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필의 뇌하수체 부근 미세 혈류 역행성 박리가 폭발적으로 찢어지며 이사장실 바닥에 쓰러진 바로 그 시각, 제4외과 수술실의 무영등 아래에서 강지훈은 마지막 봉합사를 당기고 있었다.
수술실 내부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싸여 있었다. 오직 심전도 모니터의 규칙적인 비프음만이 지훈의 고막을 때렸다. 송태호 의원의 대동맥 수술은 신경을 갉아먹는 초미세 작업의 연속이었다.
"타이(Tie)."
지훈의 갈라진 목소리가 마스크 너머로 흘러나왔다.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바늘을 쥐는 궤적만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인조혈관을 관통하는 대동맥 문합은 완벽했다. 송태호 환자의 생존율은 장부의 인과율 개변을 통해 100%로 완전히 고정되었다.
"하아……."
지훈은 메스를 내려놓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전신을 덮쳐오던 심부전의 통증이 사그라지는 듯했으나, 뇌를 찌르는 이명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남은 수명이 머릿속 장부 구석에 표시되었다.
[계약자의 남은 수명: 11시간 12분.]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이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비린 맛을 억지로 삼키며, 지훈은 메스를 내려놓았다. 수술은 탈 없이 끝났으나, 지훈 본인의 생명력은 이제 촛불의 마지막 심지처럼 조각나 있었다.
"수술 끝났습니다. 마무리하세요."
지훈은 백서진과 한예준이 미처 말을 걸기도 전에 수술실 문을 밀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위태로웠으나, 등을 꼿꼿이 세운 자세만은 무너뜨리지 않았다.
지훈이 향한 곳은 본관 서쪽 끝, 이제는 쓰이지 않는 오래된 빈소 구역의 공용 화장실이었다. 인적이 끊겨 냉기만 도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지훈은 세면대를 붙잡았다.
"하윽……! 쿨럭, 쿨럭!"
세면대를 붙잡은 지훈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울컥 뿜어져 나왔다. 하얀 세라믹 세면대 위로 선연한 붉은 피가 사방으로 번져 나가며 물줄기를 따라 소용돌이쳤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고, 눈가에는 붉은 실핏줄이 사정없이 터져 있었다.
가슴을 쥐어짜는 부정맥이 심장을 불규칙하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귀청을 찢을 듯한 이명 속에서, 지훈은 주머니 속에서 피 묻은 가죽 수첩을 꺼냈다. 생사장부의 실체화된 형태이자, 그의 수명과 환자의 생존율이 기록되는 기괴한 회계 장부의 간이 복사본이었다.
수첩의 첫 장에는 은이의 활로4징 수술부터 시작해, 송태호의 대동맥 문합 수술까지의 모든 기록이 붉은 글씨로 정밀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지훈의 심장 수명이 실시간으로 차감되는 공식이 쓰여 있었다.
[인과율 개변 대가: 뇌세포 및 심근 섬유화 진행. 잔여 심박 수 한계 도달.]
"지훈 선생! 강지훈!"
그때, 화장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뒤쫓아온 백서진이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가쁘고 다급했다. 수술실에서 지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곧장 따라온 것이었다. 서진의 시선이 먼저 닿은 곳은 세면대에 가득한 붉은 피였다. 그리고 지훈의 손에 들린, 기묘한 붉은 글씨가 채워진 수첩.
"이게…… 이게 다 뭐예요?"
서진은 사르르 떨리는 손으로 세면대 가에 떨어진 지훈의 수첩을 낚아챘다. 지훈이 미처 제지하기도 전이었다. 지훈은 시야가 흐려져 손을 뻗었으나 허공을 갈랐다.
서진은 수첩의 내용을 빠르게 훑어내렸다. 단순한 환자 기록이 아니었다. 환자의 감염도, 실시간 출혈 변수, 그리고 수술 성공률 옆에 기재된 '강지훈의 남은 수명 차감'이라는 믿을 수 없는 단어들. 그리고 지훈의 심장에 실시간으로 가해지는 파괴적인 페널티의 전모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말도 안 돼……. 수명을 바쳐서 수술을 성공시켰다고요? 당신이 쓰러질 때마다, 코피를 흘리고 피를 토할 때마다…… 정말로 죽어가고 있었던 거야?"
서진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소유한 세인트 미카엘 VIP 비밀 회계 비리 장부를 폭로할 때보다 더한 충격이 그녀의 전신을 관통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수첩과 지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가…… 내가 아버지가 숨겨둔 재단 지하 3층 특별 서고 비밀 금고에서 그 비밀 장부를 훔쳐내 폭로한 건, 당신과 함께 이 썩어빠진 병원을 바로잡고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지훈은 차가운 물을 틀어 입가에 묻은 피를 씻어내며 냉소적으로 답했다.
