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모든 각성자는 하수 등급 전원이 즉시 자원 입대를 대기하라. 불응 시 아크의 적으로 간주하여 현장에서 즉결 처분한다."
영토 바깥 경계선에 놓인 구식 무전기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아크 연합 산하 절대 사냥꾼 군대의 소대장, 강비룡의 폭압적인 선언이 골목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동시에 머리 위를 조준한 선발대의 붉은 레이저 포인터가 강태현의 이마 위에서 가늘게 흔들렸다.
"태현 씨, 저놈들 아크의 정예 부대입니다. 이 인원들을 데리고 정면 돌파는 불가능해요!"
유진우가 대검의 자루를 꽉 쥐며 이를 갈았다. 그의 손등에 핏줄이 돋아났다.
"가만히 있어."
태현의 목소리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떨리는 난민들의 스탯 창을 장부 보듯 훑어보았을 뿐이다.
"움직이면 쏜다!"
선발대 대장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마력 소총의 총구가 푸른빛으로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고농축 마력탄이 뿜어져 나올 기세였다.
태현의 시선이 선발대 너머, 골목 끝자락에 찢어진 공간의 틈새로 향했다.
그곳에는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아크의 전용 이동 포털이 붉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한설아.'
태현의 턱끝짓에 설아가 품에서 낡은 가죽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녀가 수년간 고장 난 상태창을 독자 연구해 작성한 '던전 포털 주기의 72시간 불확실 붕괴 위험성' 기밀 통계 자료였다.
"태현 씨, 정확히 47초 뒤입니다. 포털 내부의 차원 압력이 극점에 달하는 임계 시간대예요."
설아의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오차가 발생할 확률은?"
"0.01% 이하입니다. 제 통계는 틀리지 않아요."
태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사냥꾼들의 발밑을 지탱하는 물리적 토양 축은 이미 미세하게 비틀려 있었다.
일반적인 각성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백엔드 단의 치명적인 균열이었다.
쾅!
그때 골목 저편의 포털이 거대하게 확장되며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거구에 붉은 가죽 갑옷을 걸친 사내. 아크의 절대 사냥꾼 소대장, 강비룡이었다.
"쥐새끼들이 모여서 소꿉장난이라도 하고 있었나?"
강비룡이 대지를 짓누르는 기운을 내뿜으며 전진했다.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스팔트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강태현. 네놈이 감히 아크의 자원을 빼돌리고 도망치려 했다지?"
강비룡이 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에 붉은 대지 격화 마법의 마력령이 휘감겼다.
그가 검을 내리꽂으면 이 일대의 대지가 폭발하며 태현 일행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터였다.
"자원이라. 장부 정리도 안 된 쓰레기 더미를 자원이라 부르나?"
태현이 조용히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그의 안구 뒤편으로 무수한 코드 스트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시스템 백엔드 로그에 접근합니다.] [1화에서 검출된 '미확인 메모리 누수 버그(Null Pointer Exception)' 코드를 호출합니다.] [좌표: X-344, Y-891, Z-120 (강비룡 소대 발밑)]
이것은 1화에서 길드장 박민우에게 배신당해 죽기 직전, 시스템의 백엔드를 뒤지다 발견해 두었던 치명적인 메모리 누수 버그였다.
아무도 손대지 못해 방치되어 있던 시스템의 썩은 고름.
태현은 이 버그 코드를 한설아가 계산해 낸 '72시간 불확실 붕괴 포털'의 좌표와 정확히 동기화시켰다.
[경고! 동기화율 일시 저하 발생!] [전신에 가해지는 시스템 에러 부하율: 12%]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찌릿한 통증이 뇌를 찔렀다.
하지만 태현은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볍게 두드렸다. 키보드를 툭 치며 버그 코드를 실행하듯이.
"죽어라, 벌레 같은 놈들!"
강비룡이 대검을 대지에 내리꽂으려던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
대지가 격화되기는커녕, 사냥꾼들이 딛고 서 있던 콘크리트 바닥이 통째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검은 구멍으로 변하며 주변의 모든 물질을 빨아들였다.
