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가 대가: 수명 180일 추가 차감. 수락하시겠습니까?]
지훈의 뇌리가 수락의 의사를 인지한 순간, 가슴 한가운데를 대형 화물차가 짓이기고 지나가는 듯한 살인적인 격통이 휘몰아쳤다.
"크헉……!"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온 신음은 귀를 찢는 고주파의 이명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삐- 하는 소음 속에서, 지훈은 눈앞이 암전되는 것을 느꼈다. 심장 근육 세포들이 실시간으로 섬유화되며 굳어가는 끔찍한 감각. 수명 180일이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하지만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지훈은 이를 악물고 메스를 쥔 손끝에 인과율의 궤적을 실었다.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0%의 확률을 깨부수는 푸른빛의 실선이 은이의 심장 위로 선명하게 그어졌다.
“강 선생님! 정신 차려요! 페이스가 흐트러집니다!”
백서진의 날카로운 외침이 멍한 고막을 두드렸다. 그녀의 손이 지훈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가 떨어졌다.
지훈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눈앞을 가린 붉은 막 사이로 생사장부의 푸른색 홀로그램 궤적이 벼락처럼 내리꽂히고 있었다.
[뇌 신경망 부하율 96.8%. 수명 차감 완료.] [최적의 집도 공식 산출: 무명동맥-폐동맥 간 0.12mm 미세 접합 경로 활성화.] [오차 허용 범위: 0.02mm 이하.]
0.12밀리미터. 인간의 육안으로는 식별조차 불가능한 극미세 영역의 경계선이었다. 머리카락 한 가닥보다 얇은 실을 이용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인 소아의 폐동맥 벽을 기워내야 했다. 손끝이 단 0.01밀리미터만 어긋나도 압력을 버티지 못한 혈관이 터져 나가며 수술대는 피바다가 될 터였다.
"닥쳐."
지훈은 갈라진 목소리로 짧게 내뱉었다. 입안 가득 고인 비릿한 피를 삼키며, 그는 포셉을 쥔 손가락 끝의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가 이명을 뚫고 쿵, 쿵, 거대하게 울렸다. 지훈은 그 불규칙한 맥박의 틈새를 노렸다. 심장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그 찰나의 정지 시간. 그 0.1초의 순간에만 손을 움직인다.
서진은 지훈의 옆에서 침을 삼켰다. 지훈의 마스크는 이미 흘러내린 코피로 붉게 절여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수술을 속행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훈의 눈동자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갑고 고요했다.
바늘이 공기를 가르고 은이의 우심실 유출로 부근, 찢어진 폐동맥 벽을 파고들었다.
서각.
살점이 서스펜션 너머로 가볍게 밀리는 미세한 마찰음이 지훈의 손가락을 타고 뇌척수액으로 전해졌다. 정확히 0.12밀리미터 깊이. 장부가 가리킨 인과율의 궤적이 지훈의 손끝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감염도 12%에서 4%로 급감.] [실시간 출혈 변수 제어 중.]
지훈의 시야 우측 하단에서 붉은색 경고 마크들이 어지럽게 명멸했다. 수술실 내부의 압력과 가스 농도를 표시하는 보조 프레임이었다.
[경고: 수술실 산소 및 마취 가스 공급 라인의 압력 미세 변동 감지.] [원인: 수입 불량 가스 밸브의 미세 가스 누출. 시리얼 넘버: SV-9082X-04.] [해당 부품 반입 책임 주체: 행정처장 오만식.]
'SV-9082X-04.'
지훈의 망막에 그 시리얼 넘버가 낙인처럼 박혔다. 오만식이 제약회사와 의료기기 업체로부터 뒷돈을 챙기기 위해 본관과 제4외과 전반에 밀어 넣은 저품질 수입 가스 밸브의 실체였다. 지훈은 그 숫자를 머릿속 한구석에 차갑게 입력해 두었다. 지금은 이 아이를 살리는 것이 먼저였다.
"프롤린 6-0."
지훈이 손을 뻗었다.
서진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바늘받침을 그의 손바닥에 쥐여주었다. 그녀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진은 지훈의 집도를 눈앞에서 지켜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단순한 외과 수술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생명력을 장작 삼아 타오르며 기적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사투였다.
지훈의 손끝은 기계보다 정밀했다. 바늘이 동맥 벽을 통과할 때마다, 찢어졌던 조직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제자리를 찾아가며 문합되었다. 서진은 지훈의 호흡에 완벽하게 싱크를 맞췄다. 지훈이 바늘을 빼내면 즉시 실을 팽팽하게 유지했고, 그가 매듭을 지을 때마다 정확한 타이밍에 가위로 실을 잘라냈다.
