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가스가 주입되는 송원필의 수술대 앞에서 지훈의 가슴팍에 남은 장부 수명이 단 '10일'로 요동치며 차감 한도 카운트다운 숫자가 켜졌다. 망막을 짓누르는 붉은 숫자는 잔인하게 깜빡였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것처럼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귓가에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듯한 이명이 날카롭게 고막을 찔렀다.
심근 섬유화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고통이 가슴 한가운데를 송곳으로 쑤시는 것처럼 생생했다. 지훈은 마스크 아래로 차오르는 비릿한 피를 삼켰다. 차가운 메스의 감촉만이 손가락 끝에서 감각의 닻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강지훈, 바이탈이 더 떨어집니다. 이대로 개흉하면 심정지 와요!"
마취과 의사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수술실 모니터에 표시된 송원필의 심박수는 이미 분당 140회를 넘나들며 심실세동 직전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마취 유지해."
지훈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서늘했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내가 유지하라고 했습니다. 어시스트, 메스 가이드 잡으십시오."
예준이 지훈의 붉게 충전된 눈을 응시하다가 이내 턱 끝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손이 메스 가이드의 반대편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손이나 움직여. 강지훈, 네 페이스대로 가라. 서포트는 내가 한다."
지훈의 시야 위로 투명한 회계 장부의 텍스트가 번뜩였다.
[뇌하수체 미세 혈류 역행성 박리 및 종격동 3중 장기 변위] [수술 성공률 강제 고정: 100%] [경고: 초당 생체 에너지 차감 중. 잔여 수명 9일 23시간 59분……]
시간이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빠르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훈은 메스를 쥐고 송원필의 흉골 상부를 거침없이 절개했다. 붉은 피가 솟구치기 전에 예준의 일렉트로 코터가 번개처럼 움직이며 지혈을 마쳤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가슴을 열자마자 종격동 쪽 시야가 완전히 뭉개져 있을 겁니다. 3중 장기 변위라면 대동맥과 폐동맥이 꼬여 있을 텐데, 이 상태에서 뇌하수체 박리 부위까지 가려면 혈류를 완전히 우회시켜야 합니다."
예준이 수술 필드를 응시하며 빠르게 지적했다. 통계와 매뉴얼을 신봉하는 그의 눈에도 지금 송원필의 내부 상태는 생존율 1% 미만의 아수라장이었다.
"우회 루트는 필요 없습니다. 다이렉트로 들어갑니다."
"미쳤어? 압력이 안 맞아서 뇌혈관이 터질 거야!"
"안 터집니다. 예준 네가 확보한 초고속 지혈 통로를 밟고 들어갈 거니까."
지훈은 망설임 없이 포셉을 밀어 넣었다. 그의 손끝은 장부가 제시하는 최적의 인과율 궤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동시에 예준이 차단해 둔 수술실 메인프레임의 가스 배관 라인이 지훈의 머릿속 장부 정보와 교차했다.
"오만식이 리베이트 처먹고 들여온 불량 가스 밸브, 시리얼 넘버 SV-9088-X. 가스 누출로 수술실 전체를 날려버릴 뻔한 물건을 예준 네가 잘 끊어냈다."
지훈의 뜬금없는 시리얼 넘버 언급에 예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기기 제어반을 뜯어보지도 않았을 텐데."
"장부에 다 적혀 있으니까."
지훈은 대답 대신 포셉의 끝을 송원필의 깊숙한 뇌하수체 부근으로 밀어 넣었다. 미세 현미경 너머로 9화에서 송원필의 안면을 스캔했을 때 보았던 바로 그 붉은색 혈류 역행 마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뇌하수체 부근의 미세 혈관들이 거꾸로 솟구치며 벽을 찢기 일보 직전이었다.
쿵!
지훈의 가슴팍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일었다. 등가교환의 대가였다. 입안 가득 고인 피가 마스크 틈새로 흘러내려 턱 끝을 타고 수술포 위로 뚝뚝 떨어졌다.
