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소음은 깊은 터널로 사라졌다. 태식은 먼지 쌓인 철문을 보았다. 자물쇠는 붉게 녹슬어 있었다. 그는 쇠지렛대를 틈에 밀어 넣었다. 체중을 실어 아래로 눌렀다. 콰직. 녹슨 쇠가 비명을 질렀다. 부러진 자물쇠가 바닥에 떨어졌다. 태식은 쇠지렛대를 가방에 넣었다. 그는 철문을 밀어 열었다. 끼이익. 쇠가 긁히는 소리가 길게 퍼졌다. 어둠이 밀려 나왔다. 축축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썩은 물 비린내가 진동했다. 태식은 손전등을 켰다. 가느다란 불빛이 어둠을 가른다. 바닥은 온통 젖어 있었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톡. 톡. 일정한 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이곳은 비개방 환승로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길이다. 태식은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말라붙었다. 딸이 사라진 그날 이후였다. 태식의 목적은 하나였다. 딸 예린을 찾는 것. 그리고 이 더러운 지하를 부수는 것. 바닥에 붉은 흔적이 보였다. 태식은 허리를 숙였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훑었다. 붉은 점액질이 묻어났다. 피가 아니었다. 더 기분 나쁜 점성이 느껴졌다. 그 옆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분홍색 머리끈이었다. 때가 타서 거뭇거뭇했다. 태식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뿐이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머리끈을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손전등을 비추었다. 통로는 아래로 길게 뻗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이었다. 양옆의 벽은 갈라져 있었다. 틈새로 검은 이끼가 자라났다. 태식은 벽을 짚으며 전진했다. 벽면의 감촉은 끈적거렸다.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졌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멈췄다. 이질적인 고요가 찾아왔다. 태식은 숨을 죽였다. 심장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스쳤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공기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터널 벽면에서 붉은 안개가 번졌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린내가 이전보다 훨씬 강했다. 태식은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군용 대검이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그는 주위를 경계했다. 사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스스스슥. 바닥을 쓰는 소리였다. 여러 개의 발소리가 뒤섞였다. 태식은 벽에 등을 붙였다. 손전등 불빛을 사방으로 돌렸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들이 나타났다. 붉게 충혈된 눈들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눈이 그를 조준했다.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형상을 잃은 존재들이다. 사지는 기괴하게 늘어져 있었다. 입은 귀밑까지 찢어져 있었다. 그 틈으로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침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지하 아귀들이었다. 살인마들이 숭배하는 괴물들이다. 놈들이 으르렁거렸다. 소리가 터널을 가득 채웠다. 태식은 침을 삼키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귀찮은 장애물일 뿐이었다. 태식은 대검을 고쳐 잡았다. 자세를 낮추었다. 가장 가까운 놈이 도약했다. 날카로운 손톱이 허공을 갈랐다. 태식은 옆으로 몸을 틀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그와 동시에 대검을 찔러 넣었다. 괴물의 목덜미에 칼날이 박혔다. 서걱.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괴물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태식은 뒤로 물러섰다. 벽면의 돌출부를 딛고 도약했다. 공중에서 다리를 뻗었다. 한 놈의 얼굴을 정확히 걷어찼다. 퍽.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괴물이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나 다른 놈의 손톱이 빨랐다. 태식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찌르르한 통증이 느껴졌다. 옷이 찢어지고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태식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는 대검을 휘둘러 놈을 밀어냈다. 상처는 깊지 않았다. 하지만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아귀들이 피 냄새를 맡았다. 놈들의 눈빛이 더 광포해졌다. 사방에서 포위망이 좁혀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막다른 길이었다. 태식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체력이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상처에서 흐른 피가 옷을 적셨다. 피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안주머니로도 흘러 들어갔다. 안주머니에는 가죽 수첩이 있었다. 형사 시절부터 쓰던 낡은 수첩이다. 예린이의 사진이 들어 있는 수첩. 피가 수첩의 가죽을 적셨다.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단순한 열기가 아니었다. 살을 태우는 듯한 극통이었다. 태식은 이를 악물었다. 허리를 숙이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수첩이 있는 곳에서 빛이 났다. 붉고 검은 불꽃이었다. 불꽃은 옷을 태우지 않았다. 대신 태식의 피부로 스며들었다. 머릿속이 깨질 듯이 아팠다. 기억의 조각들이 흔들렸다. 예린이와의 놀이공원 기억이다. 그 기억이 하얗게 바래갔다. 지워지고 있었다. 태식은 직감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이 사라진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대가가 치러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울렸다. [심연의 결산 장부가 개장합니다.] [소유주의 피와 기억을 담보합니다.] [채무 관계를 확인합니다.] 태식은 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은 더 이상 가죽이 아니었다. 검은 쇠 자물쇠가 채워진 책이었다. 표지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졌다. 그것은 스스로 스르륵 열렸다. 종이가 빠르게 넘어갔다. 