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이이잉!
가슴팍을 맥동하는 뜨거운 전류가 흉골을 쪼개듯 파고들었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지독한 탄내와 함께, 짓무른 피부 위로 불꽃처럼 붉은 활자가 조각되었다.
[남은 심장 수명: 360일]
쿵, 쿵, 쿵.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늑골을 들이받았다. 뇌하수체를 직접 타격하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강 선생님! 가슴이 왜 그래요? 피가……!"
백서진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지훈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훈의 셔츠 깃 사이로 흘러나온 핏방울이 시커먼 먼지가 쌓인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지훈은 이를 악물고 서진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요! 지금 가슴에서 불이 붙은 것처럼 피가 솟구치는데!"
"밀고 들어옵니다."
지훈이 가슴을 꽉 움켜쥔 채 삐걱거리는 녹슨 철문 너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바퀴 굴러가는 다급한 소리가 어두운 복도를 울렸다. 덜컹거리는 스트레처카 위에는 온통 피범벅이 된 노인이 누워 있었다. 찢어진 작업복 사이로 허연 대퇴골이 뚫고 나와 있었고, 그 주변으로 검붉은 혈액이 분수처럼 솟구치며 바닥을 적셨다.
"비켜요! 비켜!"
헐떡이며 들어선 인턴 뒤로, 번쩍이는 은색 프레임 안경을 쓴 사내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걸어 들어왔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 한 치의 구김도 없는 의사 가운. 제1외과의 수석 펠로우이자 세인트 미카엘 병원의 정통 엘리트, 한예준이었다.
"거기까지."
한예준이 지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이 환자, 내가 집도한다. 강지훈, 비켜라."
지훈은 대답 대신 노인의 허벅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액의 궤적을 쫓았다.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빛의 생사장부가 펼쳐지며 붉은 경고등을 쏘아 올렸다.
[대상자: 김만수 (72세)] [상태: 다발성 골반뼈 골절, 대퇴동맥 및 정맥 동시 파열, 저혈량성 쇼크] [현재 출혈량: 1,800cc (실시간 지속 증가 중)] [생존 확률: 4%] [감염도: 72% (오염된 도로 파편 노출)]
"이 환자는 제4외과로 이송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지훈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의 안구는 오직 환자의 파열된 혈관만을 정밀하게 조작하고 있었다.
"행정처에서 실수한 모양인데, 이 환자는 당초 제1외과 내원 예정이었어."
한예준이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지훈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어조에는 뼈가 들어 있었다.
"오만식 처장님이 물러났다고 해서 제4외과가 진짜 외과라도 된 줄 아나 본데, 착각하지 마. 이런 다발성 외상은 너희 같은 폐기 처리반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장비도, 인력도 없는 구역에서 환자를 죽일 셈인가?"
"경고하는데, 입 닥치고 비켜."
지훈의 눈빛이 칼날처럼 벼려졌다.
"환자 혈압이 60에 40까지 떨어졌어. 여기서 1분만 더 지체하면 뇌사로 진행된다. 내 환자 앞길 막지 마십시오, 한 선생님."
"네 환자라고?"
한예준이 코웃음을 쳤다.
"매뉴얼도 모르는 무식한 소리군. 대퇴동맥 파열에 골반강 내 출혈이야. 하이브리드 수술실에서 혈관 조영술을 병행하며 오픈해야 살릴까 말까 한 케이스라고. 이 쓰레기장 같은 제4외과 수술실에 그런 장비가 단 하나라도 있나?"
실제로 제4외과의 수술실은 처참했다. 녹이 슬어 칠이 벗겨진 수술대, 구형 간이 석션기, 그리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무영등이 전부였다.
그때, 환자의 모니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삐이이이—!
"어레스트(Arrest)입니다! 혈압 안 잡힙니다!"
백서진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노인의 흉부를 압박하려 들었다.
"서진 씨, 비켜요."
지훈이 서진을 밀쳐내며 메스를 움켜쥐었다.
"미쳤어? 여기서 무작정 째겠다고?"
한예준이 지훈의 손목을 움켜잡으려 손을 뻗었다.
탁!
지훈이 한예준의 손목을 가볍게 쳐냈다. 그의 손끝은 이미 생사장부가 제시하는 가장 완벽한 인과율의 궤적을 그리며 노인의 허벅지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실력이 없으면 뒤에 서서 구경이나 해."
