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삐- 삐- 삐-.

대동맥 파열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환자의 심박수가 기적적으로 안정 궤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바이탈 모니터의 전자음만이 수술실 안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그 규칙적인 소리가 무색하게도, 제4외과 수술실의 공기는 순식간에 영하로 얼어붙었다.

거칠게 열린 낡은 붉은색 철문 틈새로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의 거대한 체구가 밀고 들어왔다. 그들의 가슴팍에 아로새겨진 세인트 미카엘 재단의 금빛 문양이 인공 조명 빛을 받아 서늘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그 철벽 같은 경호원들의 삼엄한 호위 속에서, 조용히 굴러 들어오는 휠체어 바퀴 소리가 수술실 시멘트 바닥을 긁었다.

백발을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갈하게 뒤로 넘긴 노인.

세인트 미카엘 의료재단의 절대 권력자, 이사장 송원필이었다.

"과연 소문대로군, 강지훈 선생."

송원필의 목소리는 낮고 탁했다.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휠체어 팔걸이를 천천히 두드리는 그의 태도에는, 수많은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어 온 자 특유의 오만한 여유가 묻어났다. 그의 등 뒤에는 행정처장 오만식이 잔뜩 들뜬, 그러면서도 독기에 물든 눈빛을 숨기지 못한 채 서 있었다.

"하지만 남의 집 안마당에서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을 만지는 버릇은 고쳐야겠어."

송원필의 가식적인 미소 아래로 벼려진 칼날 같은 안광이 지훈을 꿰뚫었다. 수술실을 강제 침범한 무도함에 대한 사과 따위는 애초에 기대할 수도 없는 종자였다.

강지훈은 피 묻은 초록색 수술 가운을 벗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대지처럼 버티고 섰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턱끝에 맺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지훈의 시선은 송원필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피비린내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서, 지훈의 목소리는 가라앉은 저음으로 울렸다.

"남의 물건이라뇨. 이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건 물건이 아니라 환자입니다, 송원필 이사장님."

"이 병원 안에 있는 모든 장비, 모든 인력, 그리고 그 장비와 인력을 거쳐 숨을 쉬는 환자의 목숨값까지 전부 세인트 미카엘 재단의 자산이네."

송원필이 가볍게 턱을 치켜세웠다.

"자산의 효율적 배분과 처분 권한은 오직 이사회에 있지. 자네 같은 일개 기술자가 감상에 젖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일세."

"이사장님! 이놈이 지금 감히 누구 앞이라고……!"

오만식이 이때다 싶어 앞으로 나서며 삿대질을 해댔다. 그의 목에 핏대가 허옇게 섰다.

"황인국 교수가 마취 중인 환자를 버려두고 도망친 건 행정처장님 눈에는 보이지 않던 모양이군요."

지훈이 차갑게 말을 자르며 오만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오히려 포식자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사냥꾼의 집요함이 서려 있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황 교수는 정당한 절차에 의해……!"

"정당한 절차라."

지훈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오만식 처장님. 당신이 리베이트를 챙기기 위해 세인트 미카엘 병원 본관과 소아외과, 그리고 이곳 제4외과에까지 밀어 넣은 해외 수입 불량 의료 가스 밸브. 그 시리얼 넘버가 무엇인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오만식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시리얼 넘버 A-4921-X."

지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숫자를 뱉어냈다.

"해당 밸브에서 발생하는 미세 가스 누출 수치는 이미 본관 중앙 공급실 데이터베이스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업자에게 뒷돈을 받고 합격 판정을 내린 그 불량 부품들 말입니다. 만약 이 수술실에서 온열 수혈기를 가동할 때 미세 가스 누출로 인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 배상 책임은 누구에게 갈 것 같습니까?"

"이, 이 미친놈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오만식이 언성을 높였지만, 그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지훈의 목소리는 수술실의 차가운 수술대 위를 구르는 메스처럼 날카로웠다.

"제4외과의 노후화된 장비를 핑계 삼아 의료 사고로 위장하려 했던 당신들의 계획은 이미 실패했습니다. 내가 이 가스 밸브의 우회 루트를 직접 집도 과정에서 차단하고 환자를 살려냈으니까요. 이 사실이 식약처와 언론에 그대로 흘러 들어갔을 때, 세인트 미카엘 재단이 감당해야 할 브랜드 가치 하락과 주가 폭락, 그리고 환자 유가족들이 청구할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의 합산 추산액은 최소 1,200억 원에 달합니다."

