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마."
수술실의 멸균 공기를 가르고 들어온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지극히 날카로웠다. 에어타이트 도어가 거칠게 열리며 사법 경비대원 서너 명이 지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의 가슴팍에 새겨진 세인트 미카엘 병원 보안팀의 마크가 백색 조명 아래 차갑게 빛났다. 그 뒤로 숨을 헐떡이며 들어선 것은 행정처장 오만식이었다. 그의 이마에는 기름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일그러진 입술 사이로 누런 이가 드러났다.
"강지훈, 네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무단 집도에 사법 경비대 명령 불복종까지. 당장 메스 내려놓고 손 들어! 보안팀, 이 자를 무단 침입 및 의료법 위반 혐의로 즉각 체포해!"
오만식의 삿대질에 경비대원들이 지훈의 어깨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수술대 위, 아직 봉합이 끝나지 않은 소아 환자 은이의 가슴팍에서 미세한 동맥의 박동이 불규칙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경비대원들의 손끝이 아닌, 오만식의 찌푸려진 눈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지훈의 왼손이 수술용 트레이 옆에 놓여 있던 태블릿 PC를 낚아챘다. 멸균 비닐에 싸인 화면 위로 붉은색 수치들이 쉴 새 없이 명멸하고 있었다.
"체포?"
지훈의 음성은 낮고 무거웠다. 수술실 내부의 소음을 일순간에 집어삼키는 무게감이었다.
"처장님, 머리가 나쁘면 산수라도 잘하셔야지. 이 수술을 지금 중단시키는 순간, 당신이 감당해야 할 숫자가 얼마인지 계산은 해 보고 들어온 겁니까?"
지훈이 태블릿 화면을 오만식의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세인트 미카엘 병원의 로고와 함께 붉은 글씨로 작성된 ‘손실 추산 및 배상 책임 분담 명세서’가 띄워져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개소리야!"
오만식이 침을 튀기며 소리쳤지만, 지훈은 흐트러짐 없이 화면의 수치들을 하나씩 짚어 내려갔다.
"소아 응급 환자의 강제 퇴원 및 집도 방해로 인한 사망 사고 발생 시, 유족 측이 제기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액 최소 8억 5천만 원. 병원의 진료 거부 행위가 언론에 노출될 경우 예상되는 브랜드 가치 하락 및 환자 유치 손실액 최소 12억 원. 합계 20억 5천만 원."
지훈의 손가락이 화면을 아래로 쓸어내렸다.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데이터 시트가 나타났다. 그 위에는 수십 개의 일련번호가 정렬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숫자는 여기 있군요. 처장님이 지난달 독일산으로 둔갑시켜 수입한 중앙 가스 공급 장치 역류 방지 밸브, 시리얼 넘버 `SV-902-X`부터 `SV-935-X`까지의 목록입니다. 이거 중국산 저가 모조품이더군요. 통관 서류 조작하고 챙긴 리베이트가 대략 3억 4천만 원 정도 됩니까?"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오만식의 안면 근육이 사정없이 뒤틀렸다. 핏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그의 얼굴은 파랗게 질린 대리석처럼 변해갔다. 경비대원들의 손길도 허공에서 멈췄다. 그들 역시 처장의 급격한 태도 변화를 눈치챈 것이었다.
지훈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차가운 이성이 번뜩였다.
"이 수술방 문이 열린 채로 환자가 사망하면, 난 이 청구서와 불량 밸브 리베이트 장부, 그리고 처장님의 서명이 박힌 검수 보고서를 금융감독원과 보건복지부에 동시에 송출할 겁니다. 세인트 미카엘 병원의 주가가 단 2%만 빠져도 시가총액 기준 450억 원이 날아갑니다. 송원필 이사장님이 그 손실을 누구 목을 잘라 메울 것 같습니까?"
"하, 하아……."
오만식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사지가 눈에 띄게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지훈은 도덕을 말하지 않았다. 환자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따위의 감상적인 호소는 이 탐욕스러운 인간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직 철저한 손실의 극대화. 그것만이 괴물을 통제하는 유일한 쇠사슬이었다.
"선택하십시오, 처장님."