지훈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인과율 강제 개변 시스템 작동 시작] [성공 확률 고정: 100%] [페널티 부과: 심장 박동수 분당 140회 강제 유지, 시야 협착 발생]
두통이 머리를 깨부술 듯 찾아왔다. 지훈의 눈가에서 붉은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려 뺨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그 어떤 정밀 기계보다 완벽하게 움직였다.
서걱!
마취도 채 되지 않은 노인의 허벅지 피부가 단번에 갈라졌다. 뿜어져 나오는 혈액이 지훈의 안면 보호대를 적셨다.
"석션!"
지훈의 외침에 백서진이 반사적으로 낡은 석션 호스를 상처 부위로 밀어 넣었다. 구형 기계 특유의 덜덜거리는 소음과 함께 핏물이 빨려 들어갔지만, 시야는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
"안 보여! 이 상태로는 블라인드 클램핑도 불가능해!"
한예준이 소리쳤다. 통상적인 의학 지식으로는 이 상황에서 출혈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방이 피로 가득 찬 웅덩이 속에서 바늘구멍만 한 혈관 파열점을 찾아야 하니까.
그러나 지훈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고 있었다.
생사장부가 영사하는 푸른빛의 그리드가 환자의 허벅지 안쪽 근육 사이로 정확한 혈류의 흐름을 3차원 그래픽으로 쏘아 올렸다.
[대퇴동맥 분지부 2.1cm 하방, 후방 인대 뒤편 미세 파열점 발견] [지혈 압박점: 11시 방향 3cm 깊이]
지훈은 주저 없이 손가락을 핏구덩이 속으로 쑤셔 넣었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그의 검지 끝은 정확히 후방 인대 뒤쪽의 찢어진 동맥벽을 짓눌렀다.
푸슈슉—!
솟구치던 혈액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
한예준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말도 안 돼……. 감각만으로 대퇴동맥 뒤쪽 분지부를 짚었다고? 내시경도 없이?"
"서진 씨, 핀셋."
지훈이 손가락으로 압박을 유지한 채 손을 뻗었다.
백서진은 침착하게 트레이를 살폈다. 하지만 수술용 핀셋이 보이지 않았다. 제4외과의 정비 상태는 최악이었다. 구석에 뒹굴고 있는 것은 녹슨 가위와 규격이 맞지 않는 구형 핀셋뿐이었다.
"핀셋이…… 녹슨 것밖에 없어요!"
서진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
"그거 줘요. 소독액에 한 번 담그고 바로 가져와."
"하지만 감염 위험이……!"
한예준이 경악하며 쏘아붙였다.
"미친 짓이다! 저런 오염된 기구를 쓰면 패혈증으로 몇 시간도 못 버티고 쇼크사해!"
"그럼 한 선생님이 지금 제1외과에서 멸균 핀셋이라도 훔쳐 오실 겁니까?"
지훈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이마에는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라 있었다.
"장부가 계산한 이 환자의 감염도는 이미 72%야. 핀셋 하나 더 쓴다고 대세 안 바뀝니다. 살려놓고 씻어내면 돼."
지훈은 서진이 건넨 구형 핀셋을 낚아챘다.
철컥.
그는 보이지 않는 피의 심연 속에서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찢어진 혈관 극미세 단면을 맞물려 잡았다.
"봉합사. 프로린 6-0."
"여기요!"
서진의 손놀림도 지훈의 궤적에 맞춰 극도로 빨라졌다.
지훈의 바늘이 허공을 갈랐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바늘이 혈관벽을 통과할 때마다 생사장부의 푸른 수치들이 실시간으로 변동했다.
[출혈량 감소: 실시간 1.2cc/min] [성공률 유지 중] [남은 심장 수명: 359일 22시간]
수명이 깎여 나갈 때마다 지훈의 가슴팍에서 타오르는 낙인이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지훈은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리며 통증을 참아냈다.
"거짓말……."
한예준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지훈의 손놀림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은 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그 어떤 매뉴얼과도 달랐다. 정형화된 프로토콜을 완전히 무시한, 오직 '생존'이라는 극단적인 목적만을 위해 설계된 야수 같은 집도였다. 단 하나의 불필요한 움직임도 없었고, 도구의 한계를 인간의 통제력으로 완전히 메우고 있었다.