"쓸데없는 참견입니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알아서 한다고? 남은 시간이 반나절도 안 남았잖아! 이 장부에 적힌 숫자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백 선생."
지훈이 서진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가락은 얼음처럼 차가웠으나 쥐는 힘만큼은 매서웠다.
"오만식이 체포되었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그자가 반입했던 해외 수입 불량 의료 가스 밸브의 시리얼 넘버 'A-9082'부터 'A-9100'까지의 기록, 수사대에 확실히 넘겼습니까? 그 미세 가스 누출 건을 덮으려다 수많은 환자가 죽을 뻔했습니다. 그것까지 완벽하게 처리해야 내 수술이 더러운 음모에 훼손되지 않습니다."
지훈은 자신의 고통보다 오만식의 비리를 완벽히 매듭짓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진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지훈의 매서운 눈빛에 압도당해 입술을 깨물었다.
"……넘겼어요. 기동수사대에 그 시리얼 넘버 기록과 가스 누출 시험 성적서 조작 서류까지 전부 제출했어요. 오만식은 이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해.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지훈 선생!"
그 순간, 지훈의 주머니에서, 그리고 서진의 주머니에서 동시에 요란한 비상 호출음(Code Blue)이 울렸다.
[비상. VIP 이사장실. 송원필 이사장 어레스트. 전 의료진 비상 소집.]
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송원필 이사장이……?"
지훈은 거울을 보며 흩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의 눈앞에 다시 한번 붉은색 장부의 시각 정보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환자: 송원필 (72세)] [병명: 뇌하수체 부근 미세 혈류 역행성 박리 (Retrograde Dissection)] [현재 생존율: 3.2%] [수술 난이도: 극상 (인과율 개변 필요 수명: 9시간)]
9화에서 지훈의 눈에 간접적으로 비쳤던 송원필의 혈 역행 마크가 마침내 완전히 터져 그의 목숨줄을 죄고 있는 상태였다. 격노와 공포가 불러온 필연적인 인과였다.
"결국 터졌군."
지훈이 차갑게 중얼거렸다.
"지훈 선생, 설마 저 사람을 살리겠다는 건 아니죠? 저 사람은 당신을 죽이려 했어요! 제4외과를 없애고, 우리를 파멸시키려던 장본인이라고요!"
"내 눈앞에 환자가 있고, 그 환자의 생존율이 숫자로 보인다면 내 대답은 언제나 같습니다."
지훈은 서진을 스쳐 지나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눈빛만큼은 수술실의 칼날처럼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
세인트 미카엘 병원 본관 VIP 응급실 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재단 이사회 임원들과 각 과의 주임 과장들이 사색이 된 채 모여 있었다. 송원필의 갑작스러운 발작 쓰러짐은 병원 전체를 거대한 마비 상태로 몰아넣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신경외과, 흉부외과에서 못 살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뇌하수체 부근의 미세 혈류 박리가 너무 심각합니다. 이미 우회 혈류까지 터져서 손을 댈 수가 없어요. 메스를 대는 순간 뇌사입니다!"
"누가, 누가 이 수술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사장님이 잘못되시면 우리 재단은 공중분해됩니다!"
오만식 처장의 체포와 비리 폭로로 병원의 리스크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송원필 이사장마저 사망한다면 세인트 미카엘 재단은 그야말로 파산 직전의 위기에 몰릴 터였다. 정재계 로비의 중심축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이 누리던 모든 권력과 자본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때, 신경외과 과장 황인국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자가 있습니다. 제4외과의 강지훈."
"뭐? 그 미친 망나니 녀석이?"
"송태호 의원의 대동맥 수술도 성공시킨 놈입니다. 그놈의 괴물 같은 집도 실력이라면 혹시 모릅니다."
순간, 복도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제껏 강지훈을 '아웃사이더', '돈 안 되는 환자나 보는 유령 의사'라며 멸시하고 쫓아내려 했던 본관의 실세들이었다. 제4외과의 예산을 깎고 소모품 공급을 차단하며 지훈을 고사시키려 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생사여탈권이, 송원필의 목숨을 쥔 강지훈의 메스 끝에 달려 있었다.
터벅, 터벅.
복도 끝에서 차가운 공기를 몰고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수술복 위에 얇은 의사 가운을 걸친 강지훈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심각한 표정의 백서진과 한예준이 따르고 있었다. 지훈이 나타나자, 이사회 임원들과 주임 과장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그에게 달려갔다.
