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교수님! 코, 코피가……! 아니, 피가 안 멈춰요!"

백서진의 비명이 차가운 수술실 벽을 때리고 흩어졌다.

강지훈의 고개가 꺾이며 바닥으로 추락하기 직전, 그의 시야는 온통 암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귓가를 찢는 고주파의 이명이 뇌 신경망을 사정없이 난타했고, 가슴 한가운데가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것처럼 타들어 갔다.

쿵.

완벽한 집도를 끝마친 대가. 생사장부(生死帳簿)가 청구한 수명 차감의 고통은 매번 심장과 뇌세포를 한계까지 쥐어짜 댔다. 무너지려는 지훈의 어깨를 백서진이 온 힘을 다해 붙잡았다. 가냘픈 체구에서 나오리라 믿기 힘든 악착같은 완력이었다.

지훈은 턱 끝을 타고 흐르는 검붉은 점액질의 액체를 거칠게 닦아냈다. 수술 가운 소매가 순식간에 시커먼 핏빛으로 젖어 들었다.

"비켜."

그는 서진의 손을 거칠게 밀쳐냈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호흡 곤란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약하게, 그리고 빠르게 뛰는 서맥성 부정맥의 전조가 느껴졌다.

"이 상태로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당장 눕고 바이탈부터 확인해야 해요! 수축기 혈압이 백 이하로 떨어진 건 교수님 본인이라고요!"

백서진이 그의 앞을 막아서며 호통을 쳤다. 평소의 차분함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그녀의 눈동자에는 지훈을 향한 진정 어린 걱정과 헌신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 눈빛은 단순한 조수의 것이 아니었다. 사선에 선 동료를 어떻게든 살려 놓겠다는 처절한 의지였다.

지훈은 짓씹은 입술 새로 스며드는 비린 혈액의 맛을 삼켰다.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그녀의 떨리는 손길에, 철벽 같던 지훈의 완벽주의적 내면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다. 타인과의 감정적 교감을 철저히 거부해 왔던 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헌신이 가슴속 깊은 무력감의 틈새를 메워오는 것을 느꼈다.

"죽지 않아."

지훈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낮게 읊조렸다.

"겨우 이 정도로 무너지면, 내 손으로 살려야 할 환자들은 누가 책임지나."

"그 고집이 사람 잡는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교수님이 쓰러지면 이 환자들도 끝이에요!"

서진이 지훈의 젖은 수술가운 깃을 조이며 쏘아붙였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수술실 조명 아래에서 번뜩였다. 지훈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수술실 한구석에 놓인 보조 의자에 몸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 시트가 엉덩이에 닿자 비로소 육체의 통증이 실시간으로 동기화되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그 과정을 멍하니 지켜보던 사내가 있었다.

제4외과 수술실의 낡은 가스 공급 장치 옆에 서 있던 한예준이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실과 바늘을 쥐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예준의 시선은 지훈의 붉게 물든 턱끝에서부터, 조금 전 완벽하게 봉합된 환자의 가슴팍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어떻게…… 그걸 알아챈 거지?"

한예준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침묵을 깨뜨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압도적인 실력 차를 목격한 자의 굴복과, 동시에 외과의로서의 억누를 수 없는 지적 갈망이 혼재되어 있었다.

"불량 가스 밸브 말이야. 수술 도중 가스 배관의 압력이 미세하게 출렁였을 때, 넌 망설임 없이 온열 수혈기를 우회해서 라인을 새로 잡았어. 에어 엠볼리즘(공기 색전증)이 오기 직전의 찰나였지. 기계의 결함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움직이더군."

지훈은 머리를 짓누르는 두통 속에서도 예준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앞에는 이미 생사장부가 시각화해 준 붉은색 경고 마크와 숫자들이 흐릿하게 명멸하고 있었다.

[수입 불량 가스 밸브 시리얼 넘버: SE-9982-X] [오만식 처장 비자금 장부 기재 내역: 단가 120달러 상당의 저가 불량품을 1,200달러로 허위 계상 및 납품 승인] [누출율: 분당 45cc. 열처리 우회로 미확보 시 환자 가스 중독 및 폭발 위험성 94%]

2화에서 오만식의 통화 내역을 감청하고 장부 메인 프레임 구석에서 포착했던 바로 그 시리얼 넘버였다. 오만식이 병원 예산을 횡령하기 위해 반입한 저질 수입 밸브가 바로 이 제4외과 수술실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훈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수술 도중 배관의 압력 수치를 실시간으로 계산해 우회 루트를 설계했었다.

"시리얼 넘버 SE-9982-X."

지훈이 피 묻은 입술을 열어 차갑게 뱉어냈다.

"그게 이 방에 설치된 가스 밸브의 실체다. 오만식 처장이 제약사와 짜고 들여온 저품질 불량 의료기기지. 미세 누출량이 분당 45cc에 달해. 마취 가스 분출 압력이 조금만 치솟아도 역류해서 환자의 폐를 태워버리거나 정전기만으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이야."

한예준의 동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설마 오만식 처장의 비리를 진작에 짚고 있었다는 건가?"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 비리가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순간을 내 눈으로 직접 봤을 뿐이다."

지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그는 한예준의 코앞까지 걸어갔다. 두 사내의 시선이 공중에서 팽팽하게 맞부딪쳤다.

"한예준."

지훈의 음성이 수술실의 냉기만큼이나 건조하게 가라앉았다.

