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좌표 전송 완료율: 99.1%] [남은 시간: 2.1초]
붉은빛 경고가 막막한 시야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군화 밑에서 머리통이 짓눌린 흑영의 안구가 허옇게 뒤집힌 채 바르르 떨렸다. 놈의 뇌세포를 경유해 쉘터 하우스의 중심부로 짓쳐 들어오는 공간 좌표. 신무경이 쏘아 올린 멸망의 쐐기였다.
그것이 100%에 도달하는 순간, 태현이 그토록 갈구하던 철옹성은 흔적도 없이 공중 분해될 터였다.
"내 장부에 손실을 입히겠다고?"
태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척수를 타고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전신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듯한 날카로운 에러 통증이 뇌하수체를 강타했다. 골든핑거를 작동시킬 때마다 찾아오는 시스템 동기화율의 강제 하락 징후였다.
하지만 멈출 생각 따윈 없었다.
태현은 심장박동을 억누르며, 머릿속 장부의 가장 깊숙한 페이지를 단숨에 넘겼다.
과거 유진우의 기억 데이터에서 강제로 복사해 두었던 극비의 식별 코드가 그곳에 박혀 있었다.
[고유 식별 정보 분석 중...] [대상: 아크 연합 지배자 '신무경' 전용 백도어 접속 패시브] [식별 코드: 0x99_MK_MASTER_BYPASS]
유진우가 회귀 전에 목격했던, 오직 신무경만이 독립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절대 권한의 시스템 구멍이었다.
"백도어가 무조건 일방통행이라고 생각했나, 신무경?"
태현이 조소했다.
그는 흑영의 뇌세포망을 타고 흐르는 전송 신호의 한가운데로 손가락을 찔러 넣듯 마력을 밀어 올렸다. 복사해 둔 신무경의 고유 식별 코드가 태현의 손끝에서 푸른빛의 노이즈가 되어 폭발했다.
[시스템 백엔드 데이터 강제 왜곡 실행] [전송 경로의 IP 패킷 헤더 정보 변조를 시작합니다.]
[경고! 강제 왜곡 시 전신 마비 및 영구적 시스템 에러 발생 위험!] [현재 동기화율: 87.4% -> 82.1%]
뇌가 끓는 듯한 고열이 두개골을 채웠다. 입안에서 비린 핏물이 울컥 치밀었지만, 태현의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오직 허공의 로그 창만을 쫓았다.
좌표를 꺾어야 했다.
놈들이 쏘아 보낸 파괴의 궤적을 그대로 받아 치려면, 단순한 방어막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때, 태현의 머릿속으로 1화에서 백엔드 로그를 확인하던 중 수집해 두었던 기묘한 에러 코드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미확인 메모리 누수 버그.'
정의되지 않은 무한한 널(Null) 값의 쓰레기 데이터 더미였다. 그저 시스템 구석에 박혀 썩어가던 불량 코드를, 태현은 이 순간 거대한 굴절 렌즈로 가공해 냈다.
[특수 에러 코드 'NaN_Memory_Leak' 강제 호출] [전송 대기 상태의 공간 좌표 데이터에 누수 필터를 중첩합니다.]
동시에, 쉘터에 대기하고 있던 한설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무전기 너머로 그녀가 밤새 분석해 냈던 기밀 통계 자료의 수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태현 씨! 지금 쉘터 주변의 차원 불안정도가 극도로 치솟고 있어요! 한설아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던전 포털 주기의 72시간 불확실 붕괴 위험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임계점이에요! 지금 공간 좌표를 억지로 비틀면 주변 차원이 통째로 붕괴할 수 있어요! 안전 마진은 단 0.03%뿐입니다!
"안전 마진이 존재한다면, 그걸로 충분해."
태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한설아가 도출해 낸 72시간 붕괴 위험성의 정밀한 계산 식표가 태현의 머릿속에서 완벽한 궤도를 그렸다. 미지의 확률에 도박을 거는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통계적 수치를 바탕으로 차원의 틈새를 칼날처럼 가르는 기하학적 연산이었다.
[던전 포털 붕괴 주기 데이터 대입 완료] [안전 침로 확보율: 100%] [공간 좌표 강제 역치환 완료]
[공간 좌표 전송 완료율: 100%] [경로 리다이렉트 실행!]
파지직!
흑영의 머리통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번개가 일순간 푸른색의 역방향 스파크로 뒤틀렸다.
"꺼져라."
태현이 군화 굽으로 흑영의 머리를 완전히 깨부수었다.
그와 동시에, 전송 방향을 잃어버린 파괴의 광선이 쉘터 하우스를 비껴가 허공에서 실종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놈들이 보낸 파괴의 종착지가 다른 곳으로 지정되었다.
* * *
콰아아앙!
아크 연합의 중심부, 웅장하게 서 있던 대리석 제단실이 일순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주저앉았다.
"쿨럭! 커헉...!"
