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2분이라."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쿠구구구!

대기를 찢는 기계음과 함께 데이터 가고일의 흉부가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부서진 장갑판 틈새로 시붉은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압축되는 것이 보였다. 놈이 가진 가장 강력한 절기, 심장 관통 광선의 충전 단계였다.

"캬아아아아윽!"

가고일의 붉은 안광이 태현의 심장 궤적에 완벽히 고정되었다. 붉은색 타기팅 레이저가 그의 가슴팍에 정밀하게 조준되는 순간, 태현의 시야에 반투명한 푸른색 백엔드 로그 창이 어지럽게 명멸했다.

[Warning: 시스템 버퍼 오버플로우 감지.] [미확인 메모리 누수 버그 코드 발견: Address 0x09F-A1 (Leak Value: NaN)]

1화에서 길드장 박민우의 배신을 처리하며 백엔드 시스템 로그를 샅샅이 뜯어볼 때 발견해 두었던 치명적인 시스템 공백이었다.

에러투성이 불량 소프트웨어인 이 세계의 시스템은 가속화된 마력 연산을 버텨내지 못하고 늘 메모리 누수를 일으킨다. 태현은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머릿속 장부에 명확히 기록해 두었었다.

"버그가 있으면 패치를 해야지. 아니, 더 쑤셔 박거나."

태현이 허공으로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기능 실행: 시스템 백엔드 포인터 강제 왜곡] [대상 어드레스: 0x09F-A1] [명령어 주입: Target_Vector_X -> Self_Core_Address]

찌르르릉!

전신의 신경망이 불에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뇌리를 강타했다. 이가 맞부딪쳐 깨질 것 같은 통증이었지만, 태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가락 끝을 유지했다.

그의 손치장 한 번에 가고일의 대가리 머리 위로 흐르던 연산 코드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가고일의 타기팅 연산 시스템이 다음 공격의 좌표를 읽어 들이는 타이밍.

태현이 강제로 밀어 넣은 메모리 누수 버그 코드 `NaN(Not a Number)` 수치가 시스템의 백엔드 연산 장치로 쏟아져 들어갔다.

좌표값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대의 공백으로 변하는 순간, 시스템은 치명적인 예외 오류를 일으켰다. 놈이 인식한 타깃의 물리적 위치 정보와 가고일 자기 자신의 코어 물리 좌표가 백엔드 단에서 일방적으로 동기화되어 버린 것이다.

"크르…… 르? 캬아아아아!"

가고일이 기괴하게 울부짖었다.

조준이 꼬였다는 것을 인지한 기계 괴수가 레이저 발사를 멈추려 했으나, 이미 백엔드 코드는 폭주 궤도에 오른 지 오래였다.

투콰아아아앙!

가고일의 흉부 포구에서 발사되었어야 할 시붉은 살상 광선이, 엉뚱하게도 놈의 가슴 안쪽을 향해 역방향으로 터져 나갔다.

자신의 무기 코드가 내부에서 폭발하는 셀프 안면 붕괴의 현장이었다.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가고일의 단단한 외장 합금이 사방으로 찢겨 나갔다. 놈의 거구는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고꾸라지며 굉음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

가고일의 무지막지한 방어막을 뚫기 위해 생난리를 치는 대신, 단 몇 줄의 버그 코드 주입으로 적의 심장을 스스로 깨부수게 만든 완벽한 디버깅 살상극이었다.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아수라장 속에서, 태현은 붉은 안개 너머로 튕겨 나가는 한설아의 위치를 즉각 뇌내 장부로 계산했다.

'낙하 궤적 좌측 45도. 충격파 전파 속도 초속 34미터.'

태현은 주저 없이 손을 뻗어 한설아의 옷자락을 낚아채 제 품 안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가 밟고 선 자리는 가고일의 폭발 파편과 역류하는 마력 파동이 정확하게 빗겨 나가는, 소수점 단위까지 계산된 완벽한 안전 좌표였다.

슈우우욱! 퍼억!

그녀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가고일의 강철 날개 파편이 날카롭게 박혀 들었다. 0.1초만 늦었어도 몸통이 두 동강 났을 궤적이었다.

"앗……!"

한설아의 파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제 허리를 꽉 움켜쥔 태현의 단단한 팔뚝과, 미동조차 없는 그의 차가운 옆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인간적인 걱정이나 다정함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눈빛. 오직 철저한 계산과 물리적인 생존 법칙에 의거해 자신을 가성비 높은 자원으로 분류하고 보호하는 냉혹함.

도덕적 위선이 가득한 아크 연합의 영웅들이 보여주던 얄팍한 동정심보다, 이 비정하고도 확실한 설계가 백 배는 더 안전하다는 것을 그녀는 뼛속 깊이 깨달았다.

"움직이지 마. 잔해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3초 남았다."

태현의 건조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렸다.

한설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의 규칙 아래에 있는 한,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는 기묘한 확신이 영혼에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포털 붕괴 잔여 시간: 00분 52초]

"끝내지."

태현은 품에서 한설아를 놓아주고는, 가슴팍이 덜렁거리는 채로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가고일을 향해 걸어갔다.

가고일의 찢어진 가슴팍 중앙, 기계 장치들 사이에서 붉은빛을 발산하는 주먹만 한 결정체가 미친 듯이 박동하고 있었다.

재앙 스퀘어의 근원이자, 시스템의 치명적인 에러가 뭉쳐진 고밀도 에너지체.

'오류 코어.'

