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우화각(羽化閣)의 가파른 기와지붕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폭우는 고택 주위를 둘러싼 숲을 삼켜버렸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고립된 한옥의 대들보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신음하듯 삐걱거렸다. 썩은 가죽 냄새와 눅눅한 흙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대청마루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쿵.
두꺼운 참나무 문이 안쪽에서부터 완전히 잠기는 소리와 함께, 사방의 창문이 일제히 닫혔다. 쇠붙이가 맞물리는 불길한 마찰음이 들린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어깨를 가늘게 떨며 뒤를 돌아보던 사내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대청마루 한가운데, 천장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쇠사슬에 매달린 채 허공에 떠 있는 것은 시커멓게 녹슨 도끼였다. 성인 남성의 몸통만 한 날을 가진 거대한 참수 도끼가 삐걱거리는 사슬 소리를 내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도끼날 끝에는 채 마르지 않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것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마다 지독한 비린내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문이 안 열려! 야, 이 새끼들아! 문 열어!"
삼류 건달처럼 보이는 남자가 문고리를 잡고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손톱이 깨져 피가 흐르는데도 그는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머리 위, 텅 빈 천장의 들보 사이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스며 나왔다. 그것은 한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수십 명의 어린아이와 노인이 동시에 한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한, 고막을 축축하게 적시는 기괴한 환청이었다.
[죄인의 십조율(十罪律)이 시작되었으니, 첫 번째 계율을 봉독하노라.]
낙찰(落札)을 알리는 망치 소리 같은 파열음이 허공에서 울렸다.
[의심하는 자의 목을 베고, 두려워하는 자의 피를 마시리라. 너희의 공포가 깊어질수록, 도끼의 낙하는 멈추지 않으리라.]
그 순간, 쇠사슬이 풀리는 날카로운 굉음이 고택을 흔들었다.
스르릉!
참수 도끼가 가파른 궤적을 그리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사나웠다. 도끼의 낙하 속도는 평범한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았다. 문을 두들기던 남자가 악을 쓰며 바닥에 주저앉자, 도끼는 마치 그의 공포를 동력으로 삼은 것처럼 한층 더 빠른 속도로 궤도를 수정하며 내려앉았다.
"히익! 으아아악!"
남자의 바지춤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커질수록, 참수 도끼의 하강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공포가 방 안의 공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피했고, 서로를 밀쳐내며 조금이라도 도끼의 궤적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아수라장이 된 대청마루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연우진.
그는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처럼 고요했다. 그의 시선은 자신을 향해 사선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도끼날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동공에는 흔한 두려움의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의 무감각한 눈동자는 도끼의 궤적 너머, 허공에 일렁이는 기묘한 붉은색 파동을 쫓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안경을 쓴 사내, 서율이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우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미쳤어? 피하라고! 저게 안 보여?!"
서율의 손끝바람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철저히 계산적이고 냉혹해 보이던 서율조차 이 해명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는 생존을 위한 손익계산서를 두드리기 바빴지만, 도끼의 속도는 이미 인간의 반사신경을 초월해 있었다.
우진은 서율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그의 심장은 평온하게 뛰고 있었다. 분당 육십 회. 죽음이 코앞에 닥친 순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규칙적이고 건조한 고동이었다. 우진은 타인의 비명에는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공감을 느끼면서도, 정작 자신의 목이 날아가기 직전인 상황에서는 손목시계의 초침을 바라볼 정도로 무감각했다.
'저 사람의 공포가 도끼를 끌어당기고 있군.'
우진의 시선이 바닥에서 뒹구는 남자의 머리 위를 향했다.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안개가 참수 도끼를 감싸고 있는 사슬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인간의 죄책감과 공포가 고택의 살인 트랩을 움직이는 인과적 연료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우진의 시야 한구석에서 기묘한 목소리로 신을 찾으며 기도를 올리는 마강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강현은 짐짓 경건한 표정으로 십자가를 쥐고 있었으나, 우진의 눈은 그의 옷깃 뒤쪽,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붉은 진흙의 기운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고택의 저주로부터 자신만을 격리하는 은밀한 부적의 기운이었다.