"석션 대고, 시야 계속 유지해."
지훈이 읊조렸다.
"예, 예!"
서진이 낡은 석션 팁을 움직여 시야를 확보하자, 마침내 완전히 봉합된 대퇴동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팽팽하게 혈류가 돌기 시작하며 노인의 창백했던 피부에 아주 미세하게 붉은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삐- 삐- 삐-
불안정하게 늘어지던 모니터의 심음이 규칙적인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혈압 올라갑니다! 90에 60! 안정권 진입하고 있어요!"
서진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지훈은 천천히 허리를 폈다. 그의 온몸은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지훈은 가운 소매로 눈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한예준을 똑바로 응시했다.
"봤으면 꺼져."
차가운 일갈에 한예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그에게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다.
"강지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그런 정확도로 지혈 포인트를 잡은 거지? 이건 통계적으로 불가능해!"
"통계 타령할 시간에 환자 바이탈이나 한 번 더 보지 그래."
지훈이 비아냥거리며 낡은 수술대 옆의 배관을 힐끗 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취기 옆에 연결된 가스 밸브였다. 낡은 금속 밸브 표면에 조각된 시리얼 넘버가 지훈의 뇌리에 각인된 장부의 데이터와 교차했다.
[시리얼 넘버: SE-99824X] [상태: 미세 가스 누출 가능성 89% (오만식 반입 불량 수입품)]
'이것도 오만식이 리베이트를 받아 챙기며 밀어 넣은 불량품이군.'
지훈은 마음속으로 밸브의 시리얼 넘버를 정확히 기록해 두었다. 오만식의 숨통을 영원히 끊어놓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가 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비리 장부를 들춰볼 여유가 없었다.
갑자기 환자의 호흡이 급격히 가빠지며, 기관지 내에서 끓는 듯한 가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모니터가 다시 붉은색 경고등을 깜빡였다.
[돌발 변수 발생: 급성 뇌부종 및 저체온증으로 인한 뇌 관류압 저하] [뇌세포 괴사 시작 확률: 94%] [해결 방안: 뇌 혈류 유지를 위한 즉각적인 온열 수혈 및 뇌압 조절]
"저체온증 쇼크다!"
한예준이 급히 환자의 목덜미를 짚으며 소리쳤다.
"이 환자, 차가운 수액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 체온이 32도까지 떨어졌다. 당장 혈액 온도를 올려서 뇌로 보내지 않으면 뇌사로 끝이야!"
"보온 장비 가동해."
지훈이 서진에게 지시했다.
"그, 그게……."
서진이 난감한 얼굴로 구석에 방치된 장비를 가리켰다.
"제4외과에 있는 온열 수혈 장비는 10년도 더 된 구형이에요. 히터 코일이 고장 나서 혈액 온도를 30도 이상으로 올리지 못해요. 지금 당장 본관에서 장비를 빌려오려면 최소 20분은 걸립니다!"
"20분이면 이 노인의 뇌는 완전히 녹아내려."
한예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말했잖아, 강지훈. 인프라가 없는 수술은 살인 행위라고. 정상적인 기기 없이는 뇌 수혈이 불가능해. 매뉴얼대로라면 지금 즉시 수술을 중단하고 본관 중환자실로 이송 수속을 밟아야 한다!"
한예준이 환자의 차트를 낚아채며 제4외과의 파멸을 선언하듯 위엄을 드러냈다. 그의 눈빛에는 지훈의 무모함을 징벌하겠다는 확신이 가득했다.
지훈은 한예준을 비웃듯, 수술대 옆에 놓인 구형 보온 장치로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이미 낡은 메스와 드라이버가 쥐어져 있었다.
"기기가 없으면."
지훈이 드라이버를 보온 장치의 전원 패널에 사정없이 찔러 넣었다. 스파크가 튀며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만들면 돼."
"미쳤어?! 의료 기기를 임의로 개조하겠다고? 그건 범죄야!"
한예준이 폭발하듯 비명을 질렀다. 정통 매뉴얼과 규격을 목숨처럼 아끼는 그에게, 지훈의 행동은 의사로서의 선을 아득히 넘어선 광기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비의 내부 회로를 뜯어내며, 가슴에 새겨진 360일짜리 낙인을 향해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사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