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미쳤어?! 의료 기기를 임의로 개조하겠다고? 그건 범죄야!"

한예준의 날카로운 비명이 수술실의 밀폐된 공기를 찢었다. 그의 손이 지훈의 어깨를 붙잡으려 허공을 가르며 뻗어왔다. 정통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한예준에게 수술실 안에서 장비를 파괴하는 행위는 의학적 살인이나 다름없었다.

지훈은 어깨를 툭 까닥여 한예준의 손아귀를 가볍게 비껴냈다. 그의 시선은 수술대 옆에 놓인 구형 온열 수혈 장비, HICO-3000의 누런 전원 패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끄러워."

지훈의 목소리는 얼음판 위에 떨어지는 메스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살리고 싶으면 가만히 보고나 있어. 아니면 꺼지든가."

"뭐라고?"

"이 수술실 안에서 환자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건 나다."

드라이버 끝이 플라스틱 제어부의 틈새를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갔다. 쩍, 하는 파열음과 함께 회색 베젤이 뜯겨 나갔다. 내부의 구리선과 초록색 에폭시 기판이 흉물스럽게 드러났다. 매캐한 플라스틱 탄내가 지훈의 콧등을 스쳤다.

한예준은 이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미친놈. 저건 의사가 아니라 수술실에 들어온 폭도였다. 하지만 지훈의 손놀림은 폭력적인 외양과 달리 기괴할 정도로 정밀했다.

지훈의 망막 위로 푸르스름한 가상 인터페이스가 겹쳐 올랐다. 생사장부(生死帳簿)의 시뮬레이션 격자가 회로도 위에 붉은색 선을 그리며 확장되었다.

[기기 분석 완료: HICO-3000 구형 온열 수혈기] [오작동 원인: 히터 코일 제어용 솔레노이드 밸브 차단] [위험 변수: 세인트 미카엘 본관에서 유입되는 가스 매니폴드 압력 불균형]

그 순간, 지훈의 뇌리에 3일 전 오만식 행정처장의 통화 내역에서 포착했던 데이터가 떠올랐다. 오만식이 리베이트를 챙기기 위해 제4외과를 비롯한 구관 건물 전체에 반입한 불량 해외 수입 가스 밸브.

'시리얼 넘버 V-784-A.'

그 불량 밸브는 미세한 가스 누출과 압력 역류 현상을 동반하고 있었다. 현재 이 수술실의 벽면에 설치된 산소 및 질소 공급 배관 역시 그 V-784-A 밸브와 연결되어 있었다.

온열 수혈기의 전력을 강제로 올려 히터 코일을 가열하면, 배관의 미세 누출 가스와 접촉해 스파크가 일어날 확률이 극도로 높았다. 단순한 기계 고장이 아니었다. 까딱하면 수술실 전체가 폭발할 수도 있는 연쇄 반응의 도화선이었다.

[인과율 계산: 가스 누출 차단 우회 루트 탐색] [우회 성공 확률: 12%] [성공률 100% 고정 필요 수명 대가: 45일]

'겨우 이따위 기계를 돌리는 데도 내 수명을 뜯어가겠다고?'

지훈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미 365일에 더해 추가로 깎여 나간 수명 때문에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통증이 불쑥 솟구치고 있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덜컥거렸다. 하지만 지금 물러서면 환자는 뇌사다.

지훈은 수명을 지불하는 대신, 자신의 뇌 신경망에 각인된 완벽한 집도 공식의 수치들을 직접 강제 대입하기로 했다. 장부의 자동 개변이 아닌, 인간의 영역에서 가능한 극한의 정밀 조작.

"백서진."

지훈이 드라이버를 내려놓고 핀셋을 쥐며 낮게 불렀다.

"예, 교수님!"

"벽면의 가스 차단기 아래쪽을 봐. 수동 압력 밸브가 있을 거야. 시리얼 넘버 V-784-A라고 적힌 황동색 플러그를 찾아."

백서진은 망설임 없이 벽면의 매니폴드 하단으로 몸을 날렸다. 어두운 구석, 먼지가 뽀얗게 쌓인 배관 뭉치 사이에서 그녀는 지훈이 말한 시리얼 넘버를 찾아내고 경악했다.

"있어요! V-784-A…… 진짜로 누출 방지 씰이 삭아 있어요. 미세하게 가스 냄새가 나요!"

한예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가스 누출이라고? 미쳤어? 당장 수술실 산소 차단해! 불꽃이라도 튀면 다 같이 날아간단 말이야!"

"차단하면 환자는 1분 안에 저산소증으로 죽어."

지훈이 침착하게 핀셋으로 기판의 파란색 저항 소자를 뜯어냈다.

