에서도 신경망이 기괴할 정도로 명 또렷하게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경고: 설계자 '백일홍'과의 연대 보증 거래가 감지되었습니다.] [계약 조항의 불균형 발생. 채무자의 자산(수명)이 부족하여 거래 잔액이 마이너스로 돌아섭니다.] [10초 뒤, 부족한 잔액만큼 소유자의 영혼 전체가 우화각의 영혼의 불씨로 즉시 강제 청구됩니다.]
망막 위에 핏빛으로 떠오른 명부장부의 경고는 잔인한 초읽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구(9). 팔(8). 칠(7).
바로 그 순간이었다. 1층 다락의 삐걱거리는 나무 틈새, 썩은 내가 진동하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아사귀들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흉포한 원귀였다. 굶주림으로 턱관절이 기괴하게 늘어난 놈의 입술 사이로 누런 이빨들이 드러났다. 놈은 백일홍에게로 채권이 이전되는 그 찰나의 괴리를 놓치지 않았다. 장부의 임시 거래 한도를 초과한 연우진의 생명력이 붉은 노을처럼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살아 있는 고기……! 영혼이 찢기기 전에, 배를 채워야 한다!]
귀를 찢는 비명과 함께 원귀가 우진의 얼굴을 향해 손톱을 치켜세웠다. 썩은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 끝이 허공에 호선을 그리며 하강했다.
"우진 씨, 피해!"
서율의 다급한 외침이 귀청을 때렸지만, 우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왼팔은 이미 감각이 소실되었고, 오른쪽 손가락 끝만이 겨우 장부의 가죽 표지를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진의 눈동자만큼은 사막의 해골처럼 건조하고 맑았다. 자신의 육신이 갈기갈기 찢기기 직전의 순간이었음에도, 그의 내면에는 그 어떤 공포나 전율도 일지 않았다. 극단적인 감정 불감증은 이 순간 그를 완벽한 기계로 만들었다.
3초.
우진은 오른손 끝을 까딱여 명부장부의 책장을 거칠게 넘겼다. 잉크가 아닌, 자신의 목구멍에서 역류해 나온 검붉은 혈액이 장부의 여백을 빠르게 적셨다. 글씨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꿈틀대며 원귀의 이마에 새겨진 카르마의 흔적을 추적했다.
"계산해 보지."
우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성대를 긁는 쇳소리에 가까웠다.
"우화각의 법도에 따르면, 모든 망자는 고택의 지반을 이루는 황천의 음기를 빌려 쓰며 그 대가로 매 순간 카르마를 지불해야 한다. 네놈이 이 1층 다락에서 백 년 동안 썩어 자빠져 있으면서, 산 자를 겁박하기 위해 소모한 음기의 총량은 얼마지?"
원귀의 썩은 손톱이 우진의 코끝에서 단 1인치를 남겨두고 멈추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회계의 사슬이 원귀의 온몸을 옭아맨 것처럼, 공중에서 사지가 비틀린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우화각 원귀들의 살의는 공짜가 아니야."
우진은 피가 묻은 검지손가락으로 장부의 한 구절을 강하게 그어 내렸다.
"너희는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고택의 설계자인 백일홍의 악의를 담보로 제공받아, 그 신용 대출을 통해 살의를 부리고 있을 뿐이지. 하지만 대출에는 반드시 이자가 따르는 법."
장부의 페이지가 백색의 안개를 뿜어내며 어둡게 빛나기 시작했다. 장부 위에 떠오른 숫자들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원귀의 머리 위로 수치화된 쇠사슬을 형성했다.
[원귀 '다락의 아사귀' 누적 채무 상세] - 차입 자산: 우화각 1층 음기 원천 자산 (백 년간 무단 점유) - 소모 비용: 산 자를 향한 살의 구현 비용 (회당 카르마 50P) - 연체 이자율: 복리 120% (우화각 특수 징수 조항 적용) - 현재 총 부채: 카르마 84,000P
"너는 방금 나를 공격하기 위해 거래 한도를 초과하는 음기를 추가로 대출받았다. 하지만 네가 가진 담보물, 즉 '원한의 순도'는 이미 백 년의 세월 동안 희석되어 바닥을 드러냈지."
우진의 메마른 미소가 원귀의 일그러진 안면에 닿았다.
"신용 등급 하락. 담보 가치 제로. 따라서 네놈은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은, 완벽한 파산 상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원한으로 움직이는 원귀다! 어떤 율법도 나를 가둘 수 없……!]
"가둘 수 없다면, 청구하겠다."
우진이 장부의 모서리를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그 순간, 원귀의 온몸에서 검은 기름 같은 연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놈이 백 년 동안 쌓아 올린 원한의 총량이자, 고택의 힘을 빌려 쓰던 인과의 연료였다. 장부의 엄격한 회계 수식에 의해 원한의 채권이 강제로 부실화되자, 우화각의 시스템 자체가 원귀의 존재 자체를 '불량 채권'으로 규정하고 회수에 들어간 것이다.
바닥에서 돋아난 무형의 검은 손들이 원귀의 다리를 붙잡고 아래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퇴마의 주술도, 성스러운 빛도 없었다. 오직 이자가 연체되었다는 지극히 차갑고 가차 없는 인과의 독촉만이 초자연적인 괴물을 서서히 해체해 가고 있었다.
[아아아악! 백일홍 님! 백일홍 님! 살려 주십시오! 제 영혼을…… 제 원한을 거두지 마십시오!]