지훈이 태블릿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메스를 다시 쥐었다.
"경비대를 물리고 이 수술을 정상적인 응급 집도로 서류 처리할 건가, 아니면 나와 함께 20억짜리 소송과 450억짜리 주가 폭락의 소용돌이 속으로 처박힐 건가?"
오만식은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며 바닥을 헤맸다. 보복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린 조롱거리의 몰골이었다. 경비대원들은 이미 지훈의 기세에 압도되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처, 철수해……."
오만식의 목구멍에서 쥐어 짜낸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장님?"
경비대 조장이 의아한 듯 되묻자, 오만식은 제풀에 겨워 비명을 질렀다.
"철수하라고 하잖아! 당장 꺼져!"
오만식은 다리가 풀린 듯 비틀거리며 뒤로 자빠질 뻔한 것을 겨우 중심을 잡고는, 도망치듯 수술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에어타이트 도어가 무겁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수술실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하아……."
그제야 지훈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눈앞의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뇌 신경망을 타고 흐르는 극심한 과부하가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위험: 집도자의 심장 박동수 분당 182회 돌파.] [경고: 인과율 개변의 대가로 뇌세포 기능 저하 진행 중. 남은 수명: 185일.]
지훈의 몸이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 수술대 모서리를 잡으려던 그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강 선생님!"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서진이 잽싸게 지훈의 어깨를 부축했다. 지훈의 코끝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져 초록색 수술포 위를 적셨다.
"비켜…… 괜찮으니까 봉합 끝내."
지훈이 서진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려 했지만, 서진은 오히려 악착같이 그의 팔을 붙잡아 고정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분노와 경악이 뒤섞여 있었다.
"정신 차려요! 지금 본인 몰골이 어떤지 알기나 해요? 코피를 이렇게 흘리면서 무슨 수술을 더 하겠다는 겁니까!"
서진은 신속하게 멸균 거즈를 집어 지훈의 코밑을 압박했다. 거즈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서진의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당신 진짜 미치광이예요? 의사라면서 자기 목숨을 갉아먹어가며 수술을 하는 인간이 어디 있어? 오만식 처장을 협박할 때 쓴 그 자료들, 대체 어디서 난 겁니까? 병원 기획실장도 모를 법한 기밀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살리고 싶으면 입 닫고 어시스트나 해."
지훈이 이빨을 악물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수술대 위의 은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서진은 지훈의 그 차갑고도 집요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수명마저 아낌없이 던져버리는 이 괴물 같은 남자. 그의 무모함에 머리로는 욕이 치밀었지만, 동시에 정교하기 짝이 없는 역배상 기밀 자료의 정연한 기개와 완벽한 실력에 그녀의 심장이 강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자본과 권력에 굴복하는 의사들만 보고 자란 그녀에게, 지훈의 존재는 하나의 경이였다.
서진은 거즈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 미친 짓을 하든 말든, 내가 옆에서 살려놓을 테니까 수술이나 똑바로 해요. 대신, 앞으로 당신 수술은 내가 전담 보좌합니다. 당신이 수술대 위에서 뒈지는 꼴은 내 눈으로 못 보니까."
지훈은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진의 손길을 더는 거부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의 손끝이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훈의 뇌리에 각인된 집도 공식에 따라, 서진의 정밀한 보조 봉합이 은이의 미세 혈관을 완벽하게 메워나갔다.
마지막 타이백이 끝난 순간, 모니터의 바이탈 사인이 안정적인 곡선을 그리며 규칙적인 비프음을 울렸다.
띡, 띡, 띡.
수술 성공이었다.
* * *
수술실 밖 복도는 여전히 차가운 정적에 싸여 있었다. 지훈이 피로 물든 수술복을 벗고 나오자마자, 검은색 맞춤 정장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송원필 이사장의 수석 비서, 임형준 실장이었다.
"강지훈 선생."
임 실장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다. 그는 품 안에서 붉은색 직인이 찍힌 서류 한 장을 꺼내 지훈에게 내밀었다.
"이사장님의 메시지입니다."
지훈은 서류를 받아들지 않은 채 차가운 눈으로 임 실장을 응시했다.
"내용이 뭡니까?"
