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시오, 독점. 당신의 선을 넘은 시장 교란 행위는 여기서 끝이다.
칠흑 같은 암전 속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의 빛이 드래곤의 둥지 잔해를 가득 채웠다. 눈이 멀 것 같은 광휘 속에서 형상화된 거대한 홀로그램 아바타. 아스텔리아의 시스템 운영자이자 아틀라스의 지배자, 천도현의 목소리가 공간의 물리 법칙을 뒤흔들며 고막을 때렸다.
"운영자라는 양반이 등판치고는 꽤나 요란하군요."
한강진은 눈을 찌푸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비웃음도 잠시, 전신을 타고 흐르는 기괴한 감각에 그의 미간이 굳어졌다. 발끝에서부터 시퍼런 데이터 체인이 타고 올라와 그의 사지를 단단히 구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고: 시스템 운영자 권한에 의한 '영구 사설 보안 코드'가 강제 적용됩니다.] [경고: 대상 플레이어 '독점'의 행동 권한이 일시 정지됩니다.] [경고: 불법 프로그램 및 시장 교란 혐의로 계정 강제 해산 절차가 진행됩니다. 남은 시간: 60초]
"이런, 고객 동의도 없이 일방적인 서비스 해지라니.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라도 해야겠군요."
한강진이 목을 억지로 까딱이며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전신을 옭아맨 데이터 사슬의 압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피부가 짓눌리는 감각이 가상 현실의 한계를 넘어 뇌리로 직접 박혔다.
천도현의 거대한 아바타가 손을 뻗었다.
-규정은 내가 만든다. 네놈의 그 건방진 차원 거래소인지 뭔지 하는 버그성 클래스도, 오늘부로 아스텔리아에서 영원히 격리될 것이다.
"야! 이 대머리 독수리 같은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쿠웅!
거대한 대방패가 한강진의 앞을 가로막으며 대지를 울렸다. 강태윤이었다. 그는 전신에 푸른 마력을 두른 채, 천도현이 뿜어내는 백색 압박 광선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방패 표면이 기괴한 노이즈를 일으키며 깎여 나갔지만, 강태윤은 이빨을 악물며 버텼다.
"돈줄…… 아니, 우리 대표님 몸값 비싸거든? 감히 어디다 대고 손을 대!"
"강태윤 씨, 정정하십시오. 돈줄이 맞습니다."
강태윤의 등 뒤에서 채지안이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태블릿 PC의 가상 자판을 폭풍처럼 두드렸다. 그녀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한강진과 그들의 발밑으로 붉은색 수수료 계약의 빛이 연결망처럼 동기화되기 시작했다.
"대표님과의 계약 조항 제4조 2항. '동맹은 계약 당사자의 신변에 중대한 물리적, 시스템적 위협이 발생할 시 자신이 보유한 장비 및 버프를 거래 연계망으로 강제 동기화하여 방어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방어 연계를 시도합니다. 단, 초당 수수료는 99% 적립됩니다."
"아주 지독할 정도로 확실한 일 처리군요, 지안 씨."
한강진이 뻣뻣하게 굳은 입술로 픽 웃었다.
채지안이 단말기를 허공으로 던지며 외쳤다.
"지금입니다! 이전에 획득했던 특수 문서를 세무적으로 완전히 해독했습니다. 국세청도 울고 갈 우회로를 보여드리죠!"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허공에서 빛바랜 양장 문서의 형태로 변하더니, 화르륵 불타오르며 시스템의 사슬 위로 쏟아졌다. 과거 2화에서 획득한 이후 채지안이 품고 다니며 해독해 온 바로 그 세금 감면 증서였다.
| 스킬 및 아이템 정보 | 상세 효과 | | :--- | :--- | | **아이템명** | 봉인된 세금 감면 증서 (해독 완료) | | **등급** | 에픽 (외교/세무 계열) | | **발동 효과** | 사용 시 300초 동안 사용자가 관여하는 모든 '강제 집행' 및 '징수' 판정을 비과세 및 예외 조항으로 처리하여 무효화하거나 위력을 80% 감소시킴. | | **특이 사항** | 시스템 운영자의 강제 제재 조치 역시 '불법적 과세 및 규제 행위'로 판정하여 방어 가능. |
화아아아악!
세금 감면 증서가 빛을 발하며 한강진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그의 몸을 옥죄던 시퍼런 데이터 사슬들이 예외 조항이라는 붉은색 텍스트로 변하더니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계정 강제 해산까지 남은 시간이 순식간에 멈춰 섰다.
-무슨…… 겨우 일반 유저의 찌꺼기 아이템 따위가 내 강제 집행 코드를 간섭한다고?
천도현의 목소리에 난생처음으로 당혹감이 섞여 들었다.
"세법을 아주 우습게 보시는군요, 천도현 사장님. 법 위의 꼼수가 존재하듯, 시스템 규정 위에는 세무 예외 조항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한강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방금 전 서지수의 시체에서 굴러떨어져 자신의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던 전설급 반지에 닿았다.
