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검우 장로의 피 맺힌 인과 계약이 위백의 가슴팍에 낙인처럼 각인되는 그 찰나, 영강의 기류는 사납게 뒤틀렸고 장로의 전신에 잔존해 있던 암흑 살독의 매캐한 기운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그 썩어 문드러진 독기를 추적하여 밤하늘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골각 나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고막을 후벼 파는 예리하고 거친 포효가 칠흑 같은 망향곡의 소나무 숲을 핥으며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낙양 위씨 가문의 가주 위헌이 부리는 충견들, 일명 추살대의 접근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였다.
"으윽……!"
위백은 거친 신음을 내뱉으며 단전을 움켜쥐었다. 기맥을 타고 폭풍처럼 밀려드는 것은 단순한 내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을 가문과 문파에 헌신했으나 결국 비참하게 버림받고 살이 썩어 들어간 철검우의 피비린내 나는 원한이었고, 그가 임종의 순간까지 품었던 지독한 배신감의 파편들이었다.
머릿속이 도끼로 찍히는 듯한 영적 충격에 위백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안구 뒤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귓가에는 수만 명의 아귀가 울부짖는 듯한 환청이 휘몰아쳤다. 타인의 인과를 대속하는 대가는 늘 이토록 가혹하고 처절했다.
동시에 가슴팍에 새겨진 검은 양염 무늬가 살아 꿈틀대는 뱀처럼 요동치며 붉은 낙인으로 변해 갔다.
'구양의 극독…….'
약속된 기한 내에 이 피맺힌 한을 씻어내지 못한다면, 심장에 자리 잡은 이 지독한 극양의 화독이 전신을 안에서부터 태워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리리라. 심장이 펄펄 끓는 용광로처럼 고동치는 통증 속에서, 위백은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과 가혹한 냉소벽이 그의 얼굴 위에 기괴한 미소로 피어났다.
"하하……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놈들이 마침내 당도했구나."
위백은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겨 동굴 밖으로 나섰다.
밤의 소나무 숲은 이미 차가운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수풀 사이로 서치라이트처럼 번뜩이는 서슬 퍼런 안광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 한가운데로 붉은 장포를 걸친 낙양 위가의 사냥개들, 오십여 명에 달하는 추살대가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스스스스―.
소나무 잎을 밟는 발소리가 사방에서 고요히 울렸다. 그들의 손에 들린 백강도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백색의 검기가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네놈이 바로 가문을 배반하고 도망친 죄인, 위백이냐!"
추살대의 선두에 선 중년 무인이 도를 높이 치켜들며 호통을 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문가의 사냥개 특유의 오만함과 잔인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위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겼을 뿐이다.
한 발.
그가 왼발을 내딛는 순간, 차가운 흙바닥 위에 황금빛 불꽃이 꽃봉오리처럼 피어났다.
두 발.
오른발을 디디자, 그를 중심으로 사방 십 장의 대지가 붉게 달아오르며 서리가 내렸던 풀잎들이 순식간에 말라 비틀어졌다. 마치 가을날의 가뭄에 마른 들판을 통째로 삼키는 무자비한 산불처럼, 대지 전체가 황금빛 진기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무, 무슨 무공이 이다지도……!"
추살대 무인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들이 아는 위백은 기맥이 끊겨 사지로 내던져진 폐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선 청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대지를 녹이고 하늘을 그슬릴 듯한 극양(極陽)의 신광 그 자체였다.
"가식적인 위선의 껍데기를 쓰고 의기를 논하는 자들아."
위백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음성은 낮고 가라앉아 있었으나, 그 안에 담긴 내력은 소나무 숲 전체를 진동시켰다.
"네놈들이 모시는 위헌의 목을 베기 전에, 먼저 너희들의 피로 이 산을 적셔 주마."
"건방진 놈! 쳐라!"
중년 무인의 호령과 함께 오십여 명의 무인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도광(刀光)이 백색의 그물을 형성하며 위백의 전신을 옥죄어 왔다.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밤의 정적을 무참히 깨부수었다.
위백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번뜩였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풍의 한가운데를 향해 정면으로 걸어 들어갔다.
화아아악!
그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온 구양진기가 거대한 화염의 장막을 형성했다. 쏟아지는 도광들이 황금빛 화염에 닿는 순간,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붉은 기화로 변해 사라졌다.