"뭐, 뭐야?! 땅이 왜 이래!"
"포털이 역류한다! 차원 압력이 제어가 안 돼!"
사냥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중심을 잃었다.
한설아의 통계 자료와 태현의 버그 주입이 완벽한 시너지를 일으켜, 포털의 불확실 붕괴 위험을 100%의 현실로 강제 전환한 결과였다.
"이, 이 빌어먹을 놈이 무슨 짓을 한 거냐!"
강비룡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차원 불꽃이 사냥꾼들의 다리를 사정없이 갉아먹었다.
그 와중에 피난민 무리의 뒤편에서 기어코 소란이 터졌다.
"아크에 대항하다간 우린 다 죽어! 난 저기 붙을 거야!"
"놓으라고! 왜 우리 앞길을 막아!"
태현의 장부식 통제에 사흘 내내 불만을 품고 있던 중년 남성과 그의 추종자 세 명이었다.
그들은 혼란을 틈타 태현의 영토 경계선을 이탈해 아크의 사냥꾼들이 있는 골목길 쪽으로 뛰쳐나갔다.
적들의 환심을 사서 목숨이라도 구걸해 보겠다는 얄팍한 배신이었다.
"멍청한 가축들이."
태현이 냉소했다.
그는 도망치는 배신자들을 붙잡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반투명한 붉은색 장부 창을 응시했다.
================================== [장부식 인적 자원 관리론 - 자원 상태 변경] - 대상: 배신자 임명수 외 3인 - 등급: 하급 소모성 인적 자원 -> '일회성 물리 이탈 방지용 고기방패(Shield)' - 좌표 강제 수정 및 도발 패시브 인스턴트 주입 ==================================
태현이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배신자들의 발걸음이 기괴하게 꺾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비룡과 사냥꾼들이 살기 위해 내뿜는 광역 검풍의 경로 정중앙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 어어?! 다리가 왜 이러지?!"
"살려줘! 내 몸이 멋대로 움직여!"
슈우우욱!
강비룡이 발악하며 휘두른 붉은 대지 검풍이 허공을 갈랐다.
서슬 퍼런 검풍의 궤적 앞에 정확하게 정렬된 것은 다름 아닌 그 배신자 무리였다.
푸하학!
"커헉!"
검풍이 그들의 신체를 관통했다.
배신자들은 비명과 함께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그들의 육체가 고기방패 역할을 해준 덕분에 검풍의 위력은 태현과 유진우가 서 있는 경계선 앞에서 완벽하게 상쇄되어 사라졌다.
[자원 소모 완료.] [적의 광역 스킬 데미지 100% 흡수.] [안전 구역의 내구도가 유지되었습니다.]
"미친……."
유진우가 그 비정한 광경에 말을 잃고 태현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철저히 계산된 방패로 소모하는 태현의 방식은 비정함을 넘어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태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도망칠 기회를 줬는데, 스스로 방패가 되길 자처한 거다. 장부상 손실은 제로(0)군."
태현의 시선이 다시 발악하는 강비룡에게 향했다.
강비룡은 차원의 수렁에 몸이 반쯤 잠긴 채, 광기로 눈을 불태우며 검을 치켜들었다.
"이 버그 덩어리 같은 새끼가……! 내 검기를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강비룡의 고유 스킬, [대지 붕괴 연속 슬래시]의 캐스팅이 시작되었다.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마력이 그의 검신에 집중되었다.
저 기술이 발동되면 차원의 붕괴고 뭐고 이 일대 전체가 초토화될 위기였다.
"진우 씨! 막아야 해요!"
설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태현은 오히려 유진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움직이지 마. 낭비할 마력은 없다."
태현이 강비룡의 시야에 대고 검지손가락을 천천히 내렸다.