[영겁의 밤 반지]
서지수가 자랑하던 아틀라스의 핵심 유물이자, 방금 전 레이드에서 뜯어낸 전리품. 하지만 이 반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품고 있었다. 한강진은 이미 이전 '심연의 신전' 레이드에서 이 반지가 가진 마력 누수 루프의 취약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태윤 씨! 지안 씨의 동기화 체인을 내 반지에 직접 연결하세요!"
"오냐! 가자아아아!"
강태윤이 기합을 넣으며 방패를 내질렀다. 방패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투기가 한강진이 낀 [영겁의 밤 반지]로 흘러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채지안이 동기화한 거래 연계망의 마력이 반지의 코어에 닿았다.
위이이이이잉-!
반지에서 기괴한 고주파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서지수가 사용하던 시절부터 누적되어 온 불안정한 마력 누수가 강태윤의 무식한 투기와 채지안의 정밀한 세무 마력과 결합하자, 제어 불가능한 수준의 '마력 누수 루프'를 일으킨 것이다.
쿠구구구궁!
반지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마력 폭풍이 천도현이 유지하고 있던 영구 사설 보안 코드의 장막을 사정없이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 이건……! 영겁의 밤 반지의 마력 파형인가? 서지수, 그 멍청한 년이 기어코 일을 이따위로……!
"남 탓하지 마시죠. 보안 관리를 이따위로 허술하게 한 운영진 책임이니까."
한강진이 마침내 자유로워진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눈앞에 시스템의 균열이 선명하게 보였다. 천도현의 강제 보안 코드와 영겁의 밤 반지의 마력 누수 루프가 충돌하며 발생한 과부하. 그것은 시스템의 논리적 공백을 만들어냈다.
즉, 아스텔리아에서 유일하게 거래가 불가능한 순간을 뒤엎는 찰나.
'기믹 윈도우(Gimmick Window)'가 열린 것이다.
"지안 씨, 현재 서버 부하 상태는?"
"천도현의 강제 개입과 마력 루프 충돌로 인해, 메인 제어 코어인 '오레아 엔진'의 트랜잭션 수수료 처리 속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현재 3초의 작동 지연 현상 발생 가능 구역 진입 완료!" 채지안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3초라. 제 비즈니스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입니다."
한강진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이 올라갔다.
그의 히든 클래스, '차원 거래상'의 고유 권능이 암전된 세계 속에서 찬란하게 요동쳤다.
"차원 거래소, 개방."
스스스스스…….
천도현의 거대한 아바타 가슴팍에 붉은색 경매 낙인이 찍혔다. 천도현의 홀로그램 아바타가 쥐고 있는, 백색으로 빛나는 자그마한 열쇠. 그것은 단순한 그래픽이 아니었다. 아스텔리아의 시스템 내부 통제와 관리자 권한을 상징하는 '임시 세션 키'였다.
-무슨 짓을…… 내 세션 키에 경매 락(Lock)이 걸린다고?! 미쳤군! 이건 시스템 소유물이다!
"시스템 소유물이든 뭐든, 내 눈에 보이고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면 전부 매물입니다. 그것이 거래상의 정의니까요."
한강진이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시스템 메시지: 히든 클래스 '차원 거래상'의 권능으로 강제 경매가 시작됩니다!] [경고: 대상 매물은 시스템 보안 등급 '최상위' 객체입니다.] [경매 유찰 또는 실패 시, 사용자 '독점'의 영구 스탯이 90% 차감되는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진행해."
한강진의 망설임 없는 목소리와 함께, 암전된 드래곤의 둥지 한가운데에 거대한 홀로그램 경매판이 떠올랐다.
| 경매 물품 정보 | 상세 내용 | | :--- | :--- | | **물품명** | [시스템 임시 세션 키 (관리자 권한)] | | **소유자** | 천도현 (시스템 운영자) | | **최소 입찰가** | 100,000,000 골드 | | **현재 입찰 상태** | 강제 경매 진행 중 (남은 시간: 3초) | | **거래 수수료** | **99% (독점 임의 책정)** |
"미친놈! 관리자 권한을 경매에 올린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버그가 존재할 리 없다!"
천도현이 격노하며 세션 키를 거두려 했다. 하지만 이미 '기믹 윈도우'와 '차원 거래소'의 강제 낙인이 찍힌 이상, 시스템 규칙상 경매가 종료되기 전까지는 해당 아이템의 소유권을 임의로 이동시키거나 삭제할 수 없었다.
아스텔리아의 가장 밑바닥에 흐르는 절대적인 인과율. '모든 가치 있는 것은 거래될 수 있다'는 규칙이 시스템의 보안 프로토콜보다 상위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입찰자는 없습니다. 당연하죠, 이 아수라장에서 누가 1억 골드를 들고 대기하고 있겠습니까?"
한강진이 차갑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입찰자가 없다고 해서 경매가 무효가 되는 건 아닙니다. 유찰되는 순간, 거래소의 규칙에 따라 '소유권 분쟁' 상태로 돌입하니까요."