'위선자 새끼.'
우진은 낮게 읊조렸다. 저들은 살기 위해 남을 밀쳐내고, 속이고, 기도라는 이름의 저주를 퍼붓고 있다. 우화각은 바로 그 추악한 감정들을 먹어 치우며 팽창하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도끼날이 우진의 머리 위 3미터 앞까지 내려앉았다.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비명이 고택 전체를 울렸다. 이대로라면 2초 뒤에 우진의 정수리부터 가슴팍까지가 두 동강이 날 터였다.
그 찰나의 순간, 우진의 눈앞에 세상의 모든 빛이 바래며 사물이 정지했다.
스스스스.
습한 동양화의 먹물이 번지듯, 허공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이내 조밀하게 뭉쳐지더니 한 권의 낡은 가죽 장부의 형태로 굳어졌다. 표지에는 기괴한 서체로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冥府帳簿 (명부장부)]
장부가 스스로 펼쳐졌다. 종이는 사람의 살가죽처럼 부드럽고 축축했으며, 그 위로 차가운 먹선이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기어 다니며 글자를 새겼다.
[채무자: 우화각 1층 다락의 원귀(怨鬼)] [채권: 죄인의 목숨 및 공포] [살의의 행사가치: 수명 100일 상당의 카르마]
우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비틀어졌다. 귀신의 살의조차 결국은 거래할 수 있는 가치에 불과했다. 퇴마? 신성한 힘? 그런 것은 필요 없다. 우진이 가진 무기는 철저한 회계학적 계산이었다. 귀신이 원하는 원한의 채권을 부실화하고 파산시키는 것. 그것이 그가 이 지옥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수명 100일이라."
우진이 장부의 여백에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의 손끝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종이 위에 스며들었다.
[거래 제안: 연우진의 수명 100일을 담보로 제공. 그 대가로 현 시간부로 집행 중인 '참수 도끼'의 살의 채권을 동결하고, 해당 트랩의 작동 권한을 일시적으로 압류함.]
장부가 붉은 빛을 뿜어내며 우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와 동시에 우진의 왼손끝에서부터 기괴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지독한 한기였다.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냉기가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올라와 손목을 적셨다. 맥박이 급격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그리고 이내 멈춰 섰다. 몸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입가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우진은 고통 속에서도 미소 지었다. 그의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끼이이이익—!
우진의 코끝에서 단 10센티미터 떨어진 허공에서, 그 거대한 참수 도끼가 단번에 멈춰 섰다.
엄청난 기세로 낙하하던 질량이 허공에 박힌 것처럼 고정된 것이다. 사슬은 여전히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지만, 도끼날은 더 이상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마치 시간 자체가 멈춘 것 같은 기괴한 광경이었다.
"……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기던 사내가 멍하니 눈을 떴다.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멈춰 버린 도끼와, 그 도끼날 바로 앞에 서서 태연하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우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우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왼손은 이미 시퍼렇게 죽어 있었고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가벼웠다. 그는 도끼날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겼다.
쨍—
맑은 쇳소리가 대청마루에 울려 퍼졌다.
"공포에 질려봐야 변하는 건 없어."
우진의 건조한 목소리가 동요하는 생존자들의 귀에 꽂혔다.
"소리를 지를수록 저 도끼는 더 빨리 떨어지지. 규칙은 간단해. 저것들은 우리의 두려움을 이자로 받아먹는 거니까. 하지만 이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채권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서율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우진의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우진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불가해한 기이현상을 '통제'했다는 사실만은 직감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서율의 물음에 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멈춰 선 도끼 너머, 천장의 어둠 속을 응시할 뿐이었다.
