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평선 너머로 검붉은 매연이 기둥을 이루며 솟아오릅니다. 서해의 차가운 삭풍을 타고 전해지는 것은 거대한 증기 기관의 금속성 구동음과 정박한 철갑선들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입니다. 청국의 북양함대와 일본 제국의 동양함대가 대영제국의 암묵적인 차관 지원과 전술 지도를 받아 결성한 연합 함대. 이들이 강화도 앞바다, 물치도와 풍도 사이의 요충지를 에워싸고 조선의 목줄을 죄어오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입니다.

조정의 병조 판서가 긴급히 올린 계문(啓聞)의 자구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적의 철갑함 삼십여 척이 염하(鹽河)의 어귀를 봉쇄하였으니, 삼남방(三南方)으로부터 올라오는 세곡선과 조운선이 모두 발이 묶였나이다. 경강상인들은 이미 사재기를 시작하여 도성의 쌀값이 하루 만에 한 가마당 세 배로 폭등하였고, 주전소에서 군비 마련을 위해 발행한 무임소 공채는 그 가치가 휴지조각과 다름없게 되었으니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옵니다."

당신이 세운 정밀 기계 공장에서는 밤낮을 잊은 채 불꽃이 튀고 있으나, 이 첨단 무기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대가는 뼈아픕니다. 구리 탄피를 압착하기 위해 전국의 구리 숟가락과 사찰의 범종까지 징발하는 초유의 수탈이 자행되었고, 무연화약의 원료인 초석과 유황을 청국으로부터 수입하던 경로가 완전히 차단됨에 따라 대체제 발굴을 위한 국가 재정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기술의 급격한 도약은 이를 뒷받침할 기초 산업과 원자재 공급망이 결여된 조선의 경제 구조에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생필품 고갈이라는 독을 주입한 꼴이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해의 조수간만 차는 극에 달해 사리 때를 맞이했습니다. 간조가 되면 함포를 적재한 연합 함대의 대형 선박들은 수심이 얕아진 외해로 일시 물러나야 하지만, 역으로 조선의 수군 역시 보급선조차 띄우기 힘든 진흙벌에 갇히게 됩니다. 적들은 이 기후와 지형적 특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등포와 마포로 향하는 내륙 수로를 완전히 차단한 채, 아사(餓死) 작전으로 조선 조정의 자멸을 기다리는 형국입니다.

이때, 영국의 중재를 빙자한 청·일 연합 함대 사령관의 최후통첩 장이 조정에 당도합니다. [조선국 군신들은 들으라. 격변의 신식 화포를 사사로이 제조하여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힌 죄, 결코 가볍지 않도다. 이에 3일의 기한을 주노니, 강화도 공장의 기계를 모두 파괴하고 제조법을 헌납한 후, 황제 폐하의 처분을 기다리라. 불응할 시, 우리는 함포 사격으로 한양을 초토화할 것이며, 조운이 끊긴 도성 안의 백성들은 굶주림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게 될 것이다.]

포구에 정박한 철갑선들의 시커먼 포구들이 일제히 강화도 포대를 조준하며 육중한 몸체를 돌립니다. 기계 공장의 굴뚝에서는 증기가 새어 나오고, 조수 배수가 시작되어 갯벌이 검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정오의 정적 속에서, 마침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당신의 눈앞에 도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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