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경운궁 중화전(중화전)의 공기는 납처럼 무겁고 차갑습니다. 어도(어도) 좌우로 늘어선 백관들의 서슬 퍼런 눈초리가 당신의 전신을 꿰뚫어 볼 듯 쏟아집니다. 용상에 높이 앉은 광무제 고종은 곤룡포 소맷자락을 쥔 채, 불안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폐하! 저 자는 서양의 사학(사학)과 괴력난신을 빌려 황국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요사스러운 이방인이옵니다!"

좌의정을 비롯한 정통 성리학파 대신들이 홀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상소문을 드높입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두려움을 넘어, 기득권을 영위해 온 중세적 질서가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데서 오는 극도의 적개심이 서려 있습니다.

"저 자가 삼남 지방에 세운 무쇠 공장은 천지신명을 노엽게 하는 괴물덩어리이옵니다! 백성들이 대대손손 길쌈을 하고 무쇠를 두드려 바치던 공납의 법도가 무너지면, 조정의 포세(포세)와 전세(전세)는 어디서 거둘 것이며, 군역의 근간인 군포는 어찌 채울 것입니까! 기술이라는 미명 하에 농공(농공)의 법도를 무너뜨리면, 황국은 외세의 침략을 받기 전에 내부에서부터 자멸할 것이옵니다!"

그들의 주장은 궤변처럼 들리지만, 당대 조선의 조세 구조와 경제적 한계를 정확히 짚은 현실적인 위협이기도 했습니다. 증기 공장과 자동화 기계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기존 면포 시장의 붕괴와 실직한 농민들의 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종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집니다. 황제는 열강의 위협 속에서 군사적 혁신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황권을 지탱하는 유교적 지배 질서가 붕괴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여."

침묵을 지키던 고종이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엽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제국의 명운을 짊어진 군주의 지독한 피로감이 묻어납니다.

"과인은 경이 가져왔다는 신식 무기와 기술이 참으로 황국을 부강하게 만들지, 아니면 저 위정척사파 대신들의 말대로 사직을 망칠 독배가 될지 알지 못하노라. 경의 그 기이한 기계들이 어찌 백성들을 굶기지 않고, 저 탐욕스러운 열강들의 총칼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입증해 보이라."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던 금군(금군)들이 소지한 환도에 손을 얹으며 당신의 좌우를 좁혀옵니다. 서슬 퍼런 칼날의 냉기가 목덜미에 닿을 듯 가깝습니다. 대신들의 고함과 황제의 의구심이 교차하는 조정의 한가운데서, 당신은 자신과 이 나라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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