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그리고 청나라와 일본까지. 동서양의 패권국들이 마침내 하나의 기치 아래 모여 동맹을 결성한다. 이름하여 ‘조선 평정을 위한 열강 연합군’. 당신이 주도한 화력 혁명과 자율 구동 병기의 등장은 서구 자본이 구축해 둔 세계 시장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런던 금융가에서는 조선의 특허 독점으로 인해 정밀 기계 생산업체들의 주가가 폭락했고, 이에 분노한 열강의 정치가들은 조선을 ‘문명 파괴의 온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초강대국들의 봉쇄식 압박은 단순한 외교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연합군은 총 35만 명의 대군과 500여 척의 함선을 동원하여 한반도를 동서북 3면에서 압착해 들어오고 있다. 황해 너머 청나라의 지부(芝罘)와 여순(旅順)은 이미 연합 해군의 거대한 병참 기지로 탈바꿈했으며,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끊임없이 수송되는 러시아의 군량과 석탄이 두만강 국경지대에 쌓이고 있다.

이 가공할 군사적 움직임에 직면한 조선의 내부 사정 역시 한계에 봉착한다. 기계화 여단과 고출력 화기 공장을 야간 가동하기 위해 영등포와 평양 일대의 무연탄 광산을 무리하게 징발한 결과, 민간의 겨울철 난방용 연료 가격이 예년의 다섯 배로 폭등했다. 탁지부(度支部) 대신은 군기시 외채가 조선 국고의 연간 세입을 세 배 이상 초과했다며 울부짖고, 대동강 조창에서 내륙으로 이어지는 자율 전동차 전용 궤도는 수송 과부하로 인해 정전 사고가 빈발한다. 신기술의 대가가 조정의 재정과 백성들의 삶을 짓누르는 실책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반도 전역에 닥쳐온 이른 한파는 전쟁의 양상을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기온이 급강하하며 임진강과 한강 하구가 얼어붙기 시작하자, 아군의 주력 수중 수송망인 증기 추진식 보급선들의 발이 묶인다. 반면, 연합 지상군은 강의 결빙을 틈타 야포와 장갑 열차를 경기도 이북으로 손쉽게 진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당신은 북한산 지각 깊숙이 은밀하게 자리 잡은 지하 총사령부의 통제실에 선다. 거대한 구리 도선들이 얽혀 있는 배전반 너머로 백열전구가 붉은빛을 깜빡이며 위험 신호를 보낸다. 레이더 스크린에는 서해상으로 접근하는 연합 함대의 거대한 초승달 모양 진형과, 북방 연안을 따라 남하하는 기갑 부대의 붉은 점들이 선명하게 투영된다.

그동안 극비리에 비축해 둔 마지막 무력 패들이 모니터 화면 위에서 차갑게 빛나기 시작한다. 하나는 천체 물리학의 극한에 도달한 궤도 자산의 우주적 타격이며, 다른 하나는 이 땅의 철강과 석탄을 아낌없이 녹여내 완성한 기갑 사단의 육상 격돌이다. 지탱하기 버거운 영광을 짊어진 조선의 운명이, 이제 당신의 손가락 끝에서 울리는 마지막 지령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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