"크아악!"
"손이, 내 손이 타들어 간다!"
위백의 신형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가볍게 휘두른 소맷자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풍만으로도 추살대 무인들의 가죽옷이 불타고 살점이 검게 그을렸다. 그것은 무공이라기보다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파괴력이었다.
위백은 자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집으로 가득 찬 눈빛을 한 채,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무인들의 목을 차례로 꺾어 나갔다. 피와 화염이 뒤섞인 밤의 소나무 숲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초열지옥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
그 광경을 멀리 떨어진 소나무 가지 끝에 가볍게 발을 딛고 서서 지켜보는 한 여인이 있었다.
흑월맹의 여우, 조여경이었다.
그녀는 밤바람에 흩날리는 자줏빛 장포를 걸친 채,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고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발밑으로 잘려 나간 소나무 가지와 무인들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지만, 그녀의 붉은 입술에는 여전히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아…… 참으로 아름답도다."
조여경의 눈동자가 위백의 움직임을 쫓아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위백의 진기 흐름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본래 낙양 위가의 영맥을 빼앗겨 단전이 텅 비어 있어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속을 흐르는 진기는 그 어떤 명문정파의 고수보다도 깨끗하고 순수했다.
비록 타인의 원한을 강제로 주입받아 거칠고 포악하게 요동치고 있었으나, 그 근본만은 하늘의 태양처럼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정양(正陽)의 기운이었다.
"위선으로 가득 찬 정파 놈들의 기름진 목을 저토록 깨끗하게 베어 넘기다니."
조여경은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전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영맥을 수탈당하고 시체 구덩이에 버려졌던 비참한 운명 속에서도, 구걸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힘과 인과의 불꽃으로 참다운 자존을 증명해 내는 청년의 모습. 그것은 정파의 가식적인 대의에 구토를 느끼던 그녀에게 신선하고도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나직이 미소 지으며 자신의 손목에 감긴 검은 팔찌를 매만졌다. 흑월맹의 비보이자 열기를 흡수하는 특성을 지닌 '한옥 마정고리'였다.
"그 뜨거운 불길에 온몸이 타버리기 전에, 내가 조금은 식혀 줄 수 있을 텐데 말이지……."
그녀는 기이한 독점욕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위백의 등을 응시했다. 자멸조차 마다하지 않는 저 파멸적인 양강의 사내를, 언젠가는 자신의 손으로 완전히 길들여 보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망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
"이 괴물 같은 놈!"
추살대 무인들이 낙엽처럼 쓰러져 가던 그때, 숲의 어둠을 뚫고 다섯 개의 그림자가 전광석화처럼 날아들었다.
쉬이이익!
그들이 펼쳐 낸 검기가 밤하늘에 청량한 청풍(靑風)의 궤적을 그리며 위백의 사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낙양 위가가 자랑하는 최고의 비장 호위 무력, '청풍오결(靑風五結)'이었다.
그들은 무림맹에서도 손꼽히는 일류 고수들로 구성된 연격의 달인들이었다. 다섯 자루의 검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며 만들어 낸 검망은, 나는 새조차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치밀하고 날카로웠다.
"위백! 가문의 수치를 씻기 위해 네놈의 목을 거두어 가겠다!"
청풍오결의 우두머리가 검을 바르르 떨며 소리쳤다. 그들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이전의 추살대와는 궤를 달리했다.
위백은 그들의 포위망 한가운데에 서서 조용히 숨을 고르다, 문득 자신의 단전 속에서 끓어오르는 기운의 형태가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방금 전 숨을 거둔 철검우 장로가 남긴 청운검파의 비전 검리(劍理)였다.
배신당한 노검수의 한 서린 검술이, 위백의 몸속에 흐르는 극양의 구양진기와 만나 뜨거운 도가니 속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차갑고 예리하기만 했던 청운의 검초가, 구양의 불꽃을 만나 '정양화(正陽化)'된 기검(氣劍)으로 완전히 재탄생하는 대각성의 순간이었다.
위백이 천천히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 위로 황금빛 진기가 모여들며, 형체는 없으나 태양보다 눈부신 무형의 기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운의 한을, 구양의 불꽃으로 씻으리라."
위백의 형형한 눈빛이 청풍오결을 꿰뚫었다.
"오만하구나! 청풍풍우(靑風風雨)!"