"백서진, 그 밸브의 압력 게이지를 2.4바(bar)로 고정해. 그리고 수동 레버를 15도만 왼쪽으로 돌려. 가스 유량을 줄여서 인화 하한계 미만으로 떨어뜨린다."

"하지만 밸브가 노후화돼서 정확한 눈금이 안 보여요!"

"감각으로 해. 쇠붙이가 맞물려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세 번 날 때까지 돌려. 1밀리미터라도 더 돌아가면 압력이 솟구쳐서 밸브가 터진다."

백서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밸브 손잡이를 쥐고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했다.

스윽, 사각.

한 번.

사각.

두 번.

지훈은 기판 내부의 바이패스 회로를 직접 동선으로 연결했다. 납땜 도구도 없는 상황, 그는 수술용 미세 와이어를 이용해 기판의 구리 패턴을 강제로 묶어버리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수작업을 감행했다.

"마지막……!"

백서진이 이를 악물며 손목을 비틀었다.

사각.

세 번의 마찰음이 정확히 울림과 동시에, 지훈이 온도 조절 다이얼을 시계 방향으로 완전히 꺾었다.

찌르르릉!

타버린 기판에서 비명 같은 기계음이 울리더니, 이내 굳게 닫혀 있던 액정 화면에 초록색 불빛이 들어왔다.

[출력: 38.5°C 설정 완료] [가스 주입 압력 안정: 2.38bar]

"어…… 어?"

한예준이 멍하니 구형 장비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10년 넘게 방치되어 고철이나 다름없던 기계가, 심지어 가스 폭발의 위험마저 우회한 채 완벽하게 정상 작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회로 설계를 완전히 꿰뚫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조작이야. 게다가 그 불량 밸브의 압력 특성을 어떻게 안 거지?"

"질문할 시간 없다."

지훈이 수술대로 복귀하며 차갑게 지시했다.

"환자 혈압."

그 순간, 모니터의 심음 경보가 다시 한번 날카롭게 치솟았다.

삐— 삐— 삐—!

"혈압 급락합니다! 50…… 40…… 30까지 떨어집니다!"

마취과 간호사의 다급한 외침이 수술실을 얼려버렸다. 저체온증으로 인한 뇌 부종이 한계에 다다르며, 뇌로 가는 혈류가 완전히 차단되기 직전이었다. 심장 역시 미약하게 파르르 떨리며 심실세동의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

"체온 31.8도! 이대로 관류압이 더 떨어지면 뇌사입니다!"

한예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수술실의 모든 장비가 환자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온열 수혈을 시작해 봐야 온기가 뇌에 도달하기도 전에 심장이 멈출 터였다.

"우회 동맥로를 만든다."

지훈의 선언에 한예준이 소리쳤다.

"미쳤나, 강지훈! 이 혈압에 우회로를 뚫겠다고? 가압 장치도 없이 동맥을 열면 혈류가 역류해서 뇌 관류는커녕 뇌출혈로 즉사야!"

"가압 장치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했을 텐데."

지훈이 백서진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백서진, 보조 수액 백에 압박 커프 감아. 수동으로 압력을 180mmHg까지 올린다. 동맥압보다 높은 압력으로 온열 혈액을 밀어 넣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강제로 밀어 넣다간 경동맥이 터질 수도 있어요!"

"내가 문합하는 동맥은 터지지 않아."

지훈의 눈빛에는 광기에 가까운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의 시야에 생사장부의 가상 혈관 지도가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환자의 내경동맥과 외경동맥의 분기점, 그중에서도 가장 압력 저항이 강한 지점이 붉은색 타깃 마크로 깜빡였다.

[최적 문합 지점: Right Common Carotid Artery 분기점 상부 1.2cm] [오차 허용 범위: 0.1mm] [출혈 제어 실패 시 사망률: 99.8%]

"메스."

지훈이 손을 뻗었다.

간호사가 건넨 메스가 환자의 목 앞부분을 주저 없이 갈랐다. 피부가 열리고, 피하 지방층을 지나 붉은 근육막 사이로 박동을 멈춰가는 총경동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예준, 썩어 빠진 매뉴얼 타령할 거면 리트랙터나 잡아."

지훈의 냉혹한 다그침에 한예준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지훈의 메스 끝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듯 빠르고 정확했다. 혈관을 감싸고 있는 초미세 신경 다발을 단 한 가닥도 건드리지 않고, 오직 동맥 벽만을 완벽하게 노출시켰다.

"압박 커프 가압 시작해!"

지훈이 소리쳤다.

백서진이 온 힘을 다해 가압 펌프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압력계의 바늘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120…… 150…… 180mmHg.

"가압 완료되었습니다!"