"타이."
"컷."
"다시, 타이."
"컷."
수술실 안에는 오직 가위가 실을 자르는 서늘한 금속음과 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만이 공명했다.
마취과 의사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0%였던 생존율 그래프가 지훈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위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12번째 매듭이 지어졌다.
지훈이 천천히 허리를 폈다. 그의 척추뼈가 우두둑 비명을 질렀고, 가슴 안쪽에서는 타는 듯한 통증이 다시금 밀려왔지만 그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디클램프(혈관 겸자 해제)."
지훈의 명령에 서진이 신속하게 혈관을 누르고 있던 겸자를 제거했다.
자연스럽게 혈류가 재건된 폐동맥과 인조혈관을 통해 뿜어져 들어갔다. 찢어진 틈새로 새어 나오는 피는 단 한 방울도 없었다. 완벽한 봉합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심박 모니터는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삐————.
수술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에피네프린 1앰플 더 줘."
지훈이 차분하게 지시하며 은이의 작은 심장 위로 가볍게 손가락을 얹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온기. 지훈은 심근을 미세하게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의 압력을 아주 정밀하게 조절하며, 멈춰버린 심장 전도계에 물리적인 자극을 주었다.
'뛰어.'
지훈은 마음속으로 읊조리지 않았다. 그저 살려야 한다는 절대적인 의지만을 손끝에 실어 보냈다. 과거 응급실 차가운 바닥에서 돈이 없어 치료를 거부당한 채 죽어갔던 어머니의 얼굴이 찰나의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두 번 다시 내 눈앞에서 환자를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그 상대가 신이든, 악마든, 병원 재단이든 상관없다. 내 구역에 들어온 환자는 반드시 살려낸다.
두우웅.
지훈의 손등 위로 미세한 진동이 감지되었다.
뚜, 뚜…….
모니터의 일직선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일정한 간격의 파형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뚜, 뚜, 뚜, 뚜—!
"바, 바이탈 돌아옵니다! 시스톨릭 85, 하트 레이트 105 정상 범주입니다!"
마취과 의사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백서진은 온몸의 긴장이 풀려 수술실 벽으로 반쯤 쓰러지듯 기대어 섰다. 마스크 너머로 그녀의 깊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과 짜릿한 전율이 가득 차 있었다. 평생 동안 의사라는 존재들에게 환멸만을 느껴왔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 냉소적이고 무자비한 남자가 보여준 기적은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불씨를 사정없이 지펴놓았다.
"환아 중환자실로 이송 준비해."
지훈이 수술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지며 무심히 말했다.
수술실 에어타이트 도어가 거칠게 열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강지훈! 이 무법자 자식, 당장 그 손 떼지 못해!"
잔뜩 핏대를 세운 오만식 행정처장이 수술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의 뒤에는 검은색 제복을 입은 원내 사법 경비대원 네 명이 험악한 표정으로 몽둥이를 쥔 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오만식은 수술대 위의 상황은 보지도 않은 채, 손가락질을 해대며 비명을 질렀다.
"원내 규정 무단 위반, 이사장 특별 지시 불복종, 그리고 무자격 집도에 의한 환자 살해 미수 혐의다! 경비대, 뭐 하고 있어? 당장 저 미친놈을 제압하고 보안실로 끌고 가!"
경비대원들이 둔탁한 발소리를 내며 지훈을 향해 좁혀왔다.
"멈추세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환자 바이탈이 이제 막 안정을 찾았습니다!"
서진이 지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쏘아붙였다. 하지만 오만식은 코웃음을 쳤다.
"백서진 선생, 당신도 공범이야! 이사장님 라인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당장 비켜!"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만식을 바라보았다. 마스크를 벗어 던진 그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질려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칼날보다 예리하게 살아있었다.
지훈은 다가오는 경비대원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수술복 주머니에서 접혀 있던 서류 뭉치를 꺼냈다. 그것은 수술 도중 가스 밸브의 이상을 장부로 확인한 뒤, 미리 그의 머릿속에서 계산을 끝내고 수술실 컴퓨터로 출력해 두었던 '역방향 의료 경제적 압박 명세서'였다.
팍!
지훈이 오만식의 가슴팍에 서류 뭉치를 거칠게 내던졌다. 오만식은 얼떨결에 서류를 받아쥐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읽어 봐."
지훈의 부드러우면서도 뼛속까지 시린 음성이 수술실의 무거운 공기를 가르고 울렸다.