"지훈아!"
서진이 비명을 지르며 거즈를 들고 지훈의 얼굴을 닦아내려 했다.
"오지 마십시오. 바늘 잡고 있습니다."
지훈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악물며 버턈다. 머릿속에서는 뇌세포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열이 발생했다. 시야가 온통 적색으로 물들었지만, 그의 손가락 끝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0.1밀리미터 단위의 초미세 혈관 문합. 은이의 수술 때 겪었던 극한의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살린다. 내 눈앞에 선 환자는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자신을 죽이려 했던 송원필일지라도, 의사 강지훈의 수술대 위에서는 공평하게 살려내야만 하는 한 구의 육체일 뿐이었다.
"나일론 10-0."
서진은 손을 떨면서도 지훈이 요구한 가장 가는 봉합사를 정확히 건넸다. 지훈의 손끝이 허공을 가르며 바늘을 회전시켰다. 뇌하수체 후엽의 미세 동맥과 정맥의 접합부가 한 땀 한 땀 정교하게 이어 붙기 시작했다.
[뇌하수체 미세 혈류 역행성 박리 수복율: 70%…… 85%…… 100%] [종격동 3중 장기 변위 정복 개시.]
"말도 안 돼……."
예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현미경 모니터에 비치는 문합 부위는 신이 정밀 기계로 찍어낸 것처럼 완벽했다. 피 한 방울 새어 나오지 않는 완벽한 방수 문합이었다.
지훈은 쉴 틈 없이 손을 움직여 꼬여 있던 대동맥과 폐동맥의 위치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장기가 제자리를 찾을 때마다 송원필의 바이탈 모니터가 요동치며 정상 파형을 그리려 안간힘을 썼다.
"끝냅니다. 타이(Tie)."
마지막 매듭이 지어지는 순간, 수술실을 가득 채우던 불규칙한 경고음이 멈췄다.
삐- 삐- 삐-.
분당 80회의 가장 안정적인 심박음이 수술실 안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바이탈…… 완벽하게 돌아왔습니다. 뇌압 정상, 혈압 120에 80 유지 중입니다."
마취과 의사의 목소리에는 경악을 넘어선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지훈은 메스를 트레이에 내려놓았다. 챙강 하는 쇳소리와 함께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갔다. 쓰러지려는 지훈의 어깨를 예준이 단단히 붙잡아 세웠다.
"괴물 같은 자식."
예준이 낮게 읊조렸다. 지훈은 대답 대신 수술실 구석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서진이 미리 준비해 둔 태블릿 화면이 켜져 있었다.
"이제 약속을 지킬 시간이야, 강지훈."
서진이 태블릿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가문의 비밀 금고(비밀번호 19740512)에서 확보했던 '세인트 미카엘 VIP 비밀 회계 비리 장부'. 그 장부가 보관되어 있던 장소는 본관 지하 3층 특별 서고의 벽면 액자 뒤편 비밀 금고였다. 백서진은 자신의 손으로 그 추악한 가족의 어둠을 세상 밖으로 끌어올렸다.
태블릿 화면 속 중앙 매체 뉴스에서 속보 자막이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SBC 단독 속보: 세인트 미카엘 의료재단 송원필 이사장, 수천억 대 대선 불법 투기 자금 조성 및 VIP 비밀 회계 장부 전격 입수. 검찰, 즉각 체포 영장 발부.]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술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송원필의 불법 카르텔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파열음이었다.
***
두 시간 뒤, VIP 회복실.
마취에서 깨어난 송원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몽롱한 시야 사이로 하얀 천장과 자신에게 연결된 수많은 바이탈 장비들이 들어왔다. 가슴통증도, 머리를 짓누르던 극심한 압박감도 사라져 있었다.
"살았…… 나?"
송원필이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입가에 비열한 안도의 미소가 번지려던 찰나였다.
