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암흑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툭, 하는 기계적인 단선음과 함께 제4외과 수술실을 밝히던 무영등이 동시에 꺼졌다. 천장을 가득 채웠던 인공의 빛이 일시에 소멸하고, 오직 수술대 위 환자의 벌어진 흉강만이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았다.

수술실 외벽을 타고 흐르는 비상벨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산소 차단입니다! 메인 배관 압력이 제로로 떨어지고 있어요!"

백서진의 다급한 외침이 어둠을 갈랐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손끝은 수술대 위 정맥 라인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위험: 제4외과 구역 산소 공급 가스 밸브 강제 폐쇄 및 비상 전력 차단 시퀀스 작동.] [경고: 산소 잔류량 5% 미만. 178초 뒤 전 영역 질식 한계 도달.]

지훈의 망막 위로 붉은색 경고 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송원필이 체포되기 직전, 링거 거치대 옆의 개인 무선 단말기로 전송한 암흑 지령이 세인트 미카엘 병원의 중앙 제어 시스템을 완전히 마비시킨 결과였다. 자신과 공멸하자는 탐욕스러운 야수의 마지막 발악.

"소용없는 짓을."

지훈은 어둠 속에서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검은 피를 거칠게 훔쳐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조여들고 있었다. 뇌세포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열이 두개골을 짓눌렀다.

[남은 심장 수명: 9일 22시간 45분…… 44분……]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는 수명 수치가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지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허리춤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손전등 기능을 켰다. 백색의 날카로운 광선이 어둠을 뚫고 수술대 위를 비추었다.

"백서진, 정신 차려."

지훈의 목소리는 지독할 정도로 차갑고 고요했다.

"송원필 그 인간은 제 발등을 제가 찍은 겁니다. 서진 선생이 본관 지하 3층 특별 서고, 그 이중 벽 깊숙이 숨겨져 있던 금고의 비밀번호 '19740512'를 풀고 가져온 VIP 비밀 회계 장부 사본. 그게 이미 검찰 손에 들어간 순간 끝난 게임이니까."

그랬다. 백서진이 가족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확보했던 그 결정적 증거는 이미 송원필의 목줄을 완벽하게 죄었다.

"그리고 하나 더."

지훈이 스마트폰 불빛을 수술실 저편, 송원필이 연행되던 복도 쪽을 향해 비추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형사들에게 이끌려 나가던 송원필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인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훈의 안구에 깃든 생사장부(生死帳簿)가 송원필의 머리 부분을 투시했다. 뇌하수체 부근, 붉은색으로 위험하게 소용돌이치는 미세 혈류 역행성 박리 마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미 9화에서 지훈의 눈에 얼핏 비쳤던 그 치명적인 시한폭탄이 마침내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송원필 이사장님."

지훈이 어둠 속에서 낮게 읊조렸다. 그 목소리는 차가운 메스처럼 송원필의 고막을 찔렀다.

"당신 내경동맥에서 시작된 미세 혈류가 지금 역방향으로 박리되고 있어. 그렇게 악을 쓰며 분노할 때마다, 뇌하수체 부근의 혈관 벽이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있다는 뜻이지. 나를 죽이겠다고? 가기 전에 당신 뇌가 먼저 터질 겁니다."

"이, 이놈이 무슨……!"

송원필이 발악하며 소리를 지르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더니, 돌연 말을 잇지 못하고 컥컥거리는 소리를 냈다. 장부상의 붉은 마크가 순식간에 검붉은 색으로 번지며 파열했다.

"어, 어어……."

송원필이 이마의 핏대를 부풀린 채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의 코와 입에서 거무죽죽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뇌하수체 부근의 미세 혈관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터져버린 것이다. 형사들이 당황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송원필의 몸은 이미 사시나무 떨듯 경련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자신이 지른 불길에 스스로가 먼저 타 죽는 비참한 종말이었다.

"척수 반사 수준의 분노가 부른 자멸이군."

지훈은 쓰러진 송원필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다시 스마트폰 불빛을 수술대로 돌렸다.

"이사장 구속은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살려야 할 환자가 있어. 예준 선생, 앰부백 잡으십시오."

"이미 잡고 있어!"

