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는 단 한 발도 울리지 않았으나, 제국주의 열강의 연합 함대는 스스로 돛과 키를 꺾고 퇴각했습니다.
황해와 동해를 가득 메웠던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철갑선들은 당신이 한양 도성 주위에 구축한 전자기 방사탑(電磁氣 放射塔)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파동 앞에 무력하게 주저앉았습니다. 적들의 무선 전신은 먹통이 되었고, 바다 위의 눈이라 불리던 원시적인 레이더 수신기는 기괴한 잡음만을 토해냈습니다.
근대 전쟁의 승패는 병참과 통신에 달려 있는 법입니다. 함대 간의 연계가 끊어지고, 본국과의 전신이 차단되자 연합 함대의 보급 기동은 즉각 마비되었습니다. 석탄을 적재한 보급선들은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채 동해안의 암초에 좌초되었고, 압박을 견디지 못한 열강의 제독들은 가동할 석탄이 바닥나기 전에 함대를 철수시키는 굴욕적인 회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경이로운 승리의 이면에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거대한 고혈이 숨어 있었습니다. 전자기 방사탑의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평안도와 삼척의 탄광에서는 하루에 수천 석의 석탄이 밤낮없이 연소되었고, 수천 명의 농민들이 군역 대신 구리 광산과 제련소로 징용되어 초고밀도 구리선을 뽑아내야 했습니다. 탁지부(度支部)의 재정은 바닥을 드러냈고, 석탄 매연으로 인해 한양의 하늘은 한동안 잿빛으로 물들었습니다. 기술의 도약은 결코 공짜가 아니며, 백성들의 피와 땀, 그리고 철저히 계산된 자원의 통제가 지탱한 위태로운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열강들은 조선을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지의 괴수'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공사는 비밀리에 한성밀약(漢城密約)을 제안하며 조선의 독점적 기술 통제권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고종황제는 어필(御筆)로 내려진 비망기(備忘記)를 통해 당신에게 조정의 백관을 통솔할 권력을 제안했으나, 당신은 그 화려한 옥좌를 거절했습니다. 정치의 최전선에 서는 것은 불필요한 견제와 내우외환을 초래할 뿐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경복궁의 깊은 지하, 두터운 콘크리트와 구리 차폐벽으로 둘러싸인 밀실에 자신만의 사령부를 구축했습니다.
사방을 채운 진공관들이 둔탁한 열기를 뿜어내고, 아실로스코프의 녹색 광선이 맥박처럼 요동칩니다. 조선 전역의 철도망과 전신선, 그리고 국경지대에 배치된 화력 수화기들의 가동 상태가 이 지하 통제실의 거대한 지도판 위에 실시간으로 표시됩니다. 조선의 왕실과 내각은 자신들이 주권을 행사한다고 믿겠지만, 그들의 붓끝이 향할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이 지하에서 전송되는 암호화된 기술 지침과 정보 보고서들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음지의 수호신이자, 제국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지배자.
당신은 전자기 제어 장치의 메인 스위치에 손을 올립니다. 어두운 통제실 안에서, 기계의 기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립니다. 조선의 운명을 장막 뒤에서 영원히 지탱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