"강지훈……!"

오만식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지훈이 제시한 숫자는 허황된 위협이 아니었다. 그의 뇌 신경망에 각인된 생사장부의 정확한 회계 분석 결과물이었다.

송원필 이사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늙은 뱀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돈과 숫자로 병원을 지배해 온 그에게, 지훈이 던진 '1,200억 원의 손실 추산'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도덕적 호소보다 확실한 타격으로 다가간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지훈의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두 눈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뇌를 헤집어 놓았다. 머릿속에서 고압 전선이 합선된 것 같은 날카로운 이명이 고막을 찢고 들어왔다.

위이이이이이잉-.

귀가 먹먹해지며 주변의 소음이 멀어졌다. 동시에 지훈의 눈앞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생사장부'의 시각적 인터페이스가 허공에 펼쳐졌다.

[계약자 강지훈. 인과율 개변 성공률 100% 강제 고정의 대가.] [실시간 수명 차감 프로세스 작동 중.] [심근 세포 괴사율 누적: 34.2%] [뇌세포 피로도 극화.]

심장을 뭉툭한 송곳으로 사정없이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가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바닥에 쓰러지고 싶을 정도의 부정맥이 몰아쳤다. 지훈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식은땀이 가운을 축축하게 적셔 내려갔다.

그러나 지훈은 이빨을 악물었다. 잇몸에서 비린 피 맛이 흘러나왔지만, 겉으로는 단 1밀리미터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으려 전신에 힘을 주었다.

그때, 장부의 푸른색 연산 스펙트럼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송원필 이사장의 머리 윗부분을 비추었다.

파지직-.

푸른 섬광과 함께, 송원필의 두개골 내부를 투시하듯 정밀한 혈류의 움직임이 지훈의 시각 정보로 기재되기 시작했다.

[대상: 송원필 (74세)] [병증: 뇌하수체 부근 미세 혈류 역행성 박리 (Dissection of Micro-vessel near Pituitary gland)] [진행률: 14.8%] [특이사항: 외견상 무증상이나, 혈압 급상승 시 뇌저막 동맥류 파열로 인한 급사 확률 87.5% 보유.] [장부 기재 완료.]

송원필의 뇌 속 깊은 곳에 시한폭탄이 도사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정정해 보이고 남을 억누르는 위압감을 풍기지만, 그의 생명선은 이미 썩은 밧줄처럼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는 상태였다.

"윽……."

심장이 멈추는 듯한 강력한 위궤양성 각성 페널티가 지훈의 위장을 뒤틀어 놓았다. 다리의 힘이 풀리며 신체가 옆으로 기울어지려던 찰나였다.

슥-.

왼쪽에서는 백서진이, 오른쪽에서는 한예준이 소리 없이 다가와 지훈의 소매 자락과 겨드랑이 사이를 단단히 받쳐 들었다.

"선배, 버텨요."

서진이 지훈의 귓가에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의 손아귀에는 지훈을 절대 쓰러지게 두지 않겠다는 강한 완력이 실려 있었다.

"강지훈, 여기서 쓰러지면 저 인간들 좋은 일만 시키는 거다. 똑바로 서."

한예준 역시 지훈의 어깨를 밀착해 지탱하며 턱 끝을 꼿꼿이 세웠다. 라이벌로서 지훈의 오만한 실력을 질투하면서도, 비겁한 권력자들 앞에서 그가 무릎 꿇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 예준의 눈빛에서 이글거렸다.

두 사람의 단단한 지탱 덕분에 지훈은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시야의 흔들림이 잦아들고, 이명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지훈은 두 사람의 부축을 느끼며 가슴속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송원필은 지훈의 미세한 신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듯, 그저 차가운 눈으로 지훈의 아군들을 훑어보았다.

"백 가놈의 여식이 여기 와서 흙탕물 장난을 치고 있었군. 네 아비가 알면 노발대발하겠어."

송원필이 서진을 향해 혀를 찼다.

"저희 아버지는 물론이고, 이사회 임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재미있어지겠지요."

서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송원필의 지적에 조목조목 맞섰다.