우진이 보여준 압도적인 침착함과 현상 통제 능력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공포를 경외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방금 전까지 죽음의 공포에 질려 울부짖던 자들이 이제는 우진의 눈치를 보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 마강현 또한 십자가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우진을 향해 이채로운 눈빛을 보냈다. 사태를 완전히 장악한 듯한 우진의 모습은 그 자체로 거대한 구원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장부의 거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윽……."
우진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왼손끝에서 시작된 동결이 손목을 넘어 팔꿈치까지 무서운 속도로 타고 올라왔다. 피부가 백지처럼 하얗게 질려갔고, 서리가 내린 것처럼 미세한 얼음 결정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멈춘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었다. 몸 내부의 장기들이 차갑게 식어가며 영혼의 일부가 뜯겨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게다가 상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르르르…….
1층 다락방의 썩어 문드러진 틈새에서,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검은 그림자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참수 도끼를 조종하던 단순한 트랩의 원귀가 아니었다. 고택 우화각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던, 한층 더 깊고 흉포한 악의를 품은 존재였다. 검은 그림자는 서서히 형체를 갖추더니, 붉게 충혈된 수십 개의 눈동자를 부릅뜨며 우진을 노려보았다.
[감히…… 거래의 한도를 넘어서는구나, 필멸자 놈이!]
피비린내 나는 폭풍과 함께,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개의 검은 손들이 우진의 목덜미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쇄도했다. 거래로 인해 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는 우진을 향해, 우화각의 진짜 지배자가 직접적인 살의를 드러낸 것이다.
검은 손들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는 마치 젖은 상복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처럼 축축하고 둔탁했다.
그것들이 우진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대청마루의 온도는 순식간에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엎드려 있던 생존자들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서리태처럼 뿜어져 나왔다. 목덜미를 감싸 쥐는 손가락들은 뼈만 남은 시체의 그것처럼 지독하게 차가웠고, 손톱 밑에서는 오래된 무덤 흙 냄새와 비린내가 풍겼다.
"우, 우진 씨!"
서율이 다급하게 외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이성적인 머리는 우진을 도와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본능은 이미 얼어붙은 채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서율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우진이 여기서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자신을 포함한 여기 있는 모두가 될 터였다.
목을 죄어오는 지독한 악력 속에서도, 우진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의 목뼈가 삐걱거리며 으스러지기 직전이었고, 기도는 막혀 숨을 쉴 수 없었다. 얼어붙은 왼팔에 이어 가슴팍까지 푸르스름한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심장은 이미 고동을 멈춘 지 오래였고, 폐부 깊은 곳까지 서리가 내려앉아 들이쉬는 숨조차 얼음 파편처럼 날카롭게 목구멍을 긁었다.
하지만 우진의 무감각한 눈동자는 오직 자신의 목을 죄는 아사귀(餓死鬼)의 형상만을 쫓고 있었다.
'아프군.'
육체가 파괴되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의 정신은 기묘할 정도로 차분했다. 마치 남의 몸이 부서지는 것을 구경하는 관찰자처럼, 그는 자신의 목덜미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얼어붙는 과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히려 그의 가슴을 찌른 것은 제 목숨의 위협이 아니었다. 구석에서 서로를 밀치며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조연들의 절규였다.
"살려줘! 제발 살려줘!" "엄마, 엄마……!"
그 추악하고도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우진의 고막을 때리는 순간, 그의 무감각했던 눈동자에서 왈칵 눈물이 흘러내렸다. 타인의 공포와 절망에는 이토록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동조하면서도, 정작 제 목이 꺾이기 직전인 상황에서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기괴한 이중성이었다.
우진은 눈물을 흘리며, 피가 묻은 오른손으로 허공에 뜬 '황천의 장부'를 강제로 거칠게 넘겼다.
스스스스슥!
가죽 장부의 종이들이 마찰하며 뼈가 갈리는 듯한 불길한 소리를 냈다.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지자, 붉은 먹선이 아사귀의 머리 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을 숫자로 환산해 내기 시작했다.