원귀는 우진을 향해 뻗었던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파산 선고를 받은 자산에 회생의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놈의 신체가 먼지처럼 바스러지며 장부의 빈티지한 가죽 표지 속으로 흡수되어 들어갔다.
[수납 완료: 불량 원귀 자산 강제 매각 및 청산.] [획득 자산: 카르마 120,000P (원귀의 영혼 파편 가치 환산)] [연대 보증 채무 일시 상환 완료. 소유자의 잔액이 플러스로 전환됩니다.] [영혼 강제 청구 보류. 동결 상태가 1단계로 완화됩니다.]
"하아……."
우진의 입에서 짙은 얼음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멈추었던 심장이 기적처럼 단 한 번, 쿵 하고 무겁게 요동쳤다. 얼어붙었던 왼팔의 상단부에 미약하게나마 온기가 돌아왔지만, 여전히 팔꿈치 아래는 대리석처럼 딱딱하고 차가웠다.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파산을 면하고 하루의 유예 기간을 벌었을 뿐이다.
그 기괴한 광경을 대청마루 구석에서 지켜보던 마강현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스스로를 징벌 성인이라 칭하며 생존자들의 죄를 심판하려 들던 자였다. 늘 자애롭고 위엄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가식적인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마강현은 우진의 발치에 떨어진 장부와, 방금 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원귀의 잔해를 번갈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성스러운 기적이 아니군."
마강현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낮게 읊조렸다. 그의 손가락이 가슴팍의 십자가를 만지작거렸지만, 우진의 예리한 시선은 그의 시선이 머무는 다른 곳을 향했다.
마강현의 깃이 높은 사제복 안쪽, 밖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옷깃 뒤편에 붉은 진흙이 묻은 묘한 종이 부적이 슬쩍 비쳤다. 그것은 고택의 음기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이고도 음침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마치 백일홍과의 은밀한 무효 계약을 증명하는 유물처럼, 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돌았다가 사라졌다.
'저것이 마강현이 이 지옥 같은 우화각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원천인가.'
우진은 마음속 깊은 곳에 그 부적의 형태를 각인해 두었다. 지금 당장 저것을 빼앗을 수는 없지만, 마강현의 가식을 무너뜨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임은 분명했다.
"기적 같은 건 관심 없습니다."
우진은 바닥을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왼팔은 여전히 쓸모없는 막대기처럼 옆구리에 매달려 있었다. 타인의 비명에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동조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망가진 육체에는 기괴할 정도로 태연한 우진의 태도에 마강현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서율이 피식 웃으며 우진의 곁으로 걸어왔다.
"와, 정말 대단하네. 귀신한테 이자 독촉을 해서 파산시키는 회계사라니. 내 평생 온갖 대기업 비밀을 훔치고 장부를 조작해 봤지만, 저승 장부까지 주무르는 인간은 처음 봐."
서율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우진의 얼어붙은 어깨를 툭 쳤다.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을 텐데도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넉살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차가운 계산기와 같은 이성이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우진 씨, 제안 하나 할까?"
"제안?"
"나 말이야, 밖에서는 꽤 잘나가는 산업 스파이였거든. 사람 심리 읽고 손익분기점 계산하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라는 뜻이지. 이 우화각이라는 장소, 보아하니 인간들의 죄책감이랑 불신을 먹고 자라는 모양인데……."
서율이 목소리를 낮추며 우진의 귀에 속삭였다.
"이왕 여기서 개죽음당해 파산할 바에야, 차라리 그 괴상한 장부에 내 인생을 통째로 베팅하는 게 낫겠어. 내가 당신의 머리가 되어 줄 테니, 나를 우화각에서 살려 내보내 줘. 내 신분 세탁과 생존을 보장해 준다면, 당신의 그 '장부 거래'에 기꺼이 내 카르마를 투자해 줄 수도 있으니까."
그녀는 고압적이면서도 어딘가 유쾌한 어조로 아군을 자청했다. 겉으로는 가볍게 농담을 던지는 듯했지만, 우진은 그녀가 진심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선택을 내렸음을 직감했다.
"후회할 텐데."
우진이 무감각하게 대꾸했다.
"내 장부와 거래하는 자는 영혼까지 채무의 담보로 잡히게 된다."
"어머, 무서워라. 하지만 이미 내 영혼은 과거에 자살한 내 동료들한테 저당 잡힌 상태거든. 이판사판이지 뭐."
서율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기묘한 신뢰의 동맹이 맺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화각은 생존자들에게 숨 돌릴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쿠르릉!
고택 전체가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쳤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떨어져 내리고, 벽면에 걸린 초상화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듯 뒤틀렸다. 아사귀가 소멸한 자리에 남은 거무스름한 기운이 바닥 타일로 스며들자, 대청마루의 낡은 목조 바닥이 비정상적인 액체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야?!"
서율의 발밑이 순식간에 진흙탕처럼 흐물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나무 바닥이 갈라진 틈새, 그 어두운 심연 속에서 수십 개의 창백하고 뼈만 남은 손들이 분수처럼 뻗어 나왔다. 그것들은 굶주린 뱀들처럼 서율의 발목과 종아리를 거칠게 감싸 쥐었다.
"우진 씨! 잡아……!"
서율의 비명과 동시에, 그녀의 신체가 순식간에 바닥 밑 어둠 속으로 강하게 잡아끌려 내려갔다. 우진이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가락 끝은 오직 차가운 허공만을 움켜쥐었을 뿐이었다.
쿵!
뒤틀렸던 바닥 타일이 거짓말처럼 다시 단단하게 닫히며, 서율의 존재를 삼켜 버렸다. 대청마루에는 오직 거친 빗소리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웃음소리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