청풍오결이 일제히 대지를 박차고 올랐다. 다섯 개의 검이 허공에서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폭풍우와 같은 검의 장막을 형성했다. 소나무 숲의 모든 나무가 그 검압에 밀려 비명을 지르며 꺾여 나갔다.
그 찬란하고도 치명적인 일격을 마주하며, 위백은 단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초(初) 초.
위백의 기검이 허공을 가볍게 그었다. 청운검파의 살초 '청운낙엽(靑雲落葉)'이 구양진기의 극양화와 결합하여 사방으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아니라, 대지를 불태우며 쏟아지는 유성의 비와 같았다.
콰아아아앙!
황금빛 검광이 청풍의 검막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폭음이 망향곡을 뒤흔들었다.
이(二) 초.
위백의 신형이 청풍오결의 검진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극양의 열기가 그들의 검기를 증발시켰고, 오결의 안색은 순식간에 공포로 물들었다.
"이, 이것은 인간의 무공이 아니다……!"
삼(三) 초.
위백의 무형기검이 원을 그리며 허공을 휩쓸었다.
스아아아아―.
찰나의 순간, 소나무 숲을 가득 채웠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낙양이 자랑하던 비장 호위 무력 청풍오결 다섯 명의 목에서 붉은 선이 그어지며 황금빛 불길이 치솟았다. 그들의 검과 육신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단 삼 초 만에 불길에 휩쓸려 검은 재로 변해 허공으로 흩날렸다.
스스스스…… 밤바람이 불어와 타버린 잔해를 쓸고 지나갔다.
오십여 명의 추살대와 최고의 고수들인 청풍오결이 단 한 명의 청년에 의해 흔적도 없이 소멸당한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참상은 곧 강호 무림 전체를 거대한 경악과 공포로 몰아넣을 대격변의 신호탄이었다.
***
피와 재로 물든 소나무 숲길 위에 위백은 홀로 서 있었다.
가슴을 짓누르던 철검우의 원한이 일부 해소되면서, 그의 기경팔맥을 흐르는 구양진기 제3경의 기운이 한층 더 공고하게 벽을 깨부수고 있었다. 그러나 대가를 치르는 신체적 고통은 여전하여, 그의 입가에는 검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위백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타버린 시체들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그중 청풍오결의 우두머리가 서 있던 자리에서 검게 그을린 가죽 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그 안을 열어젖히자, 한 장의 서찰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찰을 펼치자, 겉면에는 붉은 낙인으로 '피의 부채'라 적혀 있었다. 그것은 소천우가 자신의 문파인 청운검파의 생존을 위해 무림맹과 흑월맹 사이에서 억지로 맺어야만 했던 치욕스러운 채무 계약서의 사본이었다. 무림맹이 청운검파를 어떻게 착취하고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는지가 낱낱이 적혀 있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위백은 서찰을 꽉 움켜쥐며 냉소했다.
"정의를 부르짖는 무림맹의 실체가 이토록 추악할 줄이야. 소천우, 네놈이 지키려던 명예는 결국 이 가식적인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단 말이냐."
바로 그때였다.
숲의 저편에서 피투성이가 된 청운검파의 하급 무인 하나가 비틀거리며 위백을 향해 기어왔다. 그의 전신은 검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미 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였다.
"위…… 위백 소협……."
무인은 피를 토하며 위백의 바지 자락을 붙잡았다.
"살려…… 아니, 구해 주십시오…… 청운검파의…… 부녀자들이……."
위백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냐."
"위헌 가주의 첫째 애제자이자…… 차기 돌격대장인 기우성(奇宇成)이…… 낙양 도심 중앙 기둥에…… 청운검파의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목매달기 시작했습니다……. 철 장로님의 행방을 대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무인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한 채 목을 꺾으며 숨을 거두었다.
쿠우우웅―.
그 순간, 위백의 가슴속에 새겨진 철검우의 원혼이 미친 듯이 날뛰며 그의 뇌리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남겨진 자들의 비명과 억울함이 그의 영혼을 타고 들어와 극양의 진기를 광폭하게 자극했다.
타버린 소나무 숲길 너머, 밤하늘은 피빛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위백의 눈이 다시금 번쩍 뜨였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천지를 불태울 듯한 구양의 붉은 신광이 들불처럼 사납게 타오르기 시작했다.