"이사장님. 제4외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자격자 대리 수술과 불량 의료 기기 반입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자료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보관 중이신 세인트 미카엘 VIP 비밀 회계 비리 장부의 위치를, 전 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서진의 눈빛에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지훈의 곁에서 집도를 도우며 그녀 역시 완전히 각성한 상태였다. 자본의 논리에 놀아나는 의사 가문에서 자란 회의감을, 진짜 의사인 지훈을 지킴으로써 극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

송원필의 얼굴에 서려 있던 가식적인 미소가 완전히 증발했다. 그의 주름진 이마가 험악하게 좁아졌다.

"건방진 년이…… 감히 누구를 협박하려 드는 거냐."

"협박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지훈이 다시 목소리를 냈다. 그의 눈동자는 방금 장부에서 읽어낸 송원필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송원필 이사장님. 당신은 지금 이 병원의 지분을 우회 상장하여 자식들에게 편법 증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계시더군요."

송원필의 가죽 장갑을 낀 손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재단 산하의 유령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후 상속세 분쟁을 피하기 위해 기획된 세무 우회로. 그 가치는 대략 4,200억 원 규모더군요. 만약 그 기획안의 상세 수치와 해외 계좌 정보가 국세청과 언론에 폭로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네놈이 그걸 어떻게……!"

송원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거칠게 떨렸다. 그의 등 뒤에 선 경호원들이 일제히 긴장하며 지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지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송원필을 압박했다.

"상속세 폭탄과 불법 증여 혐의로 재단 전체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당신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아시아 최대 의료 재벌의 꿈이 단 하루 만에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광경을 보고 싶으십니까? 의사 따위는 손바닥 안의 바둑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셨겠지만, 그 바둑돌 하나가 당신의 목줄을 끊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강지훈……!"

오만식이 비명을 지르듯 지훈의 이름을 불렀지만, 송원필은 가만히 손을 들어 오만식을 제지했다.

송원필의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지훈의 시야에는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푸른색 마크가 붉은색 경고등으로 변하며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경고: 대상 송원필의 혈압 급상승.] [뇌하수체 미세 혈류 역행성 박리 진행률: 14.8% -> 15.3%] [파열 위험도 증가.]

송원필은 자신의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이 눈앞의 젊은 의사가 자신을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실질적인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는 무서운 무기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수술실 내부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바이탈 모니터의 삐- 삐- 소리만이 이 기괴한 대치 상황을 조율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송원필이 깊은 숨을 토해내며 휠체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의 얼굴에 다시 가식적이고 기계적인 웃음이 천천히 떠올랐다. 그러나 그 웃음은 이미 패배를 감추기 위한 가면무도회의 가면과 다름없었다.

"재미있는 친구로군, 강지훈 선생."

송원필의 목소리가 뱀이 기어가듯 스산하게 울렸다.

"하지만 칼날을 너무 휘두르면 결국 제 손가락을 베는 법이라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하지만 다음번에도 내 자산에 손을 댈 생각은 하지 말게."

송원필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경호원들이 휠체어를 돌려 무거운 철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만식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지훈을 뱀처럼 노려보더니 도망치듯 송원필의 뒤를 따랐다.

쿵-.

제4외과의 무거운 붉은색 철문이 닫히며 그들의 기분 나쁜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하아…… 하아……."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지훈의 몸을 지탱하던 팽팽한 긴장의 끈이 툭 끊어졌다.

"선배!"

"강지훈!"

서진과 예준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지훈은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수술실 구석에 있는 당직방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지옥의 불길 위를 걷는 듯한 고통이었다.

쿵.

당직방 문을 닫고 들어서자마자 지훈은 가슴을 움켜쥔 채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쓰러졌다.

"커헉……!"

목구멍을 타고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이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지훈의 시야 전체가 암전되듯 어두워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붉은 피처럼 붉게 타오르는 생사장부의 거대한 경고창이 그의 뇌 신경망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위험: 급성 심근 괴사 80% 진행 중.] [생명력 임계치 도달. 남은 수명 타임라인의 급격한 붕괴가 시작됩니다.] [생존 가능 시간: 48시간 이내.] [경고: 즉각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계약자의 심정지가 발생합니다.]

지훈은 가슴을 찢는 듯한 심부전의 고통 속에서, 굳어가는 손가락으로 차가운 바닥을 움켜쥐었다.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지며, 마지막 경고음이 그의 귓가를 잔인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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