스르륵.
회복실의 문이 열리며 강지훈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수술복을 벗지 않은 백서진과 한예준, 그리고 푸른색 정장을 입은 서울중앙지검 기동수사대 형사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이사장님."
지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강지훈…… 네놈이 결국 나를 살려놨구나. 흐흐, 현명한 선택이었다. 나를 살려두면 제4외과뿐만 아니라 네놈의 앞길도……."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훈이 송원필의 침대 앞으로 다가서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을 살린 건, 당신이 가치 있는 인간이라서가 아닙니다. 내 수술대 위에 올라온 환자였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당신이 지은 죄의 대가를 살아서 온전히 치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소리냐?"
송원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순간, 형사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와 품에서 붉은 직인이 찍힌 영장을 펼쳐 보였다.
"송원필 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뇌물 공여, 무자격자 대리 수술 교사, 그리고 의료법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본 영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발부되었습니다."
"이, 이게 무슨 미친 짓거리야! 내가 누군지 알고! 당장 오 처장 불러! 민 의원한테 전화 연결해!"
송원필이 침대에서 일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몸에 연결된 센서들이 요란하게 울릴 뿐이었다.
"소용없습니다."
서진이 차가운 눈빛으로 송원필을 쏘아보았다.
"아버지가 숨겨두었던 본관 지하 3층 특별 서고의 비밀 장부 사본, 이미 금감원과 검찰 특수부에 전송 완료되었습니다. 당신과 연루된 정재계 인사들은 지금 자신들의 목숨을 보존하느라 당신 전화 따위는 받지 않을 겁니다."
"백서진…… 네년이 감히 가문을 배신해?!"
송원필의 안면이 분노와 공포로 일그러졌다. 피거품을 물며 소리치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거대한 의료 재단법인의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저 추악한 범죄자에 불과했다.
"당신은 가난하고 생존율이 낮은 환자들을 생존 가치가 없다며 병원 밖으로 내몰았지."
지훈이 송원필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 대가로 당신은 내 완벽한 의술 덕에 목숨을 건진 채,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평생을 썩어가며 그 가치 없는 삶을 이어가게 될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사장님. 아주 질기게 살아남으셨습니다."
"강지훈!!!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반드시 찢어 죽여버릴 거야!"
송원필이 형사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비명을 질렀다. 수술 부위가 벌어질 듯 요동치던 그의 눈빛에 순간 섬뜩한 광기가 스쳤다.
체포되어 회복실 문밖으로 끌려 나가기 직전, 송원필은 링거 거치대 옆에 놓여 있던 개인 무선 단말기를 낚아채듯 쥐었다. 형사들이 제지하기 전, 그의 굳은 손가락이 단말기의 붉은색 비상 전송 버튼을 빠르게 세 번 눌렀다.
그것은 세인트 미카엘 병원의 최종 방화벽을 무너뜨리는 밀실의 암호였다.
"나만 죽을 것 같으냐……."
송원필이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무너지면, 이 병원의 모든 쓰레기도 함께 지옥으로 가는 거다."
그가 호송 엘리베이터로 사라진 직후.
지훈의 가슴팍에서 돌연 심장의 박동이 멈추는 듯한 극심한 조임이 찾아왔다. 동시에, 제4외과 구역을 가리키는 벽면의 초록색 전원 표시등이 일제히 붉은색으로 변하며 깜빡이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수술실과 중환자실 전체를 뒤흔드는 고주파의 비상 경보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위험: 제4외과 구역 산소 공급 가스 밸브 강제 폐쇄 및 비상 전력 차단 시퀀스 작동.] [경고: 산소 잔류량 5% 미만. 180초 뒤 전 영역 질식 한계 도달.]
화면 가득 들어찬 적색 경고등 아래로, 지훈의 망막 위에 떠오른 생사장부의 수명 수치가 다시 한번 미친 듯이 하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