[조사 대상: 우화각 1층 다락의 아사귀(餓死鬼) 무리] [누적 원한 채권 총액: 카르마 4,500일 상당] [현재 청구 대상: 우화각의 생존자 전원]
우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차가운 입김 사이로 그의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틀렸어."
[……무엇이 틀렸다는 말이냐, 가당치 않은 제물 놈이!]
아사귀의 갈라진 목소리가 우진의 귓가를 직접 때렸다. 귀를 찢는 듯한 고음의 이명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우진은 핏물이 고인 눈으로 장부를 응시하며 속삭였다.
"너희가 굶어 죽은 원한의 채무자는 우리가 아니야. 이 고택을 짓고 너희를 가둔 백일홍이지. 권한도 없는 대리인에게 채무 이행을 독촉하는 건 불법 추심이다."
우진의 오른손가락이 장부의 한 구석을 강하게 내리눌렀다.
[이의 제기: 아사귀 무리의 원한 채권은 본래 우화각의 설계자인 '백일홍'에게 귀속되어야 마땅함. 피고인들의 죄책감을 담보로 한 강제 추심은 인과율 위반으로 판명.] [거래 제안: 아사귀의 채권을 '백일홍'의 가상 자산과 연대 보증으로 묶어 재조정함. 그 대가로 본 채무의 이행 기한을 강제 유예한다.]
장부의 종이가 미친 듯이 펄럭이며 황금색과 핏빛이 뒤섞인 기괴한 안개를 뿜어냈다.
그 순간, 우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쩍, 하고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멈춘 상태에서 무리하게 장부의 인과율을 왜곡한 부작용이었다. 그의 영혼 한구석이 뜯겨 나가며 고택의 어둠 속으로 강제 징수당하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아…… 윽!"
우진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 피는 바닥에 닿자마자 서걱거리며 붉은 얼음 조각으로 변했다.
그러나 장부의 절대적인 규칙은 작동했다.우진의 목을 조르던 검은 손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뒤로 강하게 잡아끌려 갔다. 아사귀의 눈동자들에 경악과 공포의 빛이 서렸다. 자신들이 가진 원한의 타깃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 '백일홍'에게로 강제로 이전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불경한 놈이……! 감히 그분의 이름을 장부에 적어 넣다니!]
아사귀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진의 목덜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목을 조르던 압박감이 사라지자 우진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왼팔은 이미 어깨까지 완전히 얼어붙어 대리석 조각처럼 변해 있었고, 입술은 핏기 하나 없이 푸르게 죽어 있었다. 체온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우진 씨!"
서율이 급히 다가와 우진의 어깨를 붙잡았으나, 손끝에 닿는 기괴한 냉기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떼었다. 사람이 아니라 얼음덩어리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우진은 바닥에 누운 채, 꺼져가는 시야 속에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상황을 모면한 기쁨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대하고 끔찍한 파멸의 징조가 우화각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대청마루 아래, 지하실 깊은 곳에서부터 고택 전체를 울리는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방금 전의 아사귀나 참수 도끼 따위와는 궤를 달리하는, 우화각의 본질적인 악의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동시에 우진의 눈앞에 떠 있는 황천의 장부 뒷면에서, 핏빛 글씨가 경고하듯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경고: 설계자 '백일홍'과의 연대 보증 거래가 감지되었습니다.] [계약 조항의 불균형 발생. 채무자의 자산(수명)이 부족하여 거래 잔액이 마이너스로 돌아섭니다.] [10초 뒤, 부족한 잔액만큼 소유자의 영혼 전체가 우화각의 영혼의 불씨로 즉시 강제 청구됩니다.]
"10초……."
우진은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였다. 심장은 뛰지 않았고, 몸은 마비되었으며, 지하실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거대하고 푸른 불꽃을 품은 그림자가 대청마루를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죽음이 코앞에 닥친 그 순간, 우진은 기괴할 정도로 맑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