"오만식 처장의 건은 병원 내부의 불협화음으로 정리될 겁니다. 하지만 강 선생이 보여준 그 ‘자료’들은 세인트 미카엘의 재무적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시끄러운 잡음이 본관 외부로 흘러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임 실장이 서류를 지훈의 가슴팍에 가볍게 들이밀었다.
"징계위원회는 소집되지 않을 겁니다. 대신, 강 선생을 제4외과로 전보 조치합니다. 즉시 이동하십시오."
"제4외과라……."
지훈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제4외과. 세인트 미카엘 병원의 화려한 본관 건물 뒤편, 낡은 별관 지하에 위치한 일명 ‘폐기 구역’이었다. 예산 지원은 전무하고, 타 과에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판정받은 무연고자나 기초수급자 환자들이 임시로 머물다 사망하는 유령 구역. 그곳으로 보낸다는 것은 의사로서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지훈을 철저히 고립시켜 굶려 죽이겠다는 송원필의 잔인한 계산이었다.
"본관의 화려한 장비들이 아깝긴 하겠지만, 그곳이 강 선생 같은 아웃사이더에게 어울리는 수용소 아니겠습니까."
임 실장이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하지만 지훈은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기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본관의 그 더러운 정치판과 자본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오히려 그 쓰레기 매립지 같은 제4외과야말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환자만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성역이 될 터였다.
지훈은 서류를 낚아채며 짧게 내뱉었다.
"전보 명령, 감사히 받지."
그의 뒤를 따르던 백서진이 경악한 표정으로 지훈의 앞을 막아섰다.
"강 선생님! 제4외과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러는 겁니까? 거긴 장비도, 인력도 없어요! 그냥 죽으러 가는 곳이라고요!"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지훈이 서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살리러 가는 거다. 넌 본관에 남아."
"내가 말했죠. 전담 보좌하겠다고."
서진이 입술을 꽉 깨물며 지훈의 가방을 대신 짊어졌다.
"당신 혼자 보내면, 첫날부터 과로사로 시체가 돼서 나올 게 뻔하니까요. 가요, 그 귀신 나올 것 같은 유령 구역으로."
지훈은 말없이 별관으로 향하는 어두운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끼이익.
수년 동안 기름칠을 하지 않은 듯한 철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매캐한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제4외과 임시 당직실 겸 초진실은 사방이 빛바랜 연두색 페인트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구석에는 낡은 철제 책상과 삐걱거리는 간이침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세상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네요."
서진이 손으로 코를 막으며 먼지를 털어냈다.
지훈은 묵묵히 방 한가운데로 걸어가 낡은 청진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심장이 흉벽을 뚫고 나올 것처럼 불규칙하게 요동쳤고, 머릿속에서는 이명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위이이잉—!
당직실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낡은 무선 수신기가 찢어지는 듯한 하울링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 응급실에서 제4외과로 알린다! 신원미상의 전신 골절 및 다발성 장기 손상 환자 이송 예정! 본관 각 과에서 수술 불가 판정 내려 제4외과로 덤핑(Dumping) 처리한다! 즉시 대기하라!
그와 동시에, 지훈의 눈앞에 흐릿하게 가라앉아 있던 생사장부의 인터페이스가 폭발하듯 붉은 빛을 뿜어내며 허공에 떠올랐다.
[경고: 새로운 인과율 개변 대상자가 접근 중입니다.]
지훈의 가슴팍이 쩡하는 균열 소리와 함께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훈이 급하게 셔츠 단추를 풀고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왼쪽 가슴, 심장이 뛰는 바로 그 자리에 불꽃처럼 붉은 낙인이 선명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그것은 살을 태우는 듯한 극심한 고통과 함께 글자를 형성해 나갔다.
[남은 심장 수명: 360일]
그 숫자는 지훈이 이번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음 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강제로 지불해야 할 등가교환의 가혹한 영수증이었다.
"강 선생님? 가슴이 왜……?"
서진이 지훈의 가슴팍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빛을 보며 경악 어린 비명을 질렀다.
지훈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심장 수명을 삼켜버릴 가혹한 사투가, 이 버려진 구역에서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