"행정처장 오만식. 당신이 지금 나를 무단 연행하고 이 수술의 사후 처리를 방해할 경우, 세인트 미카엘 의료재단이 즉각적으로 감당해야 할 법적, 재무적 손실 평가 보고서다."
"뭐, 뭐라고?"
오만식이 어이없다는 듯 서류 첫 장을 넘겼다. 그러나 이내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류에는 정밀한 회계학적 수치와 법적 조항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첫째, 소아 하트 이식 대기 환자의 정당한 치료를 행정적 권한 남용으로 중단시킨 것에 대한 유족 측의 법정 소송 예상 청구액 최소 8억 원. 둘째, 보건복지부 지정 상급종합병원 가이드라인 위반에 따른 연간 정부 보조금 감액 및 페널티 5억 원. 셋째, 이 사실이 공중파 뉴스를 통해 보도될 시 재단의 브랜드 가치 실추 및 주가 하락으로 발생할 무형적 자산 손실 최소 7억 4,000만 원."
지훈은 한 걸음, 오만식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오만식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지훈이 내뿜는 지독한 현실적 압박과 정밀한 법적 경고는 단순한 객기가 아니었다. 철저히 계산된 방어 기제였다.
"합계 20억 4,000만 원."
지훈이 낮게 읊조렸다.
"이 모든 손실의 귀책사유는 행정처장 오만식, 당신의 무리한 집도 방해 행위로 청구될 거다. 재단 이사회가 과연 누구의 목을 가장 먼저 칠 것 같나? 20억의 손해를 입힌 행정처장인가, 아니면 환자를 살려낸 외과의인가?"
오만식의 입술이 경련하듯 파르르 떨렸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 그는 지훈이 들이민 서류의 숫자들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세인트 미카엘 재단은 철저한 이익 집단이다. 아무리 이사장의 신임을 받는다 한들, 개인의 감정적 보복 때문에 재단에 20억 규모의 타격을 입힌 사실이 드러난다면 송원필 이사장은 오만식을 가차 없이 버릴 것이 뻔했다.
"이…… 이 교활한 자식이……."
오만식이 서류를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지훈을 노려보았다.
지훈은 그런 오만식의 귓가에 조용히 다가가, 오직 그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그리고 하나 더. 제4외과를 비롯해 병원 본관에 납품된 수입 가스 밸브들 말이야. 시리얼 넘버 SV-9082X-04. 미세 가스 누출 결함이 있는 불량품이더군. 리베이트 꽤나 두둑하게 챙기셨겠어?"
그 순간, 오만식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선택해, 처장님."
지훈이 차갑게 미소 지으며 똑바로 오만식의 눈을 응시했다.
"경비대를 물리고 조용히 나가서 이 수술을 정상적인 응급 집도로 서류 처리할 건가, 아니면 나와 함께 이 20억짜리 청구서와 불량 밸브 리베이트 장부를 들고 이사회로 갈 건가?"
수술실 내부에는 터질 듯한 침묵이 맴돌았다. 오만식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의 눈에 서린 독기와 공포가 복잡하게 뒤엉켰다. 경비대원들은 처장의 눈치만 살피며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오만식은 마른침을 누차 삼키며 지훈을 노려보다가, 결국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구겼다.
"……철수해."
오만식의 입에서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명령이 떨어졌다.
"처장님?"
경비대원이 의아한 듯 되묻자, 오만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철수하라고 하잖아! 귀가 먹었어?!"
오만식은 씩씩거리며 몸을 돌려 수술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뒷모습은 쫓기는 짐승처럼 초라해 보였다. 경비대원들도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쾅!
에어타이트 도어가 닫히고 나서야 수술실 안에는 기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하아……."
서진이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오 처장의 약점까지 쥐고 흔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 시리얼 넘버는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졌다.
"강 선생님?!"
서진이 비명을 지르며 지훈의 몸을 붙잡았다.
지훈의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지며, 뇌 신경망 부하율이 100%를 돌파했다는 생사장부의 붉은 경고창이 사방에서 튀어 올랐다.
[위험: 집도자의 심장 박동수 분당 180회 돌파. 급성 심부전 위험 경보.] [경고: 남은 수명 임계치 도달. 수명 잔여일: 185일.]
지훈의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과 함께 그의 의식이 밑바닥 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강지훈! 정신 차려! 야! 강지훈!"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백서진의 절박한 외침이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기계음 같은 장부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인과율 개변의 대가가 확정되었습니다.] [새로운 계약 조건이 활성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