"동맥 절개한다."

지훈이 11번 메스 날로 총경동맥의 전벽을 미세하게 절개했다. 압축된 혈액이 뿜어져 나오려는 찰나, 지훈의 왼손이 이식용 카테터를 구멍 안으로 번개처럼 밀어 넣었다.

피 한 방울도 수술대 밖으로 튀지 않았다. 완벽한 진입이었다.

"7-0 프롤린(Prolene)."

지훈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이 붉은 혈관 벽을 통과하며 기하학적인 매듭을 만들어냈다.

한예준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보통의 외과의라면 루페(확대경)를 쓰고도 몇 분은 걸릴 초미세 문합이었다. 하지만 지훈은 루페도 없이, 마치 3차원 홀로그램으로 혈관의 단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늘을 찔러 넣었다.

바늘이 궤적을 그리며 지나갈 때마다 혈관 벽이 한 조각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밀착되었다.

"이게…… 가능한가?"

한예준의 입술 사이로 신음 같은 독백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영역이 아니었다. 환자의 혈압, 혈류의 흐름, 가압 주입되는 따뜻한 혈액의 저항값까지 전부 머릿속으로 계산해 실시간으로 보정하는 '인간 컴퓨터'의 영역이었다.

"클램프(Clamp) 오프."

지훈이 차갑게 명령했다.

동맥을 막고 있던 겸자가 열렸다. 38.5도짜리 따뜻한 혈액이 가압 장치의 압력을 타고 환자의 경동맥을 통해 뇌로 거침없이 흘러 들어갔다.

순간, 환자의 목줄기가 따뜻한 붉은빛으로 물드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삐————

길게 늘어지던 모니터의 심음이 급격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혈압 상승합니다! 70…… 90…… 110으로 안정화됩니다!"

"체온 반등합니다! 34.2도…… 35.8도! 정상 범주로 진입합니다!"

마취과 간호사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였다.

한예준은 뒤걸음질을 쳤다. 그의 등 뒤에 놓인 수술실 벽면의 낡은 타일이 차갑게 닿았다.

불가능한 수술이었다. 낙후된 제4외과의 장비, 불량 가스 밸브의 위험, 그리고 30까지 떨어진 혈압. 매뉴얼대로라면 100% 사망 선고를 내리고 시신 정리실로 보냈어야 할 환자였다.

하지만 강지훈은 그 모든 악조건을 역으로 이용해 환자를 살려냈다. 장비를 개조하고, 배관의 압력을 수동으로 제어하며, 오만의 극치라 여겼던 초미세 문합을 성공시켰다.

"이게…… 네가 말한 집도인가?"

한예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품었던 오만함이나 경쟁심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거대한 벽을 마주한 자의 무력감과, 부정할 수 없는 실력 앞에 무릎 꿇은 패배자의 굴복만이 가득했다.

지훈은 한예준을 보지 않은 채, 마지막 피부 봉합을 마무리지었다.

소독포를 젖히자 환자의 규칙적인 호흡이 수술실 안을 가득 채웠다. 살았다. 완벽한 생존이었다.

망막 위에서 붉게 깜빡이던 생사장부의 경고창이 서서히 흐려지며 사라졌다.

[수술 성공률: 100%] [인과율 확정: 환자 생존 보장]

지훈은 메스를 내려놓았다. 손끝에서 스르륵 힘이 풀렸다.

그와 동시에, 귓가를 찢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강타했다.

위이이이이잉—!

수천 마리의 매미가 한꺼번에 우는 듯한 고주파의 소음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뇌세포가 하나씩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아…… 윽."

지훈의 몸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교수님?!"

백서진이 급히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지훈의 시야는 이미 암전되고 있었다. 가슴뼈 안쪽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덜컥거리며 맥박을 멈추려 요동쳤다. 뇌 신경망에 강제로 쑤셔 넣었던 완벽한 집도 공식의 대가. 수명을 깎아 기적을 부린 사신의 청구서가 그의 육체를 사정없이 짓밟고 있었다.

지훈은 입술을 짓씹었지만, 감각이 없었다.

"턱."

그의 고개가 아래로 꺾이는 순간, 하얀 소독포 위로 검붉은 액체가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코에서 흘러내린 선혈이 지훈의 턱끝을 타고 내려가 수술 가운을 붉게 물들였다. 단순한 코피가 아니었다. 점도가 높은, 검다 못해 보랏빛을 띠는 내장 역류성 혈액이었다.

"교수님! 코, 코피가……! 아니, 피가 안 멈춰요!"

백서진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멀어지는 의식 너머로 흐릿하게 지워져 갔다. 지훈의 몸이 무너지듯 수술실 바닥을 향해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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