태현은 주저 없이 손을 뻗어 가고일의 흉부 깊숙이 손을 밀어 넣었다. 뜨거운 마력 열기가 손등을 그을렸지만, 개의치 않고 코어를 움켜쥐어 단숨에 뜯어냈다.

쩌저적!

기계 괴수가 마지막 단말마를 내지르며 완전히 기능을 멈추고 빛 바랜 회색 입자로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태현은 손에 쥔 붉은 코어를 자신의 반투명한 시스템 장부 화면 위로 이끌었다. 마치 스마트폰 화면에서 파일을 폴더에 드래그 앤 드롭하듯, 코어를 상태창의 백엔드 동기화 탭으로 던져 넣었다.

[오류 코어(Error Core) 감지!] [시스템 백엔드 디버깅을 시작합니다.] [정화 프로세스 가동률: 10%... 50%... 100%]

스으으으으.

코어가 검붉은 빛을 내뿜으며 태현의 손바닥 안으로 녹아들었다.

동시에 그의 가슴을 쥐어짜던 극악무도한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타들어 가던 신경망이 시원한 청량감으로 채워지며, 붕괴 위기에 처했던 시스템 동기화율이 무서운 속도로 치솟기 시작했다.

[시스템 동기화율이 완벽히 복구되었습니다!] [현재 동기화율: 100.0% (최적 조건 완료)] [왜곡 대가 페널티가 완전히 리셋되었습니다.]

"후우……."

태현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피로와 통증으로 짓눌려 있던 신체가 터질 듯한 활력으로 가득 차올랐다. 가고일을 처리하며 소모했던 에너지마저 완벽하게 리셋되어 최고의 컨디션으로 회복되었다.

"포털이 닫힙니다! 서둘러야 해요!"

한설아의 긴박한 목소리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공간의 끝자락이 검은 디지털 노이즈로 변해 흘러내리며 균열이 닫히고 있었다.

"뛰어."

태현이 짧게 명령하며 한설아의 손목을 잡았다. 두 사람은 붕괴하는 재앙 스퀘어의 경계선을 향해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

지직!

눈을 멀게 할 것 같던 백색 광이 걷히고, 익숙한 폐허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와 제멋대로 자라난 넝쿨들이 가득한 지상의 대학교 캠퍼스 부지. 재앙 스퀘어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 입구였다.

"살았…… 네요."

한설아가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단말기 화면에는 던전의 에러 농도가 정상치로 내려갔음을 알리는 녹색 그래프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태현은 가볍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전신을 감싸는 힘의 감각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동기화율 100%의 상태창은 그야말로 매끄럽게 잘 짜인 최신형 소프트웨어처럼 기민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승리의 여운을 즐길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서걱. 서걱.

수풀을 헤치고 다가오는 수많은 발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태현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그의 감각 영역 안으로 수십 명의 인간 생명 반응이 포착되었다.

단순한 생존자들이 아니었다. 체계적인 대열을 유지하며 무기를 파지한 채 다가오는, 훈련된 초인들의 기운이었다.

"거기 멈춰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폐허의 공기를 갈랐다.

잔해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무리는 대략 삼십여 명 선.

낡았지만 잘 관리된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중심에는 낡은 검을 허리에 찬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의 눈빛은 절망적인 아포칼립스 세계관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올곧았고, 기이할 정도로 강인한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태현은 즉각 상대의 정보를 뇌내 장부에서 끄집어냈다.

'유진우.'

미래의 멸망을 미리 겪고 과거로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구원무새' 회귀자.

그는 세상의 종말을 막겠다며 수많은 피난민 무리를 거느리고 다니는 이상주의자였다. 태현의 계산법에 따르면 '가성비 극악의 자원 낭비형 인간'이자, 이기적인 초인들을 이끌고 다니며 영웅 놀이에 취해 있는 가장 기피해야 할 부류였다.

유진우가 태현과 한설아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재앙 스퀘어가 소멸한 흔적을 알아차리고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당신들이 이 스퀘어를 정화한 겁니까? 단둘이서?"

유진우의 목소리에는 경악과 함께 묘한 갈망이 섞여 있었다.

그는 한설아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설아 씨? 아크 연합에서 당신을 쫓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왜 이런 무법자와 함께 있는 겁니까?"

한설아는 대답 대신 태현의 등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행동 자체가 이미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유진우는 침을 삼키며 태현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눈빛에 서린 열망이 더욱 짙어졌다.

"강태현 씨라고 했습니까? 당신의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비정하게 동료들을 버리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기적인 각성자라고."

유진우가 검자루를 꽉 쥐며 엄숙하게 외쳤다.

"하지만 지금은 사소한 원한이나 이기심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머지않아 이 세계를 완전히 끝장낼 대재앙이 도래합니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겁니다!"

그는 태현을 향해 진지하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의 그 가공할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함께 힘을 합쳐 이 아포칼립스를 극복합시다. 내 지식과 당신의 무력이 합쳐진다면,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재건할 수 있습니다!"

동맹을 빙자한, 철저한 도덕적 가스라이팅이자 구걸이었다.

태현은 유진우의 곧게 뻗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뇌내 장부가 무서운 속도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유진우. 회귀자로서의 정보 가치는 중상. 하지만 거느린 피난민들의 식량 소모율 극대화. 전투 기여도 대비 리스크 과다. 동맹 시 나의 안전 구역 구축 계획에 심각한 차질 발생.'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태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내 힘을 너를 위해 보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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