[대상: 각성자 '강비룡'의 상태창 복사를 완료했습니다.] [백엔드 스크립트 데이터 분석 중……] [고유 액티브 스킬 '대지 붕괴 연속 슬래시'의 코드 주소를 감지했습니다.]
태현의 눈가에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그는 강비룡의 스킬 스크립트의 시작 줄(Line)과 끝 줄을 드래그하듯 묶어버렸다.
그리고 백엔드 단에서 일방적으로 한 단어를 주입했다.
================================== [Script Status: Disable] ==================================
"하하하! 다 같이 죽자!"
강비룡이 광소를 터트리며 검을 내리쳤다.
그러나.
퓌익-.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웅장하게 타오르던 붉은 마력은 거품처럼 사그라졌고, 대검은 그저 흙더미를 허무하게 긁었을 뿐이다.
"어……? 어째서? 내 스킬이…… 왜?!"
강비룡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상태창을 열어보려 했지만,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붉은색 에러 메시지뿐이었다.
[오류: 지정된 스크립트를 실행할 수 없습니다. (Error Code: 403 Forbidden)]
"내가 말했지."
태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너희가 쓰는 시스템은 곳곳이 터져 나가는 불량 소프트웨어라고."
동시에 태현은 사냥꾼들의 메인 통신 단말에 준비해 둔 스파이웨어 에러 값을 전송했다.
지직! 지지직!
사냥꾼들의 헬멧 내부 무전기가 일제히 폭발적인 노이즈를 뿜어냈다.
"아악! 귀가, 귀가 터질 것 같아!"
"통신이 안 됩니다! 본대와의 연결이 차단되었습니다!"
그들이 귀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는 사이, 발밑의 차원 싱크홀은 겉잡을 수 없이 넓어졌다.
"강태현! 이 비겁한 자식아!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강비룡이 진흙탕에 빠진 개처럼 허우적거리며 울부짖었다.
"정정당당?"
태현이 피식 웃었다.
"전쟁터에서 버그 패치 안 한 네놈들 잘못이지."
태현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쿠르릉!
포털의 붕괴 에러가 임계점을 넘어 폭발했다.
거대한 블랙홀처럼 변한 대지의 구멍이 강비룡과 그의 최정예 사냥꾼 소대원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사, 살려줘! 신무경 님! 신무경 님!!!"
비명은 길지 않았다.
어둠의 균열이 닫히며 골목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먼지조차 남지 않은 완벽한 무혈 몰살이었다.
유진우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텅 빈 골목을 바라보았다.
아크의 그 무시무시한 사냥꾼들이, 칼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하고 시스템 왜곡 한 번에 지옥으로 떨어졌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진우 씨."
한설아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태현 씨의 연산력과 제 데이터가 합쳐지면, 아크의 무력 따위는 단순한 수치적 낭비에 불과하니까요."
태현은 전신을 엄습하는 가벼운 통증을 갈무리하며 강비룡이 사라진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붕괴된 포털의 파편과 함께, 강비룡이 입고 있던 갑옷의 잔해 일부가 떨어져 있었다.
태현이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워 올리려던 찰나였다.
찌르르르!
강비룡의 시체 주머니 격인 잔해 틈새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차원 투영용 미니 홀로그램 단말기 장치였다.
지리멸렬한 노이즈와 함께, 허공에 거대한 신수(神獸)의 형상을 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강력한 마력 압박이 홀로그램을 뚫고 뿜어져 나왔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안광을 빛내는 사내. 아크 연합의 지배자, 신무경이었다.
"내 전용 코드의 신호기가 이 좌표에서 사라졌군."
홀로그램 속 신무경의 목소리는 서늘하다 못해 시려왔다.
"강태현. 네놈이 감히 내 사냥개들을 치웠나."
그의 시선이 홀로그램 너머 태현의 눈동자와 정확히 마주쳤다.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마주할 준비를 해라, 무례한 쓰레기. 내 너를 직접 찢어 발기러 가마."
웅장한 도발과 함께 홀로그램이 파스스 깨어져 나갔다.
태현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경고창이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