"강 선생! 강 지훈 선생!"
본관 흉부외과 주임 과장이 지훈의 가운 소매를 붙잡았다.
"이사장님을 살려주게! 자네라면 할 수 있잖나! 제발 부탁하네. 수술만 성공시켜 준다면 자네가 원하는 제4외과의 독립 예산이든, 장비든 무엇이든 다 지원하겠네!"
"맞습니다, 강 선생! 오만식 처장이 저지른 비리는 우리와 무관합니다. 제발 이사장님을 살려주십시오!"
이제껏 지훈의 면전에서 침을 뱉고 문전박대하며 제4외과를 쓰레기 매립지 취급하던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이제는 지훈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듯 제4외과 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완벽한 처지 교차였고, 압도적인 실력이 만들어낸 기괴한 굴복이었다.
지훈은 자신을 붙잡은 과장의 손을 차갑게 쳐내며, 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지훈이 미리 준비해 둔 '역방향 의료 경제적 압박 합의서'였다.
"송원필 이사장의 사망 시 발생할 세인트 미카엘 재단의 주가 폭락 및 의료 소송 배상액 추산치, 그리고 브랜드 가치 손실액은 총 1조 2천억 원에 달합니다."
지훈의 냉혹한 목소리가 복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내가 이 수술을 집도하는 대가로, 세인트 미카엘 재단의 실무 예산권과 제4외과의 완전한 재정 독립권을 요구합니다. 또한 이사장 일가가 소유한 비자금 전액을 소아 희귀병 환자 치료 기금으로 영구 신탁하십시오. 거부하신다면, 이 수술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사진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 그것은 너무 가혹……."
"시간이 없습니다."
지훈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송원필 이사장의 뇌세포 괴사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15분. 이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1조 원의 손실과 함께 파멸할 겁니다. 선택하십시오."
도덕적 호소가 아닌, 철저한 경제적 손실 수치를 들이미는 지훈의 압박에 이사진들은 결국 사르르 떨리는 손으로 만년필을 쥐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서, 서명하겠네. 제발 살려만 주게."
지훈은 서명된 서류를 백서진에게 넘겼다.
"백 선생, 공증 절차 밟으세요."
그의 눈빛은 비즈니스 거래를 완벽하게 성사시킨 냉혹한 설계자의 그것이었다.
***
수술실 앞 세면대.
지훈은 베타딘액으로 손을 씻기 시작했다. 거친 물소리가 시끄럽게 울렸지만, 그의 귀에 이식된 듯한 이명은 그보다 더 컸다. 머릿속 장부가 경고음을 울려댔다.
[계약자의 남은 수명: 11시간 12분.] [송원필 인과율 개변 필요 수명: 9시간.] [집도 시 잔여 수명: 2시간 12분.]
수술을 성공시킨다 해도, 그에게 남는 목숨은 고작 두 시간 남짓이었다. 사실상의 동귀어진이자,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지훈은 메스를 잡아야 했다. 어머니를 돈 때문에 잃었던 무력감의 사슬을 끊기 위해, 그리고 눈앞의 환자를 살리는 것만이 그가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지훈은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강지훈 선생."
손을 씻는 지훈의 뒤로 백서진이 다가왔다. 그녀의 눈시울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손에는 수술용 라텍스 장갑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지훈의 가운 소매를 붙잡았다. 지훈의 손목을 움켜쥔 그녀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정말 할 생각이에요? 이 수술을 끝내면 당신은…… 당신은 두 시간밖에 살지 못해요."
"내가 살린 환자들의 목숨값입니다. 아깝지 않습니다."
지훈은 담담하게 손을 털고 일어섰다.
"비키세요. 수술 시작해야 합니다."
"안 돼요!"
서진이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지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절규가 텅 빈 세면실에 애절하게 울려 퍼졌다.
"제발…… 제발 스스로를 이만 죽이세요! 왜 남을 살리기 위해 당신이 죽어야 하는데요? 송원필은 당신을 파멸시키려 했던 사람이에요! 왜 그런 인간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냐고요!"
서진은 지훈의 손목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눈물방울이 지훈의 하얀 수술복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지훈의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의 떨림을 담아냈다.
지훈은 서진의 눈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심장이 기괴하게 맥동하며, 또 한 번 피비린내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남은 시간 11시간. 그리고 눈앞에 누워 있는 적(敵).
지훈이 서진의 손을 천천히 떼어내며 메스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수술실의 경고등이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 마지막 집도는 그의 생명을 완전히 앗아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적의 시작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