어둠 속에서 한예준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의 손에는 이미 수동식 인공호흡기인 앰부백이 쥐어져 있었다.

"정전 때문에 산소 공급기가 멈췄어. 매뉴얼대로라면 비상 발전기가 돌아가야 하는데, 송원필 그 인간이 라인 자체를 물리적으로 파괴한 모양이야. 전력도, 산소도 안 들어와!"

"그럼 우리가 직접 돌리면 됩니다."

지훈의 말에 한예준이 헛웃음을 흘렸다.

"미친 소리 하지 마! 환자는 소아 활로4징 수술 직후야. 미세 혈관 문합 부위가 안정되기도 전에 산소 불포화도가 떨어지면 심근 세포부터 죽어나간다고! 산소 수동 라인이라도 확보하지 못하면 3분 안에 끝이야!"

[남은 시간: 120초.]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제4외과 전체의 산소 농도가 급격히 하강하며 지훈의 호흡도 가빠졌다.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이 고조되었다. 입안 가득 쇠 맛이 도는 검은 피가 차올랐다. 지훈은 이를 악물고 장부의 메인 프레임을 강제로 구동했다.

'장부, 이 병원의 가스 배관 설계도를 띄워.'

스스스스슥.

망막 위에 녹색의 입체 선도들이 어지럽게 얽히며 세인트 미카엘 병원의 배관도가 나타났다. 수없이 많은 밸브 중 하나가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지훈의 뇌리에 과거 2화에서 오만식의 통화 내용을 통해 장부 구석에 기록해 두었던 치명적인 정보가 번개처럼 스쳤다.

'오만식이 리베이트를 챙기기 위해 반입했던 해외 수입 불량 의료 가스 밸브…….'

그 불량 밸브들의 미세 가스 누출 시리얼 넘버가 지훈의 뇌세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시리얼 넘버: SV-9920-X.]

"서진 선생, 저기 환풍기 하단 우측 벽면에 있는 수동 가스 바이패스 레버를 봐."

지훈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시했다.

"거기에 설치된 밸브 시리얼 넘버가 SV-9920-X일 겁니다. 오만식이 뒷돈 받아 처먹고 들여온 불량품이지. 규격 미달이라 미세한 압력 차이에도 가스가 누출되는 결함이 있어."

백서진이 스마트폰 불빛을 벽면으로 비추었다. 먼지 쌓인 철제 박스 안에 붉은색 레버가 보였다. 그녀가 밸브 표면의 알루미늄 태그를 긁어내자, 지훈이 말한 시리얼 넘버가 정확히 드러났다.

"진짜예요! SV-9920-X 맞아요!"

"그 불량 밸브의 압력 편차를 이용한다."

지훈이 메스를 쥔 손을 굳건히 하며 소리쳤다.

"레버를 45도만 수동으로 꺾어! 완전히 열면 강제 차단막에 막히지만, 45도만 비틀면 불량 밸브의 미세 누출 틈새로 잔류 산소가 역류해 들어올 공간이 생겨! 그 압력을 이용해 수동 실린더로 산소를 밀어 넣는다!"

"내가 할게!"

백서진이 망설임 없이 환풍기 하단으로 뛰어들었다. 어두컴컴하고 좁은 틈새에서 그녀는 먼지를 뒤집어쓰며 밸브 레버를 잡았다. 굳어버린 쇠붙이가 비명을 지르며 45도 각도에서 멈추어 섰다.

피식- 하는 미세한 가스 마찰음이 들렸다.

"압력 걸렸어! 들어간다!"

백서진이 소리치며 수동 실린더 펌프에 주사기를 연결했다. 어두운 환풍기 밑바닥, 오직 스마트폰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주사기 피스톤을 정밀하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기포가 단 한 가닥이라도 들어가면 관상동맥 공기 색전증으로 환자는 즉사해."

지훈의 경고에 백서진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안 생겨요. 절대 안 보내."

그녀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유독 맑게 빛났다. 자본에 놀아나던 의사 가문의 비겁함을 혐오해 진짜 의사가 되겠다던 그녀의 집념이 손끝에 깃들었다. 주사기 실린더를 밀어 올리는 그녀의 손놀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했다. 기포가 생길 틈을 주지 않는 극한의 정밀 조작이었다.