넘어가는 소리가 철판을 긁는 듯했다. 눈앞에 반투명한 글자들이 떠올랐다. 글자들은 붉은색이었다. [대상: 지하 아귀 떼] [소유 지분: 지하도맹 80%] [죄악 채무: 무단 침입 및 살인 방조] [청산 강제 집행을 시작합니다.] 태식의 눈이 붉게 빛났다. 동시에 전신에 극심한 통증이 왔다. 모든 감각이 수십 배로 증폭됐다. 어깨의 상처가 불타는 것 같았다. 뼈마디가 뒤틀리는 고통이었다. 태식은 턱에 힘을 주었다.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물었다. 이것이 장부를 부르는 대가였다. 하지만 힘이 솟구쳤다. 그것은 이능의 힘이었다. 괴물들의 움직임이 느려 보였다. 그들의 공포가 눈에 보였다. 장부가 펼쳐지자 괴물들이 멈칫했다. 놈들은 뒤로 물러서려 했다.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태식이 차갑게 웃었다.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의 눈에는 오직 살기만 가득했다. "어딜 도망가나." 목소리는 쇠가 긁히는 듯했다. 태식은 장부를 굳게 쥐었다. 글자들이 더 붉게 타올랐다. [채무자들의 이능을 압류합니다.] [신체 강화 권능을 일시 회수합니다.] 그 순간 괴물들의 몸이 줄어들었다. 그들을 감싸던 붉은 안개가 걷혔다. 탄탄하던 근육이 흐물거렸다. 괴물들은 당황한 듯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엑. 소리는 날카롭고 유약했다. 약탈자가 사냥감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태식은 대검을 꽉 쥐었다. 그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지형은 좁은 통로였다. 괴물들은 뭉쳐 있었다. 태식은 쇠지렛대도 함께 꺼냈다. 왼손에는 쇠지렛대. 오른손에는 군용 대검. 그는 가장 가까운 놈에게 돌진했다. 쇠지렛대로 놈의 무릎을 내리쳤다. 콰직. 뼈가 완전히 박살 났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태식은 자비 없이 대검을 꽂았다. 정수리를 관통했다. 괴물은 즉사했다. 나머지 놈들이 뒤늦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힘이 빠진 상태였다. 그들의 손톱은 느리고 무뎠다. 태식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리고 회전하며 대검을 휘둘렀다. 가슴팍이 길게 갈라졌다.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태식의 뺨에 피가 묻었다. 그는 피를 닦지 않았다. 눈동자는 오직 다음 목표를 쫓았다. 터널 안은 도살장으로 변했다. 태식은 멈추지 않는 기계 같았다. 숨소리조차 일정했다. 고통은 지독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딸을 구하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 그 일념이 그를 지탱했다. 괴물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바닥은 검은 피로 한강을 이루었다. 마지막 남은 세 마리가 뒷걸음질 쳤다. 놈들의 눈에 가득한 것은 공포였다. 인간을 사냥하던 포식자들이었다. 이제는 사냥귀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태식은 장부를 높이 들었다. 장부의 페이지가 다시 넘어갔다. [죄악 지분 매입 완료.] [지하 아귀의 권능 '야간 투시'를 압류합니다.] 태식의 시야가 변했다. 어둠이 사라지고 사물이 선명해졌다. 손전등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는 손전등을 바닥에 던졌다. 투툭. 굴러가는 소리가 고요를 깨웠다. 태식은 대검의 피를 털어냈다. "남은 빚을 갚아야지." 그가 걸음을 옮겼다. 괴물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하지만 태식의 속도가 더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쇠지렛대가 허공을 갈랐다. 퍽. 하나가 벽에 처박혔다. 태식은 몸을 돌려 대검을 던졌다. 정확히 도망치던 놈의 등 뒤에 박혔다. 괴물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지막 한 마리가 머리를 조아렸다. 살려달라는 듯한 몸짓이었다. 태식은 그 앞에 섰다. 그는 괴물의 머리채를 잡았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리게 했다. 괴물의 눈에 비친 태식은 악마였다. 태식은 대검을 괴물의 목에 댔다. "예린이 어디 있어." 괴물은 말하지 못했다. 그저 끄르륵 소리만 낼 뿐이었다. 태식은 망설임 없이 칼을 그었다. 서걱. 마지막 괴물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터널은 다시 조용해졌다. 피비린내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태식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피가 너무 많이 흘렀다. 장부를 사용할 때의 부작용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벽에 기댔다. 벽에 대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장부는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 닫히지 않았다. 붉은 빛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태식은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냈다. 그것을 손에 꼭 쥐었다. 기억이 또 하나 흐려졌다. 예린이의 웃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목소리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배어 나왔다. 감정이 마모되는 고통은 육체보다 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 그때 터널 깊은 곳에서 소리가 났다. 무겁고 거대한 소리였다. 쿵. 쿵. 발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철제가 굴러오는 소리. 선로를 타고 전해지는 진동이었다. 바닥의 피가 미세하게 떨렸다. 태식은 고개를 들어 어둠을 보았다. 야간 투시 권능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더 깊은 어둠이 다가오고 있었다. 장부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페이지가 멋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붉은 글씨가 경고하듯 깜빡였다. [경고: 거대 채무자 접근 중.] [위험 등급: 측정 불가.] 태식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쇠지렛대를 다시 굳게 쥐었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거대한 불빛이 켜졌다. 그것은 열차의 전조등이 아니었다. 기괴하게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었다. 쇠사슬이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마의 울음소리가 터널을 뒤흔들었다. 태식은 벽을 등지고 장부를 펼쳤다. 그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빛났다. 아귀 괴물의 육신이 흔들렸다. 가혹한 채무가 정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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