중앙 제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신무경이 피를 토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눈동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자신의 고유 백도어를 통해 쉘터 하우스의 좌표를 전송하고, 그곳을 차원 저편으로 날려버리려 했던 순간이었다.
정체불명의 해킹 코드가 백도어의 연결 고리를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놈이 보낸 파멸의 좌표가 고스란히 리다이렉트되어, 그가 서 있던 제단실 중앙에 그대로 내리꽂힌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어떻게 내 고유 식별 코드를...!"
신무경이 갈라진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의 상태창이 미친 듯이 깜빡이며 에러를 뿜어냈다.
[경고! 고유 백도어 접속 권한이 외부 해킹에 의해 일시적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사용자 가해율: 45% 누적] [경고! 아크 연방 본진 중앙 제단실의 물리적 고정 축이 붕괴합니다.]
쿠르릉!
천장이 무너지며 쏟아지는 돌덩이들이 신무경의 영웅적인 외장 갑주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단 한 번의 원격 역공으로 아크 연합의 최고 지배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개처럼 기어 다녔다.
그가 모아둔 마력 건전지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연방 본진의 절반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 * *
재앙 스퀘어의 초입.
피비린내 나는 마수들의 시체 더미 사이에서, 유진우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회귀를 거듭하며 그토록 두려워하고 경외했던 아크 연합의 황제, 신무경이었다.
한 번도 상처 입힐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절대적인 지배자가, 강태현이라는 남자의 손가락 끝 몇 번의 움직임으로 멀리서 피를 토하며 무너져 내렸다.
그 모든 과정에는 어설픈 도덕도, 눈물겨운 희생도 없었다.
오직 냉혹할 정도로 정확한 수치 계산과, 아군마저 도구로 활용하는 완벽한 장부식 통제만이 존재했다.
"내가... 틀렸어."
유진우의 무릎이 꺾였다.
그가 평생을 쫓아왔던 '모두를 구원하겠다'는 낭만적인 다짐이 얼마나 나약하고 기만적인 허상이었는지 똑똑히 깨달았다.
이 무자비한 멸망의 세계에서 진정으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주는, 위선자들의 아크 연합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이 비정하고도 완벽한 절대 군주, 강태현의 철옹성뿐이었다.
스슥.
유진우가 태현의 군화 발밑에 묵직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강태현 씨. 아니, 대장."
유진우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어설픈 영웅주의의 떨림이 없었다.
오직 절대적인 복종과 맹세만이 서려 있었다.
"저를 고기방패든, 장부상의 소모품이든 마음대로 쓰십시오. 오직 당신의 규칙 아래에서만 이 세계가 생존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태현은 조아린 유진우의 뒤통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야에 유진우의 상태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복종도: 100% (완전 군신 관계 성립)] [스탯 총합 대비 가성비: 극상(S)] [고기방패로서의 내구도: 측정 불가]
태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쓸데없는 감정을 버리니 이제야 장부상의 가치가 제대로 나오는군."
태현이 유진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일어나라. 네 가치는 앞으로 쉘터의 전방 방벽에서 증명하게 될 테니까."
[유진우의 패시브 '광휘의 인도자'가 쉘터 하우스 방어망에 연동됩니다.] [쉘터 하우스 물리 고정 강도: +150%]
그때였다.
하늘이 일순간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단순히 구름이 가린 것이 아니었다. 차원 자체가 거대한 가위에 잘려 나간 듯, 하늘 한가운데가 사각형 모양으로 찢어발겨졌다.
우우웅—!
귀를 찢는 기계적인 구동음과 함께, 찢어진 차원의 틈새로 거대한 은빛의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구체의 중앙에는 피처럼 붉게 번쩍이는 거대한 인공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그것이 천천히 회전하며 지상의 쉘터 하우스를 조준했다.
[시스템 백엔드 관리자 강림] [코드명: 앱실론 (Epsilon)]
[경고! 해당 구역에서 심각한 데이터 왜곡 및 변조 로그가 감지되었습니다.] [규격 외 불법 데이터 '쉘터 하우스'의 강제 포맷 프로세스를 시작합니다.]
기계적이고도 서늘한 인공 음성이 온 세계의 하늘을 울렸다.
붉은 눈동자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소멸의 안개가 지상을 향해 내려앉기 시작하는 순간.
태현은 주머니 속에서, 재앙 스퀘어 최하부에서 수집해 두었던 차가운 칩 하나를 매만졌다.
[시스템 포맷 코드 조각 (Format_Code_Fragment_v1.0)]
태현의 눈에 광기 어린 미소가 어렸다.
"청소기가 불량 고객의 집을 밀어버리겠다고?"
그가 칩을 허공으로 가볍게 던지며 중얼거렸다.
"어디 누가 먼저 포맷되는지 해보자고."
태현이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칩을 가볍게 튕겼다.
은빛 선을 그리며 날아간 칩이 공중에서 분해되며 수만 개의 데이터 스트림으로 화했다.