"예준 선생, 지금이야! 앰부 쥐어짜!"

지훈이 소리쳤다.

"알고 있어! 말 안 해도 안다고!"

한예준이 거친 숨을 내쉬며 수동 앰부백을 쥐어짰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과 함께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무 세게 힘을 준 나머지 무선 단말기 모서리에 이마를 찧었음에도,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푸슉, 푸슉, 푸슉.

일정한 리듬으로 앰부백이 수축하고 팽창했다. 한예준의 양팔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내가…… 매뉴얼만 따르는 기계인 줄 알아?"

한예준이 이빨을 드러내며 울부짖었다.

"강지훈, 네놈이 아무리 괴물 같아도 나 역시 이 환자 안 놓쳐! 우리 생명이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아이는 살려서 이 방을 나간다! 그게 내 의술이야!"

그것은 단순한 오기가 아니었다. 오직 사람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뭉친 세 외과의의 장엄한 의지였다. 돈과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병원의 전원을 끄고 인프라를 파괴한 자본주의 야수들이 깔아놓은 어둠 속에서, 인간의 육체적 협동이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훈은 스마트폰 불빛 아래에서 메스를 움직였다.

[성공 확률: 98%…… 99%……]

장부의 숫자가 마침내 백 퍼센트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지훈의 손끝은 어둠 속에서도 자석에 이끌리듯 정확한 결찰 포인트를 찾아내 묶었다. 백서진의 정밀한 주입과 한예준의 처절한 산소 공급이 지훈의 손끝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이루며 인과율을 강제로 개변시키고 있었다.

"마지막 타이트."

지훈이 실을 끊어내는 순간.

띠- 띠- 띠- 띠-.

수동으로 가동되던 휴대용 바이탈 모니터의 그래프가 규칙적인 파형을 그리며 안정적인 비프음을 내뱉었다. 소아 환자의 심장이 스스로 힘차게 뛰기 시작한 것이다. 산소 포화도 98%. 완벽한 생존의 신호였다.

"살았어……."

백서진이 주사기를 쥔 채 바닥으로 주저앉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예준 역시 앰부백을 잡은 손의 힘을 서서히 풀며 이마의 피를 훔쳐냈다. 두 사람의 얼굴에 피로와 환희가 교차했다.

자본이 지배하는 거대한 병원의 음모를, 오직 메스 하나와 세 명의 의지력으로 완전히 굴복시킨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기적의 종착지에서, 지훈의 몸은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컥……!"

지훈이 급격히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수술대 옆 철제 트레이를 붙잡았다. 입안에서 고여 있던 검은 피가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시야가 온통 핏빛으로 물들며 사방이 흐려졌다.

"지훈 선생!"

"강지훈!"

서진과 예준이 급히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지훈의 귀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막을 찢는 듯한 이명이 뇌를 관통했다.

그의 눈앞에 떠 있던 붉은 수명 장부가 돌연 기괴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드득, 바스스스슥.

마치 단단한 유리가 깨지듯, 지훈의 온몸을 뒤덮고 있던 붉은색 장부의 프레임들이 사방으로 강렬하게 부서져 나가며 조각내기 시작했다. 그 파편들이 지훈의 망막을 찌르고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차디찬 어둠 속에서, 부서진 장부의 잔해 위로 난생처음 보는 기괴한 문자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경고: 계약자의 남은 심장 수명 수치 '0' 도달.] [시스템 알림: 생명 한계 수치 완료에 따른 역방향 회생 판결 시퀀스 개시.] [구동 조건 충족: 타협 없는 완벽한 구원자로서의 인과율 고정 10회 달성.] [새로운 상태: 생사(生死)의 경계선이 붕괴하며 역개조 전조 현상이 발생합니다.]

'남은 수명이…… 0이라고?'

지훈의 심장이 박동을 완전히 멈추는 듯한 극심한 충격과 함께, 그의 몸이 차가운 수술실 바닥을 향해 쓰러져 내렸다. 암흑 속에서 부서진 붉은 장부의 파편들이 그의 온몸을 누에고치처럼 감싸 안으며 기괴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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