"넌 실력이 좋아. 매뉴얼대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하지만 이곳 제4외과는 매뉴얼이 통하지 않는 쓰레기 매립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량 기기들, 들어오지 않는 예산, 그리고 환자를 돈으로만 보는 수뇌부들의 압박."

"그래서? 나보고 이 쓰레기통에서 너랑 같이 뒹굴자고?"

"아니. 넌 네가 좋아하는 그 고결하고 정밀한 기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와 손을 잡아야 해."

지훈이 예준의 가슴팍을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오만식 일파가 병원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똑똑히 봤겠지. 그들이 들여온 썩은 기기들 때문에 네 집도가 실패로 끝나고, 네 명예가 실추되는 걸 원하나? 나와 기술 동맹을 맺어라. 난 너에게 생존의 루트를 제공하고, 넌 내 뒤를 받쳐라."

한예준은 침을 삼켰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눈앞의 강지훈은 미친놈이 분명했다. 수명을 깎아 먹는 듯한 극심한 신체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기어코 환자의 생존율을 100%로 만들어내는 괴물.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그 괴물의 밑바닥에 흐르는 천재적인 집도 감각과 병원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려는 칼날 같은 의지는, 정통 기술만을 숭상하던 한예준의 심장을 강하게 고동치게 만들었다.

"……조약은 임시다."

한예준이 마침내 주먹을 꽉 쥐며 대답했다.

"네가 그 기괴한 수술법으로 환자를 망치거나, 오만식의 칼날에 먼저 쓰러진다면 난 언제든 널 버릴 거야. 하지만 저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내 수술실을 오염시키는 꼴은 나도 눈 뜨고 못 봐."

"그거면 충분해."

지훈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병원 내 최고의 정밀 외과의인 한예준이 그의 날개로 합류했다. 독고다이 괴물로 불리며 사방의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강지훈에게, 마침내 든든한 기술적 방패가 생긴 순간이었다.

그때, 곁에서 묵묵히 지훈의 상태를 체크하던 백서진이 품에서 스마트 패드를 꺼내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무거웠다.

"교수님, 그리고 한 선생. 두 분의 동맹은 아주 훌륭한 시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오만식 처장과 송원필 이사장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카르텔을 쥐고 있어요. 단순히 수술실 비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제4외과를 지킬 수 없습니다."

서진이 지훈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제 아버지는 세인트 미카엘 재단의 주요 주주이자 송원필 이사장과 오랜 정치적 동반자입니다."

지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사실을 나에게 밝히는 이유가 뭐지?"

"그들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서예요."

서진의 목소리에 서린 각오는 단단했다.

"가족 모임에서 들었어요. 아버지가 보관하고 있는 세인트 미카엘 VIP 비밀 회계 비리 장부가 있습니다. 송원필 이사장이 정계 인사들에게 제공한 불법 비자금 세탁 경로와, 리베이트 자금의 종착지가 고스란히 담긴 장부죠. 그 장부의 보관 장소를 알아낼 실마리를 제가 쥐고 있습니다."

지훈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 장부만 손에 넣는다면, 오만식뿐만 아니라 송원필 이사장조차 우리를 건드릴 수 없어요. 역방향 의료 경제적 압박법이라고 하셨죠? 병원이 입을 수천억 원대의 재무적 손실액과 사법적 리스크를 영수증 채로 그들의 목에 들이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마스터키예요."

"그걸 나에게 넘기겠다는 건, 네 아버지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훈의 지적에 서진은 쓰라린 미소를 지었다.

"자본에 놀아나며 환자의 목숨을 흥정하는 의사 집안의 일원으로 사는 건, 이제 지긋지긋해요. 전 진짜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수명을 깎아가며 환자를 살리는 걸 더는 방관할 수 없어요. 이 장막을 걷어내야 교수님도 살 수 있으니까요."

지훈의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병원 내 최고의 기술을 가진 라이벌 한예준의 기술적 조력, 그리고 최고 가문의 엘리트이자 완벽한 보좌인 백서진이 건네는 권력의 마스터키.

철저히 혼자서 죽음을 담보로 칼을 휘두르던 강지훈에게, 이제는 그의 등을 지켜줄 강력한 우군과 세력이 구축되었다. 제4외과는 더 이상 버려진 쓰레기통이 아니었다. 송원필의 카르텔을 정면으로 타격할 가장 위협적인 요새가 되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훈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동시에 수술실 벽면에 설치된 병원 내부 공용 모니터의 화면이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강제로 전환되었다.

삐이이이—!

날카로운 경보음과 함께, 세인트 미카엘 병원 전체 통신망에 대문짝만하게 공표된 공문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행정처 징계 및 폐쇄 명령 고시] - 대상: 제4외과 (중증 메디컬 아웃사이더 구역) 전체 - 처분 내용: 1. 제4외과 구역의 전격 강제 폐쇄 및 시설 봉쇄. 2. 임시 책임자 강지훈 의사의 의료 면허 무기한 효력 정지 및 사법 기관 고발 조치. - 사유: 무자격 의료 기기 임의 개조, 집도 가이드라인 상습 위반 및 병원 재정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 혐의. - 발신: 세인트 미카엘 의료재단 행정처장 오만식

화면 속 붉은 낙인은 마치 사형 선고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결국 일을 저질렀군."

한예준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백서진의 얼굴 역시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하지만 강지훈은 턱 끝에 묻어 있던 핏자국을 완전히 닦아내며, 모니터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생사장부의 인터페이스가 새로운 인과율의 숫자를 계산해 내며 푸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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