[아이템: '시스템 포맷 코드 조각' 활성화] [경고! 관리자 권한 데이터에 강제 인젝션(Injection)을 시도합니다.] [성공 확률: 12.4% (대상과의 동기화율 격차로 인해 페널티 발생)]
"확률이 너무 낮다고 징징대지 마라. 버그는 원래 틈새를 뚫는 거니까."
태현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그는 이 기형적인 세상을 움직이는 백엔드 시스템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앱실론이 관리자라 할지라도, 결국 이 조악하게 기워 맞춘 시스템 내부에서 구동되는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골든핑거 권능: '상태창 복사' 및 '백엔드 데이터 왜곡' 동시 개방] [대상의 데이터 구조를 강제로 복제합니다.]
콰아아아앙!
하늘의 붉은 눈동자에서 일직선으로 쏟아진 백색의 소멸 광선이 쉘터 하우스의 투명한 장벽과 충돌했다.
장벽 표면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지직거렸다.
물리 법칙을 코딩 수정해 완벽하게 고정해 두었던 성벽의 외곽 타일들이 순식간에 하얀 가루가 되어 증발했다.
"크윽...!"
장벽의 제어를 돕던 유진우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S급 패시브 '광휘의 인도자'가 하얗게 타오르며 소멸 광선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상대는 시스템 그 자체의 의지였다.
가성비 최상의 고기방패인 유진우의 스탯조차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고 있었다.
"대장...! 이대로는 장벽이... 30초도 못 버팁니다...!"
"버텨라. 네 가치를 증명하겠다고 한 게 1분 전이다."
태현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그는 오직 머릿속의 계산기를 굴릴 뿐이었다.
유진우의 생명력 수치가 15% 이하로 떨어지기 전, 앱실론의 백엔드 소스코드를 완전히 헤집어 놓아야 했다.
[백엔드 동기화율: 82.1% -> 76.5%] [치명적인 역류 통증 발생! 전신 신경망이 과부하 상태에 빠집니다.]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태현의 전신을 지배했다.
눈등에서 핏줄이 터져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귓가에는 고주파의 이명이 윙윙거렸지만, 그의 손가락은 허공의 상태창을 더 빠르게 난타했다.
[앱실론의 상태창 데이터 복사 완료] [접근 권한: ADMIN (강제 탈취 시도)]
"잡았다, 이 청소기 새끼."
태현이 피식 웃었다.
복사해 낸 앱실론의 상태창 내부, '초기화(Format)' 명령어가 구동되는 메모리 주소 상단에, 자신이 쥐고 있던 포맷 코드 조각을 강제로 끼워 넣었다.
이른바 버퍼 오버플로우(Buffer Overflow) 공격이었다.
[오류 발생! 시스템 스택 메모리 허용치 초과] [정의되지 않은 명령어 'Reverse_Format'이 감지되었습니다.] [실행 대상 재연산 중...]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은빛 구체가 기괴한 구동음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붉게 빛나던 인공 눈동자가 사정없이 점멸했다.
-경... 고... 대상... 지정... 오류... -포맷... 실행자... '앱실론'... 자신을... 소거... 합니... 다...?
"그렇지. 네 몸뚱이에 대고 직접 청소기를 돌려라."
태현이 소리쳤다.
앱실론의 외벽을 구성하던 은빛 금속판들이 스스로 붕괴하며 차원의 먼지로 화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시스템이 파견한 종말의 대행자가, 일개 플레이어의 해킹 공격에 스스로를 지워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앱실론 역시 순순히 사라질 존재가 아니었다.
[위험! 시스템 관리자의 자가 방어 프로토콜 작동] [로컬 서버의 강제 셧다운(Shutdown) 프로세스 개시] [남은 시간: 10초]
"이 새끼가 판을 통째로 엎으려고?"
태현의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앱실론은 자신을 포맷하려는 태현의 코드를 감지하자, 아예 지구 서버 자체의 전원을 꺼버리려 하고 있었다.
하늘이 유리창처럼 쩍쩍 갈라지며, 그 너머로 아무것도 없는 순수한 무(無)의 공간이 드러났다.
그 틈새로 들이치는 차원의 폭풍이 쉘터 하우스의 근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동기화율: 71.2%] [경고! 동기화율이 70%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영구적인 시스템 에러(뇌사)가 발생합니다.]
손가락 끝이 감각을 잃고 굳어갔다.
여기서 왜곡을 멈추고 연결을 끊으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쉘터 하우스는 반파될 것이고, 완벽한 안전 구역이라는 태현의 목표는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터였다.
"내 장부에 미수금 따윈 남기지 않는다."
태현이 이빨을 악물었다.
핏물이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번뜩였다.
그는 남은 마력과 정신력을 단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어, 포맷 완료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포맷 진행률: 98%... 99%...]
그리고 그 순간.
자가 방어 프로토콜의 마지막 반발로, 앱실론의 붉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흑색의 소멸 창이 태현의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짓쳐 들었다.
장벽을 뚫고 들어오는,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죽음의 궤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