-뭐…… 라고?
천도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시스템 알림: 경매 제한 시간 3초가 경과하였습니다.] [시스템 알림: 등록된 매물 [시스템 임시 세션 키]의 입찰자가 존재하지 않아 '유찰' 처리되었습니다.] [시스템 알림: 유찰된 매물의 소유권 및 권한 제어권이 시스템 논리 충돌로 인해 임시 동결됩니다.]
"오레아 엔진이 3초간 버벅이는 사이에, 당신의 세션 키는 경매소의 '임시 압류 구역'으로 처박혔단 소리입니다. 이제 당신은 그 아바타의 권한을 유지할 로그가 끊겼어요."
-이, 이 버그 유저 새끼가……! 감히 나를……!
천도현의 아바타가 사방으로 스파크를 튀기며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계정을 삭제하려던 천도현의 서버 추방 명령 로그가 '소유권이 불분명한 관리자 세션 키에 의한 명령'으로 판정되어 시스템 자체 보안 필터에 걸려 취소된 것이다. 스스로 판 함정에 스스로가 걸려 넘어진 꼴이었다.
"꺼지십시오, 천도현 사장님. 영업방해죄로 고소하기 전에."
한강진의 냉혹한 선언과 함께.
쿠콰아아아앙!
천도현의 거대한 백색 아바타가 시스템 에러 메시지 수만 개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그가 난사하던 영구 사설 보안 코드도, 그들을 짓누르던 무거운 압박감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아, 뒤지는 줄 알았네 진짜."
강태윤이 대방패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주저앉았다. 그의 방패는 이미 내구도가 1이 되어 쓸모없는 고철 더미로 변해 있었다.
채지안 역시 안경을 벗어 땀을 닦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이번 건은 정말 위험했습니다. 시스템의 물리 법칙 자체를 비틀어 소유권 충돌을 일으키다니요. 회계학적으로 말하자면, 국세청 서버를 에러 나게 만들어서 탈세를 성공시킨 것과 다름없습니다."
"탈세가 아니라 합법적인 절세 및 권리 주장입니다, 지안 씨."
한강진이 옷매무새를 단정히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현실의 아틀라스가 자신에게 했던 짓에 비하면, 이 정도는 가벼운 경고장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저놈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는데 말이지……."
강태윤이 불안한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불안은 정확히 적중했다.
천도현의 아바타가 사라진 칠흑 같은 허공. 그 쪼개진 차원의 틈새 너머에서, 아바타의 잔해가 아닌 시스템 자체의 기계음이 섞인 천도현의 음침한 목소리가 온 서버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귓속말이 아니었다. 전 서버 유저들의 귓가에 강제로 때려 박히는 '운영자 긴급 공지'였다.
-독점…… 그리고 그를 따르는 버그 이용자 무리여. 너희가 시스템의 틈새를 이용해 목숨을 부지했으나, 이 세계의 절대적인 지배권은 결국 나에게 있다.
둥지 전체가 붉은색 경고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더러운 버그와 시장 교란자들을 완전히 세척하겠다. 3일 뒤, 전 서버의 '완전 리셋 패치'를 강제 적용할 것이다. 유저들의 모든 자산, 장비, 그리고 클래스는 초기화된다.
"뭐, 뭐라고?! 완전 리셋?!"
강태윤이 경악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스텔리아는 나의 제국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한이 있어도, 네놈 같은 쥐새끼들에게 내 영역을 한 뼘도 내어주지 않겠다. 3일 뒤에 보자, 독점.
웅장한 에코와 함께 천도현의 목소리가 완전히 끊겼다.
그리고 한강진 일행의 눈앞에 붉은색 카운트다운 타이머가 떠올랐다.
[전 서버 초기화 패치까지 남은 시간: 71시간 59분 59초]
"대표님……."
채지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녀의 장부 단말기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 서버 리셋.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부와 노력, 그리고 아틀라스를 무너뜨릴 유일한 무기인 '차원 거래소'마저 휴지조각으로 만들겠다는 천도현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한강진의 얼굴에는 절망 대신, 기괴할 정도로 짙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3일이라."
그가 천천히 걸어가 채지안의 떨리는 손을 잡고 그녀의 단말기를 주워 올렸다.
"지안 씨, 아틀라스 코퍼레이션의 주주 명부와 자산 보유 현황 장부를 열어보세요."
"예? 예……."
"태윤 씨는 지금 즉시 아틀라스의 횡포에 고통받던 모든 연합 길드장들에게 연락을 돌리십시오. 3일 동안, 우리는 아스텔리아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악랄한 '수수료 대란'을 일으킬 겁니다."
한강진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뜩였다.
"천도현 사장님이 서버를 리셋하겠다면, 우리는 그 리셋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그 서버의 소유권 자체를 경매로 낙찰받아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의 선언과 함께, 째깍거리는 붉은 타이머의 초침 소리가 세 사람의 귓가를 울렸다. 아스텔리아의 운명을 건 마지막 3일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